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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겨울여행,
강원도 동해2015/01/02by 기아자동차

바다 외에 강원도 동해시가 지닌
다양한 매력을 담았습니다.

강원도 동해 추암 해변의 풍광

l 강원도 동해 추암 해변의 풍광



강원도 동해시에는 동해, 즉 동쪽의 바다만 있는 건 아닙니다. 묵호항 부근의 산동네에 가면 수평의 바다에선 볼 수 없는 수직의 풍경과 도시가 걸어온 애환의 길이 펼쳐 있습니다. 그 높은 곳에 위치한 마을의 골목 골목과 벽화를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돌아왔습니다. 찬바람이 불었지만 마음은 오히려 따뜻해졌습니다.  



묵호항이 내려다보이는 언덕배기에 자리한 논골마을
l 묵호항이 내려다보이는 언덕배기에 자리한 논골마을과 어달리 전경.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 사이로 거미줄처럼 길이 얽혀있습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묵호는 위풍당당했습니다. 묵호항이 존재했기 때문이지요. 1941년 묵호항이 무연탄을 실어 나르는 항만으로 개발되면서 인근 지역에서 사람들이 앞 다퉈 이곳으로 몰려들었습니다. 묵호 앞바다는 명태와 오징어 떼로 넘실거렸고, 만선을 이룬 고깃배들로 포구는 밤이 돼도 잠들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이곳에는 돈이 돌았습니다. 1979년 동해항이 열리기 전까지는 그랬지요. 이젠 채낚기 어선 200여 척만이 희미한 기억의 끝자락을 붙잡고 있을 뿐입니다.  

묵호항에 내리자 방파제 너머에선 겨울 바다가 끊임없이 뒤척였습니다. 주차장 맞은편의 슈퍼마켓 옆으로 난 좁은 길에 접어들었습니다. ‘등대오름길’의 시작이지요. 초입의 벽화는 따뜻한 주막의 정경을 담고 있었습니다. 벽화에서 조금 떨어진 지점에는 ‘바람의 언덕’이라는 제목의 글이 푯말에 얹혀 있었습니다. 
‘바람 앞에 내어준 삶 / 아비와 남편 삼킨 바람은 / 다시 묵호 언덕으로 불어와 / 꾸들꾸들 오징어, 명태를 말린다’ 



연인과 함께 차분히 둘러보는, 묵호등대

묵호항이 내려다보이는 비탈면에 자리한 논골마을과 어달리. 이곳 주민들의 삶이 실제로 그러했습니다. 뱃일 나간 이들을 기다리며 집에 남은 가족들은 무사 귀가를 소원했지요. 하지만 바다와 바람은 때로 소망을 배반했습니다. 아비와 남편은 바다 저 너머에서 끝내 돌아오지 않았고, 남겨진 사람들은 절망으로 몸을 떨었습니다. 소중한 사람을 앗아간 바다와 바람이었지만 남은 자들은 여전히 바다와 바람에 생계를 맡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마당에 덕을 매어 놓고 해풍에 오징어와 명태를 말렸습니다. 그들에게 바다와 바람은 현실과 분리할 수 없는 존재였지요. 

오줌이 마려워 어쩔 줄 모르는 아이, 키가 모자라 까치발을 하고 빨래 걷는 할머니, 형형색색의 풍선이 가득한 손수레를 끄는 할아버지 등이 그려진 벽화를 지나 묵호등대에 도달했습니다. 나선형 계단을 밟아 등대 내부의 전망대에 서자 그사이 바람이 잔잔해져서인지 겨울의 바다는 사납지 않고 평온해 보였습니다. 몇 척의 어선들만이 정온한 바다에 파문을 일으켰지요. 멀리 있는 바다가 쏟아진 빛의 알갱이로 들끓었습니다. 등대에서 내려와 출렁다리가 있는 곳으로 내려가자 연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유독 많았습니다. 이 다리가 SBS 드라마 <찬란한 유산>의 마지막 장면에 등장했기 때문일 테지요. 

길을 되짚어 올라와 논골마을 골목 탐방을 이어나갔습니다. 역시 걸음걸음 눈앞을 막아서는 벽화들이 다채로웠습니다. 담벼락에는 바다가 펼쳐 있고, 그 바다 위를 배들이 점점이 떠다녔으며, 그 배들을 인도할 등대가 멀리 가는 빛을 방출하고 있었습니다. 온갖 보따리가 들어 있는 자판기 벽화와 서랍에서 바닷물을 쏟아내는 화장대 그림도 흥미로웠지요. 논골담길의 벽화는 시각적인 기쁨 이외에 읽는 즐거움도 선사했습니다. ‘묵호의 봄은 시린 손 호호 불며 겨울 바다에서 삶을 그물질하는 어부의 굳센 팔뚝으로부터’라는 글귀가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육체노동의 위대함을 이처럼 멋있게 표현한 문장을 일찍이 본 적이 없었지요.  

