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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관통하는
중남미의 새로운 시선2014/09/26by 현대다이모스

막연하게 그려왔던 중남미의 매력을
가까이 만날 수 있는 영화들을 만나봅니다

부서지는 햇살처럼 열정적인 중남미 문화는 뜨겁고 솔직한 매력으로 가득합니다

ㅣ부서지는 햇살처럼 열정적인 중남미 문화는 뜨겁고 솔직한 매력으로 가득합니다



중남미를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뜨거움입니다. 뜨거운 열정, 뜨거운 사랑, 뜨거운 차… 작렬하는 태양 속에서 태양보다 뜨겁게 웃고, 울고, 춤추는 게 바로 중남미 사람들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중남미의 문화는 세계 그 어떤 나라보다도 민중이 처한 현실과 미래에 대한 희망이 가장 솔직하게 투영되어 있습니다. 알면 알수록 더욱 신비롭고 매력 있는 중남미 문화의 특징을 조금 더 새롭게 영화를 통해서 들여다봅니다.



나누는 삶, 마테차

평범한 모범생이 남미를 질주하며 성장하는 모습을 그려낸 영화 <모터싸이클 다이어리>
ㅣ 평범한 모범생이 남미를 질주하며 성장하는 모습을 그려낸 영화 <모터싸이클 다이어리>

순진한 모범생 체 게바라, 그는 친구 로베르토와 낡은 오토바이 ‘포데로 사’로 남미를 질주합니다. 무지막지한 고생, 달달한 로맨스, 그리고 팍팍한 현지인들의 삶에서 모범생 청년이 현실에 눈을 뜨며 성장해나가는 모습이 인상적인 영화 <모터싸이클 다이어리>의 내용입니다. 영화 속 체 게바라는 사막을 건너다 가난한 노동자 부부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과 나누는 마테차는 보는 이들에게 상당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킵니다. ‘어? 빨대 같은 걸 꽂아서 마시네? 그런데 그 빨대를 여럿이 같이 쓰네?’

마테차는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우루과이 그리고 브라질 남부 지방에서 즐겨 마시는 차의 한 종류입니다. 호랑가시나무과의 상록수를 말려 만드는 이 차는 생존에 필요한 모든 비타민을 함유하고 있다고 할 정도로 영양학적으로 우수해서 아르헨티나에서는 식사대용으로도 즐겨 마십니다. 또 경우에 따라 봄비야(BBombilla)라 불리는 빨대를 꽂아서 여럿이 같이 나누어 마시기도 합니다.

중남미 지역에서 마테차에 대한 사랑은 신앙에 가깝습니다. 비만에도, 허약한 체질에도 마테차만 마시면 끄떡없다고 믿지요. 과장이야 있겠지만, 확실히 마테차를 열심히 마시는 사람 중에 뚱뚱한 사람을 본 일이 거의 없습니다. 특히 고기를 주식으로 하는 이곳 사람들의 식습관까지 생각한다면 그 효능을 무시할 수는 없을 듯합니다.

언젠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수염이 무성한 남자가 내미는 빨대를 기꺼이 받아서 쪽쪽 마신 적이 있습니다. 로마에선 로마법을 따르라고 했으니, 새침 떨며 사양하면 여행자의 도리가 아니겠지요. 물이 뜨거워서인지 다행히 빨대 주위의 침은 빠르게 증발했습니다.

중남미 사람들에게 ‘마테차’는 ‘건강’ 그 자체입니다
ㅣ 중남미 사람들에게 ‘마테차’는 ‘건강’ 그 자체입니다



삶의 애환을 어루만져주는 탱고

영화 <여인의 향기>에서 눈 먼 퇴역군인과 젊은 여인이 추는 탱고, 절절한 삶이 녹아든 명장면입니다
ㅣ 영화 <여인의 향기>에서 눈 먼 퇴역군인과 젊은 여인이 추는 탱고, 절절한 삶이 녹아든 명장면입니다

