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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한 촉
세상을 바꾸다2014/11/18by 현대자동차그룹

세상을 변화시키는 거대한 힘은
작은 생각의 전환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돋보기로 무언가를 관찰하는 두 어린이
| 시대를 바꾼 발명은 모두 사소한 관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과학이나 예술, 지구상의 문명 대부분은 사소한 관찰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단풍나무 씨앗이 바람에 날리는 모양에서 헬리콥터가 탄생했고, 오스트리아의 화가 오스카 코코슈카(Oskar Kokoschka)는 아우구스트 포렐(August Henri Forel) 교수의 초상화에서 2년 뒤 발병할 뇌졸중을 정확히 예측했습니다. 예민한 촉수로 과학과 예술을 꽃피운 세기의 관찰자들을 소개합니다.



‘진화론’과 <종의 기원>이 설계된 ‘작은 노트’ 한 권

노트와 돋보기
| 다윈은 항상 몸에 노트를 지니고 다니며 관찰한 것을 기록했습니다

관찰로 세상에 큰 파장을 던진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찰스 다윈(Charles Darwin)입니다. 다윈의 ‘진화론(자연선택 이론)’은 당시 지배적이었던 창조설, 즉 지구상의 모든 생물체는 신에 의해 창조되고 지배된다는 통념을 깨고 과학적 세계관이 지배하는 새 시대를 열었습니다. 다윈은 메모광이었습니다. 수십 권에 달하는 일기와 노트를 남겼는데, 일과 사생활 모두를 관찰해 기록한 일기는 1838년 8월, 약 7×10cm 크기의 작은 노트에서부터 출발했습니다. 영사기가 돌아가듯 때론 그림을 곁들여 세밀하게 작성된 이 일기는 그가 사망하기 넉 달 전인 1881년 12월까지 무려 40년이 넘게 지속되었습니다.

이 외에도 다윈은 1835년에 도착한 갈라파고스(Galapagos) 제도에서의 일들을 기록한 노트로 <비글호 항해기>를 출간했고, 이것이 바로 <종의 기원>의 시작이었습니다. ‘같은 종류의 멧새인데 어떤 새들은 짧고 두터운 부리가 있어 씨를 깨 먹기에 용이하고, 또 어떤 녀석은 날카롭고 뾰족한 부리가 있어 곤충을 잡기 용이하다’라는 부분이 그것이지요. 한 섬에 살고 있는 같은 종류의 새임에도 불구하고 사는 장소마다 서로 다른 부리와 깃털을 갖고 있다는 작은 발견이 <종의 기원>의 토대가 된 것입니다. 평소 다윈은 노트를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며 기록했다고 합니다. 그가 남긴 많은 양의 노트들을 보면 그가 주장한 진화론이 결코 행운이나 우연의 산물이 아니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팔랑팔랑 ‘나비’ 한 마리, 조선의 화풍을 바꾸다 

일호 남계우, 1811~1888, 화접도 花蝶圖, 종이에 수묵채색, 15×49㎝(출처: 마이아트옥션)
| 일호 남계우, 1811~1888, 화접도 花蝶圖, 종이에 수묵채색, 15×49㎝(출처: 마이아트옥션)

조선시대 화가 일호(一濠) 남계우의 일생은 온통 나비를 위한, 나비에 의한 삶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나비를 잘 그려 ‘남나비’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그는 평생 초야에 묻혀 나비 그림만 그렸습니다. 그의 그림은 앞선 시대의 화가들의 것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바라보고 있으면 나비가 화폭을 뚫고 팔랑팔랑 날아오를 것처럼 극사실적입니다. 훗날 나비박사 석주명은 남나비의 작품 속에서 무려 37종의 암수를 구별해냈습니다. 나비는 보통 무늬로 암수를 구별하는데, 남계우는 세필을 이용해 마치 복사 하듯 나비를 그렸기에 섬세한 더듬이부터 암수를 구분하는 뒷날개의 꼬리 부분까지 생생하게 표현 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남계우의 나비 사랑은 유별났습니다. 예쁜 나비를 발견하곤 10리(약 4km)를 쫓아가 잡아온 적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잡아온 나비는 책 사이에 넣고 말렸다가 종이를 얹고 숯으로 형태를 본떠 실제 나비와 동일한 크기와 모양으로 그렸습니다. 날개의 질감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금박지인 냉금지(冷金紙)를 쓰는 한편, 노란색을 표현하기 위해 그 귀한 금가루를, 흰색을 위해서는 진주가루까지 사용했습니다.