논골마을의 집들은 경사진 면을 따라 층층이 박혀 있었습니다. 마을의 반대편에도 같은 모습이 펼쳐졌습니다. 언덕에 빼곡하게 들어찬 집들은 저마다 두터운 세월의 무게를 지붕에 이고 있었습니다. 낱낱의 집들에 고여 있는 사연들은 제가끔 구구하고 절절하겠지만 집과 집이 모여 만들어내는 집단의 풍경은 그 속내와는 상관없이 의연했습니다. 골목길을 소요하다 어느 순간 할머니 한 분과 맞닥뜨렸습니다. 충주에서 태어난 할머니는 동해시 묵호동으로 시집온 지 50년이 다 되어간다고 했습니다. 어떤 인연이 그분을 내륙 지방에서 바닷가 마을로 오게 했는지는 굳이 여쭙진 않았습니다. 낯선 고장에서 어린 신부가 겪어야 했던 시집살이는 동해의 삭풍만큼이나 매서웠을 테지요. 반 백 년 세월이 그의 주름에 눌어붙어 있었습니다.  

지붕 낮은 집들의 담장에 그려진 정감 넘치는 벽화에서 묵호의 전성기
l 지붕 낮은 집들의 담장에 그려진 정감 넘치는 벽화에서 묵호의 전성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동해의 명소, 무릉계곡과 초암해변

산동네를 뒤로하고 찾은 곳은 두타산과 청옥산 자락의 무릉계곡입니다. 겨울임에도 생각보다 수량이 많았습니다. 계곡을 따라 흘러 내려가는 물에서 낭랑한 청음이 솟아났고 군데군데 살얼음이 끼어 있었습니다. 얼음장 밑에서 지난가을 우수수 쏟아졌을 낙엽들은 긴 동면 중이었지요. 계곡 초입의 무릉반석은 무려 1,500여 평에 달하는 엄청나게 큰 너럭바위입니다. 바위에는 시인과 묵객들의 글씨가 새겨져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조선의 명필인 양사언의 작품이 압도적이었습니다. 큰 글씨와 초서에 특히 능했던 양사언이 일필휘지로 써놓은 430년 전의 글씨에는 웅혼한 기운이 물씬했습니다. 필력에 감응한 산천초목이 사흘 밤낮을 떨었다는 전설이 내려올 정도지요. 바위에 서서 옛 선비의 필세에서 풍기는 운치를 느긋하게 감상했습니다. 

무릉계곡 초입의 무릉반석. 너럭바위에는 묵객들이 일필휘지로 쓴 글씨
l 무릉계곡 초입의 무릉반석. 너럭바위에는 묵객들이 일필휘지로 쓴 글씨가 새겨져 있습니다. 

어디를 가나 전통 시장 구경을 빠트리는 법이 없습니다. 전 세계의 공용어는 영어가 아니라 시장에 가면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인정과 흥정일 것입니다. 날짜의 끝이 3과 8인 날에 열리는 동해시의 북평장은 강원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재래시장입니다. 노점까지 합치면 점포의 숫자가 800개에 달하지요. 장이 서는 날이면 인근 대형 마트의 매상이 떨어진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여전히 찾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바닷가에서 열리는 장터답게 다양한 종류의 생선은 말할 것도 없고 온갖 푸성귀와 잡곡류, 그리고 다채로운 생활용품이 올라옵니다. 간이식당에서 판매하는 메밀부침, 메밀전병 등은 언제 먹어도 흐뭇한 시장의 별미지요.  

동해시를 상징하는 명소를 꼽으라면 열에 아홉은 ‘추암’이라는 답을 내놓을 것입니다. 일출을 받아 부서지는 촛대바위는 오랜 기간 애국가 화면에 등장했을 만큼 국민적 명소의 지위를 누렸지요. 동틀 녘의 추암이야 워낙 전국적인 명성을 누리고 있지만 묽은 안개가 퍼지듯 땅거미가 내릴 무렵의 풍광 또한 그에 못지않았습니다. 바닷물에 밑동을 담그고 있는 해암은 바람이 일구어내는 파도의 레이스 속에서도 굳건한 자태를 잃지 않았지요. 바위에 내려앉은 새 한 마리가 우두커니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름 없는 물새에게도 다가올 새해를 위해 무언가 결의를 다질 시간이 필요한 듯 보였습니다. 

해맞이 명소 추암해변의 촛대바위로 올라가는 동산에는 우암 송시열
l 해맞이 명소 추암해변의 촛대바위로 올라가는 동산에는 우암 송시열이 귀양길에 들러 글을 남긴 고색창연한 ‘해암정’이 있습니다. 

추암해변의 일출입니다.
l 추암해변의 일출입니다.

 

 


글 사진 노중훈 여행칼럼니스트 

 

 

 

▶ 기아자동차 사보 감성에너지 충전소 2014년 12월호에서 원문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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