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

어쩌다 이렇게 많은 별들을 바라보게 됐을까?
천체사진가 권오철2014/11/26by 현대자동차그룹

별 보기를 좋아했던 소년은 자라서
세계적인 천체사진가가 되었습니다

오로라 ⓒ권오철
| 천체사진가 권오철의 일생을 사로잡은 신의 영혼, 오로라입니다 ⓒ권오철



권오철은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인정한 국내 유일의 천체사진가입니다. 그가 별 보는 사람이라면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개기일식과 오로라, 대유성우를 사진으로 담아낸 건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준비된 자에게 온 기회요, 그 기회를 거머쥐려 그가 오랜 시간 밤하늘을 관찰해서 얻은 결과입니다. 별이라는 밑그림에 윤곽과 채색을 더하기 위해 집어든 카메라로 부침 없이 들여다보며 완성한 꿈의 그림입니다.



먼 길 달려온 별의 속삭임

우연히 닿은 시선을 거두지 않고 오래도록 지켜보며 살핍니다. 그 사소한 관찰의 시작이 누군가의 운명을 바꾸기도 합니다. 평범한 대기업 월급쟁이 권오철을 국내 유일의 천체사진가로 이끈 것도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는 어느 밤하늘에서 가치 있는 별을 만났고, 이전과는 다른 ‘진짜’ 꿈을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천체사진가 권오철
| 천체사진가 권오철

“별이 제게 스민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해요. 고등학교 2학년 1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초봄의 어느 날, 야간 자율학습 쉬는 시간에 잠깐 올려다본 밤하늘에서 또렷하게 빛나는 북두칠성을 봤어요. 스위치를 켜면 어두운 방에 불 빛이 환하게 퍼지잖아요. 그때 제 마음 어딘가에도 불이 확 켜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프랑스 소설가 알퐁스 도데(Alphonse Daudet)의 단편소설 <별>의 아가씨가 목동과 별을 처음 인식한 게 길을 잃고서였듯, 권오철 역시 납작하고 시들한 사춘기 시절에 별을 만났습니다. 그에게 별은 야간 자율학습의 고단함을 달래준 묵묵한 지지자였습니다. 이름을 불러주자 내게로 다가와 꽃이 되었다는 시구처럼, 단 한 번 인식했을 뿐인데도 별은 그에게로 와서 꿈의 길잡이가 됐습니다. 어두운 밤, 밝은 점에 불과하던 별이 다른 시공간을 열어준 셈이지요. 그때부터 어둠이 내리면 밤하늘을 관찰했고, <재미있는 별자리여행>이라는 책을 읽느라 온밤을 지새워도 졸리지 않았으며, 그 후론 야간 자율학습도 견딜 만했습니다.

“밤만 되면 책에서 본 별자리를 확인하고 싶어서 밖으로 달려 나갔어요. 하지만 마음대로 되는 일은 아니었죠. 지구의 자전과 공전으로 계절마다 나타나는 별자리가 달라지니까요. 그 시간의 흐름을 기다리느라 책에 있는 별자리를 다 찾아보는 데 꼬박 몇 달이 걸렸죠. 주말엔 졸린 눈 비비며 새벽까지 하늘을 쳐다보기도 했어요.” 어두운 학교 운동장에서 남쪽물고기자리 1등성 포말하우트(Fomalhaut)를 봤습니다. 수백 년을 달려온 그 별은 가슴 설레도록 아름다웠고, 그때부터 별들은 그렇게 먼 길을 달려와 매일 밤 그에게 꿈을 목도하라고 속삭였습니다.



자유로운 영혼의 세례

사실 이런 행적은 그의 남다른 어린 시절과도 연이 닿습니다. 어릴 적 그는 울산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살았습니다. 여느 시골 아이답게 개구리나 메뚜기, 잠자리, 매미 등을 쫓아다니던 곤충 마니아였고, 이런 관심은 자연스레 수집으로 이어졌습니다. 매미채를 휘두를 때마다 잡히는 말매미, 쓰름매미, 애매미, 털매미 등 모양도 색도 조금씩 다른 그 많은 매미들이 신기해 여름 내내 마을을 들쑤시며 곤충채집에 나섰고, 잘 모르거나 낯선 것들은 백과사전을 뒤져서라도 끝까지 알아냈습니다. 또 희귀하거나 특이한 모양의 곤충은 잘 손질해 표본으로 만들어 열심히 탐구하기도 했습니다.

