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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혼융된 미지로 떠나는 여행
드림 소사이어티展 Xbrid2014/11/03by 현대자동차

작년부터 현대자동차가 야심차게 시작한 ‘더 브릴리언트 아트 프로젝트’의
두 번째 전시 < 드림 소사이어티展 Xbrid >를 소개합니다

자동차 헤드라이트로 만든 차우람 작가의 작품
l 자동차 헤드라이트로 만든 최우람 작가의 작품



“획기적인 기술 이면에는 항상 꿈이 있었다. 과정은 힘들지언정 ‘꿈’이야말로 현실을 창조한다.” 세계 최고의 미래 연구소인 ‘코펜하겐 미래학 연구소’를 10년 넘게 이끌던 롤프 옌센(Rolf Jensen)은 1999년 [드림 소사이어티Dream Society]를 출간하며 꿈과 감성이 각광받는 미래 사회에 대한 놀라운 식견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가 예견한 꿈과 이상이 적절하게 구현된 미래 사회, ‘드림 소사이어티’를 창조적인 예술가의 시선으로 풀어보자는 취지 아래 현대자동차는 작년 ‘더 브릴리언트 아트 프로젝트(The Brilliant Art Project)’를 시작했습니다. 2013년 4월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린 전시가 시발점이었는데요. ‘예술의 새로운 환경적 공공성 제시’,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과의 협업을 통한 다분야 융합 예술 제시’, ‘예술계와 산업계 간의 수평적 교류’를 목표로 정연두, 문경원, 전준호, 이동기, 김용호, 조민석, 임선옥, 슬기와 민 등 아트, 디자인, 패션, 사진, 건축 분야의 국내 최정상급 크리에이터들이 참여해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며 새로운 미래를 여는 원동력을 제시했다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그 바통을 이어받은 두 번째 시도가 바로 지난 10월 11일부터 오는 11월 16일까지 부암동 서울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인 ‘Dream Society X brid’입니다.




X brid, 미지의 세계를 만드는 마법의 단어

드림 소사이어티 X brid전

l 드림 소사이어티 X brid전

드림 소사이어티 X brid전의 주제는 ‘X brid’입니다. ‘X brid’는 혼성물, 이질적인 것의 결합을 뜻하는 ‘하이브리드(hybrid)’와 수학에서 미지의 수를 뜻하는 ‘X’를 결합한 신조어인데요. 규정되지 않은 X야 말로 여러 가능성을 바탕으로 서로 이질적이고 살충하는 대상과 융합하며 종래의 질서와 인식 범위에 갇히지 않은 다양하고 확장된 미지의 세계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관습, 가치관, 생활 방식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외관에 현혹되는 삶의 태도와 인식을 넘어선 ‘완벽한 거듭나기’를 제안할 수도 있죠. 이런 맥락에서 탄생한 ‘X brid’와 예술 간의 만남은 분야 별로 존재하던 보수적인 경계를 허물고 서로 이질적인 것과 결합하며 다양성이 공존하는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를 보여줍니다.


드림 소사이어티 X brid전에 참여한 작가 리스트에서부터 이미 X brid의 개념과 맥을 같이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국내외 예술계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김기라, 박여주, 백정기, 이예승, 최우람과 세계적인 미디어 아티스트 파블로 발부에나 등 예술 분야부터 포토그래퍼 강영호, 건축가 김찬중, 패션 디자이너 요시카즈 야마가타, 깐느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 감독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그리고 실내악단 화음 쳄버오케스트라까지 총 11팀의 면면을 살펴 보노라면 각자 다른 토양에서 실험과 융합을 실천해온 그들의 내공이 전시장을 묵직하게 채우는 현장을 체감할 수 있습니다.




‘X brid’의 필수 요소: 물질, 비물질, 시간성

석파정 서울미술관의 2층, 3층에 자리잡은 제1전시실과 제2전시실 모두 이번 전을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했습니다.  제1전시실에서는 최우람, 박여주 X 화음 쳄버오케스트라, 백정기, 김기라, 요시카즈 야마가타, 파블로 발부에나, 제 2전시실에서는 김찬중, 강영호,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작업 세계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보통 미술 전시회 하면 떠오르는 액자들의 빡빡한 배열이 아니라 대부분 설치 작업이라 각 작업마다 공간을 큼직하게 잡았습니다.


