본문내용 바로가기

한국 스포츠만화의 역사와 계보
두 번째, 80년대 야구만화의 시대2014/07/23by 현대자동차그룹

80년대 프로야구의 인기는 우리나라 야구만화를 대표하는 대작
이현세 작가의 <공포의 외인구단>을 탄생시켰습니다

공포의 외인구단(출처:학산문화사)

| 공포의 외인구단(출처:학산문화사)



1982년 3월 27일 대통령의 시구로 프로야구가 시작되었습니다. 70년대 고교야구가 있었다면, 80년대는 완벽하게 프로야구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프로야구 시대를 대표한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 지금이야 기억이 희미해졌지만, 그 시대 이 만화의 인기는 그야말로 최고였습니다. 만화를 보지 않던 독자들도 만화방으로 끌어당겼던, 80년대의 야구만화!



80년대, 프로야구의 전성기

70년대 스포츠가 마음의 상처와 가난을 극복하는 작용을 했다면, 80년대 스포츠는 사회의 우울함을 치료하는 약이었습니다. 약도 여러 종류였죠. 1981년 올림픽유치, 1982년 프로야구 출범, 1983년 프로축구 슈퍼리그 출범 등 국가주도형 대형 스포츠 이벤트들이 80년대 초반 시작되었죠. 이를 두고 부도덕한 정권이 주는 ‘환각제’라고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하루하루 살아가기 힘들었던 평범한 사람들에게 스포츠는 최고의 위안이었습니다. 특히 그중 최고 인기는 70년대 고교야구의 인기를 이어받은 프로야구였습니다. 

1982년 3월 27일 지금은 사라진 동대문 야구장에서 MBC 청룡과 삼성 라이온즈의 개막 경기를 시작으로 총 6개 구단이 참여하는 프로야구가 시작되었습니다. 6개 구단은 각각 서울 MBC청룡, 인천 삼미 슈퍼스타즈, 대전 OB베어스, 경북 삼성라이온즈, 경남 롯데자이언츠, 그리고 기아타이거즈의 모태인 호남 해태타이거즈로 지역 연고를 갖고 경기를 했는데, 지금까지 어떤 스포츠보다 큰 인기와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한번 반짝하고 끝나는 다른 스포츠 이벤트와 달리 주말마다 경기가 열렸으니까요. 고향을 떠나 여기저기 흩어진 이들은 자기 고향 팀을 응원하며 마음을 달랬습니다.

프로야구가 출범한 다음 해인 1983년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이 만화방용 만화로 출간되어 선풍적 인기를 끌었습니다. 때문에 야구만화 하면 누구나 <공포의 외인구단>을 떠올리지요. 까치 머리 오혜성, 안경을 쓴 냉혹한 4번 타자 마동탁, 그리고 실패를 딛고 일어선 외인구단 선구와 선글라스에 표정을 감춘 손병호 감독까지. 아, 팜므파탈 엄지를 뺄 수 없죠. <공포의 외인구단>은 이현세 작가 특유의 강렬한 카리스마가 그대로 폭발한 걸작인데, ‘야구’, 아니 ‘프로야구’가 없었다면 아마 인기의 몇 할쯤은 내려놓아야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공포의 외인구단> 이전에 프로야구 인기의 모태가 되었던 고교야구 이야기를 좀 하지요. 전 회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야구만화는 60-80년대에도 인기였습니다. 이우정의 <야구왕>이나 이상무의 <우정의 마운드> 같은 작품들은 모두 고교야구를 다룬 만화입니다. 

80년대 야구만화는 70년대 야구만화의 핵심 이미지였던 태양과 태풍을 제목으로 가져옵니다. 태양, 태풍은 야구와 근사하게 잘 어울리니까요. 허영만은 1979년 잡지 <어깨동무>에 야구만화 <태양을 향해 달려라>를 연재합니다. 특이하게 자신감에 넘치지만 실력이 부족한 포수이자 8번 타자 이강토를 주인공으로 내세웁니다. 야구 주인공 하면 보통 투수나 4번 타자인데, 포수이자 8번 타자라니요. 하지만 그래서 허영만 만화가 재미난 거죠. 보통 스포츠 만화의 주인공과 다른 주인공들을 늘 보여주거든요. 그래서 허영만의 스포츠 만화에는 웃음이 있습니다. 발레를 가르치는 아버지 몰래 태권도를 배운 주인공이 권투 선수가 된다는 <변칙복서>같은 작품이 대표적인 웃음을 활용한 스포츠 만화에요. <태양을 향해 달려라>도 그렇지요.

