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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다, 모험하다, 듣다
8월을 즐기는 소소한 방법들2014/08/22by 현대자동차그룹

뜨거운 한여름을 즐거이 지나오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화가와 소설가, 가수의 여름나기 노하우를 살짝 들어봅니다

<Flying Star> 캔버스에 아크릴, 51 x 76츠

            | 캔버스에 아크릴, 51 x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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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을 뜻하는 어 단어 ‘August’는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Caesar Augustus)에서 비롯된 단어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일까요. 태양의 제국 로마의 첫 번째 황제처럼 이 시기는 화려한 아름다움이 클라이맥스에 달합니다. 쇠락이 예고돼 있는 절정이기에 더욱 눈부신 8월의 하루하루를 뜨겁게 살고 있는 화가, 소설가, 가수가 보내온 이야기 셋.



일상에서 발견하는 은근한 즐거움, 윤성민 화가

여름이 시작되면 ‘아, 벌써 한 해의 반이 지났구나’라는 아쉬움이 드는 한편으로 왠지 내게 더 긴 하루가 주어지는 것 같아 마음이 들뜹니다. 그동안 시간에 쫓겨 못했던 일, 늘 계획만 하고 미뤄왔던 일들을 시도해볼 수 있다는 생각에 흥분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름은 내게 ‘은근한 즐거움’을 선물하는 계절입니다. 특히 8월은 딸의 여름방학이 있어 반복되는 스케줄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자유가 찾아옵니다. 예를 들어 부지런히 새벽까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즐거움, 밤늦게 동네를 산책하며 여름밤의 공기를 느낄 수 있는 시간 같은 것들 말입니다. 내가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 프리몬트(Fremont)는 무수한 별들이 반짝이고 풀냄새, 나무냄새에 취해 밤새 걷고 싶은 여름밤을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여름 동안 누리는 이런 매 순간들은 내게 또 다른 소중 한 ‘휴식’이 됩니다.

얼마 전 한국에서 전시했던 작품 중 이란 그림은 내가 느끼는 8월을 표현한 것으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받았습니다. 우리 집 앞, 길 건너편에는 너른 옥수수 밭이 있는데 매년 여름이면 무럭무럭 자란 옥수수가 나의 키를 훌쩍 넘어섭니다. 그리고 그 옥수수밭 맨 앞줄엔 해바라기 꽃들이 줄지어 피어 있습니다. 8월의 하늘 아래 옥수수와 함께 바람에 출렁이며 이글거리는 태양을 바라보고 선 해바라기에서 여름 바다를 연상했기에 나의 해바라기는 옐로(Yellow)가 아닌 블루(Blue)입니다. 또 언젠가 새벽안개가 자욱했을 때 내 방 창문으로 보던 해바라기는 짙은 보라색이었습니다. 한낮의 태양과 해바라기는 파도치며 한몸이 됩니다. 때문에 나의 소소하고 은근한 즐거움은 여름의 끝자락까지 블루로, 블루로 이어질 것입니다.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나 프리다 칼로(Frida Kahlo) 같은 멕시코 화가가 연상되는 윤성민의 작품은 거칠 것 없는 맑은 공기와 태양빛이 찬란하게 빛나는 라틴 아메리카 자연 특유의 색감을 지녔다. 10대 시절 미국으로 건너가 동서양을 오가며 활동하는 작가의 경험과 깊은 사유가 이국적인 신비와 열정, 동화적 판타지로 피어났습니다.

<Summer Time> 캔버스에 아크릴, 152 x 102cm
 | 캔버스에 아크릴, 152 x 102cm



예측 가능한 낮 예측 불가능한 밤, 김기창 소설가

8월의 낮은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합니다. 지독한 무더위에 아무것도 하기 싫을 것이고, 어쩔 수 없이 한다 하더라도 짜증이 날 터이니 말입니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낮의 이야기입니다. 여름은, 특히 8월은 다른 어떤 계절도 선사하지 못하는 예측 불가능한 밤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름밤은 지구가 인간을 위해 선사하는 마지막 모험 같습니다.

