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

한국 스포츠만화의 역사와 계보 네 번째
그래도 스포츠만화는 살아있다!2014/09/30by 현대자동차그룹

2000년대가 되어 박찬호와 박지성이 세계 최고의 무대로 진출하고
한국은 월드컵 4강에 올라가는 기적을 보여줍니다

축구클럽을 그린 <자이언트 킬링> (출처: 북박스)

ㅣ축구클럽을 그린 <자이언트 킬링> (출처: 북박스)



1994년 박찬호는 LA 다저스에 입단하며 한국인 메이저리거 1호가 됩니다. 1997년 14승을 시작으로 눈부신 활약을 보여줍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이 개최되고, 한국 국가대표 축구팀은 4강 진출에 성공합니다. 월드컵 이후 박지성, 이영표 등이 네덜란드 리그를 거쳐 영국 프리미어 리그에 진출하게 되었고요. 야구와 축구, 한국인이 가장 사랑한 두 스포츠 스타가 세계 최고 리그에서 세계 최고 선수들과 경기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의 경기는 실시간으로 중계되었습니다. 만화 같은 일이 현실이 되자, 스포츠만화는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박찬호와 박지성의 시대

한국의 월드컵 4강을 예언한 <슈팅> (출처: KOCN)
ㅣ한국의 월드컵 4강을 예언한 <슈팅> (출처: KOCN)

2000년대가 되면서 한국의 스포츠는 세계로 눈을 돌리게 됩니다. 물론 예전에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기도 했고,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기도 했습니다. 아! 차범근 선수는 80년대 당시 최고의 리그였던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하고, 1980년에는 프랑크푸르트에는 UEFA컵을 들어올리기도 했었죠. 하지만 당시 차범근 선수의 경기는 아주 가끔 하이라이트로 밖에 볼 수 없었습니다. 세계 최고의 리드에 진출해 매번 경기에 나오는 걸 실시간 중계로 감상하게 된 건 LA 다저스의 박찬호 선수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박지성 선수부터였죠.

차범근 선수의 활약이 머나먼 곳에서 들려오는 비현실적 소식이었다면 박찬호, 박지성 선수의 활약은 실시간이었습니다. 그만큼 많은 국민들이 두 선수의 활약에 열광했습니다. 한양대 재학 중이던 박찬호 선수는 1994년 LA 다저스에 ‘깜짝’ 입단합니다. 그리고 마이너리그를 거치지 않고 바로 메이저리그에 올라가지요. 하지만 17일 만에 마이너리그로 내려가게 됩니다. 1996년 시즌부터 다시 메이저리그로 승격된 박찬호 선수는 1996년 4월 7일 선발투수인 라몬 마르티네스가 부상을 입게 되자 갑작스럽게 2회말에 구원 등판을 하게 됩니다. 경기는 3대1 다저스의 승리.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그 승리를 기록합니다.

다음 해인 1997년, 공교롭게 우리나라는 외환위기의 어려움에 빠져있을 때 박찬호 선수의 활약이 시작됩니다. 그 활약은 고스란히 실시간으로 중계되었습니다. 박찬호 선수는 실시간 글로벌 스포츠 스타의 시대를 연 것입니다. 1997년 14승 8패를 시작으로 1998년 15승 9패, 2000년 18승 10패, 2001년 15승 11패를 기록합니다. 박찬호 선수의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공에 거구의 메이저리거들이 배트를 헛 휘두르는 모습은 모든 스트레스를 날려주는 청량제의 역할을 했습니다. 메이저리그 통산 승수 124승. 박찬호 선수의 활약으로 90년대 한국 선수들의 메이저리그 진출이 속속 이어졌습니다.

우리가 만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활약을 현실에서 보게 되어버리자, 야구만화는 김빠진 맥주처럼 되어버렸습니다. 박찬호가 놀라운 활약을 이어가던 2000년 5월 1일, <일간스포츠> 박하, 문병천 작가의 <빅리거>가 연재되기 시작했습니다. 좌완 파이어볼러의 메이저리그 진출 스토리를 다룬 작품이었습니다. 꽤 오래 연재되었지만 예전 시대의 스포츠 만화보다 강렬한 기억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왜냐고요? 뻔하잖아요? 만화에서 보고 싶은 이야기가 이미 현실에서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있었으니까요.

