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

스무 살의
첫차2015/03/05by 현대자동차그룹

어린 남자는 효율이나 책임, 미래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멋진 차와 함께 모험하고 싶었을 뿐이다

세상은 넓다는데, 그 말이 진짜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l 세상은 넓다는데, 그 말이 진짜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자전거를 타고 일터로 향했다. 매일 아침 일곱 시였다. 나는 호주 퀸즐랜드 외곽의 한 대학 안의 작은 햄버거 가게에서 일했다. 가게에 도착하면 7시 반.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주방의 불을 켰다. 오븐을 가동시키고, 냉장실에서 식재료를 가져왔으며, 나보다 큰 치킨상자와 감자튀김, 양상추와 햄버거 빵을 주방으로 옮겼다.

집으로 돌아갈 때는 먼 길로 돌아갔다. 자전거를 타고 아무 방향으로나 페달을 굴렀고, 내리막에서는 양손을 놓았다. 골목과 공원들을 지났다. 더 멀리 가고 싶었지만, 가면 못 돌아올 것 같았다. 자동차를 몰고 싶었다. 그러면 더 멀리 갈 수 있을 텐데. 한국에서 8,000 킬로 떨어진 곳이지만, 답답했다. 나는 머물러 있었다. 나는 더 많은 것이 보고 싶었다. 세상은 넓다는데, 그 말이 진짜인지도 확인하고 싶었다. 나는 그냥 세상을 보고 싶었다. 20대 초반이었다.

밤에는 클래식카를 타고 해안도로를 달리는 꿈을 꿨다


밤에는 클래식카를 타고 해안도로를 달리는 꿈을 꿨다. 한국에는 없는 것, 여기서만 할 수 있는 것들이 하고 싶었다. 나는 초조했다. 하지만 여기서도 문제는 돈이다. 자동차도 여행도 이곳 사람들처럼 살기 위해서도 돈이 필요했다. 햄버거로 번 돈은 한국에 등록금으로 보냈다. 노트북 2대를 살 수 있는 돈이 남았다. 이십 대 초반의 나는 불편함, 배고픔, 무서운 것들을 감당했다. 세상을 볼 수 있다면, 그런 것들은 문제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계획도 방향도 없는 여행을 가기로 했다. 한국에서 가져온 여행용 가방에 옷, 아이팟, 지갑 정도만 넣었다. 사막과 바다, 모래로 만든 섬에 가기로 했다. 고래도 보고 싶었다. 해변에 누워 쏟아지는 별들과 함께 맥주도 마실 거다. 나는 더 멀리 가야만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떠나야 한다. 햄버거나 만들며 시간을 보낼 수는 없다. 세상은 신비로운 미지이며, 탐험해야 할 대상이었다. 시간이 흘러 나 스스로에게 미안해지지 않도록 나는 떠났다.

운전석이 반대인 것도, 차가 낡은 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내 판타지를 충족하기 위해 클래식카를 샀다. 나의 첫차였다. 인터넷 중고차 시장에서 일주일 동안 검색한 끝에, 1977년형 중고차 한 대를 발견했다. 3.0리터 세단이었다. 동그란 헤드램프는 쿨해보였다. 툭 튀어나온 게르만족의 눈썹 뼈 같은 보닛도 멋졌다. 자동변속기와 파워윈도가 장착되었고, 시트는 상아색 가죽이었다. 크롬 도금된 사이드미러는 반짝였고, 올리브색 차체는 독특했다.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그저 멋진 차를 운전하고 싶었을 뿐이다. 운전석이 반대인 것도, 차가 낡은 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차 값으로 1백만 원을 줬고, 수리비가 50만 원이었다. 정비소 직원이 차의 상태에 대해 설명을 해줬는데, 영어를 못 알아들은 것도 있지만 나는 정말 차에 대해 전무했다. ‘예쁘다’와 ‘아니다’ 정도만 구분했다. 참고로 운전석 창문이 작동하지 않았는데, 부품을 구할 수가 없어서 못 고친다고 했다. 현지인 친구가 대신 차를 픽업해줬고, 운전법을 알려줬다. 일주일 뒤 여행 짐을 트렁크에 넣고, 바다로 향했다.

내 차보다 멋진 풍경이 나오면 차를 세우고, 풍경을 즐겼다


내비게이션은 없었지만 동쪽에 바다가 있다는 것은 알았다. 그래서 동쪽을 향해 운전했다. 호주의 뙤약볕은 차를 달궜다. 불행히 에어컨은 없었으나, 다행히 창문 3개가 열렸다. 달리고 싶지만 늙은 차는 그러지 못했다. 큰 엔진과 무거운 차체는 기름을 빨리 마셨다. 보이는 주유소 마다 들려야 했다. 도심을 빠져나가면 주유소가 드물다. 대신 광활한 벌판이 보인다. 오른쪽에는 태평양이, 왼쪽에는 초원이 지평선을 이룬다. 고래는 없었지만, 들판에는 방목된 말들이 뛰어다녔다. 나는 말들보다는 빨리 달렸다. 가속페달을 밟으면 30년 묵은 굉음이 쏟아졌다.

몇 개의 마을을 지났다. 피자나 피시앤칩스 같은 것들로 허기를 때웠다. 부족하지 않다고 느꼈다. 차가 있으니 어디로든 갈 수 있고, 어디서든 잘 수 있다. 나는 책임 따위는 몰랐다. 즐기고만 싶었다. 산길에는 유칼립투스 나무들이 도로 주변으로 솟아있었고, 나무마다 코알라들이 달려있었다. 들판에는 캥거루가 뛰어다녔다. 운전이 피곤하거나 내 차보다 멋진 풍경이 나오면 차를 세우고, 풍경을 즐겼다. 나와 내 차가 풍경의 일부가 되는 것을 경험했다. 잔디가 높은 절벽에 누워 음악을 듣고, 책을 읽었다. 고래가 보고 싶었다. 나는 더 북쪽으로 달렸다. 바다를 쫓았고, 그러다가 큰 마을이 오면 숙소를 찾아갔다.

차를 포기하고 걷기로 했다. 내 차가 나를 데려다줄 수 있는 곳은 여기까지였다


첫차와의 인연은 길지 않았다. 미숙한 내 운전실력 탓에 시내에서는 긴장해야 했다. 좁은 주차장에서는 차를 세우는 데 십몇 분을 할애했다. 몇 번 긁었고, 찌그러진 곳도 생겼다. 어느 날은 고속도로에서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았다. 브레이크 페달의 압력이 새고 있었다. 힘껏 밟아야 속도가 줄어들었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핸드브레이크로 속도를 줄이며 겨우 고속도로를 빠져나왔다. 정비소에서는 부품을 구하는데 석 달이 걸린다고 했다. 결국 차를 포기하고 걷기로 결심했다.

나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 지도를 보지 않았다. 차에서 여행용 캐리어를 꺼내고 마을을 향해 걸었다. 여행자를 위한 숙소가 나올 때까지 걸었다. 몇 시간을 걸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다만 공터에서 쉬었고, 졸기도 했다. 낯선 마을에서 해가 지는 모습을 보았다. 여기가 어디인지, 숙소에 가서 물어보기로 했다. 내 차가 나를 데려다줄 수 있는 곳은 여기까지였다. 첫차와의 작별은 아쉬웠지만 어쨌든 나는 한국에서 조금 더 멀어졌다. 햄버거 가게와도 더욱.



필자 조진혁

<본 기고문의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