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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영역’의 건축
이웃과 함께하는 새로움 움직임2015/05/07by 현대모비스

관계가 단절된 아파트 시대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건축에 대한 에세이를 소개합니다

이웃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기 위해 주거환경에 필요한 건 무엇일까요?
l 이웃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기 위해 주거환경에 필요한 건 무엇일까요?



주거환경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력은 생각보다 크다. 주거환경에 따라 이웃과의 관계, 소통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우리는 그동안 ‘아파트공화국’이라 불리는 주거환경에 살면서 건물로 인해 이웃과 단절되어버린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이웃과 함께하는 삶의 기회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삶을 바꾸는 주거환경

어린 시절엔 이웃집에 누가 사는지 알고 인사를 나누는 게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죠
l 어린 시절엔 이웃집에 누가 사는지 알고 인사를 나누는 게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죠

나는 일본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일본의 평범한 단독주택에서 살았다. 어머니는 지금도 내가 5살 때부터 살았던 그 집, 그 동네에 여전히 살고 계신다. 어린 시절, 나에게는 이웃이 많았다. 모든 동네 어른들은 내가 어느 집 둘째 아들인지 알고 있었고, 나는 그런 어른들에게 자연스레 인사를 하고 다녔다. 동네를 떠난 지 거의 30년이 다 되었지만, 가끔 어머니 집을 찾은 나를 본 동네 어른들은 반갑게 인사를 건네주셨고, 나의 어릴 적 이야기도 종종 해주셨다. 내가 살던 동네와 이웃은 나의 유년 시절을 만들어 준 소중한 일부분이었다.

그리고 나는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아파트라는 곳에 살기 시작했다. 나에게 아파트는 익숙해지기 어려운 주거형태였다. 같은 건물에 20가구, 어림잡아도 6~70명의 사람이 살고 있었던 셈인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나는 같은 건물에 사는 주민들과 친해질 수 없었다. 이웃과 인사를 하고 지낼 수도 없고, 누가 몇 호의 아저씨인지 몇 호의 아들인지 알 길도 없었을뿐더러 집들의 현관에는 명찰 대신 세 자리 숫자만 적혀 있었다.

이 같은 사회성의 몰락과 단절에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건물이라는 ‘그릇’이 큰 영향을 미친다. 지금의 우리의 주거환경들은 우리 삶을 더욱더 답답하고 각박하게 만들고 있다. 오랜 주택 밀집지역을 보면 담벼락 높이는 2m가 넘고 그 위에 깨진 유리조각이 박혀 있고 아파트든 빌라든 원룸이든 요즘은 인터폰이 울리면 모니터 화면을 보고 모든 것을 결정하며 서로가 서로를 부를 때 ‘203호 아저씨’, ‘504호 아주머니’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관계의 시작`은 눈을 마주치는 일

모든 관계는 눈을 마주치고 인사를 건네며 시작됩니다
l 모든 관계는 눈을 마주치고 인사를 건네며 시작됩니다

생각해보자. 높은 벽에 둘러싸여 있고, 좁은 문틈 사이에서만 외부와 대화할 수 있고, 사람의 이름 석 자에 대해서 아무런 가치를 두지 않고, 본인도 이름 석 자로 불리기를 포기하고 받아드릴 수밖에 없는 곳을 세상에서는 무엇이라고 부르는가? 그것은 감옥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주거환경은 감옥과 같은 곳이며, 우리 스스로 너무 높은 벽을 세우고, 다른 사람들과 서로 얼굴을 보면서 살기를 거부하고 죄수처럼 이름을 숨긴 채 ‘아무개’로 사는 데 익숙해져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이런 이웃과의 단절은 층간 소음이나 담배 연기를 둘러싼 분쟁으로 이어지며 사회의 큰 문제가 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문제는 공동주택들의 구조적인 특성에 그 원인이 있지만 건축 기준의 강화라는 하드웨어적인 접근만으로는 절대로 해결할 수가 없다. 정작 문제의 핵심은 이웃과의 관계 회복과 소통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는 ‘관계’가 거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 부모와 자식, 선배와 후배, 상사와 부하, 남편과 아내, 연인, 친구끼리 그리고 갑과 을까지. 이런 관계 속에서 우리는 ‘남’을 대할 때와는 전혀 다른 감정으로 판단을 내리고 행동하게 된다. ‘관계’는 그만큼 중요하며 내가 이웃을 만나고 이웃과 함께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웃과의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눈을 마주치는 일이다. 전혀 모르는 사람, 남의 집의 굳게 닫힌 현관문을 두드리거나 초인종을 누르기는 힘들다. 그러나 낮은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인사를 나누기는 쉽다. 그런 인사가 반복되면서 서로를 알기 시작하고, 어느 날부턴가 통성명을 하고 지낼 수 있다. 사람이 친해지며 ‘관계’를 맺기 위한 시작은 이렇게 ‘눈을 마주치는 일’이다.