그렇다면, 야구 만화의 경쟁자인 축구 만화는 어떤가요? 역시 현실의 벽을 넘지 못했습니다. 한국 축구는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4강에 오릅니다. 누구도 예상 못한 결과이지요. 세계적 강호인 포르투갈과의 조별 예선 3차전, 이영표이 크로스를 받은 박지성이 수비를 제치고 오른발 슈팅으로 골을 기록한 장면은 그야말로 만화였습니다. 수백 번은 더 본 것 같은, 하지만 여전히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명장면이지요. 2002 한일월드컵 이후 박지성과 이영표라는 두 명의 축구 스타는 히딩크 감독의 나라 네덜란드 리그를 거쳐 영국의 프리미어 리그에 안착합니다.

이게 얼마나 만화 같은 사건이었는가 하면, 1996년 <소년챔프>에서 연재를 시작한 전세훈의 <슈팅>이라는 축구 만화가 있습니다. 이 만화에서는 한국의 월드컵 4강을 예언했습니다. 골키퍼로 활약하던 천재 고교생 나동태가 조커로 변신해 성공해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를 거쳐 마침내 2002년 한일 월드컵 경기에 나가게 됩니다. 현실에서 월드컵이 개최된 2002년 6월, 전체 29권 분량으로 완결되었습니다. 많은 스포츠 만화 독자들은 월드컵에서 승승장구하는 만화 속 한국 팀의 활약이 불가능하고 생각했고, 그야말로 만화에서나 가능한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2002년 이전에는 1승에 목말라있던 상황이니까요. 그런데, 현실에서 기적 같은 4강 진출이 이루어지면서 <슈팅>은 다시 팬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후 전세훈은 국가대표 선수들의 유럽 리그 진출을 역시 현실보다 한발 앞서 묘사한 <슈팅코리아>를 2002년부터 연재를 하기도 합니다.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은 박찬호와 박지성의 시대였습니다. 야구를 좀 했다고 하면 메이저 리그, 하다 못해 일본 프로야구로 진출을 했고, 축구를 했다 하면 영국 프리미어 리그로 나갔습니다. 당연히 꿈을 그려야 하는 야구 만화, 축구 만화는 꿈보다 앞서 나간 현실에 황당해 하며 길을 잃어버렸죠.



전문지식으로 경쾌하게 그린 스포츠 만화

야구 프런트를 주제로 한 <GM > (출처: 알에이치코리아)
ㅣ야구 프런트를 주제로 한 (출처: 알에이치코리아)

현실의 드라마틱이 만화를 압도해 버린 사례입니다. 대신 스포츠 만화는 웹과 만나 다른 방향으로 진화합니다. 전문적인 지식을 짧고 경쾌하게 풀어낸 스포츠 웹툰이 등장한 것이지요. 2002년 <일간스포츠>에 직장인 만화 <하대리>로 데뷔한 최훈 작가는 2004년 네이버에 을 연재하기 시작합니다. 전문기자나 해설가보다 더 전문적인 식견으로 미국 메이저리그 선수나 팀에 대한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보여준 이 작품은 메이저리그에 대한 갈증을 해갈하는 단비와도 같았습니다. 더군다나 최훈 작가는 복잡한 정보를 명쾌한 비유를 통해 유쾌하게 전달하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줬습니다.

의 인기는 2008년 <프로야구 카툰>으로 이어졌습니다. 주간 단위의 프로야구 리뷰로 시작해 일간 연재에 가까운 속도로 매일 경기 결과를 정리해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프로야구 팬이라면, 최훈 작가의 만화를 보는 것으로 프로야구 경기를 총정리한 느낌이었죠. 심지어 최훈 작가가 암호 같은 장치들을 숨겨 놓은 걸 해설하는 댓글이 늘 베스트 댓글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기아 타이거즈의 호랑이 캐릭터가 ‘꽃’을 붙이고 나오면 ‘이범호 선수’를 뜻하는 거였죠. 프로야구 구단을 묘사한 귀여운 2~3등신 캐릭터는 인기여서 캐릭터 상품으로 출시되기도 했습니다.