최우람, UrC-1, motor headlights, steel, COB LED, aluminium radiator, DMX controller, PC, 312 x 332 x 296 cm, 2014
l 최우람, UrC-1, motor headlights, steel, COB LED, aluminium radiator, DMX controller, PC, 312 x 332 x 296 cm, 2014

제1전시실로 첫 발을 내딛으면 사방이 막힌 거대한 검은 공간 중앙에서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에너지를 넘실대는 최우람 작가의 ’URC-1’이 보는 이의 시선을 압도합니다.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모아 구형으로 뭉친 이 인공 오브제가 뿜어내는 빛의 파동이 강렬해질수록 ‘동양 철학에서 말하는 우주 만물의 기원이자 에너지의 본체인 태허(太虛)를 형상화했다’는 작품 설명에 자연스레 수긍하게 됩니다. 사실 빛을 만드는 주체가 도시를 주행하는 자동차의 부품이라는 점에서 이 에너지는 인공의 산물이기도 합니다. 빛의 움직임과 호흡이라도 맞추듯 오묘한 울림을 주는 백 사운드는 우주를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느끼던 비현실감을 한층 고조시킵니다. 끝없이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는 순수한 빛의 덩어리를 보노라면 우주 속 별의 탄생과 죽음을 지켜보고 있다는 숭고함마저 느껴질 정도죠.


최우람 작가의 작업은 스케일과 보여주는 방식이 특히 강렬한데요. 그만큼 전시의 주제인 ‘X brid’와 밀접한 몇 가지 속성들을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바로 오브제 혹은 미디엄으로서 현실에 존재하는 물질, 빛과 에너지처럼 만질 순 없지만 그 존재를 부인할 수 없는 비물질, 그리고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변하려는 의지를 고조시키는 사운드와 영상에서 느끼는 시간성입니다. 이 세가지 요소들은 서로 얽히고 섞이며 한 마디로 축약할 수 없고 한 눈에 파악할 수 없는 미지의 속성을 작품에 끊임없이 불어넣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실제 이번 전시의 작품들은 각 주제의식과 접근 방법은 다양할지언정 앞서 말한 요소들을 매개로 ‘X brid’라는 대주제를 공유하며 제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박여주, 탄식의다리, perspex, timber, fluorescent light, 21x97x55cm, 2014
l 박여주, 탄식의다리, perspex, timber, fluorescent light, 21x97x55cm, 2014

최우람 작가 바로 뒤로 이어지는 박여주 작가의 작업을 예로 들어볼까요. 이탈리아 베니스에 있는 ‘탄식의 다리’를 모티프로 삼은 동명의 작업 ‘탄식의 다리’는 푸른색 아크릴로 만든 다리 모형을 모듈 삼아 동일한 형태를 반복적으로 배열한 설치 작업입니다. 다리와 다리를 잇는 골격은 나무로 만들었지요. 이때 함께 등장하는 재료가 특이하게도 형광등입니다. 아크릴 뒤편의 목재 프레임에 부착된 형광등이 빛을 내뿜으면 투명한 아크릴의 속성을 묘하게 건드리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보는 ‘탄식의 다리’는 단순히 푸른색 아크릴과 나무로 만든 모형이 아니라 빛을 투과하며 일종의 환상성을 갖게 됩니다. 이런 특질을 근거로 작가는 다리의 의미를 과거-현재-미래를 서로 잇는 심연의 연결고리까지 은유적으로 확장하는 계기로 삼습니다.

탄식의 다리에서 화음 쳄버오케스트라의 은은한 선율이 흘러나옵니다

| 탄식의 다리에서 화음 쳄버오케스트라의 은은한 선율이 흘러나옵니다

게다가 가까이 접근해보면 현악기와 관악기가 만드는 낯선 음악이 들리는데요. 전시에 참가한 팀 중 유일하게 단독으로 등장하지 않는 실내악단 화음 쳄버오케스트라가 ‘탄식의 다리’를 위해 따로 곡을 만들어 컬래버레이션 형식으로 참여했습니다. 하나의 작업에서 통합적인 경험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X brid’가 강조하는 융합을 표현하는데 이보다 더 적절한 예가 있을까 싶네요.




융합과 균형, 그리고 회귀


제1전시실 안으로 진입할수록 앞서 말한 매체적 특성을 갖추면서 주제 의식까지 정교하게 직조한 작업들이 계속 출현합니다. 백정기 작가의 작업 ‘달걀부화기: 촛불과 식물’은 마치 하나의 거대한 자연 실험실을 연상시킵니다. 한 쪽에는 식물 화분으로 가득차 있고, 다른 한 쪽은 제단처럼 꾸민 나무 구조물을 중심으로 두 줄로 늘어선 열주가 보입니다. 기둥마다 양초 4개를 한 묶음 삼아 배치했는데 모두 촛불을 켜놓았습니다. 대체 무엇을 위한 것일까요?