이웃과 소통할 수 있는 중간영역 만들기

중간영역은 아이들이 인간관계를 배우고 사회성을 익히게 해주는 공간입니다
l 중간영역은 아이들이 인간관계를 배우고 사회성을 익히게 해주는 공간입니다

그런 연유로 건축의 세계에서 말하는 ‘중간영역’의 존재가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절실하다. ‘난 이런 사람인데,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라고 세상과 눈을 마주치며 인사할 수 있는 무대 장치가 바로 중간영역이다. 예전에는 마당이나 골목이 그런 역할을 맡아 왔었다. 어린아이들이 인간관계를 배우고 사회성을 익히며 어른들의 세계로 데뷔할 수 있게 해 주는 등용문이 중간영역이었다. 세상에는 디지털 기기가 넘쳐나지만, 인간은 본질적인 아날로그적인 감각과 감성으로 서로 관계를 맺으려고 하며 그 관계 속에서 많은 것을 결정하려고 하는 사회성을 무시하고 살아갈 수 없다.

Facebook과 같은 SNS도 다르게 해석하자면 직접 얼굴을 보지는 않지만 서로 눈을 마주치며 이웃을 만들어가려는 중간영역인 것이다. 우리가 다시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중간영역을 우리 삶 속에 부활시켜야 한다. 그래야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다. 중간영역의 집합체인 동네를 다시 만들고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이웃을 만드는 작업은 지금의 우리 현실 속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작업이다. 그리고 그것은 단독주택이라는 형태가 아닌 공동주택이라는 형태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작업이다.

서울 암사동의 양지마을은 오래된 주택가의 높은 담을 허물고 마당과 골목을 하나의 중간영역을 만들고 나서 마을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분절되었던 높은 담벼락 속에 숨어 있어야 더 안전하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낮은 담을 넘어서 서로 눈을 마주치며 관계를 맺고 사는 삶이 더 행복하고 안전한 것이라는 것을 실감한 것이다. 단순히 옆집에 사는 사람이었던 서로가 이제는 서로 우리 집, 혹은 우리 동네를 지켜주는 동료이자 조력자가 된 셈이다. 그리고 몇 년 전에 크게 화제가 되었던 땅콩집도 중간영역을 다시 만들려고 하는 우리의 무의식적인 노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남’이 아닌 ‘우리’가 되는 삶

담 허물기, 땅콩집 등 중간영역을 만들어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움직임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l 담 허물기, 땅콩집 등 중간영역을 만들어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움직임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다른 가족과 하나의 필지를 공유하고 마당이라는 중간영역을 공유함으로써 단절된 삶이 아닌 이웃과 함께하는 삶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계속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일본의 어떤 건축가는 공동주택을 설계하면서 건물의 곳곳에 평상을 배치하는 설계를 하기도 했다. 이것은 이웃끼리 서로 ‘남’이 아닌 ‘우리’가 되어서 함께 사용하고 눈을 마주치게 되는 ‘터’를 인위적으로 만들어준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중간영역을 다시 만드는 일은 그렇게 심각하고 어려운 작업은 전혀 아니다. 만약에 당신이 지금 빌라에서 살고 있고 그 건물의 땅 일부에 텃밭을 만들 공간이 남아 있다면 그것 또한 당신에게는 이웃을 만드는 좋은 기회가 있는 것이다. 같은 건물의 입주자들과 함께 공유하고 힘을 합치고 가꿔가는 무엇인가를 만든다면 그곳이 중간영역이 될 것이며 손수 키운 채소들과 함께 삶의 동료이며 조력자를 얻게 될 것이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입을 것, 먹을 것에 관한 고민과 함께 거주형태의 문제, 즉 ‘우리가 어디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어떻게 해야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 것인가?’라는 고민은 계속됐다. 그리고 젊은 맞벌이 부부나 혼자 사는 인구 및 노령 인구의 증가라는 추세 속에서 앞으로의 주거환경이 어떻게 변화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만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더욱더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이웃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 말이다.



글. 박성호 (NOAH Life_ scape Design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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