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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즐거움을 모아 행복을 만드는
물리학자 이기진의 문화 실험실2015/06/02by 기아자동차

2NE1 씨엘의 아버지, 물리학자 이기진의
일상을 풍요롭게 하는 ‘딴짓’ 이야기

이기진 교수는 취미를 예술의 경지에까지 올린 그야말로 행복한 과학자입니다
l 이기진 교수는 취미를 예술의 경지에까지 올린 그야말로 행복한 과학자입니다



사소한 이야기는 ‘창성동 실험실’ 노란 철 대문 앞에서 시작합니다. 대문을 두들기고 전화를 해봐도 주룩주룩 내리는 빗소리뿐. 갤러리로 개조한 한옥, 구부정한 벽 안쪽으로 분명 그림자가 어른거리는데도 무슨 공상에 빠진 것인지 응답이 없습니다. 저 안에서 그는 ‘지극히 개인적이며 사소한 것’에 빠져있는 모양입니다.



사소한 즐거움, 그 놀라운 힘에 대하여

얼마 전 출간된 책 <나는 자꾸만 딴짓 하고 싶다>에는 그가 좋아하고, 아끼고, 열중하는 것들이 담겨있습니다. ‘딴짓’은 취미의 다른 말인 셈이죠
l 얼마 전 출간된 책 <나는 자꾸만 딴짓 하고 싶다>에는 그가 좋아하고, 아끼고, 열중하는 것들이 담겨있습니다. ‘딴짓’은 취미의 다른 말인 셈이죠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이기진. 그의 전공은 마이크로파 물리학으로, 전자파를 이용해 DNA를 연구합니다. 아이돌 그룹 투애니원(2NE1)의 리더 씨엘(이채린)의 아버지로도 유명하죠.

그리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그의 이력을 더하자면, <박치기 깍까>라는 그림동화의 작가이자, 소소한 일상을 기록하고 삽화를 더해 책을 쓰고, 이가 빠진 그릇과 골동품을 모으며, 깡통로봇을 만들어 프랑스 아트페어에도 참가했고, 이제는 창성동에 오래된 한옥을 개조해 ‘창성동 실험실’이란 갤러리를 만들고 다양한 전시 프로젝트를 벌이고 있습니다.

이 무슨 홍길동 같은 사람인가 싶다가도 그의 취미를 더듬어 보면 분명한 맥락이 잡힙니다. 깨알같이 소소한 즐거움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딴짓의 의미는 ‘어떤 것을 찾아내고 만들어 내느냐, 또 그것을 어떻게 자신의 행복으로 활용하느냐’ 하는 것이에요”
l “제가 생각하는 딴짓의 의미는 ‘어떤 것을 찾아내고 만들어 내느냐, 또 그것을 어떻게 자신의 행복으로 활용하느냐’ 하는 것이에요”

“딴짓을 하기 시작한 것은 어렸을 때부터였어요. 초등학교 2학년 때 글을 못 읽는다고 선생님께 야단맞은 충격으로 학교를 그만뒀어요. 그 뒤 사립학교에 들어가서는 3년간 죽도록 야구만 했고요. 중학교 때는 공부에 맛을 들여 책만 보다가 고등학교 물리 선생님 칭찬 한마디에 진로를 정했어요. 아르메니아공화국에서 2년간 연구를 하고, 채린이가 한 살 때 프랑스로 갔어요. 일본에서 둘째 딸 하린이를 낳았고요. 아이들은 어렸고 외국생활은 쉽지 않았지만 벼룩시장에서 오래된 조리기구를 모으고, 딸들을 재우면서 들려주던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리면서 즐거움을 찾았어요. 제가 생각하는 딴짓의 의미는 ‘어떤 것을 찾아내고 만들어 내느냐, 또 그것을 어떻게 자신의 행복으로 활용하느냐’ 하는 것이에요. 일단 발견했다면 엉뚱하든 현실적이든 하나하나 이루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지요”

“오래된 물건을 모으고 들여다보면 대화하는 즐거움이 있어요”
l “오래된 물건을 모으고 들여다보면 대화하는 즐거움이 있어요”

그가 가장 아끼는 물건들은 유학 시절 쓰던 오래된 밥그릇 같은 것들입니다. 이가 빠진 그릇을 왜 모으냐고 물었더니, 그는 ‘깨질 만한 이유가 있었지 않겠냐’고 합니다. “사람과 일상을 함께한 물건들에는 이야기가 담겨있어요. 깨진 그릇에도 사연이 있겠지요. 오래된 물건을 모으고 들여다보면 대화하는 즐거움이 있어요. 요리를 좋아하다 보니 조리기구를 사 모으게 됐지요. 바쁜 유학생활 중에도 일요일 오전에는 꼭 가족들이 모여 한 끼를 같이 하자는 규칙을 세우고 지켰어요. 사랑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나누는 것은 큰 즐거움이거든요. 요리는 주로 제가 했는데, 가족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주고 싶어 일주일을 고민 고민했어요. 이런저런 상상으로 한 주가 행복했지요”

그는 지금도 직접 쿠키를 구워서 선물하고, 맛있는 샐러드를 만들기 위해 갤러리 마당에 아르메니아에서 가져온 파슬리 씨를 심어 기릅니다. 이제 곧 콩도 심을 거라며 아르메니아 시장에서 한 줌씩 사온 온갖 콩들을 자랑스레 꺼내 놓는데요. 기르는 재미, 요리하는 재미, 나누어 먹는 재미, 그리고 이 모든 일상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하는 재미. 이런 작은 것들이 모이고 모여 그의 일상을 풍요롭게 채웁니다.



