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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 청춘 4인방,
불멸의 비틀스로 하나 되다!2014/08/04by 현대케피코

새로움으로 무장해 혜성처럼 등장한 밴드, 그리고 감히 20세기 음악사의
한 획을 그었다고 이야기 할 수 있는 비틀즈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20세기 대중음악의 신화가 된 리버풀 청춘 4인방, 비틀스

| 20세기 대중음악의 신화가 된 리버풀 청춘 4인방, 비틀스



좋은 음악은 시간의 두께가 쌓일수록 리메이크란 이름으로 회자됩니다. 1960년, 영국에서 온 4명의 신사 ‘비틀스’는 여전히 우리와 함께 21세기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음악으로 말이죠. 음악에 있어 장르불문의 폭식과 과식을 즐기던 얄개들은 시대가 낳은 아티스트가 돼 우리 안의 청춘에게 계속 손을 내밀고 있습니다. ‘I want to hold your hand’를 외치며!



질풍노도의 소년 4인방은 달리고 싶었다

영국 제2의 무역항이었던 리버풀은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볼품 없는 가난한 도시로 전락했습니다. 폭격의 흔적과 걸인이 넘쳐나는 그곳에 20세기 팝음악의 신화적 존재가 될 비틀스의 씨앗들이 철부지 같은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항구도시란 특성 때문에 디즈니, 마릴린 먼로, 로큰롤과 코카콜라 등 미국 문화를 쉽게 접할 수 있었지요. 어린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는 괴짜란 면모와 미국 음악에 푹 빠져 있다는 점에 있어 마치 4명의 도플갱어와 같았습니다. 비틀스란 하나의 이름 아래 활동했던 각 멤버의 면면을 들여다보고 자력처럼 서로를 끌어당긴 그 운명적 인연의 끈도 따라가 보도록 합니다.

비틀스의 멤버들. 차례대로 존 레논,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
| 비틀스의 멤버들. 차례대로 존 레논,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

반항의 아이콘 존 레논
부모의 이혼으로 이모 손에서 자란 존 레논. 슬픔을 이겨내며 독창적이고 독립적인 인간으로 성장한 그는 “내가 스타가 될 수 있었던 유일한 동기는 억압 본능 때문이며 내가 만약 평범한 가정에서 성장했다면 그 어떤 것도 지금의 나로 이끌지 못했을 것”이라고 훗날 얘기하곤 했습니다. 짤막한 연재 이야기를 쓰던 어린 시절에서 훗날 작사· 작곡을 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공부에는 좀처럼 취미가 없던 존은 생모에게 ‘벤조’라는 악기를 배우면서 기타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당시는 빨래판이나 박스 등을 두드리며 컨트리 풍 음악을 연주하는 젊은이들이 많았는데 존 레논 또한 ‘쿼리멘’이란 스쿨 밴드를 결성해 활동했습니다. 반쯤 장난에 가까웠던 쿼리멘 활동 중 한 교회 축제에서 폴 매카트니를 만난 존은 이렇게 회상합니다. “모든 것이 시작된 날, 내가 폴을 만난 바로 그날이었다”
 
음악 속에서 자란 폴 매카트니
폴 매카트니는 정규 음악 교육을 전혀 받은 적이 없지만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재즈 연주를 들으며 열 네 살에는 기타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왼손잡이인 탓에 기타를 거꾸로 잡고 줄을 바꿔 매는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았던 것은 바로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 때문이었지요. 존 레논 역시 엘비스가 나타나기 전까지 자신에게 영향을 미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할 정도로 당시 로큰롤은 소년들에게 가히 종교 수준이었던 셈입니다. 영문학을 좋아했던 폴은 우수한 작문실력으로 글짓기 대회에서 특별상을 받기도 했는데요. 그는 기타를 치며 가사를 붙여 자작곡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폴의 노래들은 작곡을 해본 적 없는 존에게 자극이 됐습니다. 몇 달을 함께 다니며 폴은 존에게 기타를 가르쳤고, 왼손잡이 폴의 연주를 보고 온 존은 집에서 거울을 보며 다시 연습을 했습니다. 음악에 푹 빠진 존에게 폴은 최고의 기타리스트라며 조지 해리슨을 소개합니다.