백정기, egg incubator,mixed media, dimensions variable, 2014
l 백정기, egg incubator,mixed media, dimensions variable, 2014

작가의 말에 따르면 촛불의 열에너지와 식물이 자라는 화분의 흙에서 유기물과 무기물을 끌어내 모은 화학 에너지를 제단으로 송전합니다. 제단에는 달걀 몇 개가 담긴 투명한 인큐베이터가 있습니다. 실제 어미 닭은 약 10일 동안 자신의 체온으로 알을 품으며 병아리를 부화시킵니다. 이런 류의 사랑은 결코 정의내릴 수 없다고 여겨지지만 작가는 사랑 또한 뇌 속에서 일어나는 화학적, 물질적 반응의 결과물이라고 가정했습니다. 촛불과 흙에서 추출한 에너지가 서로 반응하며 만드는 파동이 계란에 전달돼 병아리로 부화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20일. 인간이 자연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의 기간인 셈이죠. 촛불과 화분, 여기서 발생하는 에너지와 파동, 그리고 20일이라는 기다림 속에 피어나는 철학적인 질문에 새삼 감탄이 나옵니다.


김기라,demonized script,3channels video,2014
l 김기라,demonized script,3channels video,2014

4개의 작업을 하나의 설치 작업으로 묶은 김기라 작가의 연작 ‘이념의 무게’는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융합보다 현재 상태의 불균형을 고민합니다. 에너지가 고르게 분포한 상태를 이상 세계로 상정한 그는 악마야 말로 불균형의 대표적인 예라고 정의합니다. 모든 것이 균형 속에 있던 낙원에서 인간이 나오면서 분별력과 에고가 생기고 이후 세상에 대해 판단을 시작하면서 오욕칠정의 감정이 탄생했는데 곧 이게 악마성과 일치한다는 것입니다.


붉은 커텐을 뒤에 두고 앞 쪽을 쳐다보면 좌우 양 옆에는 카펫 형식의 원 다이어그램들이 놓여져 있습니다. 무지개색을 비롯 여러 색으로 나뉘어진 섹션들은 연령대 별 자살률과 사회적 혼란을 초래하는 요인들을 분석한 %에 따라 만들어 졌습니다. 정면에 배치된 거대한 스크린에는 문화권을 막론하고 악마를 상징하는 고서의 일러스트레이션이 반복적으로 상영됩니다. 불안한 음조의 음악 사이사이마다 산발적으로 들려오는 거친 숨소리는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합니다.


동선을 따라 이어지는 이 설치 작업의 마지막은 현대 무용을 틀어놓은 디스플레이입니다. 서로 넥타이를 잡아끌거나 기절한 사람에게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는 비디오 속 모습을 보노라니 서로 경쟁에 지친 이들의 몸부림이란 해석과 함께 동시에 무언가를 위해 분투하는 인간의 노력으로 보입니다. 만일 후자에 가깝다면 아마 균형의 회복을 위해 전력으로 움찔거리는 회귀의 욕구가 아닐까 싶습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균형을 회복하려는 이들의 노력이 유일신의 품으로 돌아가는 서구와 달리 음양의 조화를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동양적 사고방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최우람 작가의 ‘태허’ 개념이 떠오르는 대목입니다.


요시카즈 야마카타, The Seven Gods - Clothes from Chaos, mixed media, dimensions variable, 2013
| 요시카즈 야마카타, The Seven Gods - Clothes from Chaos, mixed media, dimensions variable, 2013

다양한 군상의 조화는 다신교 문화권의 대표적인 특징으로 꼽힙니다. 패션 디자이너인 요시카즈 야마가타는 ‘일곱 명의 신’이란 작업에서 작품 명 그대로 평화롭던 신화 시대의 신들을 현실에 재림시키는 모습을 형상화했습니다. 아기 인형, 동물 모양의 털 인형, 아동용 장난감 등 어린이의 동심을 내포하는 여러 요소와 함께 다채로운 조화로 구석구석 치장한 신의 모습은 순수의 시대를 소구하는 현대인의 탄식을 먹고 자란듯 괴기하면서 동시에 아름다운 모순을 상기시킵니다. 작업 옆 공간의 벽에는 실제 작가가 도쿄 패션 위크에서 진행한 퍼포먼스를 투사시켜 여러 매체가 혼합된 ‘X-brid’의 특성을 빼놓지 않습니다.