열대야가 7일 이상 지속되던 몇 해 전 여름 새벽, 잠을 자다 무언가 박살나는 소리에 놀라 깬 적이 있습니다. 일어나보니 선풍기가 목이 댕강 부러진 채 바닥에서 헤엄을 치고 있었습니다. 더위에 몸부림치다 선풍기를 발로 차버린 것입니다. 아내는 그 상황에서도 태연히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누군가 잘 때 업어 가 주세요. 전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더위 때문이 아니라 선풍기 없이 열대야를 견뎌야 한다는 사실이 정말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이미 집안 가득 진득한 열기가 진동하고 있었습니다. 머리가 무섭도록 빠르게 돌아갔고, 한 대형마트에서 24시간 영업을 시작했다는 기사를 본 것이 떠올랐습니다. 그 기사를 처음 읽었을 때는 욕지거리가 튀어나왔지만(그곳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수면도 보장 되어야 하니까) 앞뒤 잴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선풍기 없이도 잘 자는 아내를 억지로 깨워 밖으로 나왔습니다. 백 년에 한 번씩 지구를 지나가는 유성처럼 시원한 바람이 뜨문뜨문 우리를 스쳐갔습니다. 그럼에도 머리에서 나는 열을 식히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금세 기분이 좋아졌죠. 튼튼한 선풍기를 구하기 위해 대형마트로 모험을 떠나는 기분이었습니다. 나는 아내의 손을 잡았습니다. 나의 박력 있는 발차기에 대해 농담도 했고, 야식을 살 생각에 침이 고인 상태였습니다. 대형마트에 도착했지만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식품 코너 외에는 모두 문을 닫은 상태였죠.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순 없는 일. 주위를 재빠르게 훑었습니다.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폴리스 라인 같은 줄을 과감히 넘었습니다. 아내는 낮은 비명을 질렀습니다. 푸른색 선풍기를 재빠르게 찾아서 들고 나온 나는 혀를 차는 아내를 뒤로하고 의기양양하게 식품 코너 계산대에 선풍기를 올려놓았습니다. 지금도 ‘이 인간 뭐야?’라는 듯한 계산대 직원의 표정이 잊히지 않습니다. 그날 밤 우리는 새로 산 선풍기를 틀어놓고 서머셋 모옴(Somerset Maugham)이 즐겨 마셨다는 싱가포르 슬링(Singapore Sling)에 참치 카나페를 곁들어 먹었습니다. 꽤 근사한 여름 밤이었습니다.

FAN


여름 낮은 뻔합니다. 모든 것이 짜증나고 품도 배로 듭니다. 하지만 여름 밤은 다릅니다. 한줄기 시원한 바람만 불어도 지구에서 인간으로 사는 것이 그렇게 힘든 것만은 아니며 무한한 가능성이 내 앞에 펼쳐져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최근 읽은 소설에 이런 문장이 있었습니다. ‘여름은 싫지만 여름 밤은 좋다. 8월의 여름 밤은 예측 불가능한 매력을 지녔습니다.

장편 <모나코>로 제38회 ‘오늘의 작가상’을 거머쥔 소설가 김기창은 죽음을 앞둔 노인의 이야기를 통해 ‘모든 것은 다 있는데 사는 이유만 없는 삶’을 사는 사람들을 위한 소설로 2014년 문단의 뜨거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당신의 그늘은 어디에 있나요? 조준호 밴드 리더

여름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태풍도 왔다 갔고, 충분히 더웠던 것 같고, 버틸 힘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여름이라는 시간은 참 더디게도 흐릅니다. 부모들은 평균보다 높은 성적을 바라고, 젊은이들은 평균보다 잘난 외모를 원하고, 사회에서는 평균을 넘어서는 결과를 요구하고 있으니 어떻게든 평균을 넘고 보자는 범국민적 간절한 염원이 하늘을 뚫고 날아가 1 4,960km나 떨어져 있는 태양에 가 닿은 모양입니다. 30년이 넘도록 내 몸에 쌓아둔 여름에 대한 단련된 감각을 모두 부질없는 착각으로 만들며, 그렇게 무더위는 또 한 번 온몸에 새로운 기억을 심어 놓습니다.

