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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교 보성여관, 자신의 이야기를 품다
일본식 여관에서 듣는 옛날 이야기2016/04/04by 현대자동차

매화꽃이 화사하게 피는 봄날,
옛날 여관에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목련이 피어있는 보성여관의 정원
l 파란 하늘, 구름에 걸린 목련이 돋보이는 보성여관의 정원, 정원을 중심으로 촘촘하게 객실과 한옥 다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도시의 역사로 남는 건물이 있습니다. 전남 벌교의 보성여관이 그렇죠. 차갑게 얼어붙은 땅에서도 고고한 자태로 꽃을 피우는 매화처럼 다난한 역사를 이겨내고 자신의 이야기를 품은 보성여관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소설의 무대가 된 남도 소읍

보성여관의 차실
l 벌교는 전남에서 네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였는데, 일본인의 비중이 상당히 높았습니다. 사람과 물자, 자본이 넘치던 도시에 여관이 발달하지 않을 리 없었죠

몇 해 사이 벌교는 〈태백산맥〉의 도시로 자리 잡았습니다. 소설가 조정래 선생의 〈태백산맥〉이 잠들어 있던 벌교를 깨웠죠. 벌교에서 유년을 보낸 선생은 역사의 언저리를 들출 때마다 벌교의 풍경이 함께 떠올랐다고 했습니다. 지리적으로 태백산맥과 전혀 관련 없는 남도 소읍이 소설의 무대가 된 이유는 그것만이 아닌데요. 벌교천이 여자만을 지나 남해로 흘러드는 관문답게 고깃배가 밀려오는 포구였던 벌교는, 남도의 곡창지대와도 가까운 지리적 이점으로 일찌감치 일본인 사업가와 자본가들이 몰렸던 역사가 있습니다.

1922년, 철도가 개통된 후에는 남도 곡식들이 벌교에 모였다가 부산으로 옮겨지고 다시 일본으로 넘어갔습니다. 그래서 운송회사와 금융기관, 상공업 회사들이 크게 형성됐죠. 1930년대에는 목포, 여수, 광주에 이어 전남에서 네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였는데, 일본인의 비중이 상당히 높았습니다. 사람과 물자, 자본이 넘치던 도시에 여관이 발달하지 않을 리 없었죠.




일본식 여관에서 복합공간으로 피어나다

보성여관의 다다미방
l 뼈대는 일본식 가옥이지만 툇마루와 여닫이문, 댓돌 등을 두어 한옥 분위기가 나죠

보성여관은 1935년 문을 열었습니다. 바깥에 면한 상점 뒤로 40여 개의 객실을 갖췄는데, 목재 비늘판 벽과 기와가 영락없이 일본식 가옥입니다. 해방 후에도 건물을 사들인 주인이 쭉 여관업을 해왔건만, 건물 뒤로 초등학교가 생겨나면서 여관 업무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이후 건물은 2004년 등록문화재 제132호로 지정됐고 퇴락한 일식 여관의 복원과 활용은 문화재청 산하 문화유산국민신탁에서 2008년부터 맡았습니다.

복원공사를 마친 지금 이곳은 카페와 전시, 문화공간, 숙박체험을 할 수 있는 7개 객실을 갖춘 복합공간으로 관람객을 맞이합니다. 보성여관에서 소설과 소설이 아닌 것을 구별해낼 필요가 있을까요? 낯선 이야기가 담긴 책을 펼치는 것처럼 건물의 문을 열어봅니다. 복원 후 오래된 여관이 풍기던 비밀스러움은 사라졌지만, 안락한 쉼터가 보기 좋게 펼쳐집니다.




매화꽃 피는 봄날 옛날 여관에 가면

햇볕이 드는 보성여관의 툇마루
l 흐릿하게 남아 있는 도시의 옛 기억들은 어디서 들을 수 있을까요?

한때 번성했던 남도 소읍은 소설가의 손끝에서 해방공간과 6.25전쟁을 겪는 파란의 무대로 재설정됩니다. 보성여관에서부터 태백산맥 문학관까지 이르는 길은 ‘태백산맥 문학 거리’로 조성됐는데요. 소설에 등장한 장소 중 여전히 남아 있는 건물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빨치산 토벌대인 임만수와 대원들의 숙소였던 남도여관(보성여관), 벌교라는 이름의 유래가 된 무지개다리 홍교, 이 층 한옥 구조가 독특한 대저택인 현부자 집까지, 소설과 현실의 파노라마가 겹쳐집니다. 현부자집 앞에는 태백산맥 문학관이 있고 또 멀리에는 소설가 조정래 선생의 생가가 보존되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소설 속으로 들어간 소설가가 된 셈입니다.

흐릿하게 남아 있는 도시의 옛 기억들. 그것은 어디서 들을 수 있을까요? 보성여관. 도시의 기담과 야담을 듣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없죠. 매화꽃이 화사하게 피는 봄날, 옛날 여관에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글. 최예선(문화 칼럼니스트)
사진. 보성여관, 김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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