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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제 조명 제작자 최윤녕
준비된 우연이 만든 필연적 조명2014/08/05by 현대자동차

창조적인 영감으로 살아 숨쉬는 조명을 만드는
수제 조명 제작자 최윤녕의 조명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602 공작소의 최윤녕 작가는 손수 제작한 조명에 생명의 온기를 불어넣습니다

| 602 공작소의 최윤녕 작가는 손수 제작한 조명에 생명의 온기를 불어넣습니다



수제 조명을 제작하는 최윤녕 작가는 조명을 살아 숨쉬게 합니다. 조명은 무릎 꿇고 절규하거나 수줍게 사랑을 고백합니다. 펜도 쥐고, 등 뒤로 팔을 뻗기도 하며 무릎을 굽히고 털썩 앉는 모습도 보입니다. 찬찬히 뜯어보면 배관과 볼트, 수도꼭지까지, 원래 거기에 있을 법한 것이 없는 모습에 기막힘은 배가 됩니다. 지문 닳아가며 손수 조명을 만드는 602 공작소 최윤녕 작가를 소개합니다.



단순하리만치 좋아하는 것만 하는 사람

처음 본 순간, ‘무엇’보다 ‘왜’가 더 궁금했습니다. 무엇인지는 너무나 분명합니다. 산업 자재를 재료로 만든 조명입니다. 건물 벽 안쪽,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돗물과 가스를 옮기던 배관 자재는 위트 있는 조명으로 다시 탄생해 어둠을 밝힙니다. 사실 산업 자재로 무엇인가를 만드는 행동은 그리 낯설지 않습니다. 19세기 산업혁명 시대의 철과 증기 기관차를 모티프로 한 스팀펑크는 이미 예술, 인테리어의 한 장르로 우리 곁에 바짝 붙어 있으니 말이죠. 하지만 최윤녕 작가는 여기서 좀 더 앞으로 나아갑니다. 우주 과학을 떠올릴 만큼 미래지향적이고, 거칠기보다는 치밀하고 섬세합니다. 작품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느낌이 꼭 친구를 처음 사귈 때마냥 호기심이 커집니다. 공구 상가 같은 602공작소에서 최윤녕 작가를 만나 가장 궁금했던 스튜디오 이름부터 물었습니다. 돌아온 답은 단순하다 못해 허무한 이유. “602 공작소의 602는 제 이름이에요. ‘육영이’를 빠르게 발음하면 제 이름으로 불려요. ‘육영이, 육녕이, 윤녕이’가 되는 거죠.” 이름 따라 602공작소 창립일도 6월 2일이랍니다. 그의 말은 대부분 이렇게 단순하고 간결했습니다. 하지만 무지에 의한 단순함은 아닙니다. 좋아하는 것을 인정하고 따르는 삶이 만든 단단하고 확신에 찬 대답이었습니다.



타고난 손재주와 무거운 엉덩이

산업 소재를 이리저리 연결하는 힘든 작업에는 손재주와 엉덩이, 그리고 열정이 필요합니다
| 산업 소재를 이리저리 연결하는 힘든 작업에는 손재주와 엉덩이, 그리고 열정이 필요합니다

최윤녕은 타고난 성격이 손을 가만히 놔두질 못합니다. 어릴 때 프라모델과 무선 조종 자동차 · 헬기 조립은 일상에 쉼표를 찍는 방법이었고, 어른이 되고 난 후 생업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디스플레이 업계에 종사할 때 쓰고 남은 자재를 이리저리 껴 맞추며 휴식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돌아다니던 전구와 쇠파이프를 이리저리 끼워 맞추다 조명을 만들었는데, 때마침 같이 있던 학교 후배가 상업화를 제안했습니다. 못할 것도 없었지요. 그는 첫 작품을 다듬으며 몇몇 샘플을 추가해 ‘2012 핸드메이드 코리아’에 나갔는데, 그 폭발적인 인기에 준비한 작품이 전시 기간에 매진됐고 추가 주문도 밀려왔습니다. “참가에 의의를 두었지 뭘 기대한 건 아니어서 얼떨떨했죠. 좋아하는 걸 만들어서 살 수 있겠구나 싶으니 본격적으로 조명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당시에는 쇠파이프를 주로 사용해서 지금보다 좀 더 투박하고 두꺼운 디자인이었어요.” 초기 작품을 얘기하려 과거를 회상하는 그의 얼굴이 어두워졌습니다. 설렘과 기대가 묻어나던 초기 작품이 표절 구설수에 올랐기 때문이죠. 스팀펑크라는 장르 특성상 비슷하게 보일 수 있다고 상대방을 설득하고 타협할 만도 한데 오히려 그는 이를 계기로 변신을 시도했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색다른 자재를 찾아 청계천 따라 늘어선 산업 자재 상가를 매일 돌아다니며 쓸만한 물건은 그 자리에서 바로 구입해 양손 가득 공방으로 돌아왔죠. 자리에 앉아서 몇 시간이고 조립하며 새로운 모양을 만들어갔습니다. “마음고생이 많았지만 발전의 계기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예전보다 더 가는 파이프와 동과 철 소재의 수도배관용 부속을 주로 사용해요. 그동안 여러 실험을 해온 덕에 다양한 아이디어를 접목하게 됩니다. 장난하듯 조립하다 보면 여러 모양이 참 무궁무진하더라군요.” 그가 말하는 지난 노력은 쇳독이 올라 검고 만질만질한 손끝이 증명합니다. 많이 나아졌다고 말하지만 그 노력의 결과는 지워지지 않습니다.

