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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88부터 1997까지,
추억의 현대자동차 6선2015/12/07by 현대자동차

요즘 대세 <응답하라 1988>에 등장한 포니2를 보니 반갑지 않으셨나요?
<응답하라 1994>, <응답하라 1997>에도 등장한 추억의 자동차를 찾아봤습니다

응답하라 시리즈에 등장한 추억의 현대자동차를 만나보겠습니다
l 응답하라 시리즈에 등장한 추억의 현대자동차를 만나보겠습니다



철저한 고증으로 시청자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복고 열풍을 몰고 있는 <응답하라 1988>. 치솟는 드라마의 인기와 함께, 차갑게 식었던 현대인의 심장도 복고댄스를 추며 신나게 펌핑하고 있습니다. <응답하라 1988>에는 추억 속에 사라진 곤로, 마이마이, 전화번호부와 함께 그 시절을 되돌아보게 하는 중요한 소품이 등장합니다. 바로 자동차죠. 자동차는 시대를 반영한다고 할 만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눈에 띄게 변해왔기에, 옛 자동차를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은 더욱 반갑기만 합니다. <응답하라 1988>부터 <응답하라 1994>와 <응답하라 1997>까지, 시대의 부름에 응답했던 현대자동차를 함께 만나보시죠.



<응답하라 1988>에 등장하는 ‘포니2’

1980년대, 현대자동차 포니는 중산층의 꿈이었습니다
l 1980년대, 현대자동차 포니는 중산층의 꿈이었습니다

<응답하라 1988>의 김성균과 라미란은 찢어지게 가난한 부부였습니다. 아들 둘과 함께 단칸방에서 살던 3년 전, 큰 아들 정봉이 산 복권이 당첨돼 지금의 부를 얻을 수 있었죠. 60평 저택으로 이사하고, 식탁 위 반찬이 바뀌었으며, 입는 옷이 업그레이드했습니다. 소위 ‘흙수저’에서 ‘은수저’가 된 그들. 많이 것이 변했지만, 그 중 가장 큰 변화는 자동차였죠. 1980년대 ‘중산층의 꿈’을 대변하는 현대자동차 ‘포니’가 그들의 수중에 들어온 것입니다. <응답하라 1988> 4화, 미란의 생일날 성균은 애마인 포니2에 열심히 광을 냅니다. 가족끼리 근사한 레스토랑에 돈까스 먹으러 외식을 나가려는 거죠. 당시 중산층의 일상적 풍경입니다. 이처럼 당시 집 한 채 가격이던 현대자동차 포니는 1980년대를 관통하는 중산층의 상징이었습니다.



1980년대 ‘중산층의 꿈’ 포니2를 기억하시나요?

현대자동차 포니는 대한민국 자동차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자동차입니다
l 현대자동차 포니는 대한민국 자동차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자동차입니다

포니는 조랑말을 의미하지만, 작은 조랑말을 무시하면 큰 코 다칩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고유 모델이니까요. 포니의 등장으로 대한민국은 아시아에서는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세계에서는 열여섯 번째로 자동차를 만든 나라가 됐죠. 1976년 울산공장에서 첫 출고된 후 단번에 베스트셀러가 된 포니는 그 해 7월, 국산승용차 최초로 에콰도르에 수출됐습니다. 1982년에 선보인 포니2는 포니의 2세대로, 국내 최초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입니다. 새로운 형태의 5도어 해치백 스타일은 출고 직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죠. 성균의 자동차도 바로 이 포니2입니다. 포니2는 1984년부터 캐나다에 수출돼 수입차 판매 1위를 기록, 훗날 미국 시장진출을 위한 기반을 닦았습니다. 1982년 1월부터 1990년 1월까지 총 35만9007 대가 생산된 포니2는 엑셀에게 자리를 넘겨주며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납니다. 하지만 화려했던 포니의 역사는 대한민국 국민의 뇌리에 여전히 강하게 남아있죠.



