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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남자의 차
40대 남자의 차2015/01/30by 현대자동차그룹

40대는 수입차가 주는 허세 섞인 개성만으론 채울 수 없는 광활한 나이다
개성 만점은 아닐지 몰라도 묵직한 존재감이 있는 차를 타고 싶었다

대 어른이 되면서 나는 검은색 4륜 구동 올 뉴 쏘렌토를 선택했다

l 40대 어른이 되면서 나는 검은색 4륜 구동 올 뉴 쏘렌토를 선택했다



쿵. 30대가 끝나는 소리였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지하 주차장이었다. BMW미니 쿠퍼를 몰고 전시회를 보러 가던 참이었다. 미니 쿠퍼를 몬 지는 4년쯤 됐다. 주차장 골목에서 갑자기 은색 벤츠 E클래스가 튀어나왔다. 그대로 미니를 들이받아 버렸다. 큰 사고는 아니었다. 벤츠가 미니의 급소를 들이받은 게 문제였다. 벤츠가 앞 번호판 부위로 미니의 조수석 쪽 앞바퀴를 찍는 바람에 미니의 차축이 휘어졌다. 겉보기엔 멀쩡했지만 수리하려면 손이 많이 가는 부위였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미니와의 인연은 여기까지였다. 30대 후반을 함께 한 차였다. 어렴풋하게 느껴졌다. 이제 미니와 함께 인생의 30대도 떠나 보내야 했다. 쿵.

30대에 미니처럼 작고 독특한 차를 선택한 건 불안해서였다. 20대까지만 해도 남과는 다른 삶을 살 자신이 조금은 있었다. 대학 가면 군대 가고, 군대 가면 취직하고, 취직하면 결혼하고, 결혼하면 아이 낳는 대한민국 사회의 뻔한 인생 궤적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물론 이런 다수의 인생 궤적을 꼬박꼬박 따라 사는 것도 쉬운 건 아니다. 그렇다고 소수의 삶을 당당하게 사는 것도 만만치가 않다. 오히려 다수의 평범한 인생에서 낙오됐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기 일쑤다. 게다가 소수의 인생 궤도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자기 길을 스스로 찾아가야만 한다. 30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평범하지도 그렇다고 독특하지도 못한 자신을 발견했다. 어정쩡했다.

미니가 탈출구가 돼주길 바랬다. 빨간색 미니가 30대 남자의 부족한 개성을 채워주길 원했다. 남자한테 자동차는 단순한 탈 것이 아니다. 자기 정체성의 표현이다. 남자는 여자처럼 옷차림으로 자기를 표현하기 어렵다. 여성복의 원형은 드레스지만 남성복의 원형은 군복이기 때문이다. 드레스는 아름다움을 뽐내기 위해 존재한다. 군복은 개성을 감추기 위해 만들어진 옷이다. 현대 남성의 수트는 대표적인 군복이다. 약간의 변주는 있지만 바지와 재킷과 셔츠와 넥타이라는 틀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

차는 다르다. 같은 직업을 가졌다고 같은 차를 타란 법은 없다. 모양과 성능과 가격을 통해 개성을 표현할 여지가 많다. 기꺼이 남자의 분신이 돼 줄 수 있는 사물이다. 그래서 현대 사회에선 갈수록 차의 크기와 색깔과 모양과 성능과 브랜드가, 남자의 힘과 꿈과 육체와 능력과 개성에 정비례하게 된다. 아이언맨의 수트와 같다. 아이언맨이 수트를 입으면 영웅이 되듯이 평범한 남자도 자신의 야망을 반영한 차에 탑승하면 특별한 남자가 됐다고 느낀다. 빨간색 2인승 미니 쿠퍼를 타면서 그렇게 스스로 특별하다고 느꼈다. 실제로 특별하든 아니든 상관없었다. 특별해 보이고 싶었다. 특별하지 않다는 걸 타인과 자신한테 감추고 싶었다.

쿵 소리와 함께 그런 30대는 끝났다. 40대를 함께할 차를 선택해야 할 차례였다. 40대 어른 남자가 돼야 할 시간이었다. 계속해서 화려한 외모에 막강한 성능을 지닌 수입차를 타고 싶단 유혹에 시달렸다. 뻔한 삶을 살면서도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척 계속 위장하고 싶었단 말이다. 솔직히 그딴 겉모습에 현혹돼 다가오는 여자가 아직도 있지 않을까 하는 헛된 기대도 있었다.

40대도 30대처럼 보내고 싶진 않았다. 우선 미망에서 벗어나야 했다. 두 달 정도 차 없이 살아봤다. 지하철과 택시와 가끔은 버스를 이용하며 '뚜벅이'로 지냈다. 차가 없었던 두 달은 일종의 디톡스 기간이었다. 정말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이고 필요한 게 어떤 건지 알아내려면 때론 욕망에서 한 발자국쯤 떨어져 있을 줄도 알아야 한다.

검은색 4륜 구동 올 뉴 쏘렌토를 선택했다. 10년 만에 다시 타는 국산차였다. 성능 좋고 수준 높은 수입차는 많았다. 좀 무리하면 그나마 욕심을 채울 수 있을지도 몰랐다. 더 이상 그렇게 발을 땅에 딛지 않은 것처럼 살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40대는 수입차가 주는 허세 섞인 개성만으론 채울 수 없는 광활한 나이다. 대신 세상에서 가장 강직한 차를 타고 싶었다. 겉보기엔 개성 만점은 아닐지 몰라도 묵직한 존재감이 있는 차를 타고 싶었다. 그런 40대 남자로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외모는 화려하진 않지만 내면은 강인하며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남자가 되고 싶었다.

검은색에 4륜 구동을 선택한 건 그래서였다. 거기에 파노라마 선루프를 넣었다. 내비게이션은 뺐다. 알고 보니 이런 옵션을 선택한 구매자가 전국에 두 사람밖에 없었다. 검은색은 가장 강직한 색깔이다. 4륜 구동은 땅 위에 네 발을 단단히 디딘 형태다. 파노라마 선루프는 앞만 보는 게 아니라 위도 보고 싶어서 선택했다. 내비게이션은 필요 없었다. 길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 나중에 20인치 휠을 따로 달았다. 팔다리가 더 튼튼하게 만들었다. 이 차를 20년쯤 타고 다니고 싶었다. 60세가 될 때까지의 중년을 이 차처럼 강인하게 보내고 싶었다.

차는 남자한테 현재 모습의 반영이면서 동시에 미래 모습의 투영이다. 30대에 수입차로 바꿔 타고 미니를 골라 탔던 건 그런 반영과 투영이 혼합된 결과였다. 남다른 삶을 살고 싶다는 기대와 남다른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고 싶다는 허세와 남다른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는 불안이 뒤섞였을 때 작고 독특하고 비좁고 불편한 빨간 차를 선택하게 됐다. 세상의 욕망과 자신의 희망이 뒤섞일 수밖에 없는 30대다운 선택이었다.

40대엔 진짜 자기 인생을 살기 시작해야 한다. 그 길만 똑바로 끝까지 가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대지 위에 네 발을 딛고 선 차를 골랐다. 이 차에 현혹돼 다가오는 여자가 없어도 상관 없다. 피식 웃어주면 그만이다. 그게 40대의 여유다. 물론 30대를 흘려 보낸 지금은 안다. 검은색 4륜 구동 올 뉴 쏘렌토만 탄다고 그런 40대 남자가 되는 건 아니다. 적어도 그런 삶으로 차를 몰기 시작한 건 분명하다.

신기주 에디터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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