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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대한 단상2014/06/14by 현대자동차그룹

수백 년의 기억이 켜켜이 쌓인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30
이곳에는 열린 마음으로 모든 것을 포용하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건축 양식을 느낄 수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의 마당입니다.
| 우리나라 건축 양식을 느낄 수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의 마당입니다. ⓒ명이식



지난해
11월 경복궁 오른편 옛 국군기무사령부(이하 기무사) 터에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MMCA) 분관(이하 서울관)은 매일 수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도시의 새로운 명소가 됐습니다. 지하 3, 지상 3층 높이의 미술관은 혼자 잘났다고 튀어나오지 않고 주변 풍광에 자연스레 스며듭니다. 입구와 담이 따로 없어 어디서나 미술관 건물에 다가갈 수 있고, 수많은 유리창 덕분에 지하 1층에 밀집한 전시 공간은 자연의 빛이 전달하는 활력과 영감으로 가득 찹니다. 자유로운 현대미술을 소개하는 전시장과 함께 도서관, 소극장, 아트숍, 레스토랑, 카페 등은 지나가다 슬쩍 들릴 수 있는 도심 속 쉼터, 서울관의 매력입니다. 이 생기 넘치는 현대미술의 산책로는 시간의 기억을 감싸 안은 채 현대(Modern)뿐 아니라 지금 이 순간(Contemporary)을 우리와 함께 호흡하고 있습니다.



시간의 기억이 중첩되는 곳

야트막한 높이의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장 서울 박스 건물
| 양옆의 미술관 건물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면 종친부를 배경삼아 미술관을 조망하는 마당이 나옵니다

서울관이 자리 잡은 종로구 삼청로 30, 소격동 165번지는 시간의 기억이 켜켜이 쌓인 곳입니다. 조선 시대 국왕의 친인척을 관리하던 종친부 건물이 허물어진 곳에 1928 붉은 벽돌로 쌓은 근대 건축물이 들어섰습니다. 40 년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부속 병원으로, 1970년대 이후 2009년까지 군의 기밀을 다루는 기무사 본부로 쓰였지요. 서울관 예정 부지에는 공사 발견한 종친부 기단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기무사 건물이 존재감을 드러냈고, 12m 불과한 높이 제한과 부지를 관통하는 통로가 요구됐습니다. 이런 난제를 푸는 과정에서 미술관은 거대한 미의 성전이자 실험적이고 미래적인 랜드마크의 이미지와는 정반대의 길을 택했습니다.

외관을 복원해 남겨둔 구기무사 건물
| 외관을 복원해 남겨둔 구기무사 건물입니다

서울관은 과거의 흔적을 없애지 않았습니다. 기단만 남아 있던 종친부 터에는 정독 도서관에 복원한 종친부 건물을 그대로 옮겨왔습니다. 기무사 건물은 흰색 페인트를 벗겨내 붉은 벽돌로 층층이 쌓은 외관을 복원한 후 내부를 현대식으로 바꿨지요. 신축 건물은 이 두 건축물 사이의 언덕을 따라 자신의 자리를 잡았습니다. 시원시원한 직선으로 틀을 잡은 새로운 건물은 가로로 넓게 퍼져 안정감과 풍성함을 전달합니다. 말끔하게 티 하나 없는 통 유리창과 검정의 창틀은 정직하고 단순한 비례의 즐거움을 주는데요. 특히 외부의 모습은 세로가 긴 직사각형을 기본 모듈로 삼아 패턴처럼 반복되며 건물을 옆으로, 위로 확장시킵니다. 이런 직사각형 모듈을 자세히 보면 어째 세련과 친근이란 단어가 동시에 떠오릅니다. 부지 뒤에 자리 잡은 종친부 건물의 창호문과 서로 곁눈질해 보면 서로 모양이 닮은 것을 알 수 있죠. 게다가 금속을 말끔히 제련한 직사각형 조각은 사실 앞뒤로 살짝 휘었습니다. 그 아래에서 하늘을 보면 기와의 곡선이 촘촘히 눈앞을 메웁니다. 이렇게 새로운 건물은 서로 다른 시대의 이질적인 기억을 이어주며 조용히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지하에 전시공간을 최대한 배치한 덕분에 행인과 주민들에게 탁 트인 전망을 제공하는 것은 또 다른 덕목입니다. 넉넉함으로 가득한 서울관 부지를 구석구석 걸 어다니면 언제나 종친부와 근대 건물, 그리고 신축 건물의 중첩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특히 종친부를 뒤로 한 채 왼쪽의 기무사와 메인 건물, 오른쪽의 미술관 부속 건물을 틀 삼아 풀밭에서 정면을 바라보면 경복궁의 진푸른 지붕과 함께 멀리 겸재 정선이 그린 ‘인왕제색도’의 주인공, 인왕산이 그림처럼 다가옵니다. 마지막 왕조의 기억, 근대의 흔적, 21세기의 기술, 그리고 변치 않는 자연을 함께 보노라면 시간의 연속성이 선사하는 ‘현재’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옵니다.