파블로 발부에나, para-site, site-specific installation, video-projection on exhibition plinths 2014
l 파블로 발부에나, para-site, site-specific installation, video-projection on exhibition plinths 2014

미디어 아티스트 파블로 발부에나는 아마 사람들이 생각할 때 가장 복잡한 형식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할 거란 오해를 많이 받을 겁니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이룩한 다양한 구현 방식 때문일 텐데요. 실상 출품작 중 가장 단순한 작업을 꼽는다면 빠지지 않을 정도의 미니멀리즘 양식으로 압축했습니다. 그는 동일한 크기의 흰색 직육면체 3개를 나란히 배열한 후 강한 프로젝터 빛을 투사하는 ‘프로젝션 매핑’ 기법을 활용해 빛으로 새로운 사각형을 만들고 쪼개고 합치며 궁극적으로 물질에 대한 의문을 제기합니다. 고도로 강한 에너지가 잠시 멈춰 형태를 이룬 것이 ‘물질’의 정의인데 정작 빛은 스스로를 전달하며 움직이는 에너지로 물질의 범주에 속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빛이 만드는 형태란 아주 초간발의 차로 먼저 출발한 빛이 현재에 다다른 결과로서 빛의 과거가 만든 흔적에 불과하다는 것이죠. 이런 시공간의 왜곡이란 어려운 주제를 직육면체에 투사한 빛의 흔적으로 단순하게 전달하는 그의 아이디어는 정말 미지의 문자, X만큼이나 신기합니다.


강영호, 99 Variations
l 강영호, 99 Variations

제2전시실로 통하는 계단을 올라가보면 눈 앞에는 두 방향의 동선이 있습니다. 먼저 정면에는 거대한 사진들이 줄지어 걸려있는데요. 바로 포토그래퍼 강영호의 ’99 Variations’입니다. 거울 앞에 남녀 배우들을 배치하고 그 거울에 반사된 움직임을 카메라로 포착해 얻은 인물의 이미지들은 주체와 대상이라는 경계가 흐릿합니다 곧 거울이 만든 모호함 속에서 움직임과 멈춤을 동시에 포착한 새로운 융합의 결과물인 셈이죠. 이렇듯 서로 반대되는 개념이 동시에 존재하는 상황에서 결국 구분이라는 것은 더 이상 의미를 잃어버리고 모든 것은 전체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동양 특유의 사상을 함축적이고 세련된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김찬중, Post-Archigram Biological City, styrofoam, plastic, 90 x 60 x 1100 cm, 2014
l 김찬중, Post-Archigram Biological City, styrofoam, plastic, 90 x 60 x 1100 cm, 2014

강영호 작가의 작업이 배치된 정면이 아닌 오른쪽 동선으로 따라 들어가면 곡선으로 이루어진 기다란 흰색 유기체가 구석부터 그 모습을 보입니다. 건축가이자 아티스트인 김찬중의 작업인데요. 길이가 총 11m에 이르는 이 작업의 내부는 마치 동굴의 종유석처럼 서로서로 연결되며 하나의 거대한 구조물을 보는 느낌입니다. 내부 곳곳에 놓은 자동차 미니어쳐를 본 후에야 이 구조물이 사실 인간이 살아가는 도시의 변형이라는 점을 알아차립니다.


작가는 ‘인위’의 개념이 활짝 만개한 도시에서 끝없이 생기는 여러 문제점의 근원을 불균형으로 파악합니다. 그리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균형의 본질을 품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시도를 하는데요. 그 방식이 무척 독특합니다. 과학의 힘으로 자연과 도시 공간을 하나로 융합시켰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이런 접근법이 가능할까 싶지만 정작 작가는 동양의 ‘탈무드’로 불리는 [채근담] 속의 한 구절을 인용해 자신의 의견을 대변합니다. 위천지립심(爲天地立心). ‘천지를 위해 자신의 뜻을 세운다’는 뜻인데요. 우주 전체를 위한 삶을 살겠다는 이 비장한 말은 비단 과거 곧디 곧은 선비에게만 해당되는 옛말이 아닙니다. 작가 스스로 인류를 위해 과학이라는 사상의 실험을 거듭하며 21세기의 ‘위천지립심’을 실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For Monkeys Only_Single-Channel Video, 1920 x 1440, 1’ 13”, Stereo, 2014 / One Water, Single-Channel Video, 640 X 480, 1’ 11”, Stereo, 2014
|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For Monkeys Only, Single-Channel Video, 1920 x 1440, 1’ 13”, Stereo, 2014 / One Water, Single-Channel Video, 640 X 480, 1’ 11”, Stereo, 2014

