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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생활을 견디게 하는
동료의 힘2015/05/06by 현대모비스

내가 한없이 부족하게만 느껴지던 직장 생활
“괜찮아?” 마음에 힘이 되어준 동료의 한 마디

마음을 알아주는 동료는 직장 생활에 큰 힘이 됩니다
l 마음을 알아주는 동료는 직장 생활에 큰 힘이 됩니다



직장인 7년 차, 두 번의 이직. 또래보다 특별할 것 없는 이력이지만, 직장생활은 늘 만만치 않았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직 때마다, 그리고 매 순간 새로운 생태계에 적응해서 도태되지 않으려고 애쓰는 열등 생물처럼 몸부림을 쳤다. 직장이라는 낯선 세계에 뚝 떨어져 생존법을 배우고 익혀서 살아갈 수 있게 될 때까지, 돌이켜보면 내 곁에는 그 세계의 이웃들, 바로 동료가 있었다. 여기까지 견딜 수 있었던 건 몇 번을 생각해도 사람, 결국 사람이다.



누구나 힘든 날이 있다

당신은 언제 동료에게 가장 고마웠나요?
l 당신은 언제 동료에게 가장 고마웠나요?

“언제 동료들에게 제일 고마워?” 친구들과 함께하는 단체 채팅방에 물었다. “우리는 혼자서 담당하는 일이 많은데, 주말에 일 끝나고 지쳐서 집에 갈 때 옆 팀 동료가 ‘행사 잘 끝났어?’라고 챙겨줄 때 고맙더라.” “아파서 휴가를 쓰고 혼자 끙끙거리고 있는데 ‘잘 쉬고 있지? 회사 생각은 하지도 마’라고 문자 보내준 같은 팀 동료한테 고마웠어.” 오랜 자취 생활 경험자인 친구 B는 이렇게 말했다. “동료들하고 대형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끝냈을 때 고마운 마음이 들더라. 특히 저번에 같이 일한 팀은 ‘케미’가 남달랐어.” 약간의 일 중독 증세를 보이고있는 NGO 활동가 S의 대답이었다.

그 외에 인상적인 대답도 있었다. “한번은 주말 근무하고 배터리가 방전되어서 월요일에 지각한 적이 있어. 하필이면 상무님이 주관하는 오전 회의가 있는 날이었는데 말이지. 선배한테 사정을 얘기하니까 호두과자를 사서 냄새를 풍기면서 오라고 하더라. 알고 보니까, 나한테 다음 회의 심부름을 시킨 척 해주려던 거였어. 덕분에 무사히 지나갔지.” 그런 천사 같은 선배가 있다니! 하지만 가장 마음에 남은 것은 IT 쪽에서 일하는 친구 K의 대답이었다.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어떤 일 때문에 힘들 때였어. 동료가 길고 긴 산책을 함께 해줬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굉장히 멋진 위로라는 반응이 이어졌다. K는 “그때 이후로 어지간한 위로는 위로로 안 쳐줄 정도야” 라고 덧붙였다.

상사의 질타로 우울한 마음도 동료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죠
l 상사의 질타로 우울한 마음도 동료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죠

누구에게나 직장에서 유독 힘든 날이 있다. 지나고 나면 과정일 뿐일 것을 알면서도, 내가 직장생활을 잘해나갈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으로 번질 때, 그 불안을 잠재워주는 건 가족도, 애인도 아닌 동료다. 오로지 내 파티션 옆에서 같은 공기를 들이마시고 같은 분위기를 공유한 동료들과만 나눌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다. 하루에 여덟 시간에서 열 시간, 때로는 그 이상을 직장에서 보낸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셈이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일을 우리는 동료와 공유한다.

상무님의 질타에 분위기가 싸해진 사무실, 긴장감으로 일도 되지 않고 어깨가 굳어 유난히 버티기가 힘든 어느 날, 동료가 메신저를 보낸다. “오늘 분위기 참 그러네, 그치?” 그리고 약속이나 한 듯이 우리는 휴게실이나 탕비실로 모여든다. 커피 한잔 하면서 한숨 돌리고 나면, 엉덩이를 툭툭 털고 다시 일하러 돌아갈 기운이 생긴다. 때로는 그 시간이 퇴근 뒤로 이어지기도 한다. 근처 맥줏집에서 술 한 잔을 하면서 하루의 회포를 푼다. 이런저런 잡담에 약간의 뒷담화를 양념처럼 뿌려 수다를 떨고, 서로의 어깨를 두드리며 내일 보자고 인사를 나눈다. 동료들끼리만 나눌 수 있는 위안이다.