열린 공간의 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전시된 서도호 작가의 설치작품 집속의 집속의 집속의 집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전시된 서도호 작가의 설치작품 <집속의 집속의 집속의 집>입니다

서울관이 갖는 탁월한 매력을 꼽는다면 단연 개방성입니다. 기무사를 감싸던 거대한 벽을 허물어 인도와 바로 이어진 서울관은 정문과 후문이 따로 없습니다. 단지 길과 틈이 있을 뿐입니다. 7개의 건축물이 6개의 마당을 끼고 군데군데 배치돼 있는데 마치 바다 위에 떠 있는 섬의 모습 같다고 해서 ‘군도형 건축’이라고 합니다. 마당은 우리나라 건축의 대표적인 특징입니다. 사람들은 꼭 전시를 보지 않아도 외부를 돌며 상쾌한 공기와 풍경을 즐기고, 마당에 앉아 사색에 잠길 수도 있습니다. 시간의 중첩이 주는 기묘함과 각 건물에서 얻을 수 있는 특유의 느낌은 방문객의 선택지를 더욱 풍부하게 합니다.

열린 공간은 지상뿐 아니라 지하에서도 오롯이 나타납니다. 총 전시실 8곳 중 6곳이 지하에 있을 정도로 서울관은 지하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하지만 높은 천장과 시원시원한 배치 덕분에 답답하기는커녕 길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걱정할 정도로 개방적입니다. 특히 지상건물에 설치한 각종 유리창은 자연의 빛을 지하로 아낌없이 전달합니다. 이를 통해 확보한 자연광은 오직 의도된 조명에 의지해 돌아다니는 수동적인 미술관 관람 방식을 바꿔놓습니다. 넓은 광장처럼 확 트인 지하 공간을 자유로이 유영할 기회가 생기는 것입니다. 1층과 지하 1층을 뚫어 만든 17m 높이의 거대한 상자형 전시장 ‘서울 박스’는 웅장한 개방의 쾌감을 주는 열린 공간의 백미입니다. 빛이 들어오는 창은 동시에 내부 사람들에게 외부를 바라볼 기회를 제공합니다. 서울 박스만 하더라도 거대하고 실험적인 설치 미술 뒤에 가로로 길게 창을 배치해 종친부의 풍광을 안으로 들여옵니다. 외부 모습까지 전시장의 작품으로 참여시키는 재주입니다.



일상을 엮는 통로

입구와 담이 없는 서울관은 우리 일상의 일부입니다. 대로변에는 갤러리가 모여있지만, 블록은 골목길이 연결하는 삶의 공간이 존재합니다. 이런 대비되는 풍경을 이어주는 것이 서울관의 숨겨진 역할입니다. 미술관 건물 틈을 따라 어디론가 걷다 보면 부지의 경계에 도달합니다. 발자국만 가면 통상적으로 세련된 이미지의 미술관과는 전혀 상반된 풍광이 우리를 맞이합니다. 조그만 음식점, 슈퍼부터 강아지가 뛰어다니는 울퉁불퉁한 골목길, 아직도 지중화가 되지 않은 전봇대 아래 펼쳐지는 한옥 지붕과 양옥 지붕의 교차 같은 거죠. 반면 다른 경계는 현대적인 갤러리와 레스토랑, 멋진 문화 공간이 즐비한 도로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내리막길을 따라 천천히 움직이는 자동차의 행렬을 보면, 여기가 서울의 한가운데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상반되는 풍경이 서울관이 품은 시간의 기억들과 맞물려 아주 자연스럽게 다가온다는 점입니다. 현실에서 유리되기 쉬운 화이트 큐브가 아니라, 오히려 현실을 서로 엮어주는 서울관은 가까이는 블록과 블록을, 멀리는 고궁과 자연을 끌어들이며 우리가 사는 세상을 여행하는 시작점으로 변합니다.

서울관에서 가장 전시 장소인서울 박스에는 지금 서도호 작가의 작품이 설치돼 있습니다. 작가가 미국 유학 시절 머물던 3 높이의 건물을 특유의 청색 천으로 실물 그대로 재현했는데, 내부에 또다시 어린 시절 머물던 한옥을 정교하게 표현했습니다. 서울 박스을 위해 특별히 만든 작품의 이름은 집속의 집속의 집속의 . 천으로 한옥을 재현한 공간과 이를 감싸는 서양식 주택, 설치품을 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그리고 미술관이 자리 잡은 서울을 뜻하는 제목입니다. 서울관 부지에서 가장 높은 지점에 발을 딛고 서면 조선 시대 한옥, 1920년대 근대 건물, 사이를 채우는 새로운 건축물 뒤로 점점 층수가 올라가는 고층 건물군이 보입니다. 여기서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아보세요. 왼쪽에는 소박한 삶의 풍경이, 뒤로는 세련된 문화 공간이,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경복궁과 인왕산이 우리 눈을 반깁니다. 수백 년간 시간의 기억이 서로 자연스레 연결되는 경험이야말로 과거와 미래 사이에 존재하는 현재를 정확히 아는 가장 확실한 방법 아닐까요? 동시대 예술(contemporary art) 중점적으로 다루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몇십 후에도 당당하게현재 외칠 있는 이유입니다.

by 전종현

아트컬쳐 저널리스트, 허핑턴포스트 블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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