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

그리움을 느끼기 위해 떠난 남해여행
남해 바래길 트레킹2015/09/01by 기아자동차

바다를 느끼기 위해 땅 위에 서다
남해와 하늘에 감싸인 바래길 여행하기

바래길 중 제1코스인 다랭이지겟길
l 바래길 중 제1코스인 다랭이지겟길



“걷기는 세계를 느끼는 관능에로의 초대다. 걷는다는 것은 세계를 온전하게 경험한다는 것이다. 이때 경험의 주도권은 인간에게 돌아온다.” (다비드 르 브르통, <걷기예찬> 중에서)
해풍에 실린 마늘 향이, 숲의 뇌관을 건드린 듯 자지러지는 풀 내음이, 시든 꽃과 갓 피어난 꽃의 향 겨룸이 내내 이어지는 길, ‘경험의 주도권’을 갖고서 빛과 소리와 향기를 온몸에 새겼습니다. 이 무수한 향기와 이미지들이 덮쳐 올 어느 날, 남쪽 끝 섬이 몹시도 그리워지겠지요




남해는 섬이다

푸른 남해와 새하얀 요트의 매력적인 조합을 제공하는 남해 요트학교
l 푸른 남해와 새하얀 요트의 매력적인 조합을 제공하는 남해 요트학교

5월에 태어나 오월이라 불리는 아이처럼, 남쪽 바다 한가운데 자리 잡은 남해(南海)는 참 직설적인 이름입니다. 남쪽 바다 전체를 통칭하는 듯한 남다른 규모의 이름이 대범하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남해는 섬이기도 합니다. 남해도와 창선도를 중심으로, 유인도인 조도·호도·노도와 무인도 76개를 거느린 섬 무리지요.

남해여행의 필수코스 바래길은 어디를 걸어도 후회가 없답니다
l 남해여행의 필수코스 바래길은 어디를 걸어도 후회가 없답니다

최근 남해에선 이 섬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바래길 트레킹이 인기입니다. 남해의 주요 명소들을 아우르며 해안선을 따라 섬을 한 바퀴 돌 수 있도록 조성한 바래길은 10개 코스, 130km에 이릅니다. 바래는 물때에 맞춰 갯벌과 갯바위로 나가 해초류와 해산물을 채취하는 행위를 일컫는 남해 토속어. 어민들이 바래를 위해 마을과 해안을 오가던 길들을 이어 놓아 인공 시설을 거의 볼 수 없는 자연 그대로의 길입니다. 다랭이지겟길, 앵강다숲길, 화전별곡길 등 이름처럼 제각각의 색깔과 매력을 지닌 10개 코스 중 1코스의 시작점인 평산항에서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바닷가 마을은 지붕도 푸르다

산비탈을 깎아 만든 다랭이 논밭과 푸른 바다를 내내 옆에 두고 걷는 1코스
l 산비탈을 깎아 만든 다랭이 논밭과 푸른 바다를 내내 옆에 두고 걷는 1코스

1코스는 사촌해수욕장과 선구몽돌해변 등을 거쳐 가천 다랭이 마을로 이어지면서 유구·선구·향촌마을을 차례로 지납니다. 계단식 논밭과 바다를 바라보며 옹기종기 모여 앉은 어촌의 소박한 가옥들이 보이면 바닷가 마을은 참 파랑을 좋아하는구나, 느끼게 되죠. 지붕도, 담벼락도, 부두에 매어놓은 선박도 파랑 일색이거든요. 오랜 친구가 서로 닮듯이 바다와 마을도 닮아가는 거겠지요. 마침 마늘 수확 철과 여행이 겹쳐 내내 바닷바람에 실린 알싸한 마늘 향을 이고 걸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통마늘을 저미다가 남쪽 끝이 그리워질 것 같습니다.

카약체험 및 캠핑장을 갖춘 어촌체험마을, 두모마을도 다랭이 논밭이 유명합니다
l 카약체험 및 캠핑장을 갖춘 어촌체험마을, 두모마을도 다랭이 논밭이 유명합니다

1코스의 종착점인 가천 다랭이마을은 국가명승으로 지정된 다랭이 논으로 유명합니다. 바다로 내리지르는 45° 경사의 산비탈에 석축을 쌓아 일군 100여 층의 계단식 논이 경외심을 갖게 하죠. 농토를 한 뼘이라도 더 얻기 위해 가파른 산비탈을 일궈 농사를 지어온 섬사람들의 강인한 생명력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풍경입니다. 숱한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 주목받기도 한 마을은, 독특한 풍경 덕분에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습니다. 관광객을 상대로 막걸리와 해물파전, 가오리찜 등을 파는 집들이 곳곳에 있고, 마늘과 유자를 첨가한 지역 막걸리도 판매한답니다.



