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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유산
스페인 그라나다2015/04/16by 현대자동차

지상에 마련한 실존의 파라다이스
알람브라궁전으로 떠나는 스페인 여행기

신비스러운 느낌을 자아내는 알람브라궁전의 야경
l 신비스러운 느낌을 자아내는 알람브라궁전의 야경



인류가 생산한 지극한 건축예술, 스페인에 남아 있는 마지막 이슬람 유산, 지상에 마련한 실존의 파라다이스, 트레몰로 주법의 아련한 기타 선율이 흐르는 곳. 15세기 어느 아랍 시인이 ‘그라나다라는 에메랄드에 박힌 빛나는 오리엔트산 진주’로 표현한 알람브라궁전이다.



애잔한 곡에 담긴 사연

알람브라궁전에서 본 그라나다의 탁 트인 도시 풍경
l 알람브라궁전에서 본 그라나다의 탁 트인 도시 풍경

‘알람브라궁전의 추억’은 스페인 태생의 기타 연주가 프란시스코 타레가가 만들었다. 그는 제자인 콘차 부인을 사랑했지만 거절당하고, 이에 상심해 스페인 곳곳을 여행하다 알람브라궁전과 대면하게 된다. 그는 천상의 미를 보여주는 알람브라궁전에서 창밖의 달을 보며 밤을 지새웠고, 콘차 부인을 생각하며 ‘알람브라궁전의 추억’을 작곡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우울한 심사를 단조의 슬픈 정조로 풀어냈다.

이 절절한 노래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알람브라궁전은 근본적으로 가슴 시린 사연을 담고 있다. 1492년 1월, 이베리아반도에서 이슬람왕조의 마지막 보루였던 알람브라궁전이 스페인 기독교 세력의 침략을 받아 이슬람왕조가 몰락한 것. 마지막 이슬람왕조인 나스르왕조의 마지막 왕 보아브딜은 가련한 시민들을 보호해준다는 조건으로 스페인의 이사벨라여왕과 페르난도왕에게 금화 3만 냥과 궁전을 바치고 항복을 결심했다.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그라나다의 주민들은 무자비한 학살과 추방을 당했다. 보아브딜왕은 북아프리카로 건너갔지만, 모로코의 이슬람 도시 페스에 정착한 이후에도 꿈에서조차 알람브라궁전을 잊을 수 없었다.

기타 연주곡 ‘알람브라궁전의 추억’은 알람브라궁전을 더욱 유명하게만들었다.
l 기타 연주곡 ‘알람브라궁전의 추억’은 알람브라궁전을 더욱 유명하게만들었다.

장대하고도 섬세하며 육중하면서도 우아한 알람브라궁전. 198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이 세계적인 유산을 방문하는 것은 스페인을 여행하며 얻을 수 있는 최대의 희열 중 하나다. 알람브라는 조그마한 산 전체가 궁전이다. 사실 궁전 자체는 다른 유럽 국가의 것들보다 크지 않지만, 코르도바의 메스키타(스페인에 남아 있는 대표적인 이슬람 사원)보다 정교하고, 건물 배치 하나하나에도 기품이 넘친다. 무엇보다 여타 유럽의 왕궁이 평면에 인공적인 직선으로 정원을 만든 것과 달리 이곳은 산의 곡선을 그대로 살린 점이 돋보이며, 높은 곳에 위치해 주변 조망도 매우 훌륭하다.

알람브라궁전의 조영은 13세기 전반에 착수해 14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됐다. 궁전은 크게 나스르궁, 카를로스 5세 궁전, 알카사바, 헤네랄리페 등 네 부분으로 나뉜다. 그중 알카사바는 그라나다왕국의 건국자 무하마드 1세가 정비, 확장한 것으로 전성기 때는 24개의 탑을 비롯해 군인들의 숙소, 창고, 터널, 목욕탕까지 구비한 성채였다. 물론 현재는 화려한 시절의 자취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래도 성채 중간쯤 위치한 벨라 탑에 오르면 알바이신 지구, 사크로몬테 언덕, 시에라네바다 산맥까지 일대 장관을 만끽할 수 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화려하다

