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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되었던 독일을 하나로 연결한
독일의 철도 이야기2016/11/07by 현대로템

독일제국을 이루는 데 원동력이 된
독일의 철도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뉘른베르크를 달리는 고속 열차
l 독일의 철도는 독일제국을 이룰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습니다



1850년부터 1870년 사이, 독일의 철도망은 세 배나 늘어났습니다. 이 과정에서 독일의 경제는 빠르게 성장했죠. 석탄, 철, 직물 생산이 증가했고, 수공업은 공장제 대공업으로 대체됐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독일의 철도는 독일제국을 이루는 데 큰 힘이 되었는데요. 분열되었던 독일을 하나로 연결한 독일의 철도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독일 최초 철도, 루트비히스반

2008년 복원된 아들러 기관차가 뉘른베르크 부근을 지나는 모습
l 뉘른베르크역은 독일 철도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1825년, 영국에서 세계 최초로 철도가 등장했습니다. 이후 1830년, 리버풀-맨체스터 간 철도가 신세계를 열었습니다. 이 소식은 온 유럽으로 퍼져나갔고, 이후 여러 나라가 앞다투어 철도를 놓기 시작했죠. 그중에서도 가장 발 빠르게 움직였던 나라는 벨기에였습니다. 국왕 레오폴드가 진두지휘한 철도 건설은 벨기에를 강소국으로 견인하는 밑거름이 되었죠.

이 영향은 독일에도 전파되었습니다. 독일 남부 바바리아의 군주 루트비히 왕은 영국에 철도 조사단을 파견할 정도로 새로운 기계 문명에 관심을 쏟았습니다. 그러나 철도보다 운하에 관심이 많았던 왕은 곧 흥미를 잃었죠. 대신 바바리아의 기업가들이 나섰습니다.

조지 플래트너와 요하네스 샤러는 13만 2,000길더(네덜란드의 화폐 단위)를 모아 ‘뉘른베르크-퓌르트 철도회사’를 설립했습니다. 사업가들은 루트비히 군주의 이름을 따서 새 철도를 ‘루트비히스반(Ludwigsbahn)’으로 불렀습니다. 바바리아 왕국에서 통행량이 가장 많았던 6㎞의 철길은 바바리아의 최고 명물로 자리 잡았습니다.



독일 철도 산업 호황의 서막이 열리다

베를린 중앙역 철강 구조 메인 홀
l 독일은 여러 도시 국가와 지역 공동체가 어울리고 경쟁하는 곳이었습니다

루트비히스반 철도는 개통 초기에 특별한 형태로 운행됐습니다. 뉘른베르크-퓌르트 구간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 시간에 한 대씩 열차가 출발했습니다. 이때의 열차는 레일 위에 있는 객차나 화차를 말이 끄는 방식이었죠.

루트비히스반 철도를 최초로 운행한 기관사는 특별 스카우트된 영국인 윌리엄 윌슨이었습니다. 리버풀-맨체스터 구간의 기관사였던 윌슨은 뉘른베르크가 맘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바바리아의 법에 따르면 외부 사람은 하루 이상 바바리아에 머무를 수 없었죠. 많은 사람이 아침에 국경을 넘어 출근해 일하다가 저녁에 퇴근하듯 바바리아를 떠나야 했습니다.

이런 이상한 법 때문에 철도에 승객들이 몰렸습니다. 원래 맥주와 신문 수송 목적이었던 루트비히스반 철도가 화물 대신 여객 수송으로 수익을 올리게 됐습니다.



경제 성장으로 주도권을 잡은 프로이센 왕국

베를린 중앙역의 모습
l 루트비히스반 철도가 대성공을 거두자 철도를 보는 독일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졌습니다

루트비히스반 철도가 대성공을 거둔 이후, 라이프치히-드레스덴 철도가 개통되는 등 곳곳에서 철도가 개통되었습니다. 1850년부터 1870년 사이 독일 철도망은 세 배나 늘어났죠. 이는 독일 경제가 그만큼 급속하게 성장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철도 산업은 철과 석탄 생산의 확산과 기계 공업의 발달을 불러왔습니다. 생산력이 확대되자 정치적 변화를 이끄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독일의 여러 왕국 중 가장 세력이 큰 프로이센의 주도로 새로운 경제 체제가 만들어졌습니다. 상품을 수송하는 데 있어 경제 구역을 넘을 때마다 부과되는 관세는 다양한 문제를 파생시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에 프로이센은 내부의 독립 소국이나 독일 북부에서 남부에 이르는 여러 국가와의 경제 동맹 체제로 관세 동맹을 맺었습니다. 모두 18개의 나라가 이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면서 독일제국의 기초가 태동하게 되었죠.

1871년, 비로소 독일제국이 성립되자 철도는 더 확대되어 독일제국을 단단히 옭아맸습니다. 루트비히스반은 1922년 9월 31일을 마지막으로 운행을 중단했고, 퓌르트에 있던 역사는 1938년 철거되었습니다. 나치 당원들의 행진 광장을 만들기 위해서였죠. 독일 최초의 철도 역사와 국가주의로 비롯된 비극의 역사를 담고 있는 이 광장은 현재 ‘자유의 광장’이라고 불립니다. 독일은 철도로 제국을 통일하고 비극의 근대를 맞이했다가 마침내 전쟁의 폐허를 극복하면서 유럽 최고의 나라로 우뚝 섰습니다.



글. 박흥수 철도기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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