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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뿔에 그려 넣은 혼,
그 강력한 대물림에 관하여2014/09/24by 현대자동차그룹

오늘도 아버지와 아들은 뜨거운 불 앞에서
화각에 대한 애정을 보여줍니다.

| 전통 방식을 고수하며 수백 번에 달하는 공정을 묵묵히 이어가는 화각장

| 전통 방식을 고수하며 수백 번에 달하는 공정을 묵묵히 이어가는 화각장



누가 처음 쇠뿔에 색을 입힐 생각을 했을까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류의 욕망은 상상하기 어려운 기법과 예술품을 탄생시켰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화각(華角)’입니다. 둥글고 딱딱한 쇠뿔을 종이처럼 얇게 펴서 색을 입히는 작업이 결코 녹록할 리 없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 방식을 고수하며 수백 번에 달하는 공정을 묵묵히 이어가는 60대와 30대의 부자(父子) 화각장이 있습니다.



50년, 화각에 빠진세월

 

전통공예 화각은 조선 왕실에서만 사용하던 귀한 궁중예술입니다

| 전통공예 화각은 조선 왕실에서만 사용하던 귀한 궁중예술입니다


초로의 아버지와 30대의 젊은 아들이 묵묵히 작업에 몰두해 있습니다. 탕개톱으로 슬근슬근 뿔의 꼭지를 자르고 줄로 배를 타서는 주둥이가 긴 황새 집게로 불에 달궈가며 곧게 폅니다. 쇠뿔은 ‘황소고집’이라는 말처럼 제 성질을 버리지 않으려 둥글게 둥글게만 말리고…. 결국 강한 힘과 뜨거운 불로 얼마나 잘 달래느냐의 문제입니다. 


땀이 뚝뚝 떨어지는 고요한 작업실, 부자 사이에 오가는 말은 없지만 모든 공정이 미리 맞춰놓은 듯 착착 진행됩니다. 지난 5년 동안 함께 호흡을 맞춰온 결과입니다. 나전칠기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전통공예 화각은 조선 왕실에서만 사용하던 귀한 궁중예술입니다. 하지만 긴 역사에 비해 현재까지 남아있는 작품은 거의 없습니다. 특수한 작업 과정 탓인데요, 쇠뿔을 얇게 펴서 만드는 공예이다 보니 기온과 습도에 민감해 깨지거나 떨어지는 경우가 잦아 보존이 어려웠던 것입니다. 


작업실은 고요하지만 장남 한춘섭 씨의 이마에서는 땀이 뚝뚝 흐릅니다
l 작업실은 고요하지만 장남 한춘섭 씨의 이마에서는 땀이 뚝뚝 흐릅니다

하지만 오방색을 입은 찬란한 화각의 아름다움은 치명적이었습니다.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화각의 단점을 기술로 극복하며 전통방식을 이어가고 있는 이들이 바로 무형문화재 경기 29호 화각장(畵角匠) 기능 보유자인 66세 한춘섭 씨와 그의 두 아들 한기덕, 한기호 형제입니다. 


“열여섯 살에 나전칠기에 입문했습니다. 가난하던 시절 생계를 위해서였죠. 그러다 2년 후 우연히 화각을 만났어요. 우리나라 최고의 화각장인 음일천 선생님의 공방에서였는데, 처음 보는 순간 화려한 자태에 홀려 그 자리에 얼어붙었습니다. 무작정 선생님께 화각을 가르쳐달라 간청했고 흔쾌히 제자로 맞아주신 덕분에 일천공방의 가족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화각장 한춘섭 씨가 공예가로 걸어온 길이 올해로 꼭 50년입니다. 