<응답하라 1988>에 등장하는 ‘엑셀’

현대자동차 엑셀은 ‘제 3세대 승용차’를 표방했습니다
l 현대자동차 엑셀은 ‘제 3세대 승용차’를 표방했습니다

<응답하라 1988> 속 최택은 바둑기사 이창호 9단을 모티브로 한 인물입니다. 극 중 최택이 계속된 슬럼프로 힘들어하자, 아버지 최무성은 심란한 마음으로 텔레비전을 바라봅니다. 브라운관의 우측상단을 보니 <토요명화>를 기다리는 게로군요. 그 시절 <토요명화>는 온 가족을 거실로 모이게 했던 인기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당연히 광고에도 프리미엄이 붙어, 인기리에 판매되던 제품들은 이 시간을 절대 놓치지 않았죠. 텔레비전에는 현대자동차 엑셀의 광고가 나오고 있습니다. ‘제 3세대 승용차’는 출시 당시 엑셀이 내걸었던 캐치프레이즈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제작진의 고증 오류를 엿볼 수 있습니다. 드라마 상에서 1988년도 가을인 그때, 1989년 출시된 엑셀 광고가 나오는 건 어찌된 영문일까요?



포니를 잇는 ‘강력한 소형차’ 엑셀을 기억하시나요?

현대자동차 엑셀은 등장과 함께 매달 베스트셀러에 등극했습니다
l 현대자동차 엑셀은 등장과 함께 매달 베스트셀러에 등극했습니다

우리에겐 마이크로소프트 엑셀을 알기 전, 현대자동차 엑셀에 열광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1985년, 기존 포니를 계승하며, '뛰어난 포니'라는 의미를 가진 ‘포니 엑셀’이 출시합니다. 대한민국에서 만들어진 최초의 앞 바퀴 굴림 승용차였죠. 보닛이 열리는 방향이 다른 승용차와는 반대인 점도 특별했습니다. 이후 1989년, 1,500억원의 개발비를 들여 새로운 엑셀이 선보였습니다. ‘포니’와 ‘포니 엑셀’을 잇는 ‘제 3세대 승용차’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죠.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사하던 쏘나타와 닮아 ‘리틀 쏘나타’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엑셀은 등장과 동시에 매 달 베스트셀러에 등극했습니다. 소비자들이 점점 준중형과 중형을 선호하게 되면서, 엘란트라와 쏘나타에게 그 자리를 내주기 전까지 말이죠. 하지만 1994년까지 수출 포함 144만여 대를 판매해 밀리언셀러에 오르며, 1990년대 초반을 상징하는 자동차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응답하라 1994>에 등장하는 ‘뉴 그랜저’

나정과 윤진 앞에 등장한 현대자동차 뉴 그랜저, 누가 타고 있을까요?
l 나정과 윤진 앞에 등장한 현대자동차 뉴 그랜저, 누가 타고 있을까요?

슬슬 1990년대 초로 떠나볼까요? <응답하라 1994>에서 성나정과 조윤진은 각각 농구선수 이상민과 가수 서태지의 열성팬입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이른바 ‘사생팬’ 정도로 보시면 돼요. 당시 이상민과 서태지의 인기로 말하자면, 날아가는 새는 옵션이요, 최신 쿼드콥터 드론도 떨어트릴 정도였습니다. 1화에서 나정과 윤진은 각자 이상민과 서태지를 기다리며 편의점에서 잠복합니다. 그리고 검은 고급 세단이 한 대 나타나죠. 당시 잘나가는 사람은 여지없이 애용하던 현대자동차 ‘뉴 그랜저’입니다. 윤진은 뉴 그랜저 안에 서태지가 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플래시를 연신 터뜨리며 사진을 찍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 유명인은 너, 나 할 것 없이 최고의 세단, 뉴 그랜저를 탔거든요.



세단의 정석, ‘품격의 상징’ 뉴 그랜저를 기억하시나요?

현대자동차 뉴 그랜저는 고급 세단의 상징이었습니다
l 현대자동차 뉴 그랜저는 고급 세단의 상징이었습니다

자, 생각해보세요. 8090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서 재벌 총수가 검은 세단을 타고 갑니다. 어떤 차가 떠오르시나요? 네 그렇습니다. ‘각 그랜저’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1세대 그랜저입니다. 1세대 그랜저는 미쓰비시와 공동으로 개발해, 등장하자마자 대우 로얄살롱 슈퍼를 밀어내고 대형차 시장의 왕좌에 앉았습니다. 이후 1992년, 유려한 곡선으로 완전 달라진 ‘뉴 그랜저’가 등장합니다. 국산차 최초로 전자 제어 서스펜션 등을 장착했고, 가죽 시트와 장미 무늬 우드로 인테리어를 고급스럽게 꾸몄습니다. 3세대 쏘나타와 함께 전성기를 구가하던 뉴 그랜저는 이후 다이너스티와 에쿠스에게 기함 자리를 물려줍니다. 3세대 그랜저는 오너 드리븐 카로 성격을 바꿨고, 지금은 젊은 층과 중년 층에게 두루 사랑 받는 세단으로 자리매김했죠.