태양을 향해 달려라
| 태양을 향해 달려라

강토가 다니는 미성국민학교에 예전 학교(동백)에서 명포수로 날리던 강산과 동생 나비가 전학을 옵니다. 산의 등장으로 주전포수에서 밀려난 강토는 낙심하나, 생선가게를 운영하는 강토의 아버지의 특훈으로 강속구 투수로 변신하게 됩니다. 이후 야구만화의 정석을 따라 부상, 세계 리틀야구대회, 위기의 극적 반전으로 전개됩니다. 마지막 에피소드인 전국대회 결승전은 미성과 동백이 맞붙습니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불운이 겹치기로 찾아오지요. 산과 나비는 집으로 돌아오다 교통사고가 납니다. 이 일이 자신의 책임인냥 자책하던 산은 경기에 나서지 못합니다. 반면, 동백의 선수들은 미리 빼낸 미성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차근차근 미성을 공략합니다. 하지만 고난은 극복을 위해 존재하는 것. 나비의 수술 경과가 좋아 한달 뒤면 퇴원한다는 소식에 모든 선수들은 힘을 내고, 동백의 투수가 새어나간 정보로 미성 타자의 약점에만 공을 던진다는 걸 알게 된 뒤 모든 타자들이 자신이 제일 치지 못하는 코스만을 공략합니다. 그리고 주자 만루. 타석에 산이 들어옵니다. 낮은 직구를 힘차게 받아치는 장면과 하늘 높이 떠가는 마지막으로 만화는 끝을 맺죠.

가히 스포츠 만화의 모든 전형들이 녹아있는 작품이며, 독자와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초등학교 선수들을 다룹니다. 허영만은 <태양을 향해 달려라>의 성공 이후 80년대 들어 여러 편의 야구만화를 발표합니다. <태풍의 다이아몬드>(1982), <10번 타자>(1982), <태풍스트라이크>(1983)를 통해 중학, 고교 야구를 그린 뒤, 고릴라가 야구 선수로 뛴다는 황당한 설정의 <제 7구단>(1984), <도룡뇽 구단의 골치덩이들>(1985), <대머리 감독님>(1988)을 발표합니다. 이 두 작품은 모두 프로야구를 배경으로 해요. 허영만의 스포츠 만화는 70년대 이상무의 스포츠 만화와 달리 밝고 긍정적이며 유머러스한 주인공들이 등장합니다.

야구만화를 대표하는 대작 <공포의 외인구단> (출처: 학산문화사)
| 야구만화를 대표하는 대작 <공포의 외인구단> (출처: 학산문화사)

이제 <공포의 외인구단> 이야기를 해 볼까요? 유머라고는 약에 쓰려고 해도 찾아 볼 수 없는,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80년대를 대표하는 아이콘과 같은 만화였죠. 80년대를 살았던 이들에게 ‘약한 것’, ‘실패’는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80년대가 되며 갑자기 TV에 사납게 생긴 이가 등장했습니다. 도시에 전차가 들어오기도 하고, 계엄령이 내려지며 대학이 문을 닫기도 했습니다. 비극적이고 끔찍한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나기도 했구요. 80년 민주화의 봄은 처참하게 실패로 끝을 맺고 말았고, 모든 국민들은 숨죽여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공포의 외인구단>에 실패한 자들의 거대한 반란이 등장했습니다. 그것도 오혜성의 지고지순한 사랑과 함께. 오혜성이 엄지에게 한 대사를 그대로 인용해 표현하면,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은 암울한 시대를 이겨내는, ‘성전(聖典)’이었습니다.

지방 소도시에 술주정꾼 아버지와 살고 있는, 그래서 모두가 피하는 혜성에게 서울에서 전학 온 예쁜 소녀 엄지가 인사를 합니다. “난 엄지야, 최엄지.” 꾀죄죄한 혜성에게 서울에서 전학 온 제일 예쁜 소녀가 관심을 보여준 것이죠. 이렇게 변화가 시작됩니다. 엄지는 서울로 돌아가며 혜성에게 야구를 해 보라고 권합니다. 세월이 흘러 초등학생이던 혜성과 엄지는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상투적이지만) 엄마의 방해로 혜성과 소식이 끊긴 엄지는 미련을 버리고 최고의 고교 야구선수 마동탁과 교제하죠. 그때, 혜성은 무명의 지방고교 야구부를 이끌고 전국대회에 진출합니다. 그리고 엄지를 만나러 옵니다. 엄지가 동탁과 사귀고 있다고 해도 혜성은 크게 동요하지 않습니다. 엄지를 차지하는 게 혜성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여기서, <공포의 외인구단>의 씨줄이 되는 중요한 대사가 나옵니다.

