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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과 알파고 대국을 중계한 그녀
바둑 캐스터 정다원2016/05/19by 기아자동차

어려운 바둑 대국을 시청자의 시선으로 쉽게 전하는
바둑 캐스터 정다원을 만나봤습니다

청자켓을 입은 정다원 캐스터의 모습
l 잔혹한 승부의 세계에서 좌절도 겪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바둑이 좋은 정다원 캐스터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을 중계하며 이른바 ‘바둑여신’으로 떠오른 정다원 캐스터는, 방송인 이전에 바둑인으로서 자신을 소개하는 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반짝반짝 호기심 어린 눈망울의 소녀 같은 모습 이면엔, 바둑판 위에서 익힌 내공이 묵직한 중심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녀의 바둑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올봄, 바둑 붐을 타고

바둑알을 놓고 있는 모습
l 바둑 캐스터는 전문 바둑 해설가와 호흡을 맞춰 시청자 눈높이로 대국을 중계해야 합니다

바둑 붐을 타고, 프로 바둑기사 못지않게 주목받는 직업군이 있습니다. ‘이세돌 VS 알파고’ 대국을 중계하며 존재감을 드러낸 바둑 캐스터인데요. 심지어 ‘바둑여신’이란 별칭을 얻은 몇몇 미녀 캐스터들은, 구글이나 이세돌 9단 부럽지 않은 수혜주로 손꼽힐 만큼 사랑받았습니다. SBS에서 2국을, TV조선에서 3~5국을 중계한 정다원 캐스터 역시 이번 대국이 띄운 바둑여신 중 한 사람입니다. 차분한 진행솜씨와 돋보이는 미모로, 하루아침에 화제의 인물이 됐죠.

그녀에게 가장 궁금했던 것은 바둑 캐스터라는, 남다른 직업을 갖게 된 계기입니다. 스코어를 보고 대략적인 흐름을 읽을 수 있는 다른 스포츠 경기와 달리, 바둑은 문외한이 세를 파악하기 어려운 종목인데요. 바둑 캐스터 대부분이 프로 입단을 준비하던 바둑 꿈나무 출신인 것도 그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방송인 이전에 ‘바둑인’이어야 가능한 직업입니다.



두루 배우고 익히니 즐겁지 아니한가

바둑 중계 중인 정다원 캐스터
l 이세돌 9단이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승리를 확정 지은 순간인데요. 정다원 캐스터가 환호하는 모습이 화제를 모았습니다

정다원 캐스터가 바둑을 처음 만난 건 열 살 무렵인데요. 당시, 이창호 9단이 일으킨 바둑 붐을 타고 또래 아이들과 바둑학원에 몰려간 것이 계기였죠. 우연히 발을 들였지만, 6개월쯤 지나자 학원에 더 이상 적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에, 프로 바둑기사를 준비하는 이들이 다니는 권갑용 바둑도장에 들어갔습니다. 이미 뛰어난 실력으로 소문이 자자했던 이세돌 9단도 그 도장에서 처음 만났죠. 하지만 전국에 내로라하는 아이들이 모인 만큼 지는 횟수도 늘어나고,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특히 여자 연구생들에게 프로 입단은 사법고시보다 어렵다는 말이 있을 만큼 좁은 문이었습니다.

“열 살부터 이십 대 초반까지 바둑을 계속했다는 건, 제게도 승부사적 기질이 있다는 방증일 거예요. 이기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고, 지면 세상을 다 잃은 것 같았죠. 포기하자 마음을 먹고도 미련이 접히지 않아,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해보자는 생각으로 돌아가기도 했어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잘 안 됐고, 스물 두 살쯤 완전히 접었죠. 그렇게 포기가 쉽진 않았지만, 한편으론 ‘바둑이 아닌, 다른 일도 이렇게 어려울까?’ 하는 호기심도 있었어요. 바둑 하나만 보고 사느라 놓쳤던 기회들, 경험해보지 못한 다른 분야의 공부와 삶이 궁금했거든요.”

그래서 책읽기와 글쓰기를 시작했습니다. 주로 인문학 서적을 함께 읽고 에세이도 쓰며 토론하는 모임에 들어가, 2년여간 읽기와 쓰기에 매진했습니다. 일찌감치 한우물만 파느라 놓쳤던 기회들을 열심히 찾아다닌 거죠.

“골프는 바둑처럼 일종의 멘탈 게임이라 재미있어요. 그래선지 바둑 두는 분들이 골프도 잘 치는 경우가 많아요. 탄츠는 현대무용과 발레의 기본 동작을 응용한 운동인데요. 자세와 바디라인을 바로 잡아줄 뿐 아니라 예술적인 움직임으로 정서적인 힐링 효과까지 누릴 수 있었어요. 필라테스는 작년부터 배우기 시작했어요. 근력을 키우는 데 효과적이죠.”



바둑판 위의 지혜를 나침반 삼아

시청자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정다원 캐스터
l 한 시절, 그녀에게 바둑은 제대로 꽃피우지 못한 꿈이자 상처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바둑판 위에서 배운 지혜는 삶의 고비와 결정적인 선택의 순간마다 꺼내 드는 믿음직한 나침반이 됐습니다

새로운 세계와 배움에 대한 도전을 즐기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가장 좋아하는 건 바둑입니다. 그래서 바둑 캐스터라는 직업에 더욱 긍지를 느끼는데요. 좋아하는 바둑을 곁에 두는 일이며, 바둑과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닌 방송 일의 즐거움을 두루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둑판이 그러하듯, 바둑 방송에도 희로애락이 깃들어 있어요. PD, 스태프, 해설자와의 호흡, 눈에 보이지 않는 시청자와의 소통 등 다양한 요소들이 어우러져 감동을 만들어내죠. 생방송의 날 선 긴장감을 은근 즐기는데, 예전에 경험한 바둑판 앞에서의 긴장감과는 또 달라요. 방송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작품이니까요. 팀플레이의 묘미를 방송을 통해 배우고 있어요.”

모처럼 바둑 부흥기를 맞아 바둑인의 한 사람으로서 갖는 사명감도 남다릅니다. 멘트 하나에도 바둑 팬이 공감할 수 있는 진심과 명쾌한 논리를 담을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고자 하죠. 한 때, 그녀에게 바둑은 제대로 꽃피우지 못한 꿈이자 상처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바둑판 위에서 배운 지혜는 삶의 고비와 결정적인 선택의 순간마다 꺼내 드는 믿음직한 나침반이 됐습니다. 가령, 바둑을 둘 때 명심해야 할 10계명 중 하나인 ‘사소취대(捨小就大: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것을 취하라)’는 그녀가 종종 지표로 삼는 격언입니다.

“체스나 장기는 말을 없애고 돌을 줄여나가는 데 반해, 바둑은 점점 돌을 늘려가요. 한 살, 두 살, 나이를 쌓아가는 인간의 삶과 닮은 지점이죠. 상대의 돌과 싸우기도 하고, 타협도 하고, 물러서기도 하는 게, 딱 우리 인생의 축소판이에요. 어떤 고민거리도 바둑 두듯 생각하다 보면 한결 수월하게 풀리는 경험을 해요. 바둑 배우길 정말 잘했다 싶어요.”



글. 고우정
사진. 현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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