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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살라 와인과 시실리
그리고 마음의 문2015/06/09by 이노션 월드와이드

대자연에서 색을 얻는 사람들과
마음의 문을 열게 하는 색깔 이야기

마르살라는 아랍어로 ‘신의 항구 (Marsah-el-Alla)’라는 뜻입니다
l 마르살라는 아랍어로 ‘신의 항구 (Marsah-el-Alla)’라는 뜻입니다



‘마르살라(Marsala)’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나요? 와인을 좋아하거나 유행에 민감한 사람들은 이미 들어봤을 수도 있겠네요. 마르살라는 이탈리아 시실리(Sicily)에서 나는 와인의 이름이자, 색을 다루는 업계에서 막강한 권력을 가진 ‘팬톤(Pantone)’이라는 회사가 선정한 2015년 올해의 색입니다. 와인 초보이자 AE 출신인 저에게는 모두 익숙하지 않은 영역이죠.



올해의 색, 마르살라

마르살라는 ‘팬톤(Pantone)’이라는 회사가 선정한 2015년 올해의 색입니다
l 마르살라는 ‘팬톤(Pantone)’이라는 회사가 선정한 2015년 올해의 색입니다

‘마르살라’라는 말을 처음 접한 것은 지난 1월 시실리에서 열린 이탈리아 기아자동차 행사 때였습니다. 알고 보니 마르살라는 시실리 남부에 있는 작은 항구 도시의 이름이고, 와인의 이름 또한 이 지명을 따서 만든 것이었죠. 마르살라는 단맛이 강하고 알코올 도수가 높아 카놀리(Cannoli)나 카사타(Cassata) 같은 시실리 특유의 달콤한 디저트와 함께 먹기에 그만입니다.

마르살라는 영국과 프랑스의 전쟁 중 프랑스 보르도 와인을 대체할 와인을 찾던 영국 상인, 존 우드하우스(John Woodhouse)에 의해서 전 세계에 알려졌다고 합니다. 다른 디저트 와인처럼 멀리 운송하기 좋도록 알코올 도수를 올리게 되면서 시실리를 대표하는 와인 중 하나가 됐죠.



몸과 마음, 영혼을 풍성하게

팬톤은 마르살라 와인 중에서도 레드 와인 계열인 ‘갈색에 가까운 자주색’을 2015년 색으로 선정했습니다
l 팬톤은 마르살라 와인 중에서도 레드 와인 계열인 ‘갈색에 가까운 자주색’을 2015년 색으로 선정했습니다

2015년 팬톤이 선정한 마르살라(Marsala 14-1838) 색은 사실 마르살라 와인의 한 종류에만 해당됩니다. 마르살라 와인은 어떤 포도 품종을 쓰는가에 따라 황금색, 호박(보석/amber)색, 그리고 좀 더 갈색에 가까운 자주색, 이렇게 세 가지 색을 띠게 되는데요. 팬톤은 그중에서도 레드 와인 계열인 ‘갈색에 가까운 자주색’을 2015년 색으로 선정했습니다.

아마도 마르살라 와인은 올해의 색깔로 선정된 덕분에 더 유명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몇몇 화장품 브랜드가 마르살라 관련 메이크업 상품을 선보였고, 패션 업계, 인테리어 업체 등에서도 관련 상품을 내놓고 있죠. 팬톤 홈페이지에 의하면 마르살라를 2015년의 색으로 선정한 이유가 이 색이 자신감과 안정감을 주면서 우리 몸과 마음, 영혼을 풍성하게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풍성하고 편안한 색깔

마르살라 와인은 여전히 따뜻하고 풍성하지만, 조금은 진정되고 편안해진 느낌입니다
l 마르살라 와인은 여전히 따뜻하고 풍성하지만, 조금은 진정되고 편안해진 느낌입니다

직접 마르살라 와인을 마시면서 경험한 마르살라 색의 느낌은 이른 봄이 시작되던 1월의 시실리 들판의 색감과 유사하면서도 조금은 달랐습니다. 시실리 들판의 색감은 이제 막 돋아나기 시작한 연두색 싹과 강렬한 대비를 이루면서 햇빛이 주는 생명력을 강하게 잡아두려는 듯 다소 거칠고 들뜬 느낌이죠. 반면 마르살라 와인은 뜨거운 시실리의 햇볕 아래 포도 열매가 익어가고 또 와인으로 변모하면서, 여전히 따뜻하고 풍성하지만, 조금은 진정되고 편안해진 느낌입니다.