2010년 <엉클 분미>로 깐느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 역시 자연에 대한 경의와 회귀를 적극적으로 표현합니다. 선적 구조의 시간, 합리성을 통한 인과관계, 원인과 결과, 수식을 통한 합리적 공간 개념은 서구와 근대라는 개념이 만든 허상이자 폭력이라고 믿는 그는 불교의 세계관과 태국 민간 사상, 현대 첨단 물리학에서 말하는 동양 철학의 조화론적 관점을 기발하게 엮어 몇 편의 영상으로 구현했습니다. 고대 도시, 병실의 노인, 원숭이가 등장하는 각 영상에는 파악하기 힘든 여러 이미지들이 겹치고 또 융합되며 새로운 인상을 만들어냅니다. 이런 활동의 배경에는 만물에 정령이 깃든다고 믿는 만유정령설이 있습니다. 즉 인간은 자연의 주인이나 만물의 척도가 아니라 단지 만물의 일부분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담당합니다. 이처럼 만물에 대한 수평적인 사랑의 제스처는 전통적인 이분법적 사고를 극복한다는 점에서 ‘X-brid’의 요체를 함축적으로 표현합니다.


이예승, The Parallel Distance, m157 duralumin circle screen, dimming light, micro-controller,scrap-metal objects, dimensions variable, 2014
l 이예승, The Parallel Distance, m157 duralumin circle screen, dimming light, micro-controller,scrap-metal objects, dimensions variable, 2014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 중 유일하게 서양 철학 개념에 뿌리를 둔 이예승 작가의 작업은 동양 철학을 웅장하게 구현한 최우람 작가와 함께 이번 전시에서 가장 흥미로운 비교 대상입니다. 서구의 철학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의 저서 [국가]에는 ‘동굴의 비유’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동굴 속 죄수와 간수의 행동을 통해 진실과 허상 간의 관계를 꼬집는 ‘동굴의 비유’는 그동안 수많은 철학자들에게 눈 앞에 보이는 현실 너머에 존재하는 진실을 찾기 위한 등불 역할을 했습니다.


작가는 이 ‘동굴의 비유’에서 영감 받은 기묘한 설치 작업을 준비했습니다. 거대한 공간 중간에는 하얀 반투명 재질의 원형 스크린이 자리잡았습니다. 원형 스크린 안에는 프로젝터를 설치했고 각종 오브제도 함께 배치했지요. 먼저 작가는 현실 속 사물을 촬영한 영상을 원형 스크린 내부에서 바깥을 향해 투사시킵니다. 현실을 복사한 이미지 뿐만 아니라 프로젝터 빛과 내부 오브제가 서로 조응하며 만드는 그림자는 관람객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습니다. 또한 음영의 차이가 만드는 그림자 놀이에는 프로젝트 맵핑 기술을 활용한 여러 색면의 움직임이 추가됩니다. 이처럼 디지털 기술로 재해석하며 실제로 구축한 플라톤의 새로운 ‘동굴의 비유’는 실재와 가상의 구분에 대한 가능성을 다른 방식으로 말하는 중입니다.



X-brid를 구현하는 숨은 주인공, 사운드


전에서 선보이는 작업들은 제 스스로 ‘X-brid’의 개념을 충분히 품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독 사운드는 각 전시품의 특징을 고조시키고, 전체 전시를 비시각적으로 온전히 묶는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는 점에 숨은 주인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박여주 작가의 ‘탄식의 다리’에 등장하는 화음 쳄버오케스트라의 컬래버레이션 작업은 그 자체로도 ‘X- brid’적인 특성을 갖추고 있지만 외부의 소리와 조응하며 예상치 못한 미지의 작업으로 변모하는 모습도 놓칠 수 없습니다. 최우람 작가의 몽롱한 우주 소리가 벽을 뚫고 ‘탄식의 다리’를 거침없이 덮어버리기 때문이죠. 이 사운드의 데시벨이 워낙 높은지라 배경 음악이 없는 백정기 작가의 영역을 훑고 종국에는 김기라 작가의 영역까지 도달합니다. 물론 강렬한 악마의 숨소리와 살짝 손을 잡으며 미약하게 흩어지긴 하지만요.