알람브라궁전 입구 부근의 회랑과 회랑의 아치를 통해 바라본 모습
l 알람브라궁전 입구 부근의 회랑과 회랑의 아치를 통해 바라본 모습

이슬람 건축의 특징은 투박한 외부와 눈부신 내부로 규정할 수 있다. 많은 문을 통해 실내로 연결되는데, 문 하나를 통과할 때마다 화려함과 정교함이 더욱 짙어진다. 마찬가지로 나스르궁에도 방이 많은데, 하이라이트는 각국 대사들이 눈을 가린 채 인도돼 7명의 왕을 만났다고 하는 대사의 방이다. 나스르의 왕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똑같은 용모와 복장을 한 여섯 명과 함께 나타나 빛을 등지고 앉았다. 여느 방보다 크고 높은 대사의 방은 기둥과 벽, 천장이 온통 황금색이며, 생동감 넘치는 아라베스크 문양이 숨 돌릴 틈 없이 새겨져 있다.

방 밖으로는 장방형의 연못이 펼쳐진다. 연못은 주변 풍경을 모두 담았다 고스란히 토해낸다. 똑같은 것이 쌍으로 나타나는데, 이슬람 건축의 묘미는 이렇듯 완벽한 대칭에 있다. 이곳에서 벽 하나를 넘어서면 사자정원이 나타난다. 야자수를 닮은 124개의 대리석 원기둥과 기하학적인 아라베스크 문양이 일순간 숨을 멎게 한다. 기둥으로 둘러싸인 중정의 한가운데는 12마리의 돌사자가 연신 물을 뿜어대고, 물은 파놓은 홈을 따라 정원 구석구석을 흐른다.

알람브라궁전 조경의 아름다움을 더해준 헤네랄리페의 작은 분수
l 알람브라궁전 조경의 아름다움을 더해준 헤네랄리페의 작은 분수

그밖에 나스르궁에는 왕이 향연을 베풀던 방, 왕의 여인과 정을 통했다고 해 목이 달아난 귀족청년의 이름을 딴 방, 왕과 후궁들이 몸을 씻고 마사지도 하던 두 자매의 방 등이 있다. 두 자매의 방은 보아브딜왕이 후궁 가운데 가장 총애한 두 자매를 위해 지은 공간이다. 그런데 이들 자매는 기독교인으로 보아브딜왕은 바로 그 기독교인들에 의해 궁전에서 쫓겨났다고 하니, 역사의 아이러니다. 궁 바깥으로 나가면 보아브딜왕의 여름 별장 헤네랄리페로 발길이 옮겨진다. 가는 도중 비운의 보아브딜왕이 기독교인에게 쫓겨 궁을 떠날 때 마지막으로 걸었다는 계단이 나타난다.

헤네랄리페에서는 솟구치는 물방울이 포물선을 그리다 다시 물 위로 떨어지는 분수를 오래도록 들여다보게 된다. 또 수로를 둘러싸고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예쁜 꽃들과 정성껏 가꾼 정원수들은 물이 있는 경관을 지극히 사랑했던 이슬람 사람들의 정서를 생생하게 전해준다. 카를로스 5세 궁전은 16세기 전기와 중기에 걸쳐 왕궁 남쪽에 건축된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이다. 정사각형의 견고한 건물에 원형의 파티오를 배치한 특이한 구조이며, 예전 파티오에서는 투우 경기가 자주 개최됐다. 파티오를 에워싼 2층 구조의 회랑이 있으며 아래층 기둥은 도리아식, 위층은 이오니아식이다.