한 신사가 섹시한 여인과 정열적인 춤을 추는 장면, 우리에게 탱고는 그런 이미지입니다. 그리고 제목도 작곡가도 모르지만 탱고 하면 떠오르는 음악이 있습니다. 영화 <여인의 향기>를 통해 더욱 유명해진 ‘Por una cabeza(스페인어로 ‘간발의 차이’로 해석된다)’이지요. 1930년대를 주름잡았던 미남 가수 카를로스 카르델(Carlos Gardel)의 노래로 그는 에비타, 마라도나와 함께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사랑받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사실 카르델은 정식으로 음악 교육을 받은 적이 없어 악보를 보는 법도 몰랐습니다. 그가 흥얼거리는 음을 반주자가 옮겨 적었고, 그렇게 수백 곡의 탱고가 빛을 보게 된 것입니다. 영화 <여인의 향기>에서 눈이 먼 퇴역군인 알파치노는 젊은 여인에게 춤을 추자고 합니다.

여자는 실수가 두렵다고 합니다. 하지만 실수로 스텝이 엉키면, “그게 바로 탱고입니다(If you make a mistake. If you get all tangled up, you just tango on)”라고 이야기하며 알파치노는 여인의 손을 잡아 줍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부두노동자들, 주로 이탈리아에서 온 하층민들은 라보카(La baca)의 카미니토(Caminito) 술집에 모여 탱고를 췄습니다. 두고 온 고향을 그리워하고, 이루지 못한 성공을 한탄 했습니다. 탱고의 음악과 춤사위가 애절한 이유는 가난한 이들의 춤과 노래여서가 아닐까요? 절절한 삶이 녹아 있는 탱고는 지금도 아르헨티나의 곳곳에서 반도네온(Bandoneon: 아코디언과 비슷한 악기로 독일에서 넘어왔다) 연주와 함께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플립플롭(Flip Flop)과 함께 축구를

플립플롭을 신고 질주하던 영화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의 주인공, 제제처럼 브라질 서민들은 플립플롭을 운동화처럼 여깁니다
ㅣ 플립플롭을 신고 질주하던 영화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의 주인공, 제제처럼 브라질 서민들은 플립플롭을 운동화처럼 여깁니다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는 브라질 작가 J.M 바스콘셀로스의 소설로 전 세계 32개 이상의 나라에서 출판되며 꾸준한 사랑을 받아 온 베스트셀러입니다. 고3 때, 초등학생이 읽는 동화책 정도로 생각했다가 도서관 화장실에서 읽고 펑펑 울었던 그 소설이 최근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상상력이 풍부한 어린 소년 ‘제제’와 까칠하고 무서워 보이지만 알고 보면 한없이 자상하고 부드러운 ‘뽀르뚜가’ 아저씨와의 우정을 그린 이 영화는 사랑받고 싶고, 사랑하고 싶은 꼬마와 어른의 따뜻하고도 슬픈 이야기를 잘 담아내고 있습니다.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는 브라질 작가의 작품을 토대로 한 브라질 영화인만큼 그 문화를 잘 드러내고 있는데, 그중 으뜸은 주인공 제제가 플립플롭을 신고 달리는 기차와 경주하는 모습입니다.

보통 우리가 ‘쪼리’라고 부르는 플리플롭은 엄지발가락과 두 번째 발가락을 외줄에 걸친 채 해변을 걷고, 집 앞 슈퍼마켓에 갈 때 신는 신발이지요. 이처럼 세상에서 가장 단순하고 흔한 플립플롭의 역사는 무려 6,000년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기원전 4,000년, 이집트인들은 플립플롭을 신었고 아프리카 마사이족, 인도인, 그밖에 지구촌 곳곳에서 수천 년에 걸쳐 플립플롭을 애용했습니다.