우주 소리만큼 커다란 악마 사운드가 지배하는 김기라 작가의 영역 제일 끝 편에 자리잡은 현대 무용 디스트플레이 작업은 마치 저항이라도 하는 듯 자신만의 소리를 내지르며 서로 기싸움을 벌입니다. 그 음악은 다름 아닌 엘가의 첼로 협주곡 E단조인데요. 20세기 중반 희대의 천재 첼리스트 재클린 뒤프레(Jacqueline du pre) 의 연주를 선택했습니다. ‘영국의 장미’라 불리며 첼로계의 신성으로 우뚝 선 그녀는 불행하게도 자신의 인생 전반부는 천재의 명성 아래에서, 후반부는 온 몸의 근육이 서서히 굳어가는 ‘다발성 경화증’의 고통 아래 결국 42세의 젊은 나이로 영면합니다. 그녀의 천재성을 한껏 느낄 수 있는 엘가 첼로협주곡의 하이라이트 부분은 결연한 의지로 음을 높이며 달려가는 첼로 소리가 탄성을 자아내는데요. 마치 현실의 어려움에 맞서 앞으로 나아가려는 인류의 노력을 떠올리게 합니다.


격정적이고 아름다운 첼로 선율은 파블로 발부에나의 작업을 감싼 후 윗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서 스크리닝하는 요시카즈 야마가타 패션쇼의 발랄한 팝음악과 중첩됩니다. 이처럼 제1전시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사운드가 끊임없이 서로를 이으며 조응을 이끌어내고 빈 자리를 채우며 공간 전체를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합니다.


사운드의 중요성은 제2전시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면에 자리잡은 강영호 작가의 작업은 영롱한 피아노 소리가 먼저 관람객을 맞이하는데요.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Goldberg Variations)입니다. ’99 Variations’라는 해당 작품명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선곡입니다. 근데 재미있는 점은 정중동의 동양 사상을 담은 작업의 주제와는 다소 반대로 골드베르크 변주곡이야 말로 수학 공식처럼 명쾌하고 위계있게 움직이는 대위법의 진수를 보여주는 곡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런 아이러니한 결합이야말로 또 다른 방식으로 ‘X brid’를 다루는 작가의 센스일 것입니다.


 ‘동굴의 비유’를 구현한 이예승 작가의 배경 음악은 물이 한방울씩 똑 똑 떨어지며 공명하는 동굴 소리를 쏙 빼닮았습니다. 최우람 작가의 우주 소리처럼 작업의 특징과 완전히 일치하는 선곡으로 관객의 몰입도를 최대한 높여주는 촉매로 기능합니다. 출구로 향하는 동선에 위치한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싱글 채널 비디오 연작 또한 작은 모니터 속에서 각기 다른 사운드를 내는데요. 특히 전시의 대단원이라 불릴 만한 ‘Fireworks Sketch’는 고대 도시를 흑백 영상으로 보여주는 작업인데, 도시 곳곳을 비추는 영상 속에 불규칙적으로 등장하는 흰색 조각들은 탁 탁 불꽃 튀기는 소리와 정확히 호흡을 맞추며 제목과 영상, 소리가 서로 얽혀 결합한 경험의 온전함을 만끽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강영호 The sweat of the sun as the rain, pigment ink on fine art paper, 225 X 150 cm, 2014
l 강영호 The sweat of the sun as the rain, pigment ink on fine art paper, 225 X 150 cm, 2014

이번 드림 소사이어티X brid전은 총 11팀이 참여했습니다. 사람에 따라 많다고, 혹은 적다고 말할 수 있는 숫자입니다. 작품의 인상을 중심으로 빠르게 보면 아마 30분 안에 몇 번은 반복해서 돌아다닐 수 있고, 작품 하나마다 미련하다고 할 만큼 충분한 시간을 쏟는다면 아마 3시간이 넘게 걸릴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왕 꿈과 상상이 예술과 엉켜 탄생한 새로운 세계로 아름다움의 여행을 떠날 마음을 먹으셨다면 미지에 대한 기대와 다양성의 공존이 만드는 즐거움을 한껏 누려보시는 게 어떨까요? 드림 소사이어티는 결국 구성원의 의지와 열정이 만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전종현
아트 & 컬쳐 저널리스트, 허핑턴포스트 블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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