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

자연과 야생에서 배우는
상생의 비법 3가지2016/04/21by 현대위아

자연에서 찾은
상생의 비법을 공개합니다

흰동가리와 말미잘이 함께 있는 모습
l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들이 조화를 이뤄내는 모습에서 상생의 비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상생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매우 익숙한 단어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이루는 길이 결코 간단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죠. 상생은 어떻게 이뤄야 할까요? 아래 소개할 이야기들은 이 질문에 대한 작은 힌트입니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들이 조화를 이뤄내는 모습에서 우리는 상생의 비법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삶을 공유하다: 흰동가리와 말미잘

말미잘과 흰동가리의 모습
l 사실 흰동가리가 말미잘과 상생에 성공한 과학적인 이유는 아직 정립된 것이 없습니다

상생의 대표적 사례는 바로 흰동가리와 말미잘입니다. 바다의 포식자 말미잘과 흰동가리는 어떻게 친구가 됐을까요? 이들은 서로 부족한 점을 보완하며 상생합니다. 몸집이 작은 탓에 큰 물고기의 먹잇감이 되곤 하는 흰동가리는 말미잘의 촉수 속에 숨어 생존을 보장받습니다. 흰동가리 역시 말미잘에게 보답하는데요. 스스로 미끼가 돼 말미잘에게 먹을만한 물고기를 유혹해오는 거죠. 그 덕에 말미잘은 배부르게 식사를 할 수 있게 됩니다.

흥미로운 점은 말미잘의 색과 크기에 따라 함께 사는 흰동가리의 종류가 다르다는 점인데요. 연한 색을 띤 말미잘에는 수수한 흰동가리가 살고 화려한 촉수를 가진 말미잘에는 그것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색을 가진 흰동가리가 함께 삽니다. 함께 사는 만큼 서로 어울리려고 노력한 결과가 아닐까요?




진심 어린 희생: 야생동물과 사람

그루너, 리가스와 사자가 함께 있는 모습
l 그들에겐 사자가 자신을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보다 생명을 살리는 게 우선이었죠
ⓒ Nicolai Frederik Bonnen Rossen/Caters News


불가능해 보이는 상생에 도전한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독일 출신의 발렌틴 그루너와 덴마크 출신의 미켈 리가스는 사자와 친구가 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루너와 리가스가 암사자를 만난 건 2011년입니다. 이들은 남아프리카 보츠와나 지역에서 죽어가는 새끼 암사자를 발견했는데요. 사자는 탈수상태로 체중은 고작 2㎏밖에 나가지 않았죠. 그루너와 리가스는 이 암사자를 지극 정성으로 보살폈습니다. 사자에게 ‘시르가’라는 예쁜 이름도 지어줬죠.

그루너와 리가스는 보츠와나 지역의 농업용 토지확보로 시르가가 돌아갈 자리를 확보하는 일에도 나섰습니다. 이들은 아예 ‘모디사 야생동물 프로젝트(Modisa WildLife Project)’라는 이름을 짓고 야생동물 보호활동을 벌였죠. 시르가를 포함한 야생동물이 먹이를 충분히 구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이주시키고 맹수와 사람 간의 충돌을 예방할 수 있게 노력했답니다. 그 결과 시르가는 80㎏의 건강한 사자로 성장해 야생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습니다.

상생을 위한 이들의 노력은 배신당하지 않았습니다. 2013년 시르가는 그루너가 찾아오자 두 앞발을 들고 그를 끌어안으며 반겼습니다. 그루너와 리가스의 진심은 사자의 야생성마저 녹여버린 듯하죠?




청설모가 앞발을 모으고 있는 모습
l 청이에 대한 정성과 사랑으로 이들은 가족이 될 수 있었습니다
ⓒ SBS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일이’ 방송 캡쳐


이번에는 청설모입니다. 청설모는 원래 사람뿐 아니라 다른 동물들을 전혀 따르지 않는 독립성이 굉장히 강한 성격의 동물입니다. 하지만 경계심 많은 청설모도 진심 앞에서는 변하기 마련입니다. 2015년 5월 7일 SBS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일이’에 박청봉씨와 청이의 사연이 소개됐습니다. 박청봉씨는 2014년 죽어가는 새끼 청설모를 발견했는데요. 죽어가는 청설모에게 마사지를 해주고 집으로 데려와 정성으로 돌봤죠. ‘청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매일 식사 때마다 둘러앉아 아예 함께 밥을 먹기도 했습니다. 이런 정성 때문인지 청이는 박씨 옆에서 찰싹 붙어 애교를 떨며 막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가 볼까요? 상생을 이루는 방법은 흰동가리와 말미잘, 야생동물과 사람과의 상생에서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상대방을 온전히 이해하고 그에 맞춰 희생하는 것이 양 극단을 조화하는 비법입니다.

이는 전문가들이 어디서나 이야기했고, 우리 역시 너무나 잘 알고 있던 식상한 답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생의 구호를 외치는 것은 희생의 무게 때문인데요. 나만의 주장, 나만의 사고가 충분히 갖춰진 상황에서 이를 꺾고, 상대에 맞추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함께하는 동료와 이웃들을 위해서 ‘나’보다 ‘우리’를 먼저 생각하는 것. 쉬우면서도 가장 어려운 이 생각이 우리의 내일을 바꿉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