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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기차여행의 모든 것
2박 3일간의 무한 질주, 인디언 퍼시픽2016/09/29by 현대자동차

퍼스에서 애들레이드까지
2박 3일간의 기차여행 여정을 들려드립니다

기차길
l 퍼스에서 애들레이드까지 타고 가는 기차여행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퍼스에서 애들레이드까지, 인디언 퍼시픽을 타고 호주 남부 아웃백을 가로지릅니다. 도시와 사막, 고원지대를 넘나드는 풍광과 호주에서만 맛볼 수 있는 다채로운 미식이 함께하는 기차 여행을 소개합니다.



남반구의 어느 봄날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퍼스 주택가
l 따사로운 햇볕이 내리 쬐는 퍼스 주택가. 호주에서 일조량이 가장 많은 지역입니다

비행기로 13시간여를 날아 도착한 지구 반대편. 퍼스(Perth)의 화창한 봄날이 반겨왔습니다. 호주 방문은 처음입니다. 퍼스는 조금은 생소한 지명일 수 있는데요. 서호주의 주도이긴 하지만, 일명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도시’라 불리는 곳입니다. 유서 깊은 항구도시 프리맨틀(Fremantle)이나 유명 와인 산지인 마가렛 리버(Margaret River) 같은 서호주 대표 관광지를 놔두고 굳이 퍼스에 짐을 푼 이유는 인디언 퍼시픽(Indian Pacific) 때문입니다. 퍼스에서 시드니까지 총 4,352㎞를 달리는 횡단 열차 말이죠. 일단 열차에 오르면 적어도 3일간은 도시 따윈 구경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킹스 파크의 잔디밭
l 호주의 삶이 부러워지는 순간. 킹스 파크의 넓디넓은 잔디밭 위, 분수대 옆에서 뛰노는 아이들이 자주 보이는 곳입니다

서둘러 호텔을 벗어나 킹스 파크(King’s Park)로 향했습니다. 300여 종의 토착 식물과 80여 종의 조류가 서식하는 터전입니다. 킹스 파크를 좀 더 체계적으로 관람하고 싶다면 워킹 투어에 도전해도 좋습니다. 저는 원주민 애버리지니(Aborigine)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인디저너스 헤리티지 투어(Indigenous Heritage Tour)’에 참여했습니다. 가이드인 그레그 나눕은 누가 봐도 호주 원주민의 후손처럼 생겼습니다. 이 분야에 어찌나 빠삭한지, 페퍼민트잎은 감기 치료제라든가, 야생에서 길을 잃었을 경우 바오바브나무의 수액으로 수분을 보충하면 된다는 등 각종 팁을 끊임없이 일러주곤 했습니다.

투어가 끝나갈 무렵 공원 한쪽 아래로 탁 트인 스완 강(Swan River)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 따사롭기 그지없는 햇살, 나무 그늘 아래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는 백발의 노인, 유모차를 밀며 산책 중인 젊은 부부. 주변 풍경에 넋을 잃고 있던 그때, 잔디밭 한가운데에 조성한 호수에서 물줄기가 하늘 높이 솟아올랐습니다. 타이밍을 노리던 아이들이 물가로 달음박질쳤고, 자지러질 듯한 웃음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습니다. 이 평화로운 봄날의 오후를 당연하게 누리는 현지인의 일상이 사무치게 부러운 순간이었습니다.



달리는 미식열차 안에서

플랫폼에 정차된 기차
l 2박 3일 꼬박 달리는 인디언 퍼시픽을 타고 애들레이드를 향해 갑니다

아침 10시 30분. 이스트 퍼스(East Perth) 역에서 탑승 수속을 마치고 객차에 올랐습니다. 방문을 열자 나지막한 감탄이 터져 나왔습니다. 밤이면 침대로 변신하는 긴 좌석, 적당한 크기의 창문, 앙증맞은 테이블, 샤워 시설을 완비한 미니 화장실. 영화 〈다즐링 주식회사〉 속 기차만큼 이국적이진 않지만, 어쩌면 그보다 한층 품위 있게 기차 여행의 로망을 실현시켜줄 공간이었습니다. 인디언 퍼시픽은 이름처럼 인도양(퍼스)과 태평양(시드니)을 연결하는 열차입니다. 꼬박 3박 4일이 걸리는 여정인데, 이번에 저는 퍼스-애들레이드(Adelaide) 구간(2박 3일, 2,659km)만 달리기로 했습니다. 인디언 퍼시픽은 이 3개 역을 제외하면 거의 멈추지 않습니다. 목적지보다 여정 자체가 중요한 기차인 셈입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산악 지대를 아우르는 창밖 풍광을 질리도록 바라보고, 고급 레스토랑 부럽지 않은 미식을 삼시 세끼 즐기는 것. 인디언 퍼시픽에 몸을 싣는 이유입니다.

