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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gin 아시안게임
Again 코리아2014/09/16by 현대자동차그룹

아시안게임의 시작과 함께
아시안게임 개최국으로서의 한국을 돌아봅니다

1951년 처음 시작된 아시안게임은 올해로 17회를 맞았습니다 (출처: 국가 기록원)

1951년 처음 시작된 아시안게임은 올해로 17회를 맞았습니다 (출처: 국가 기록원)



하계아시안게임과 동계아시안게임은 언제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요? 그리고 한국은 언제부터 아시안게임에 참가했을까요?  세계평화와 협력의 의미를 담고 있는 아시안게임의 출발과 변화 과정을 소개합니다. 또한 올해로 네 번째 아시안게임을 개최하는 한국의 지난 시간들을 돌아봅시다.



전쟁의 아픔을 딛고 핀 평화의 축제

제2회 필리핀 마닐라대회에 참가했던 국가대표 선수단(왼쪽)과 제3회 동경 아시안게임 출전 선수단 (출처: 국가 기록원)

| 제2회 필리핀 마닐라대회에 참가했던 국가대표 선수단(왼쪽)과 제3회 동경 아시안게임 출전 선수단 (출처: 국가 기록원)

아시아경기대회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아시아의 각 민족이 독립하면서 창설 움직임이 시작되었습니다. 1947년 인도의 국제올림픽 위원이 아시아국제회의에서 아시아경기연맹 설립을 제의하였고, 이 회의에서 제정된 헌장이 위원회의 승인을 받음으로써 1949년 아시아경기연맹이 정식 창립된 것입니다.

제 1회 아시아경기대회는 1951년 3월 인도 뉴델리에서 개최되었는데, 당시 대한민국은 한국전쟁으로 이 대회에 참가하지 못했습니다. 아시아경기대회의 목적이 ‘아시아 여러 나라의 우호와 세계 평화를 촉진하는 데’ 있었던 만큼, 한국전쟁으로 인한 우리나라의 경기 불참은 더욱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은 전쟁이 끝난 후, 1954년 제2회 필리핀 마닐라대회부터 참가하였습니다.



한국, 개최국이 되다

제10회 서울아시아경기대회 개막식(출처: 국가 기록원)
| 제10회 서울아시아경기대회 개막식(출처: 국가 기록원)

참가국이었던 한국이 아시안게임을 처음 개최한 해는 1986년입니다. 서울88올림픽이 있기 2년 전의 일이지요. 당시 우리나라 국민체육심의위원회 소위원회에서는 아시아경기대회를 올림픽 전초대회로 유치하자는 의견을 모았다고 합니다. 그래서1980년 대한올림픽위원회가 아시아경기연맹(AGF)에 개최신청서를 제출하였고, 1981년 11월 AGF총회에서 만장일치로 확정되었습니다.

1986년 9월 20일, 잠실 서울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영원한 전진”이라는 슬로건 아래에서 제10회 서울아시아경기대회 개회식이 진행되었습니다. 전두환 전대통령의 개회선언에 이어 공수특전단 단원들의 축하 비행, 비둘기 날리기 등의 개막행사가 진행되었고, 경주에서 채화된 성화는 장재근 선수와 박미선 선수에 의해 점화되었습니다.

이 대회에는 27개국에서 약 4,800명이 참가하여 9월 20일부터 10월 5일까지 15일간 27개 정식종목을 겨루었습니다. 대한민국 선수단은 육상, 수영, 양궁, 테니스, 탁구, 레슬링, 복싱, 유도 등에서 금메달 93개를 획득하였고, 더불어 은메달 55개, 동메달 76개를 따서 종합 2위를 차지했습니다.



“영원한 우정, 빛나는 아시아”

동계아시아경기대회의 크로스컨트리 종목
| 동계아시아경기대회의 크로스컨트리 종목

동계아시안게임은 하계아시안게임보다 좀 더 늦게 시작되었습니다. 제1회 동계대회가 시작된 날짜는 1986년 1월, 일본 삿포로에서였습니다. 하계아시아경기대회보다 무려 35년이나 늦었지요. 1회 동계대회에서 우리나라 선수단은 금메달 1개, 은메달 5개, 동메달 12개로 종합 3위를 차지하였습니다.