<응답하라 1994>에 등장하는 ‘EF 쏘나타’

나정과 칠봉은 현대자동차 EF 쏘나타를 타고 길을 나섭니다
l 나정과 칠봉은 현대자동차 EF 쏘나타를 타고 길을 나섭니다

<응답하라 1994> 19화, 시간은 흘러 2000년이 됐습니다. 칠봉이는 여전히 나정을 좋아합니다. 삼천포는 신입사원으로 바쁘게 지내고, 해태는 직장을 구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초보운전 나정이가 차 키를 흔들며 함께 조수석에 탈 사람을 구합니다. 모두 나정의 눈을 피하지만, 운이 좋은지, 나쁜지 칠봉이가 걸려들고 말죠. 둘은 EF 쏘나타에 오릅니다. 나정은 엑셀과 브레이크를 헷갈리는 등 초보운전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나정이 급브레이크를 밟자 EF 쏘나타는 앞차와 간격을 1cm 정도 남기고, 우수한 제동성능을 선보이며 멈춰섭니다. 이걸 현대자동차의 PPL이라고 생각하시면 큰 오예입니다. 아무튼 둘은 무사히 대치동 칠봉이네 집에 도착했고, 칠봉은 EF 쏘나타에서 나정과의 추억을 또 하나 만들었습니다.



엘레강스한 품격, ‘중형차의 자존심’ EF 쏘나타를 기억하시나요?

현대자동차 EF 쏘나타는 헐리우드 다작배우로도 유명하죠
l 현대자동차 EF 쏘나타는 헐리우드 다작배우로도 유명하죠

1998년 3월 EF 쏘나타가 출시합니다. 서브 네임인 EF는 프로젝트명이기도 하지만, Elegant Feeling(우아한 느낌)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기도 했죠. 파격적이고 유려한 유선형 디자인이 인기를 끌었고, 후미 번호판 위치가 역대 쏘나타 중에서 유일하게 트렁크가 아닌 범퍼에 있었습니다. 2000년에는 현대자동차가 월드컵 공식 스폰서로 선정된 것을 기념하여 2.0 GVS 트림과 GOLD 트림 한정으로 월드컵 트림이 추가되기도 했습니다. 북미시장에서도 EF 쏘나타의 인기는 굉장했는데요. 실제로 EF 쏘나타는 헐리우드 다작배우로도 유명합니다. 2004년엔 <본 슈프리머시>, 2005년엔 <우주전쟁>, 그리고 2008년 <허트로커>에 등장했죠.



<응답하라 1997>에 등장하는 ‘티뷰론’

현대자동차 티뷰론 스페셜을 탄 토니가 집 앞으로 옵니다
l 현대자동차 티뷰론 스페셜을 탄 토니가 집 앞으로 옵니다

<응답하라 1997>의 성시원은 소위 말하는 ‘빠순이’의 전형입니다. HOT를 너무 좋아해서 방 안엔 HOT 오빠들의 브로마이드로 도배를 해놨고, 심지어 3화에서는 HOT 멤버를 만나기 위해 부산에서 상경해 토니안의 집에 찾아가기도 하죠. 한참 기다린 끝에 토니가 ‘포카리’를 타고 집 앞으로 옵니다. 포카리는 1997년 토니가 타고 다니던 한정판 ‘티뷰론 스페셜’의 애칭입니다. 하늘색 보디에 하얀 스트라이프가 포카리 스웨트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별명이죠. 당시 티뷰론은 뭇 남자들의 명실상부 최고의 드림카였습니다. 티뷰론은 시대를 대변하는 자동차입니다. 1990년대 등장한 X세대는 새로운 문화적 경험과 감수성을 지녔습니다. 그들은 평범한 세단을 거부하고 티뷰론과 같은 스포츠 쿠페에 열광했죠. 기억 나시나요? 선글라스를 끼고 한껏 폼 잡으며, 잘빠진 자동차를 몰던 젊은 날이.



근육질의 날쌘돌이, ‘상어’ 티뷰론을 기억하시나요?