연애하듯이,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면

“딴짓을 잘 하려면 자신의 일을 먼저 완벽하게 해야 합니다”
l “딴짓을 잘 하려면 자신의 일을 먼저 완벽하게 해야 합니다”

젊은 작가들과 학생들에게 전시 공간을 내주는 창성동 실험실은 이러한 생각들을 풀어놓은 공간. 반은 내가 놀고, 반은 작가들이 노는 곳이라는 엉뚱한 주인장 덕에 그림과 사진은 물론이고 수제화에서 중고 자전거까지 전시하는 살롱 같은 갤러리이자 작업실입니다. 전시가 열릴 때면 페이스북 등에 알리는데 서촌을 노닐다 우연히 발을 들여놓는 관객들도 많아 입소문이 나고 있죠.

“후배 과학자들에게 딴짓의 황금비율에 대해 말할 때, 일은 49%, 딴짓은 51% 하라고 합니다. 행복한 과학자가 되라는 뜻이지요. 딴짓을 잘 하려면 자신의 일을 먼저 완벽하게 해야 합니다. 저는 주중에는 아주 단조로운 일상을 살기 위해 노력합니다. 아침 7시에 나가 저녁 7시까지 일하고, 운동하고, 지인도 잘 만나지 않으면서 규칙적이고 간결한 일상에 집중하지요. 그리고 일요일에는 신 나게 놉니다. 단순한 일상이 없다면 딴짓도 할 수 없고, 거꾸로 딴짓을 통해 연구에 대한 긴장감도 풀고 공상을 따라가다 보면 연구에 대한 창의적인 발상을 얻기도 하지요”

한 쪽에 걸린 세 점의 그림은 이기진 교수 작품입니다. 컴퓨터 프린팅으로 매끄럽게 뽑아낸 그의 그림은 신선하고 감각적이면서 보고 있으면 마냥 기분이 좋아집니다. 언제 이런 그림 실력을 키운 걸까요?

“다들 초등학교 때는 그림을 열심히 그리는데 중학교 올라가면서 안 그리게 되잖아요. 저는 꾸준히 그렸던 것뿐이에요. 이 그림은 얼마 전 작은 딸과 파리에서 한 달 동안 생활했었는데, 그 기억을 그린 거예요. 즐겁고 행복한 기억을 폴라로이드처럼 새겨서 가슴 속에 담아두었다가 하나 둘 꺼내 글을 쓰거나 그림으로 그려요. 깡통로봇은 제가 디자인을 하고 전문가에게 제작을 맡기는데, 하나 둘 만들다 보니 이름을 붙이게 됐어요. 조카 개똥이, 큰딸 채린이, 작은 딸 하린이….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인데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신기하고 고맙지요”

“연애하듯이, 사랑하는 사람을 마주하고 온 신경을 집중하는 것처럼 좋아하는 일을 찾아 몰두하세요”
l “연애하듯이, 사랑하는 사람을 마주하고 온 신경을 집중하는 것처럼 좋아하는 일을 찾아 몰두하세요”

그의 첫째 딸 씨엘은 최근 <타임>이 실시한 ‘100인’ 온라인 투표 상위권에 올라 화제가 됐고, 미국 데뷔를 앞두고 제레미스캇 등 해외 유명 패션브랜드 러브콜을 받고 있죠. 개성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돌을 길러 낸 아버지로서의 비결은 뭘까요?

“정서적으로는 친구 같은 아버지가 되려고 노력했지만, 생활적인 면에서는 아이가 해야 하는 일들에 스스로 규칙을 세우고 혼자 해낼 수 있도록 지켜보고 기다려줬어요. 채린이는 유치원 때부터 잠들기 전 내일 가져갈 준비물과 옷을 스스로 챙겨놓는 아이였어요. 그런 습관들이 딸들을 강하고 당당하게 만들어준 것 같아요”

스스로 행복한 삶을 사는 물리학 교수 이기진의 딴짓은 세상 밖으로 나와 사람들과 소통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그에게 딴짓을 제대로 즐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먼저 텔레비전을 끄고, 고독하지만 그것을 즐기는 것이 시작입니다. 혼자 있는 시간을 만들어야 몰입할 수 있지요. 다음은, 취미를 함께하고 나눌 친구들을 찾는 것이지요. 연애하듯이, 사랑하는 사람을 마주하고 온 신경을 집중하는 것처럼 좋아하는 일을 찾아 몰두하세요”

일과 취미의 균형을 위해 일상을 열심히 살고, 작은 즐거움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 이기진 교수는 취미를 예술의 경지에까지 올린 그야말로 행복한 과학자입니다.



글. 조희영 자유기고가
사진. 김선재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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