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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과 라이프치히로 떠나는 감성여행
구스타프 클림트와 슈만과 바흐를 만나다2016/04/15by 기아자동차

오스트리아 빈과 독일 라이프치히,
예술 감성이 흐르는 아트시티를 소개합니다

빈의 제3구역에 세워진 훈데르트바서 하우스
l 오스트리아 빈과 독일의 라이프치히.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 두 도시만큼 설레는 곳이 또 있을까요?



오스트리아 빈과 독일의 라이프치히.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 두 도시는 언제나 특별합니다. 혼자 걷는다 해도 외로움이 비집고 들어설 틈이 없는 이유는 도시에 터를 잡은 수많은 명화와 공기를 가르는 아름다운 선율이 쉴 새 없이 감각을 어루만지기 때문입니다. 마치 사랑하는 연인처럼 말이죠.



위대한 화가의 무대, 오스트리아의 빈

뮤제움 콰르티어 광장
l 뮤제움 콰르티어는 넓게 펼쳐진 광장을 중심으로 현대미술관, 쿤스트할레 빈, 어린이 미술관 ‘줌’, 댄스 지구, 빈 건축센터, 21지구 등이 모여있는 박물관 지구입니다

빈은 예로부터 위대한 음악가들이 모인 음악의 도시로 유명하지만, 위대한 미술가들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유럽의 큰 형님 역할을 자처하던 합스부르크 왕가는 수많은 정복전쟁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고 문화를 향유했습니다. 거장, 신인을 가리지 않고 역량을 펼치고자 하는 음악가, 예술가, 건축가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았죠. 이는 빈이 예술의 도시로 성장하게 된 토대가 되었습니다.

그 풍요로운 터전에서 우리가 사랑해 마지않는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실레, 훈데르트바서의 예술세계가 태동, 성장했고 지금까지 길이 남아 우리의 눈을 황홀하게 합니다. 그림과 건축에 매료돼 빈 구석구석을 누비는 여행자의 하루는 눈을 깜빡이는 찰나의 순간조차 아까울 정도입니다.




대작들이 빛나는 아름다운 갤러리, 벨베데레 궁전

벨베데레 궁전의 연못과 정원
l 벨베데레 궁전은 클림트의 키스, 유디드, 에곤 실레의 죽음과 소녀, 포옹 그리고 오스카 코코슈카의 수작들을 비롯한 합스부르크 왕가의 수많은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누구라도 그 앞에 서면 정신이 아득해질 그림이 있습니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인데요. 이 그림이 빈의 벨베데레 궁전에 소장되어 있다는 사실은 이 도시가 아름다운 많은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클림트는 1907년부터 1908년까지 금과 금빛 물감을 주로 사용해 그림을 그렸습니다. 클림트의 황금 시기라 불리는 이 시기의 작품 중 가장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는 ‘키스’는 그 앞에 선 모든 관람객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벨베데레궁 정원의 스핑크스 조각상
l 오이게 공이 죽고 난 후에는 합스부르크 왕가가 이곳을 매입해 왕실 갤러리로 사용했습니다

벨베데레 궁전은 오스트리아의 거장 건축가인 힐데브란트가 전쟁에서 오스트리아를 구한 영웅인 오이게 공의 의뢰를 받아 1723년에 완공한 바로크 양식의 궁전입니다. 정원을 사이에 두고 상궁과 하궁으로 나뉘는데, 상궁과 하궁 천장은 모두 이탈리아 화가들이 그린 프레스코화로 화려하게 장식했습니다. 상궁은 수많은 걸작이 상설로 전시되고, 하궁에서는 주로 특별전이 열립니다.



젊은 예술가의 내밀한 초상, 에곤 실레와 레오폴드 뮤지엄

레오폴드 미술관 내부의 모습
l 봐도 봐도 또 보고 싶은 중독적인 매력의 그의 작품을 보려면 레오폴드 미술관으로 가야 합니다

인간의 죽음에 대한 공포와 성적 욕망을 사실적, 직설적으로 표현해 당시 빈의 화단에 큰 충격을 안긴 에곤 실레는 클림트와 동시대에 활동한 예술적 동지이자 클림트의 계보를 잇는 제자였습니다. 그 역시 빈 분리파의 회원이었으며 이를 발판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머쥐었습니다. 단순한 배경 위를 가르는 거친 선, 왜곡되고 과장된 형상으로 표현된 육체, 몽롱한 가운데서도 날카롭게 빛나는 뇌쇄적인 눈빛의 그림 속 주인공들은 관람객에게 은밀하고 농염한 이야기를 건네는 느낌입니다.