타고난 연습벌레 조지 해리슨
늘 라디오를 들으며 음악에 빠져있던 조지 해리슨은 용돈을 모아 산 어쿠스틱 기타로 연습에 돌입했습니다. 얼마 후 부모님이 선물한 일렉트릭 기타를 가지고 손가락에 피가 날 정도로 새벽까지 코드를 익히는 데 여념이 없었습니다. 상처가 아물 틈도 없이 맹렬했던 조지의 기타 연습은 영국 전통 음악을 넘어 로커빌리, 블루스, 리듬 앤 블루스, 재즈에 이르기까지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음악은 모두 섭렵할 정도였죠. “시행착오는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태도로 뭐든 직접 경험하는 방식을 고수한 그는 기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쿼리멘에 영입될 수 있었던 것도 그가 이미 기타리스트로 훌륭한 실력을 갖췄기 때문이었습니다. 학교 공부에 관심이 없던 폴과 조지였지만 어려운 기타코드를 풀어내는 데는 머리를 맞대고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습니다.

불우했지만 유쾌한 링고 스타
폴과 존, 조지가 쿼리멘이란 스쿨밴드에서 함께 시작했던 것과는 달리 링고 스타는 ‘비틀스’라는 이름으로 정착했을 때 정식 멤버가 됐습니다. 스코틀랜드에서 함부르크까지 연주 여행을 하는 동안 비틀스를 유심히 본 브라이언 엡스타인은 매니저를 맡아 드러머 피트 베스트를 내보내고 유쾌한 연주를 선보이는 링고 스타를 새롭게 영입했습니다. 병치레가 심해 정상적인 학업 생활을 못했던 링고였지만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 한 번도 불행하다 여긴 적이 없었던 그였습니다. 실제 비틀스 멤버 중 가장 낙천적인 인물이기도 하지요. 까칠할 수 있는 비틀스 멤버들 사이에서 팀의 결속을 다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링고 스타는 유머러스하고 대인관계가 좋았습니다. 비틀스 해체 이후에도 멤버들과 교류하며 앨범 제작을 위해 흔쾌히 드럼 연주를 맡기도 했습니다.

1960년 발표한 비틀즈 앨범들. 차례대로 <A Hard Day’s Night>, <Meet the Beatles>
| 1960년 발표한 비틀즈 앨범들. 차례대로 ,



네 개의 화음이 만든 진정한 밴드의 목소리

브라이언 엡스타인은 비틀스의 매니저가 되면서 가장 먼저 의상과 헤어스타일을 교체했습니다. 회색 피에르 가르뎅의 정장과 중성적인 더벅머리는 거친 로커의 이미지를 걷어냈습니다. 블랙 슈트에 부츠, 그리고 ‘몹탑’ 스타일이라 불린 헤어는 단정해 보이면서도 천방지축의 자유로움이 스며져 있었습니다. 비틀스와 과거 로큰롤 가수들과의 차이점은 패션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들의 저력은 하모니의 진수를 보여준 완벽한 밴드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비틀스는 무명 시절 학생 신분으로 수많은 공연들에 참여하면서 때로는 로큰롤을 때론 리듬 앤 블루스를, 모타운 팝 등을 다루며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었습니다. 그들 안에는 블루스를 연주했던 리틀 리처드도, 로큰롤의 선구자인 버디 홀리도, 보컬그룹인 리프터스도 녹아져 있었습니다. 기존 밴드들의 열성 음악 팬이었던 비틀스는 그들을 끝없이 모방하고 연습하며 자기들만의 새로운 방식으로 창조했습니다. 심플하지만 강력한 비틀스의 에너지로 말이죠.

리드 보컬에 의존하는 기존의 밴드와는 확연히 구별될 만큼 비틀스 멤버들은 화음과 코러스, 작곡과 작사, 베이스· 드럼· 기타 등의 완벽한 앙상블을 자작곡으로 실현할 수 있는 밴드였습니다. 폴이 높은 음을 내면 조지가 중간 음을, 존이 낮은 화음을 담당했습니다. 악기 사운드 또한 폴의 부드러운 베이스, 링고 스타의 리드미컬한 드럼, 조지의 유쾌한 기타 리드, 존의 간결한 기타가 만나 최고의 시너지를 올렸습니다. 멤버 전원이 수평의 관계에서 균형적인 팀워크와 음악을 창조한 것입니다.