경험의 결정권은 두 발에 달렸다

해라우지마을 앞바다와 야트막한 돌둑을 쌓아놓은 석방렴
l 해라우지마을 앞바다와 야트막한 돌둑을 쌓아놓은 석방렴

움푹 팬 앵강만 덕에 호수처럼 잔잔하고 고요한 바다가 있는 길, 2코스 앵강다숲길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해안선을 따라 9개 마을을 차례차례 지나는 길이지요. 1코스 끝인 가천 다랭이마을부터 홍현 해라우지마을까지 3.5km 남짓한 완만한 산길이 제법 힘이 들었습니다. 진한 풀 내음과 꽃 향기가 에워싼 빽빽한 초여름 산길은 다행히 곧 마을로 이어졌습니다. 홍현 해라우지마을 앞 바다엔 원시 어업의 한 형태인 석방렴이 눈에 띕니다. 썰물 때 빠져나가지 못한 물고기들을 맨손과 뜰채로 잡아내는 방식에서 바다가 허락한 만큼만을 거두려는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바래길 한 코스의 길이는 대략 15km 내외입니다. 1코스에서 16km 남짓을 걷고 나니 2코스의 완만한 산길도 제법 힘들더군요. 코스당 보통 5시간 정도를 예상하지만, 사람마다 다르니 무리한 계획은 세우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시작도 마침표도 제 보폭대로 걷는 것이 도보여행의 즐거움이니까요. 그래서 2코스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제 두 발도 여기서 멈췄습니다. 마늘밭과 숲길, 몽동과 모래해변이 여전히 발바닥에 남아있어 즐거웠습니다.



하늘 끝, 땅 끝, 섬 중의 섬이라

각각의 테마와 개성을 지닌 스물한 개의 정원이 숨 쉬는 원예예술촌
l 각각의 테마와 개성을 지닌 스물한 개의 정원이 숨 쉬는 원예예술촌

삼동면에 잡은 숙소로 돌아오는 길을 자동차에 의지했습니다. 쪽빛 바다에 점점이 뜬 작은 섬과 고깃배, 숲이 우거진 해안선을 감상하며 물미해안관광도로를 따라 드라이브를 즐겼지요. 줄줄이 늘어선 바위섬은 과연 미륵이 도왔다는 항구답더군요. 멸치잡이로 유명한 곳답게 싱싱한 멸치회를 맛볼 수 있는 식당도 많았습니다.

바다를 바라보는 언덕에 나란히 이웃한 원예예술촌과 독일마을은 삼동면의 대표적인 관광명소입니다. 스물한 명의 원예가들이 모인 원예예술촌에선 스페인풍 조각정원, 프랑스풍 풀꽃정원, 스위스풍 채소정원 등 제각각의 테마를 가진 스물한 개의 주택과 개인정원을 감상할 수 있어요. 독일에서 공수해 온 건축 재료들로 지은 독일식 주택이 이국적인 독일마을은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의 편안한 노후를 위해 조성된 귀향마을입니다. 마을 입구에 있는 파독전시관을 둘러보면 1960년대 나라를 위해 이국으로 향한 청춘들의 이야기에 마음이 먹먹해지죠. 마을을 지켜주는 길이 1.5km의 거대한 숲, 방조어부림도 무척 아름답습니다.

1코스에서 만난 선구몽돌해변, 돌멩이도 바스락 바스락 노래하는 남해의 해변
l 1코스에서 만난 선구몽돌해변, 돌멩이도 바스락 바스락 노래하는 남해의 해변

자암 김구의 <화전별곡>은 ‘하늘 끝, 땅 끝, 한 점 신선의 섬’이라 남해를 노래했습니다. 화전(花田)은 남해의 옛 이름. 남쪽 바다 끝 섬이 꽃밭으로 불린 이유는 만화방창한 봄날에 확인할 수 있겠지요. 사실 그에게 남해는 유배지였습니다. 기실, 남해는 유배문학의 본거지이기도 하니까요. 서포 김만중의 <사씨남정기>와 <구운몽>도 노도 귀향 중에 탄생한 작품입니다. 유배자는 뭍으로부터 멀리 격리되게 마련이고, 뭍과 멀어 고독할수록 자연은 순정한 속결을 간직한 까닭에 아름답지 않을 수 없죠. 고독한 모든 자리가 섬이라면, 하늘 끝 땅 끝 남해는 섬 중의 섬이 틀림없습니다.



글. 고우정
사진. 현일수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