 제4회 강원 동계아시아경기대회 개막식 (출처: 국가 기록원)
| 제4회 강원 동계아시아경기대회 개막식 (출처: 국가 기록원)

한편, 1999년에 열렸던 제4회 동계아시아경기대회는 우리나라 강원도 일대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용평, 춘천, 강릉 등의 도시에서 경기가 펼쳐졌는데요. 총 21개국의 나라에서 799명의 선수들이 참가하였습니다. 우리 선수단은 130명이 참가하여 열세종목이었던 알파인스키와 스피드스케이팅에서 딴 5개의 금메달을 비롯하여 총 금메달 11개, 은메달 10개, 동메달 14개로 종합 2위를 했습니다.

제 4회 강원 동계아시아경기대회의 슬로건은 “영원한 우정, 빛나는 아시아”였습니다. 김대중 전대통령의 개회 선언과 함께 대회기가 게양되었고, 성화의 최종 주자가 실내경기장 화반에 불꽃을 붙이면 특수 선을 통하여 실외 성화대로 이동되는 방식으로 점화가 되었습니다.



: “아시아를 하나로, 부산을 세계로”

경기장에 공동 입장하는 남북 선수단 (출처: 국가 기록원)
| 경기장에 공동 입장하는 남북 선수단 (출처: 국가 기록원)

2002년은 월드컵의 해였을 뿐 아니라, 제 14회 부산아시아경기대회가 개최되었던 해이기도 합니다. 9월 29일,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에서 “아시아를 하나로, 부산을 세계로”를 슬로건으로 한 제14회 부산아시아경기대회가 열렸습니다. 특별히 이때에는 남북 선수단이 아리랑 선율 속에 한반도기를 들고 공동 입장하였습니다. 김대중 전대통령이 개회 선언을 하였고, 백두산과 한라산에서 성화 채화를 했으며, 남북분단의 상징인 임진각에서 합화한 성화를 하형주 선수와 계순희 선수가 점화하였습니다.

 제14회 부산아시안게임에는 만 여명의 아시아 선수들이 참가했습니다 (출처: 국가 기록원)
| 제14회 부산아시안게임에는 만 여명의 아시아 선수들이 참가했습니다 (출처: 국가 기록원)

이 대회에는 44개 OCA 회원국의 9,767명의 선수단이 참가하여 9월 29일부터 10월 14일까지 16일간 38개 종목을 겨루었습니다. 우리 선수단은 카바디를 제외한 37개 종목 1,007명의 대규모 선수단을 출전시켜 금메달 95개, 은메달 80개, 동메달 84개로 종합 2위를 했습니다. 분단 이후 처음으로 국내에서 열린 국제 종합경기대회에 참가한 북한 선수단은 금메달 9개, 은메달 11개, 동메달 13개로 종합 9위를 했습니다.



제17회 인천아시안게임을 기다리며

하늘에서 바라본 인천 아시아드 주경기장
| 하늘에서 바라본 인천 아시아드 주경기장

2014년 9월, 한국은 또 한번의 아시아경기대회 개최지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번에 아시안게임이 개최되는 지역은 인천인데요. 벌써부터 아시안게임을 넘어 인천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인천에 세워진 아시아드 주경기장뿐 아니라, 인천의 관광명소나 맛집도 검색 엔진에 오르고 있을 정도입니다.

비전 2014 프로그램에 참가한 미얀마와 캄보디아 태권도 선수들
| 비전 2014 프로그램에 참가한 미얀마와 캄보디아 태권도 선수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인천시는 적극적인 태도로 많은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그 중 하나가 OCA-인천 비전2014 프로그램입니다. OCA-인천 비전2014 프로그램은 아시아올림픽평의회 위원 3명과 인천 3인이 운영위원회가 되어 진행해 온 프로그램으로, 인천이 아시안게임을 주최하면서 한 약속입니다. 내용은 아시아 스포츠 약소국에 2000만 달러를 지원하고, 해당 국가의 청소년 유망주들을 초청해 훈련을 제공하며, 코치 파견과 스포츠 시설 및 장비지원을 하는 것인데요. 인천시는 이 사업을 2007년부터 2014년까지, 총 8년의 시간에 걸쳐 이행해 왔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규모가 커지고 내용도 풍성해지는 아시안게임. 그러나 6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변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바로 화합과 평화를 최우선 순위로 두는 아시안게임의 정신입니다. 이번에 열리는 제17회 인천아시안게임의 슬로건 또한 “평화의 숨결, 아시아의 미래”입니다. 가장 뛰어난 선수를 가리는 경쟁의 자리지만, 결과 이전에 정정당당한 과정과 선수들의 노력이 더욱 돋보이는 아시안게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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