남계우가 살았던 조선왕조 철종 연간은 근대의 문턱이었습니다. 예리한 감수성을 가진 예술가들은 동물적인 감각으로 근대의 바람을 감지하기 시작했는데, 남계우의 그림이 주목받는 이유 역시 실제 나비에 버금가는 섬세함 외에도 일찌감치 예술에 과학적인 시각을 접목, 근대화(畵)의 신호탄을 알리는 시금석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추리소설에 반전 공식을 정착시킨 ‘1인칭 관찰자 시점’

애거사 크리스티의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 애거사 크리스티가 독자에게 가장 많은 항의를 받게 한 소설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장기판의 말처럼 의도대로 움직이며 연극 톤의 대사를 읊조리는 등장인물들, 한물간 시대감각에 구닥다리 명탐정이지만 애거사 크리스티(Agatha Christie)의 작품은 발표된 지 수십 년이 훌쩍 지났음에도 여전히 많은 이들의 애독 리스트 중 하나입니다. 그중 독자들이 손꼽는 최고 걸작은 그녀 소설의 백미로 통하는 <오리엔트 특급살인>이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가 아닌 바로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입니다. 혹자는 ‘추리소설 독자는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을 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뉜다’고 평하기까지 했으니, 대체 이유가 뭘까요?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은 애거사 크리스티의 여섯 번째 작품으로, 발표 당시 ‘보이지 않는 범인’ 논쟁을 불러일으킨 화제작입니다. 특히 서술 트릭을 이용한 최초의 작품으로 주목받았는데, 이 교묘한 서술트릭을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1인칭 관찰자 시점입니다.

“사실 저는 그 미지의 청년을 직접 만나기 훨씬 전부터 그와 러셀 양을 관련지어 생각했답니다. 바로 그 깃털을 발견하고서부터였죠. 깃털은 마약을 연상시켰는데, 그러자 러셀 양이 당신을 찾아왔다는 얘기가 생각나더군요. 그리고 그날 아침 신문에서 코카인에 관한 기사를 보았습니다. 그러자 모든 게 명백해지더군요.”

명탐정처럼 뛰어난 관찰에 근거한 추리 솜씨를 보이는 소설 속 ‘나’는 어느 모로 보나 사건의 전말을 파헤치는 인물입니다. 자연히 독자가 ‘나’에 몰입해 ‘나’의 눈을 따라 사건을 쫓고 서서히 결말에 다가가는 게 예상된 수순입니다. 하지만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은 여기에서 엄청난 반전을 시도합니다. 독자들이 감정이입했던 화자, 바로 ‘나’가 범인이었던 것이지요. 이 소설 이후 추리소설 독자들이 1인칭 화자를 무조건 범인으로 지목하고 보는 기현상까지 일어났다니, 그 충격과 여파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됩니다.

장담컨대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을 읽는 묘미는 지금까지 ‘이제 난 누가 범인이어도 놀라지 않아’ 라고 자신하는 사람들에게 충격을 선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1인칭 관찰자 시점이야말로 오늘날까지 사랑받는 추리소설의 여왕 애거사 크리스티를 살아 숨쉬게 하는 동력이 아닐까요.



글. 백선아




▶현대자동차그룹 사보 모터스라인 2014년 11월호에서 원문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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