최훈 작가는 이나 <프로야구 카툰> 같은  짧은 카툰은 물론 , <클로져 이상용> 같은 장편 만화도 발표했습니다. 2007년 5월 5일 연재를 시작해 2013년 1월 4일 연재를 끝낸 은 독특하게 ‘야구 프런트’가 주인공인 작품입니다. 의 리그는 수원 램즈, 대구 트로쟌스, 대전 블레이저스, 인천 돌핀스, 광주 호네츠, 서울 게이터스, 부산 선데빌스, 서울 재규어스 8개 팀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과거 램즈의 유망주 투수였다가 전력분석 팀장으로 일하고 있는 하민우가 주인공입니다.

프로 9년차이자 광주 호네츠의 3루수인 장건호가 FA를 선언합니다. 장건호는 9년동안의 통산타율 .321, 251홈런에 792타점을 기록한 FA 최대어입니다. 성적도 계속 오르고 있고, 성실하고, 리더십까지 있는 선수인 장건호를 영입하기만 하면 바로 우승전력이 되는 겁니다. 당연히 부자 구단인 트로쟌스나 게이터스와 계약을 할 거라고 모두 예상하지만 하민우는 새롭게 부임한 신임 사장 이윤지를 보좌해 장건호를 영입하기 위한 작전을 추진합니다.

지난 9월 7일,  KIA 타이거즈 경기에 선발 출전한 외국인 투수, 저스틴 토마스
ㅣ 지난 9월 7일,  KIA 타이거즈 경기에 선발 출전한 외국인 투수, 저스틴 토마스

아무도 칠 수 없는, 그리고 던질 때마다 투수의 생명을 갉아먹는 ‘마구’가 나오던 야구만화는 2000년대에 들어 프런트와 오프시즌 이야기로까지 진화했습니다. 프런트는 프로 스포츠의 감추어진, 그러나 매우 중요한 구성요소이지요. 기아 타이거즈 프런트는 외국인 선수를 잘 선발합니다. 투수들은 10승 이상을 거두는 준수한 활약을 했고, 2014 시즌에는 오랜만에 선발한 타자 블랫 필이 준수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클럽과 서포터즈의 끈끈한 우정

HUN, 박용제 작가의 <모든 걸 걸었어> (출처: 드림컴어스)
ㅣ HUN, 박용제 작가의 <모든 걸 걸었어> (출처: 드림컴어스)


2011년 11월 다음에 HUN, 박용제 작가의 <모든 걸 걸었어>가 연재됩니다. 스포츠 만화, 그 중에서도 축구 만화였지만, 20세기의 스포츠 만화와 많이 다른 만화였습니다. <모든 걸 걸었어>에는 실존 축구팀 ‘부천FC 1995’가 등장합니다. 이 클럽은 서포터즈가 중심이 되어 창간했는데요. 사연은 이렇습니다. 부천 연고의 프로축구팀이 갑자기 제주로 연고를 이전해 버리자, 응원할 팀을 잏은 서포터즈 헤르메스는 자신들이 응원할 팀을 직접 창단합니다. 2008년 ‘부천FC 1995’가 창단되고, 현재 3부 리그에서 활동 중이죠. 팀을 창단한 지 1년이 지난 2009년 7월 19일, 부천FC는 맨체스터유나이티드가 미국 스포츠재벌의 손에 넘어가며 맨유 서포터즈들이 중심이 되어 창간된 FC유나이티드 오브 맨체스터와 경기를 벌이게 됩니다. <모든 걸 걸었어>는 부천FC를 소재로 상처받은 선수들이 조금씩 전성기의 기량을 회복하며 마침내 맨체스터와 경기를 벌이는 이야기를 그렸습니다.

사실 평범한 스포츠 팬들은 주로 국가대표 경기에만 열광을 했습니다. 만화도 마찬가지였죠. 천부적 재능을 지닌 선수가 승승장구 마침내 국가대표가 된다는 성공 스토리가 대부분이었죠. 하지만 21세기가 되어서 예전에는 관심도 없던 ‘축구클럽’을 소재로 한 축구 만화가 탄생하기도 합니다. 츠지모토, 츠나모토 마샤야의 <자이언트 킬링>은 ‘축구클럽’이 주인공인 만화입니다.