차례로 V 시리즈, K 시리즈
|차례로 V 시리즈, K 시리즈



겹겹의 우연을 잡아내는 준비된 사람

차례로 R 시리즈, ED 시리즈
| 차례로 R 시리즈, ED 시리즈

그의 작업은 우연의 산물이라 해도 과한 말이 아닙니다. “큰 프로젝트가 아닐 때는 설계를 거의 하지 않아요. 미리 하더라도 완성했을 때 느낌이나 모양이 다른 경우가 많거든요. ‘이거다’ 싶은 작업이 나올 때까지 부품을 이리저리 연결하고 해체하고, 다시 이어 붙이곤 하죠.” 그는 용접도 하지 않습니다. 수도꼭지를 돌려 불을 켜는 V시리즈, 열쇠를 돌리는 K시리즈, 로봇 모양의 ED 시리즈와 무릎 굽힌 사람 모양의 R시리즈 등 다양한 형태의 작업이 대부분 이런 식으로 탄생했습니다. 단, 여기에는 우연을 필연으로 만드는 힘이 존재합니다. 손톱만한 아이디어도 놓치지 않도록 언제 어디서나 작업을 고민하는 것이죠. 손바닥 크기의 양은 냄비와 컵케이크 틀, 폐차에서 떼어낸 부품과 컴퓨터 부속을 작품의 한 부분으로 만들 수 있는 비결은 촘촘한 생각의 그물을 작품 활동과 긴밀히 일상에서 연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매일 작업 생각만 해서인지 취미도 따로 없다고 당당히 말하는 작가에게도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고 합니다. “설계를 하지 않아서 아쉬울 때가 종종 있어요. 스스로 만족한 작품을 다시 만들려고 할 때 과정이 기억나지 않아 구현시키지 못할 경우가 있어요. 그런 게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작업인거죠. 하하.” 얼마 전 마음에 꼭 드는 리모컨 조작 부품을 발견해 만든 새로운 R 시리즈를 소개하는 그의 얼굴에는 가식도 꾸밈도 없이 작업에 대한 애착이 고스란히 보입니다. 이처럼 좋아하고 아끼니 ‘대충’이나 ‘허투루’ 같은 단어는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색다른 것도 중요하지만 완성도 또한 놓칠 수 없습니다. 돌리고 조여 만든 움직이는 조명이라 대충 만들면 금방 망가져요. 그래서 가능한 한 꼼꼼히 작업합니다.”

최윤녕 작가의 거친 손 끝에서 태어나는 조명은 일상의 밤에 생기를 불어넣습니다
| 최윤녕 작가의 거친 손 끝에서 태어나는 조명은 일상의 밤에 생기를 불어넣습니다



담백한 뚝심이 느껴지는 최윤녕 작가에겐 ‘한결같다’라는 말이 참 잘 어울립니다. 그는 한 손엔 우연이란 공구와 다른 한 손엔 상상이란 공구를 쥐고 장인 정신이 깃든 조명을 만들어 냅니다. 어디선가 흘러온 우연으로 필연적인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그의 조명은 한여름 밤 속에서 더욱 깊게 빛납니다.



▶ 현대모터 6월호에서 원문을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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