A 선배의 케이크 처방

‘힘들지?’ 선배의 한 마디에 속상했던 마음도 금세 풀어집니다
l ‘힘들지?’ 선배의 한 마디에 속상했던 마음도 금세 풀어집니다

그러고 보니 나 역시 동료로부터 ‘진한 위로’를 받은 경험이 있다. 사회 초년생 시절, 사소한 실수를 반복하다가 눈물이 쏙 빠지게 혼난 적이 있다. 빈약한 자존감은 바닥을 쳤고, 누가 건드리면 바로 튀어나올 것처럼 눈물이 어른거렸다. 다 큰 여자가 남 앞에서 울 수는 없는 노릇.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인적이 드문 계단, 옥상 등의 여러 개의 후보 끝에 떠오르는 건 좁고도 사방이 막혀 완벽하게 혼자일 수 있는 공간, 바로 화장실이었다. 소리 죽여 울다가 발개진 눈으로 나왔을 때 딱 마주친 선배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상황을 파악했다.

“잠깐 나갔다가 올래?” 얼떨결에 선배의 손에 따라 나간 건, 회사에서 꽤 멀리 떨어진 롤케이크 집이었다. “이렇게 멀리 나와도 돼요?” “걱정하지 마. 부장님들 회의 들어가셨어.” 그렇게 가게 된 카페에서 선배가 주문한 건 롤케이크 하나와 따뜻한 커피. 선배가 말했다. “저번에 보니까 단 거 좋아하는 거 같아서.” 이미 걷는 도중에 눈물은 말랐고 허기진 상태에서 먹는 롤케이크는 맛있었다. “팀장님 말이야. 좋은 분인데 가끔 다혈질이라서 작은 거에 흥분하셔. 이따가 분명 미안해하실걸?” 우리는 부장님들이 회의를 마치는 시간에 정확하게 맞춰 돌아왔다. 그리고 선배의 케이크 처방은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나는 밝은 얼굴로 남은 업무를 마쳤고, 내가 범한 사소한 실수 때문에 스스로를 구제불능으로 여기지 않게 되었다. 엄청난 케이크의 힘, 아니 선배의 힘이었다.



동료는 동료일 뿐이라고?

동료는 같은 공간, 같은 시절을 추억을 공유하는 좋은 친구입니다
l 동료는 같은 공간, 같은 시절의 추억을 공유하는 좋은 친구입니다

“동료와는 친구가 될 수 없어. 어차피 다들 경쟁 상대에다 시한부 관계일 뿐이라고.” 직장 동료들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는 걸 원칙으로 한다고 강조하던 친구 L. 그녀 의견도 물론 존중한다. 하지만 나의 경우, 직장에서 만난 꽤 많은 동료가 그 이상의 인간적인 관계로 남았다. 이직한 뒤에도 주기적으로 만나고, 서로의 경조사를 챙길 뿐만 아니라 고민을 나누고 격려하는 관계가 되었다. 아직도 만나면 예전 직장에서의 수많은 에피소드를 더듬으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그들과 나누는 것은 그 시절, 우리의 삶이고 추억이다. 왕년에 잘나가시던 부장님들이 옛 동료를 만나 필드에서의 화려한 기억을 나누는 건, 그것이 그들의 삶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함께 그 시절을 공유한 동료만이 100%의 이야기 상대가 될 수 있다.

직장이라는 삶의 터전에서 함께 구르면서, 우리는 서로의 모습을 본다. 때로는 동료의 얼굴에서 내 얼굴을 발견하기도 한다. 조금씩 성숙해가는 내 동료의 얼굴에서 이제 제법 직장인의 옷이 편안해진 나 자신을 발견하고, 그러다가도 직장인 사춘기에 빠져 허우적대는 동료에게서 여전히 불안한 내 자신을 보기도 한다. 마치 나의 거울 같아서 더욱 애틋한 동료, 동료는 때로 친구 이상의 무엇이다. 그러니 사랑하고 존경하는 나의 동료들이여, 앞으로의 나의 직장생활에도 부디 함께 해주시길. 아, 한 가지 사족을 붙이자면, 공과 사를 강조하며 동료와는 ‘일’만 한다던 내 친구 L은 얼마 전 올봄 사내 결혼을 한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역시, 동료는 때로는 친구 그 이상의 관계도 되기 마련인가 보다.



글. 김지숙 (직장인 소설가)
일러스트. 박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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