서포터즈를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펼친 <자이언트 킬링> (출처: 북박스)
ㅣ서포터즈를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펼친 <자이언트 킬링> (출처: 북박스)

일본의 국가대표였고, 또 프로구단 ‘이스트 도쿄 유나이티드(ETU)’의 황금시절을 이끌었던 천재 축구 선수 타츠미 타케시가 10년 만에 ETU의 감독으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타츠미의 해외 진출 이후 10년 동안 클럽이 몰락해 가는 모습을 본 ETU의 서포터즈들은 타츠미의 감독 취임을 반대합니다. 처음에는 서로 좋은 분위기가 아니었지만, 타츠미의 실력과 진심이 서포터즈들의 열정과 만나며 조금씩 성장합니다. 만화를 보면 서포터즈들의 일치된 응원장면이 등장합니다. 팀 셔츠를 입고, 컬러인 검정과 빨간 색 스트라이프로 된 깃발을 흔드는 장면을 보면 우리 축구 클럽 서포터즈들의 응원장면이 오버랩됩니다.

전북현대모터스의 경기를 보면, 어디에라도 초록색이 넘실거립니다. 기아타이거즈의 경기에는 흰 색과 붉은 색의 유니폼을 입은 관객들이 가득합니다. 초록색 팀 상징을 앞세운 전북현대모터스의 매드 그린 보이스나 기아타이거즈의 열혈 응원을 주도하는 레드탑처럼 서포터즈의 존재는 프로 스포츠의 핵심이기도 하죠.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의 경우 연고지 천안에서 인기는 하늘을 찌릅니다. 라이벌 삼성화제와의 경기는 늘 좌석이 매진됩니다. 프로배구 출범 이래 7년 연속 홈관중 1위를 차지할 정도입니다. 같은 팀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선수의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한 순간도 자리에 앉지 않고 함께 소리지르며, 노래하다 보면 팀과 내가 마치 하나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되죠.

월드컵 4강 신화 주역이었던 김남일, 지금은 전북현대모터스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ㅣ 월드컵 4강 신화 주역이었던 김남일, 지금은 전북현대모터스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흔히 스포츠만화는 선수들의 성장, 승부에 중심이 맞춰집니다.  <자이언트 킬링>은 클럽 전체가 주인공입니다. 마치 유기적 생명체 같아요. 스포츠, 특히 연고지를 두고 정기적인 경기를 벌이는 프로 스포츠의 힘은 선수 개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그 능력이 하나로 모인 팀과 팀을 사랑하는 팬들을 통해 극대화되는 것이죠.

내 아이와 함께 내가 응원하는 팀의 유니폼을 사고, 시즌 입장권을 구매해, 주말이면 구장을 찾아 응원을 합니다. 이렇게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구단과 팀의 관계가 함께 이어지며 끈끈해지는 것이지요. 세계 유명 스포츠 리그의 명문 팀들은 오랜 시간 속에서 클럽과 지역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한일의 축구만화, 비록 내용과 전개가 각각 달라도 <모든 걸 걸었어>와 <자이언트 킬링>의 진짜 주인공은 모두 ‘축구클럽’과 축구클럽을 열광적으로 응원하는 서포터즈 한 사람 한 사람입니다.

전북현대모터스의 매드 그린 보이스처럼 서포터즈는 프로 스포츠의 핵심과도 같습니다
ㅣ 전북현대모터스의 매드 그린 보이스처럼 서포터즈는 프로 스포츠의 핵심과도 같습니다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박찬호와 박지성으로 대표되는 빅 리거들이 등장하면서, 한국 스포츠 감상의 눈높이도 높아집니다. 현실의 스포츠가 기적을 연출하니 스포츠 만화는 어디로 가야 할지 한참 헤매게 되죠. 그러다 보니 전문적인 스포츠 만화가 등장합니다. 야구광인 최훈 작가의 여러 작품들은 프로야구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모든 걸 걸었어>와 <자이언트 킬링>처럼 축구클럽과 서포터즈가 주인공인 작품이 나오기도 하고요. 예전처럼 목숨을 건 스포츠 만화 대신 조금 더 다양하고, 흥미로운 스포츠 만화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네요. 스포츠가 살아있는 것처럼, 스포츠 만화도 살아있습니다.



by 박인하
만화평론가 / 청강문화산업대학교 교수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