1965년 발표한 <Rubber Soul>과 1967년 발표한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는 <롤링스톤즈>지가 선정한 ‘역사상 최고의 명반’ 1위에 선정됐습니다
| 1965년 발표한 과 1967년 발표한 . 는 <롤링스톤즈>지가 선정한 ‘역사상 최고의 명반’ 1위에 선정됐습니다



비틀스, 대중음악의 영원한 신화가 되다

1963년 비틀스는 첫 싱글 가 10만장 넘게 팔리면서 대중들의 사랑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비틀스가 가는 곳에 열풍처럼 불어 닥치는 비틀매니아(비틀스 애호가)의 열렬한 호응과 압도적인 스케일은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생경한 풍경을 연출했습니다. 그들의 심플한 멜로디와 단도직입적인 가사는 강한 호소력을 갖고 미국을 넘어 전 세계로 퍼졌습니다. 비틀스는 1966년 샌프란시스코 캔들스틱 콘서트를 끝으로 3년 동안의 열정적이었던 연주 여행을 마치게 됩니다. 엘리자베스여왕은 비틀스가 영국 총 수출액을 높이는데 기여했다며 대영 제국 훈장을 수여하기도 했지요. 개개인의 시간을 가지며 흩어져 있던 멤버는 마지막 앨범 를 준비하기 위해 다시 모입니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음반 커버로 꼽히는 <Abbey Road>
|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음반 커버로 꼽히는

는 비틀스가 마지막으로 녹음한 앨범입니다. 앨범은 먼저 녹음했지만 출시가 늦어지는 바람에 마지막 앨범이 되 버렸죠R. 각자의 음악 색깔이 점차 짙어지면서 결별을 결심했지만 이 비틀스 최후의 작품은 걸작으로 남았습니다. 강력한 로큰롤과 발라드, 팝 오케스트라 등이 고루 담긴 근사한 앨범이었습니다. 커버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숨어 있습니다. 이아인 맥밀란이 이 역사적인 커버 사진을 찍는 데 주어진 시간은 단 10분이었습니다. 커버에는 그룹 이름조차 드러나지 않았죠. 가장 짧은 시간에 만들어진 커버는 패러디의 대상이 되는 비틀스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또 하나의 재미는 폴이 죽었다는 상징이 앨범에 숨어있다는 루머입니다. 혼자 신발을 신지 않고 담배를 들고 있으며 다른 스텝으로 걷고 있다는 이유인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존 레논이 피격으로 사망한 이후 1995년 비틀스는 <비틀스 앤솔로지> 프로젝트를 위해 일시적으로 결합해 존 레논의 생전 목소리에 새롭게 레코딩을 덧붙여 공연 실황과 초기 데모 버전들을 모아 출시하기도 했습니다. 21세기 들어서도 영미 차트 No.1 곡들만 모은 앨범 <1>이 제2의 비틀매니아를 탄생시킬 정도로 세대를 넘나드는 사랑을 받은 비틀즈는 전 세계적으로 팔린 앨범 누적 판매량이 10억 장을 넘어섰습니다.

2013년에 발매된 BBC 라이브 음반인 <Live At The BBC>
| 2013년에 발매된 BBC 라이브 음반인



병마로 인해 조지 해리슨이 세상을 떠나고 이제 폴 매카트니와 링고 스타, 두 사람만이 세상에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비틀스를 기억하고 향유합니다. 명곡 ‘Yesterday’는 지금가지 2,200여 명의 아티스트가 리메이크했고 앨범을 촬영했던 횡단보도는 수많은 패러디의 대상입니다. 일반 도로에서 사람들이 줄지어 갈 때면 자연스레 비틀스가 연상 될 정도니까요. 각각의 색깔이 짙어지며 결국 다른 길을 걷기로 결심했지만 여전히 비틀스 밴드의 하모니는 청춘 그대로 우리 곁에 영원히 남아 있습니다.



▶현대케피코 사보 KEPICO PLUS 2014년 5+6월호에서 원문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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