쌍원경을 들고있는 권오철씨
| 남다른 호기심과 끈질긴 관찰이 그의 지금을 만들었습니다

그랬던 그의 관심이 곤충에서 새로 옮겨간 건 순전히 애주가였던 아버지 덕분이었습니다. 시골이라 안주가 마땅치 않았기에 아버지는 종종 사냥이나 낚시를 다녔고, 어린 아들은 늘 그 길에 동행했습니다. 덕분에 어린 나이에 그는 사냥하는 법을 배웠고, 처음에는 사냥감에 불과했던 새들이 차츰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낯선 새를 발견하면 주의 깊게 관찰하고 연구하는 재미에도 푹 빠졌습니다. 그 중 머리 깃과 꼬리 끝 부분이 빨간색인 ‘홍여새’는 그가 지금까지 기억하는 가장 아름다운 새입니다. 그렇게 작은 호기심에서 출발한 관심은 무언가를 ‘발견’하게 하고 ‘관찰’에 몰입하게 했습니다. 시골에서의 시간은 그 자신도 모르는 사이 관찰이란 운명을 차곡차곡 쌓아 그 종착점인 ‘별’에 이르게 했고, 오늘의 천체사진가 권오철을 있게 한 셈입니다.

하지만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했던가요. 하늘과 별을 사랑했건만 진학과 진로는 생뚱맞았습니다. 그토록 오랫동안 관찰했고 그래서 꿈꿨던 것들은 죄다 취미로 물러났습니다. 자연과학 대신 조선해양공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엔 대기업 조선소에 취직했습니다. 십수 년 동안 일탈을 모르는 평범한 회사원, 책임감 강한 가장으로 살았습니다. 적어도 캐나다 북부에 자리한 도시, ‘옐로나이프(Yellowknife)’에 다녀오기 전까지는 말이지요.

“회사에 다니며 번 돈으로 별을 찍으며 살겠다는 사회 초년 시절 생각이 얼마나 순진하고 무모한지 회사생활을 하며 실감했죠. 일 년에 쓸 만한 사진 한 장 건지기도 힘들었습니다. 그런 제게 캐나다 옐로나이프의 오로라를 촬영해보겠느냐는 제안은 두 번 고민할 필요도 없는 ‘기회’였어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을까. 옐로나이프에서 꼭꼭 간직했던 꿈을 되찾은 권오철은 회사 대신 꿈을 좇기로 과감한 결단을 내립니다. 개기일식, 대유성우와 함께 ‘별 보는 사람이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 가지 천문현상 중 하나’라는 오로라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를 자극한 건 사람들이었습니다. 만화가, 블로거, 자영업자 등 오로라를 촬영하러 가는 길에 동행한 이들은 일주일 내내 그에게 자유를 관찰하게 했고, 살아 꿈틀대는 삶을 곰곰이 매만지게 했습니다. 그들의 생기에 감탄하며, 권태로운 일상에선 발견할 수 없던 자유로움을 포착하자 신기하게도 오랫동안 밀쳐뒀던 꿈이 부활했습니다.

“전업 천체사진가로 탈바꿈하고 난 후 퇴직금을 가지고 무작정 킬리만자로로 떠났습니다. 그리고 열흘 동안 사진만 찍었죠. 낮에는 이동하고 밤에는 사진을 찍으며 하룻밤에 5,000장씩 별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해진 길을 가는 별들의 운행에 경탄하며 10년 동안 머릿속에만 있던 사진을 실제로 찍게 되니 힘든 줄도 몰랐어요.”



하늘에서 겸허를 배우다

“사실 별똥별은 언제 어디로 떨어질지 알 수 없어요. 엄청난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겨우 만날 수 있죠. 설사 만나게 되더라도 한순간에 지나가버리니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어요. 눈을 떼지 않고 기다리는 게 일입니다. 사람들이 왜 망원경으로 찍지 않느냐고 묻는데 답은 간단해요. 저는 기록을 하려고 별을 찍는 게 아니에요. 인간의 시각, 그러니까 제 눈으로 본 그 느낌 그대로를 전달하고 싶어 일반 카메라로 별을 찍습니다.”

