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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마그리트의 예술과 사랑이 빚은
벨기에 브뤼셀의 소소한 풍경들2016/12/19by 현대자동차

마그리트와 조르제트 베르제의 사랑이 느껴지는
벨기에 브뤼셀의 풍경을 소개합니다

벨기에 브뤼셀의 풍경
l 중세 유럽의 모습을 그대로 품고 있는 브뤼셀은 르네 마그리트의 도시이기도 합니다



벨기에 브뤼셀은 중세 유럽의 모습을 그대로 품고 있는 도시입니다. 뾰족한 옛 건물에 둘러싸인 광장이 아름다운 곳, 골목 곳곳마다 와플과 초콜릿의 달콤한 향기가 유혹하는 곳이죠. 게다가 브뤼셀은 초현실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가 삶 대부분을 보낸 곳이기도 합니다. 지극히 현실적인 사랑 속에서 눈부신 초현실주의 작품을 탄생시킨 르네 마그리트. 정반대라서 더 흥미로운 그의 일상과 예술, 그의 삶을 깊이 느낄 수 있는 브뤼셀을 다녀왔습니다.



열네 살 소년, 평생의 연인을 만나다

브뤼셀 그랑플라스의 전경
l 마그리트는 베르제를 열네 살에 만나 평생의 동반자가 됩니다

르네 마그리트는 브뤼셀에서 기차로 40분 떨어진 레신(Lessines)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양복 재단사였고 어머니는 모자 가게를 운영했는데요. 어쩌면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정장 차림에 중절모자를 쓴 사내의 페르소나는 그가 태어날 때부터 결정된 듯합니다. 열두 살에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마그리트는 열네 살에 가족과 함께 샤를루아로 이주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평생의 동반자 조르제트 베르제를 만나게 됩니다. 10년이라는 긴 연애를 이어온 두 사람은 마그리트가 스물네 살이 되던 해에 결혼합니다.

결혼 후 마그리트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해야 했습니다. 생계를 위해 벽지 공장에서 장미를 그렸고, 브뤼셀 시청과 기업들이 발주하는 각종 포스터 작업을 꽤 오랫동안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화가가 자신의 작품이 아닌, 생계를 위해 그림을 그리는 것은 슬픈 상황이었지만, 그는 이러한 현실 속에서도 화가로서 정체성을 잘 지켜나갔습니다. 한 천재 화가의 뛰어난 상상력이 담긴 당시 포스터 작품들을 들여다보면 젊은 시절 마그리트의 고단함이 묻어 있습니다.



뜨거운 열애보다 따뜻한 일상적 사랑의 온도

브뤼셀 그랑플라스의 야경
l 브뤼셀에는 마그리트와 그의 연인 베르제의 이야기가 남겨져 있습니다

28세가 되던 해에 마그리트는 잠시 프랑스 파리에서 지내면서 살바도르 달리, 호안 미로 같은 화가들과 교류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초현실주의 세계를 창조해나갔습니다. 그리고 3년 뒤, 마그리트는 아내 베르제와 함께 브뤼셀로 돌아와 현재 ‘마그리트 하우스 뮤지엄’으로 사용하고 있는 135번지 집에서 1954년까지 약 24년을 살았습니다.

마그리트는 베르제를 평생 사랑했습니다. 다른 예술가처럼 열정적이고 로맨틱한 사랑 이야기를 남기지는 않았지만 두 사람의 이야기는 브뤼셀 곳곳에 소소한 흔적들로 남아 있습니다. 그의 작품을 전시해놓은 ‘마그리트 하우스 뮤지엄’에서는 생전에 마그리트가 촬영하고 편집한 단편영화를 상영하고 있는데, 주인공은 아내 베르제입니다. 영화는 공원을 산책하며 앞서 걸어가는 베르제, 그랑플라스의 상점들을 기웃거리며 물건값을 흥정하는 베르제, 요리하며 친구들과 웃고 떠드는 베르제의 모습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집니다.

브뤼셀 골목의 카페 간판들
l 마그리트와 베르제는 브뤼셀의 카페 골목을 자주 찾았다고 합니다

두 사람은 브뤼셀 곳곳을 함께 다녔다고 합니다. 수많은 카페가 있지만, 두 사람은 그중에서도 그랑플라스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위치한 알렉시앙 거리의 ‘라 플뢰르 앙 파피에 도레(La Fleur en Papier DorF, 금빛 종이로 만든 꽃)’를 즐겨 찾았습니다. 이 카페는 그의 전시회가 열리기도 했던 곳으로, 마그리트 부부는 그림이 벽을 가득 채우고 있는 카페에 앉아 커피와 맥주를 마시곤 했습니다.

마그리트는 아내 베르제가 “인상주의 화풍의 그림을 그리지 마라”고 해서 잠시 그림을 중단했을 때 이곳에서 동료 작가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카페 벽에는 당시 마그리트가 동료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걸려 있고, 카페 입구에는 마그리트의 대표작 〈이미지의 반역〉을 패러디한 ‘이곳은 미술관이 아니다 : (음료를) 마시는 곳이다’라는 글이 적혀 있습니다. 아직도 브뤼셀은 도시 곳곳에서 마그리트를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머물수록 기발한 영감이 떠오르는 교감의 광장

벨기에 그랑플라스에 있는 시청사의 모습
l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라 꼽히는 그랑플라스는 독특한 건축 양식의 건물들이 인상적입니다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가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으로 꼽은 그랑플라스는 브뤼셀 중심에 있습니다. 넓으면서도 아늑한 느낌을 주는 광장은 높이 96m 종탑이 서 있는 시청사, 바로크 양식의 길드(직업별 상인조합) 하우스, 르네상스 양식의 왕의 집 등이 둘러싸고 있는데, 고개를 들었을 때 보이는 네모난 하늘이 묘한 안정감을 줍니다. 이 광장에서는 맥주를 마시며 예술에 대한 목마름을 달래고, 바닥에 앉아 캔버스에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펼치면서 마그리트를 떠올리는 여행자들의 모습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작품 〈구출〉 옆에서 같은 포즈를 취한 르네 마그리트의 모습
l 마그리트의 생애와 작품을 더욱 깊게 알고 싶다면 르네 마그리트 미술관에 들러보세요

브뤼셀에서 마그리트의 생애와 작품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은 ‘르네 마그리트 미술관(Rene Magritte Museum)’입니다. 왕궁 맞은편에 위치한 미술관에서 연대순으로 정리된 250여 점의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마그리트의 작품 세계를 전부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익숙한 사물을 낯선 맥락 속에 배치함으로써 상식과 선입견에 도전해 ‘예술의 개념을 바꾼 예술가’로 평가받는 마그리트. 천재 화가 마그리트가 수만 번도 더 지났을 브뤼셀 거리는 그의 초현실적 감각이 곳곳에 배어 있어 지금도 눈부시게 빛납니다.

여느 예술가들과 달리 평생 단 한 사람만 사랑한 마그리트. 그의 초현실주의 화풍은 어쩌면 아내 베르제의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교감이 깊어지고, 자연스럽게 기발한 영감이 떠오르는 곳. 르네 마그리트와 조르제트 베르제가 함께한 브뤼셀은 그런 곳입니다.



글. 백승선(〈달콤함이 번지는 곳, 벨기에〉 저자,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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