퀸 애들레이드 레스토랑도 객실 못지않게 훌륭합니다. 테이블 중 하나에 자리를 잡으면, 열차의 흔들림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능숙한 서빙이 이어집니다. 서호주산 새우를 곁들인 감자 샐러드, 서호주의 명물 던피시 구이, 프리맨틀 초콜릿으로 만든 타르트. 그리고 야랴 밸리(Yarra Valley), 바로사 밸리(Barossa Valley) 등에서 공수한 와인이 코스마다 등장합니다. 여정 동안 같은 음식을 먹을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같은 메뉴를 다시 주문하고 싶을 만큼 모든 음식이 맛있습니다. 사실 열차에 머무는 동안 가장 설렌 순간은 따로 있었습니다. 만찬을 즐기고 객실로 돌아가는 시간. 문을 열면 포근한 매트와 이불이 깔린 침대가 나를 맞이하곤 했습니다. 가지런히 개어 있는 옷가지와 그 옆에 사뿐히 놓인 초콜릿 꾸러미까지, 아쉬울 것 하나 없이 완벽한 밤이었습니다.



정차역과 종착역 사이

애들레이드 센트럴 마켓
l 애들레이드에 도착하여 일행들과 센트럴 마켓으로 향했습니다 ⓒSunflowerey

퍼스에서 출발한 지 3일째, 열차가 애들레이드에 도착했습니다. 인디언 퍼시픽의 주요 정차역 중 한 곳을 품은 도시이자 연중 내내 따뜻한 수온의 바다를 곁에 둔 도시. 승객들은 이곳에서 3시간의 자유 시간을 누리거나, 기차를 갈아탑니다. 아니면 여정을 마무리하기도 합니다. 단, 그에 앞서 들를 곳이 있습니다. 같은 기차를 타고 온 이들과 애들레이드 센트럴 마켓에 가기로 했습니다. 이 도시에서 꼭 가봐야 할 곳을 꼽을 때 절대 빠지지 않는 장소입니다. 금요일 아침의 시장은 예상보다 훨씬 떠들썩했습니다. 본격적인 시장 구경에 나서기 전 일단 허기를 채우기 위해 카페 한곳에 자리 잡고 앉았습니다. 얼마만에 맛보는 바깥 음식인지! 바삭하게 구운 달걀 프라이를 얹은 토스트에 베이컨과 구운 버섯, 토마토를 곁들인 푸짐한 접시는 인디언 퍼시픽의 정찬과는 또 다른 의미의 ‘미식’이었습니다.

애들레이드 센트럴 마켓은 80여 개의 상점이 입점한 대규모 실내 시장으로, 카페와 베이커리는 물론이고 과일부터 채소, 해산물, 육가공품에 이르기까지 현지의 신선한 식자재와 특산품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상점마다 꿀, 치즈, 커피 등 전문 분야가 달라 행여 하나라도 놓칠세라 지도까지 펼쳐 든 채 시장 안을 누볐습니다. 그러다 한 매장에서 부모님을 대신해 카운터를 지키는 야무진 소녀에게 반해 호주산 꿀과 보디용품을 잔뜩 구입했습니다. 서로 산 물건을 비교하며 깔깔거리다 보니 어느덧 기차 출발 시각. 일행의 자유 시간도, 나의 여정도 끝났습니다. 행 내내 광활한 자연과 훌륭한 음식을 동무 삼아 달려서인지 아쉬움 대신 깊은 포만감이 남았습니다.



글. 표영소(전<론리플래닛>에디터)
협조. 호주정부관광청, Great Southern R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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