화각이 오방색을 입고 찬란한 아름다움을 뽐냅니다
l 화각이 오방색을 입고 찬란한 아름다움을 뽐냅니다

현재 성남에 터를 잡고 화각장의 길을 걷고 있는 장남 한기덕 씨처럼, 한기호 씨도 몇 해 전부터 아버지께 화각을 배우는 중입니다. “어렸을 때 아버지께서 쇠뿔을 다루는 모습을 늘 옆에서 보았어요. 예전에는 작업장이 따로 없어 어머니와 함께 방에서 쇠뿔을 자르셨거든요. 톱 질을 할 때마다 수북하게 쌓이는 가루며, 붓끝에서 피어나는 화려한 그림이 알게 모르게 저를 매료시켰나 봐요. 10년 동안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5년 전부터 아버지 밑에서 배우고 있습니다.” 비록 50년과 5년이라는 세월의 차이가 있다고 해도 부자의 화각 사랑이 그 숫자만큼 깊거나 얕게 차이를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아버지는 화각의 전통을 지키고, 아들은 화각의 대중화를 꿈꾸며 나란히 걷고 있을 뿐입니다.



 때로는 친구가 되는 스승과 부자

화장각 길을 걷고 있는 한기호 씨의 모습입니다
l 화장각 길을 걷고 있는 한기호 씨의 모습입니다

본래 화각이 완성되려면 총 다섯 명의 장인이 필요합니다. 쇠뿔을 얇게 다듬는 각질장(角質匠), 함을 짜는 소목장(小木匠), 방충과 내구성을 높이기 위해 옻칠을 하는 옻칠장, 화각을 그리는 화각장, 가구에 들어가는 장식을 만드는 두석장(豆錫匠)입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어 과거 다섯이 짝을 이뤄 하던 그 일을 이제 혼자 모두 하게 되었습니다. 이 중 함을 짜는 소목장 일은 아들 한기호 씨가 거진 도맡다시피 합니다. 

“화각이라는 게 아름답고 화려한 만큼 무수한 공정을 거쳐야 완성됩니다. 자연히 비용도 많이 들게 되죠. 그래서 더 대중화되지 못한 것 같아요. 저는 ‘화각의 대중화’라는 사명감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작은 함도 만들어 화각을 선보이고 있어요. 여기서 그치지 않고 횡성 한우축제에 참가해 쇠뿔에서 탄생하는 아름다운 공예품을 선보일 계획이고, 이천 도자기축제에서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전통 공예품으로서의 화각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젊은 화각장답게 한기호 씨의 머릿속은 화각과 관련된 온갖 아이디어로 가득합니다. 화각을 널리 알려야 찾는 이도 많아지고, 찾는 이가 많아져야 화각장의 명맥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곁에서 지켜보는 어린 두 아들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장인이 되고 싶은 것이 그의 마음입니다. “3~4년 된 황소의 뿔을 구하는 것부터 마지막 장식을 달 때까지, 화각은 길고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끝이라 할 수 있어요. 어렵게 뿔을 펴서 각지(角紙)를 만들고, 채색을 완성했어도 가구에 붙이다 깨지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거든요. 그러니 무수한 단계가 모두 인내의 시간이죠.” 

화각공예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고유한 문화자산입니다

l 화각공예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고유한 문화자산입니다

신기하게도 화각공예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존재합니다. 버펄로나 젖소는 뿔이 좋아도 투명도가 탁해 화각으로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풀을 먹는 한우 중 수소의 뿔만 사용해야 한다니, 뿔을 구하는 것조차 까다로운 작업입니다.

“전통을 계승한다는 것이 사명감만으로는 어려워요. 많은 사람들이 알아보고 사랑해 줄 때 비로소 전통도 생명을 입고 명맥을 이어나갈 수 있죠. 화각도 마찬가지예요. 화각을 사랑하는 방법이 아버지 세대와는 조금 다를지 모르지만 화각에 대한 애정만큼은 저울이 수평을 이루듯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완성된 화각을 쓰다듬는 서른아홉 아들의 손끝에 예순여섯 아버지의 손길이 살짝 스칩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뜨거운 피로 이어진 화각에 대한 부자의 애정을 일순간 목도한 것 같아 숙연해집니다. 백 마디 말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거칠지만 아름다운 두 장인의 손입니다.



글. 선영은
사진. 안용길(도트 스튜디오)



▶ 현대자동차그룹 사보 모터스라인 9월호에서 원문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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