“훌륭한 야구선수가 되라며 보내 준 네 편지. 네가 곧 나에겐 신이었고, 그 편지가 성전이었다. 언젠가 말했지만, 난 네가 기뻐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한다. 난 꼭 훌륭한 야구선수가 될 것이다.”


모든 이들의 가슴을 치게 만들었던 까치의 명대사
| 모든 이들의 가슴을 치게 만들었던 까치의 명대사

‘난 네가 기뻐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한다’는 결심은 이후 혜성, 엄지, 동탁 세 명의 지긋지긋한 삼각관계를 만들어나가는 원인이 됩니다. 사실 진짜 원인은 동탁에게서 혜성으로, 다시 혜성에게서 동탁으로 왔다 갔다 하는 엄지에게 있지만요, 독자들이 보기에는 엄지를 포기하지 않고 무엇이든 하겠다는 혜성 쪽이 더 큰 문제였습니다.
 
이야기의 씨줄이 사랑과 전쟁이라면, 이야기의 날줄은 ‘외인구단’입니다. 카리스마의 화신인 손병호 감독은 프로야구에서 퇴출된 선수들을 모아 지옥같은 훈련을 거쳐 최고의 선수로 만듭니다. 그들의 면면을 살펴볼게요. 

투수지만 너무 착한 마음 때문에 실패한 투수 조상구, 185cm에 90kg이 넘는 듬직한 체격을 자랑하지만 운동신경이 둔한 포수 백두산, 주한미군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혼혈 하국상, 작은 키가 콤플렉스인 3루수 최경도, 그리고 재일교포 유망주였다가 사고로 한쪽 손을 잃은 최관. 하나같이 주류에서 밀려나 비주류의 비루한 삶을 살던 이들입니다. 이들에게 손병호 감독이 손을 내밉니다. 지금 시선으로 보자면 명백히 위법인 감금, 발목에 쇠고랑 채우기, 구타에 인격모독이 자행되지만, 80년대를 사는 독자들에게는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습니다. 1980년 4월 신군부 세력은 ‘사회악을 일소’한다는 명분으로 이듬해인 1981년 1월까지 총 6만755명을 체포하여 보안사령부?중앙정보부?헌병대 요원, 검찰?경찰서?지역정화위원으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에서 등급을 분류하고 이 중 3252명을 군법회의에, B?C급 3만 9786명은 소위 ‘삼청교육대’에 입소시켰습니다. TV에서 웃통에 문신을 한 불량배들이 커다란 나무를 들고 집단 체조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불량배들뿐만 아니라 노동운동을 하던 이들, 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생들, 학교를 못 다니고 방황하던 청소년들도 삼청교육대에 끌려갔습니다. 그리고 아무 말도 못하는 반병신이 되어 돌아왔죠. 80년대 우리의 슬픈 자화상입니다. 
 
손병호 감독은 개조된 이들을 이끌고 꼴찌를 전전하던 서부구단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손병호 감독과 외인구단은 50연승의 기적을 만들어 냅니다. 너무 황당하다고요? 많이들 아시지만, ‘외인구단’은 삼미 슈퍼스타즈를 모델로 탄생한 만화입니다.



외인구단의 모델 삼미 슈퍼스타즈

공포의 외인구단에는 당시 시대상이 많이 담겨있습니다. 엄지와 마동탁이 탄 차는 포니를 빼닮았지요
| 공포의 외인구단에는 당시 시대상이 많이 담겨있습니다. 엄지와 마동탁이 탄 차는 포니를 빼닮았지요



야구처럼 폭발적 인기를 끌지는 못했지만 축구만화도 꾸준히 창작되었습니다. 특히 1982년 창간한 만화잡지 <보물섬>에는 창간호부터 연재된 김철호의 <그라운드의 표범>(1982)을 시작으로 이향원의 <그라운드는 부른다>(1985), 배금택의 <황제의 슛>(1987)으로 꾸준히 축구만화의 계보가 이어졌습니다. <춤추는 센타포드>로 유명한 오일룡 작가는 만화방과 잡지를 오가며 꾸준히 ‘축구만화’의 한길을 걷기도 했습니다.



글. 박인하
만화평론가 / 청강문화산업대학교 교수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