문명과 문명이 충돌할 때

어깨가 스칠 만큼 좁은 길 양쪽에 기념품 가게가 빽빽하게 들어선 대성당 주변의 시장
l 어깨가 스칠 만큼 좁은 길 양쪽에 기념품 가게가 빽빽하게 들어선 대성당 주변의 시장

앞서 말한 대로 왕궁에는 외국 사신을 접견하던 대사의 방이 있는데, 뚫려 있는 아치 사이로 맞은편 마을이 내려다보인다. 그라나다의 영혼을 담고 있으며 비상한 사연이 깔린 알바이신이다. 이슬람 왕조가 멸망하고 새로운 주인을 맞이하는 그때, 스페인 병사들은 소수 민족의 문화와 종교를 보호해주겠다는 항복 조건을 내팽개치고 마을을 닥치는 대로 약탈했다. 이교도를 소탕하고 신성한 하느님의 땅을 새로 세운다는 종교적 사명 앞에 한 문명은 무참히 무릎을 꿇었다.

무슬림은 끝까지 항거했다. 이교도의 지배를 받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한 그들은 처참한 역사를 후세에 남기고자 자신들의 피를 곳곳에 뿌렸다. 그래서 하얀 집과 벽에는 당시의 학살로 붉게 물든 핏자국이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고 한다. 때론 멀찌감치 물러서야 온전한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다가서면 세밀한 면모를 관찰할 수 있지만 전체적인 실루엣은 눈에 넣기 어렵기 때문. 알람브라궁전은 보는 사람의 위치와 상관없이 늘 아름답지만 원거리 조망의 최적지는 바로 알바이신에 위치한 산니콜라스광장이다.

이슬람 문화와 가톨릭 문화가 혼재한 그라나다에서 대표적인 가톨릭 건축물인 대성당
l 이슬람 문화와 가톨릭 문화가 혼재한 그라나다에서 대표적인 가톨릭 건축물인 대성당

사위가 어둑해져 광장을 찾으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 통기타 하나로 좌흥을 돋우는 사람, 저글링을 하며 재주를 뽐내는 사람 등등. 노을에 기댄 알람브라궁전의 모습을 청한 사람들의 얼굴은 제가끔 기대감과 행복감으로 피어오른다. 그렇게 기다린 석양 무렵의 알람브라궁전은 보는 사람의 입을 스스로 다물고 고요하게 만든다. 그리고 끝끝내 말하여질 수 없는 매혹이 천지에 가득해진다. 저무는 것들은 늘 애잔하고도 강력하다. 그라나다라고 하면 누구나 알람브라궁전을 맨 앞줄에 세우지만 그라나다에 이 천상의 궁전만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대성당도 진지한 발걸음과 따뜻한 눈길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대성당은 이슬람 문화와 가톨릭 문화가 혼재한 그라나다에서 대표적인 가톨릭 건축물 중 하나다. 1508년 첫 삽을 떠서 1704년에야 마무리됐는데 초기에는 고딕 양식이, 후반에는 르네상스 양식이 보태졌다. 한 건물 안에 유럽의 대표적인 두 가지 미술 양식이 공존하는 셈이다. 왕실 예배당 앞에는 거리의 화가와 음악가가 있어 운치를 더하는데, 거리의 음악가가 들려주는 음악은 ‘알람브라궁전의 추억’을 닮아서인지 어딘가 구슬프다. 대성당 주변에는 전형적인 아랍 시장이 형성돼 있는데, 어깨가 스칠 만큼 좁은 길 양쪽에 기념품 가게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관광객을 상대로 한 기념품 가게부터 푸른색의 그라나다 도자기를 취급하는 도기 전문점까지 다양하다. ‘없는 것만 빼고 다 있다’는 시장의 원리를 이곳 역시 충실히 지켜내고 있다.



Travel Tip

가는 방법 스페인 최고의 관광도시 바르셀로나에서 그라나다까지는 국내선 항공이나 기차를 이용한다. 바르셀로나 반 산츠 역에서 오후 9시 30분 그라나다행 열차에 탑승하면 다음 날 오전 9시경 도착한다. 그라나다는 그다지 큰도시는 아니지만 경사가 심한 편이라 걸어서 다니려면 좀 힘들다. 알바이신과 알람브라궁전 사이를 오가는 관광버스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서로 인접한 대성당, 왕실 예배당, 아랍 시장 등은 걸어서 구경할 수 있다.



글, 사진. 노중훈(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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