현대자동차 티뷰론은 그 시절 X세대를 대변하는 자동차였습니다
l 현대자동차 티뷰론은 그 시절 X세대를 대변하는 자동차였습니다

티뷰론은 1995년 드라마 <아스팔트 사나이>에서 랠리카 버전으로 처음 공개됐고, 이듬해 1996년 4월 출시됐습니다. 에스파냐어로 상어를 뜻하는 이름답게 근육질이면서 날렵한 모습이었죠. 지금도 소싯적 잘나가 본 경험이 있는 중년 남성이라면 티뷰론을 몰아본 경험이 필시 있을 겁니다. 티뷰론은 이러한 인기로 출시 5일만에 1,700여 대가 계약됐습니다. 당초 월평균 판매 목표였던 1,500대를 훨씬 초과하는 판매량이었죠. 극 중 토니안의 자동차로 나오는 티뷰론 특별 한정판은 WRC에 참가하기 위해 제작됐습니다. 기존 티뷰론보다 25kg 가벼워졌고, 최고속도는 225km/h에 제로백은 7.3초에 달했죠. 티뷰론을 동경해본 적이 있다는 건, 우리 마음 속에도 한때 불꽃 같은 정열이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응답하라 1997>에 등장하는 ‘쏘나타 3’

<응답하라 1997>에서 현대자동차 쏘나타 3는 형제가 연적으로 변하는 공간입니다
l <응답하라 1997>에서 현대자동차 쏘나타 3는 형제가 연적으로 변하는 공간입니다

<응답하라 1997> 8화. 수능이 끝나고, 윤제와 태웅은 함께 차를 타고 길을 나섭니다. 윤제가 “형 차 뽑았어?”라고 묻자, 태웅은 “하나 샀다”라며 자랑스레 쏘나타 3를 소개합니다. 둘은 차를 타고 가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눕니다. 태웅이 교사를 그만두게 된 일, 윤제의 수능 얘기, 그리고 태웅도 윤제처럼 시원을 좋아하고 있다는 얘기까지요. 그날 드라이브 이후 둘은 형제이자 연적이 됩니다. 형제가 쏘나타 3를 타고 드라이브를 하는 모습. 이 장면은 대법관과 대통령 후보가 되는 윤제와 태웅이 시원을 사이에 두고 대립하게 되는 시작점이 됩니다. 윤제를 내려주고 떠나는 쏘나타 3의 뒷모습이 인상적입니다. 그 시절, 여느 쏘나타 3가 겪어야 했던 일을 태웅의 차도 겪어야 했거든요. ‘쏘나타’에서 ‘오나타’로의 강제 개명이죠.



수험생의 타깃 No1, ‘오나타’ 쏘나타 3를 기억하시나요?

현대자동차 쏘나타 3는 수험생들에 의해 ‘오나타’로 개명되곤 했죠
l 현대자동차 쏘나타 3는 수험생들에 의해 ‘오나타’로 개명되곤 했죠

쏘나타 3는 1996년 2월 출시됐습니다. 역대 쏘나타 중 TCS가 최초로 적용된 모델이죠. 쏘나타 3가 출시된 1996년에 쏘나타의 누적 판매량이 대한민국에서만 100만 대를 돌파했고, 같은 해 8월에 개최된 모스크바 모터쇼에서는 최우수 자동차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쏘나타 3는 수험생들의 타깃이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쏘나타 3에서 로마 숫자 III를 떼어가면 당시 기준으로는 고득점인 300점대를 얻을 수 있고, S(서울대학교의 약자)를 떼어 가면 서울대학교에 합격할 수 있다는 미신 때문이었죠. 영문 엠블럼이 각각 띄어져 있는 데다가 글자체가 얇아 많은 수험생이 알파벳과 숫자를 떼어가곤 했습니다. 그래서 멀쩡한 쏘나타가 졸지에 오나타가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죠. 이 때문에 현대자동차는 엠블럼 무상 교체 서비스를 시행하기도 했습니다.

현대자동차와 함께 떠난 추억의 시간 여행 어떠셨나요? 옛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진 않으셨나요? 1980년대 중산층의 상징 포니부터 1990년대 X세대의 상징 티뷰론까지, 현대자동차는 국민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해왔습니다. 오늘은 먼지가 소복이 쌓인 사진 앨범을 꺼내보세요. 아버지가 국민학교에 바래다주던 쏘나타, 혹은 취직한 형이 태워줬던 엘란트라, 아니면 스무 살의 꿈에 그리던 첫차 엑셀이 당신을 반갑게 맞이해줄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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