그리고 브라질은 오늘날의 플립플롭을 전 세계에 전파한 1등 공신입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당시 브라질 국기가 그려진 플립플롭이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서민뿐만 아니라 멋과 트렌드를 좇는 이들에게도 필수 아이템으로 자리 잡은 것이지요. 특히 하바이아나스(Havaianas)라는 브라질 국민기업은 저렴한 가격과 단순한 디자인으로 브라질 서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브라질에서 플립플롭은 축구화고 러닝화입니다. 두 발가락에 힘을 꽉 줘야만 하는, 불편하다면 불편한 신발을 신고 골목 어딘가에서 드리블을 하고 강슛을 날립니다. 골목 축구가 묘기로 변신하는 순간이지요. 왜 브라질이 세계 최고의 축구 강국인가를 잘 알 수 있는 모습인 셈입니다. 플립플롭은 브라질 축구 발전의 1등 공신입니다.



고통 속에서 완성한 인디오의 색

<상처입은 사슴> Frida Kahlo 나무에 유채 22.4×30cm 1946
| <상처입은 사슴> Frida Kahlo 나무에 유채 22.4×30cm 1946

멕시코 대표 초현실 작가 (Frida Kahlo), 서구의 미술계는 그녀를 멕시코 대표 초현실 작가라 칭합니다. 초현실이란 뭘까요? 이성이 아닌, 모든 선입견을 배제한 심리적 자동기술을 뜻합니다. 전혀 상관없는 사물이 캔버스에 공존하지요. 프리다 칼로의 그림도 그렇습니다. 여자, 사슴, 화살이 동시에 등장합니다.

하지만 이 사물들은 알고 보면 강렬한 연관성을 지닙니다. 사슴은 자신의 몸을 뜻하고, 화살은 교통사고로 박살난 그녀의 몸과 통증을 뜻합니다. 양 눈썹이 두텁게 이어지고, 수염도 거뭇한 여자는 프리다 칼로, 바로 자신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철저히 응시해 그림을 그렸습니다. 기구한 삶을 산 인물로 그녀와 견줄 만한 이가 또 있을까요? 소아마비로 태어나 쇠봉이 허벅지와 자궁을 관통하는 참담한 교통사고를 겪었습니다. 또 멕시코 최고의 벽화 예술가이자, 남편인 디에고 리베라(Dieg Rivera)는 끊임없이 다른 여자와 추문을 일으켰습니다.

심지어 프리다의 여동생과도 스캔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아픔을 어떻게든 표출해야 했던 그녀는 자신의 고통을 멕시코의 전통 문화와 함께 절절히 표현했습니다. 멕시코의 전통 복장과 장신구, 인디오의 색은 그렇게 그녀의 캔버스에서 화려하게 피어났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녀는 초현실주의 작가로 구분되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소재는 ‘무의식’이 아니라 ‘자신’이고 ‘자신의 고통’이었으니까요. “행복하게 사라지고 싶다. 다시 돌아오지 않길 바란다.” 그녀의 일기장 마지막 페이지는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영화 <프리다 칼로>는 자신의 고통을 캔버스에 표현한 멕시코 대표 초현실 작가의 일생을 그렸습니다
ㅣ영화 <프리다 칼로>는 자신의 고통을 캔버스에 표현한 멕시코 대표 초현실 작가의 일생을 그렸습니다

영화 <프리다 칼로>는 이런 그녀의 비극적인 삶뿐만 아니라, 화려한 색감까지 영상적으로 훌륭하게 표현해냈습니다. 하지만 실제 그녀와 비교해보면 영화 속 그녀의 삶은 너무나 무덤덤하게 그려졌습니다. 아마도 영화 또한 그녀가 느끼는 감정과 생각을 배우의 감정 표출이 아닌 그녀의 예술 작품으로 표현하는 데서 오는 처연함은 아니었을까요. 그녀는 그림을 그릴 당시 느꼈던 모든 고통과 슬픔을 물감으로 농축해 캔버스에 표현했습니다. 때문에 영화 역시 슬프면서도 슬프지 않은 노래와 함께 그녀의 그림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글. 박민우
여행작가




▶ 현대다이모스 사보 D STORY 7+8월호에서 원문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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