권오철씨가 사용하는 카메라와 촬영 장비들
| 그가 본 별의 느낌을 그대로 전하고 싶어 일반 카메라로 촬영합니다

해발 1,000m 이상 고지대에 오르는 건 기본, 사진 찍기 좋은 하늘을 찾기 위해 100여 일을 집 밖에서 잡니다. 또 그중 반은 외국에서 지냅니다. 한 장의 사진을 찍으려고 길게는 10시간까지 카메라를 켜놓고 밤의 적막을 벗삼은 적도 있습니다. 그나마 자리를 잡으면 다행이지요. 이동할 때는 40kg에 육박하는 4대의 카메라와 4개의 삼각대를 지고 다니느라 온몸이 쑤시기 일쑤입니다. 그래도 오랫동안 품었던 꿈이기에 그는 행복합니다.

그렇게 하늘의 별은 갖고 싶어도 따다줄 수 없으니 사진으로 찍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지 20년, 그리고 전업 천체사진가로 활동한 지 5년이 지났습니다. 돈을 벌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별을 좇아 지내는 사이 그는 미국 NASA의 ‘오늘의 천문 사진(Astronomy Picture of the Day)’에 한국인 최초로 선정되는가 하면,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도 찾는 사진가가 되었습니다. 또 세계적인 천체사진가 모임인 ‘TWAN(The World At Night)’의 일원으로 활동 중이기도 합니다. 인생을 바꾼 캐나다 옐로나이프에는 다섯 번을 더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사람들은 그를 ‘오로라 헌터(Aurora Hunter)’라고 부릅니다.

캐나다 옐로나이프 ⓒ권오철
| 캐나다 옐로나이프 ⓒ권오철

“신비롭게 너울거리는 빛 앞에 서면 그 느낌을 말로 표현할 길이 없어요. 신의 영혼이 춤추고 있구나 싶죠. 차가운 밤하늘을 빛으로 물들이며 시시각각 변하는 오로라 안에 서 있으면 동화 속 이상한 나라에 온 것 같은 환상에 빠지곤 합니다.”

하지만 그는 정작 자신이 본 최고의 오로라 ‘서브스톰(Substorm)’ 은 카메라에 담지 못했다고 합니다. 어느 흐린 날, 구름 사이를 비집고 마구 쏟아지던 밝은 오로라 커튼을 찍기 포기한 것입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빛이 폭발하듯 머리 꼭대기에서 소용돌이치는데 그 아름다움을 도무지 사진으로 표현할 수 없으리라는 확신이 든 까닭입니다. 아마도 ‘관심을 바라지 않는 아름다운 자연’에 그저 머물고픈 관찰자의 마음이 아니었을까요. 그것은 별과 처음 맞닥뜨린 그 날과도, 오로라의 춤사위 아래 자유인의 맨살을 목도한 그날과도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일의 특성상 밤하늘을 찍어야 하기 때문에 깊은 밤 혼자서 촬영 하는 일이 많아요. 영하 40℃를 넘나드는 극지의 겨울밤에 몇 시간씩 밖에 있을 땐 추위 때문에 정말 힘들죠. 무거운 장비를 들고 높은 산을 몇 번씩 오르내려야 할 때도 있고, 날씨가 좋지 않아 무작정 기다리는 인내의 시간을 보내야 할 때도 있지요. 높은 산 정상에서 카메라 렌즈로 수많은 별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어쩌다 내가 이렇게 많은 별을 바라보며 살게 됐을까.”

카메라를 들고있는 권오철씨
| 별을 바라보았던 어릴 적 그 순간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천체사진가 권오철은 없었을 것입니다

관찰에서 시작된 성찰입니다. 진짜 꿈을 만나면서 천체사진가 권오철이 수긍하게 된 자연의 이치이지요. 그것은 광대무변한 우주 속 하나의 점일 뿐인 지구에 태어난, 별 부스러기로 돌아갈 인간이라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과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글. 우승연
사진. 안용길(도트스튜디오)



▶현대자동차그룹 사보 모터스라인 2014년 11월호에서 원문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