2014년 올해의 색이었던 ‘레디언트 오키드(Radiant Orchid 18-322)’보다는 조금 더 성숙하고 차분한 느낌이란 생각이 듭니다. 마드리드와 밀라노를 오가면서 이 두 나라의 날씨에 무척이나 부러움을 느낍니다.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한 해 내내 찬란하게 빛나는 햇빛을 볼 수 있죠. 특히 남부 지역으로 가면 마치 밝은 무대 조명이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듯, 찬란한 햇빛은 자연이 지닌 본래의 모습을 더욱 두드러지게 만듭니다. 자연이 곧 이 세상의 주인공임을 아주 분명하게 선언하는 것처럼 말이죠.



자연의 색에 대한 열린 마음

대자연 속에서 살던 이탈리아 사람들은 자연이 주는 다양한 색감에 대해서 무척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l 대자연 속에서 살던 이탈리아 사람들은 자연이 주는 다양한 색감에 대해서 무척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탈리아 남부에서 본 지중해의 투명한 푸르름, 이른 봄 녹색 들판을 강렬한 대비로 물들이던 붉은 양귀비 꽃의 점령, 한여름 고속도로 옆에 무리를 지어 늘어선 노란색 해바라기 꽃의 열병식(閱兵式), 그리고 이 같은 강렬한 색들의 스펙트럼 중간중간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는 미묘하게 다르고 그러면서도 존재감이 뚜렷한 수많은 색깔의 경쟁….

돌이켜보면 우리가 처음 색깔을 배우게 되는 것도 자연에서 온 과일과 꽃, 나무를 통해서였고, 다양한 색감을 경험할 수 있다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세 또한 넓은 스펙트럼을 만들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런 햇빛과 자연이 없었다면 인상파 화가들도, 그들의 걸작들도 만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마음의 문을 연다는 것

성별과 나이에 개의치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색깔을 과감하게 시도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l 성별과 나이에 개의치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색깔을 과감하게 시도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처음 유럽에서 근무하게 됐을 때 어느 날 회의 석상에서 만난 이탈리아 출신의 광고주 모습이 문득 기억납니다. 그는 정장 바지 안에 한쪽에는 짙은 파란색 양말을, 그 반대쪽에는 짙은 빨간색 양말을 신고, 긴 다리를 자연스럽게 꼬고 앉았죠. 자연스럽게 꼬이는 기럭지보다도 정반대인 양말 색깔의 대비와 그의 자신감이 왠지 모르게 낯설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처럼 강렬한 원색으로 포인트를 주는 것은 아니지만, 색에 대한 그들이 관심과 포용은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일상의 대화에 등장하는 색깔의 이름도 빨강, 노랑, 파랑을 넘어서 참 다양할 뿐 아니라 성별과 나이에 개의치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색깔을 과감하게 시도하는 것을 볼 수 있죠. 정답은 당연히 없으며, 누가 뭐라고 하든 상관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대로, 자기 눈에 익숙한 대로, 때로는 강렬하게, 때로는 원만하게 표현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보게 됩니다.

더 많은 것에 용감해지고 또 열린 마음이고 싶습니다
l 더 많은 것에 용감해지고 또 열린 마음이고 싶습니다

며칠 전 막바지 겨울 세일을 하던 백화점에서 목도리 하나를 샀습니다. 색깔이 유난히 눈에 띄길래 집어 들었는데, 집에 돌아와서 태그에 표시된 색상을 보니 ‘Deep Pink’라고 되어 있었죠. 유럽에서 지낸 몇 년의 시간 동안 나도 모르게 어느새 좀 더 용감해진 걸까요? 과거의 나라면 핑크색 근처에도 못 갔을 것입니다. 이것도 작은 용기와 열린 마음이라면 더 많은 것에 용감해지고 또 열린 마음이고 싶습니다.



글. 장인주 국장 (INNOCEAN Worldwide Sp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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