도시를 빛낸 괴짜 미술가, 훈데르트바서

훈데르트바서의 건축물
l 당시, 이 건축물은 기존의 주거양식을 전복한 파격적인 건축기법으로 화제를 모았습니다

빈이 낳은 또 한 사람의 천재는 훈데르트바서입니다. 그는 화가, 건축가, 환경운동가라는 다양한 타이틀로 활동했는데요. 그가 작업한 다채로운 분야의 모든 결과물에는 사람들의 찬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대표작으로는 1985년 건축한, 시에서 운영하는 공공 주택인 훈데르트바서 하우스가 있습니다. 그는 직선을 무신론적이거나 부도덕하다고 믿어 지양했고, 유기적으로 흐르는 선과 다채롭고 화려한 색감을 적용해 동화 속에 나올 법한 집을 건축했습니다.

집 내부는 주거공간이라 관람할 수 없지만 단지 내에 화장실은 꼭 들어가 봐야 합니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재치가 넘치는 인테리어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화장실이 됐죠. 0.6유로의 입장료를 내야 하지만, 전혀 아깝지 않은데요. 훈데르트바서 하우스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쿤스트하우스 빈’도 들러봐야 합니다. 훈데르트바서가 세운 미술관으로 그의 다양한 작품을 전시하고 있으며 아트숍과 카페가 있어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듣는 만큼 행복해지는 도시, 독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의 전경
l 독일 최고의 음악 도시인 만큼, 이곳에선 많이 들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행자로서의 직무유기죠

라이프치히는 독일 작센주 남서쪽에 있습니다. 쉽게 설명하면 베를린을 중심으로 187km 남서쪽 아래, 일곱 시 방향에 있는 도시입니다. 중세에는 유럽 대륙을 관통하는 교통의 요지이자 상업도시로, 근대에는 공업 도시로 성장했지만, 예전부터 이곳은 교회와 대학을 중심으로 음악과 출판문화가 발전한 도시입니다.



사랑을 노래한 아름다운 연인

슈만 하우스에서 볼 수 있는 그림
l 슈만 하우스에는 슈만과 그의 아내 클라라에 관한 수많은 기록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슈만과 클라라. 사랑이 수반하는 모든 감정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값진 일인지는 이들의 음악을 들어보면 단번에 알게 됩니다. 만나고 결혼하고 슈만이 정신병에 걸려 죽기까지, 이 둘은 라이프치히에서 생을 함께했습니다. 구시가지에 있는 ‘카페 바움’은 라이프치히의 랜드마크인 성 토마스 교회에서 1분 거리에 있는 곳입니다. 400년 동안 이곳에서 성업 중인 슈만의 단골집입니다. 괴테, 베토벤, 나폴레옹 등도 이 카페의 단골이었으며 유럽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합니다.

카페 바움에서 도보로 20분 거리에 있는 슈만 하우스는 슈만 부부가 결혼 후 4년간 살며 많은 가곡과 ‘봄의 교향곡’ 등을 작곡한 곳입니다. 현재는 박물관과 작은 콘서트홀 그리고 클라라 슈만 학교로 기능합니다. 두 사람이 교환한 서신과 사진, 사용했던 집기와 악보 등의 전시물은 아름다운 두 사람의 음악적 소통과 공간 가득 울렸을 선율을 상상하게 합니다.




음악의 아버지, 바흐의 자취

성 토마스 교회
l 라이프치히 구시가지 중심에 1212년에 짓기 시작해서 1496년에 완공한 바로크 양식의 성 토마스 교회는 도시의 랜드마크입니다

바흐는 이곳에서 서른여덟이 되는 해부터 27년간 칸토르(교회 음악을 작곡하고 지휘하는 음악감독의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로 재직했습니다. 또한, 성 토마스교회는 라이프치히에서 가장 권위 있는 교회였는데요. 이 교회의 칸토르였던 바흐는 문화의 중심에 있었죠. 라이프치히로 이주해 온 이후부터 바흐는 수많은 종교음악을 작곡했습니다. 그는 신의 음성을 오선지에 옮기듯 교회음악 창작에 몰두했고 라이프치히에서 생활하는 동안 마태수난곡과 마니피카트를 비롯한 300곡이 넘는 교회 칸타타를 작곡, 발표했습니다.

성 토마스 교회는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가 종신서원을 하고 설교한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더 큰 이유는 바흐의 유해가 안치돼 있기 때문입니다. 바흐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은 교회 내부에 있는 그의 무덤을 찾죠. 세기의 거장들에게 끊임없이 영감을 전한 위대한 도시, 라이프치히는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나선 여행자들의 설렘과 거장들의 대를 이은 수많은 음악가의 열정으로 생동합니다.




글, 사진. 문유선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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