세상 어딘가에는 이 더위를 잊게 해줄 곳이 분명 존재할 것입니다. 블로그나 SNS에서 마주치는 천국과도 같은 사진들만 봐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곳은 우리에게 멀기만 합니다. 통장 잔고는 늘 0이 하나 덜 찍힌 것 같고, 시간은 쪼개고 또 쪼개도 나를 위해 쓸 것이 없고, 마음 한편에는 별것도 아닌 매듭들이 어지러이 엮여 풀어질 생각을 안 하기 때문에. 그뿐인가요? 지금 당장 생각나지는 않지만 떠나려고 보면 분명 내 발목을 붙잡을 수많은 ‘때문에’들 때문에 결국 주저앉고 맙니다. 그렇다고 가만히 버티고 있자니 몸과 마음이 제 기능을 해낼 것 같지도 않은 상황. ,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당신에게 슬며시 건네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내가 지칠 때마다 찾게 되는 음악들입니다.

누워있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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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의 한여름 하면 누구나 떠올릴 만한 신나는 댄스음악이나 록음악 대신 새로운 테마를 잡아보았습니다. 우쿨렐레(Ukulele) 선율이 들리는 음악입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저 작은 기타, 혹은 장난감으로 여겨지던 이 악기가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도 제법 찾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우쿨렐레 소리는 시원한 그늘을 닮았습니다. 높은 빌딩 숲 사이를 헤치며 태양을 피하고 있을 당신을 위해 야자수 잎사귀가 만들어내는 그늘 같은 음악을 들려주고 싶습니다. 이 플레이 리스트의 순서를 따를 필요도, 꼼꼼히 들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재생버튼을 누르고 잠깐 눈을 감아봅시다. 그거면 충분합니다.

이름도 없이 거리 공연을 하던 중 관객으로부터 ‘좋아서 하는 밴드’란 이름을 얻었습니다. 2007 대학가요제>에서 금상을 수상한 조준호(퍼커션)와 그의 오랜 친구 손현(기타), 안복진(아코디언)으로 구성된 이들은 여전히 거리 공연을 선보이며 대중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2009년 이들의 버스킹(Busking)을 다룬 다큐멘터리 <좋아서 만든 영화>도 있습니다.




조준호가 추천하는 여름 플레이 리스트


◎ 마푸키키 Shall We Hula?

추천곡: 훌라 한번 출래요?, 그대와 나
우쿨렐레는 하와이 전통악기입니다. 그러니 이 노래부터 시작하는 게 좋겠습니다. 하와이 전통음악인 ‘멜레(Mele)’를 부르는 팀이 우리나라에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멤버 전원이 마포구에 살고 있다해서 ‘마포키키’라고 이름을 지었으나 후에 ‘향기를 쏘다’라는 의미의 ‘마푸키키(Mapukiki)’로 확정했다고 합니다. 타이틀 곡인 ‘훌라 한번 출래요?’는 어쩌면 낯설 수도 있는 하와이 음악으로 우리를 자연스럽게 초대합니다.


◎ 베이루트 The Gulag Orkestar

추천곡: Elephant Gun, Postcard from Italy
나에게 우쿨렐레라는 악기를 알게 해준 뮤지션은 바로 베이루트(Beirut)입니다. Elephant Gun이라는 노래의 뮤직비디오에 빠져 몇 번이나 돌려 봤는지 모릅니다. 미국 출신임에도 그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유럽 어딘가를 여행하고 있는 느낌이 듭니다. 우쿨렐레와 함께 울려 퍼지는 관현악기의 음율이 가슴을 시원하게 적셔줍니다


◎ 좋아서 하는 밴드 내가 첫 번째였음 좋겠어

추천곡: 내가 첫 번째였음 좋겠어, 천체사진
마지막으로 내가 속해 있는 ‘좋아서 하는 밴드’의 음악을 빼놓을 순 없는 일. 귀에도 보신이 필요한 이들을 위하여 매년 여름 복날에 맞춰 ‘보신음악회’라는 타이틀의 콘서트를 열고 있는 밴드이기 때문입니다. 앨범 전체적으로 우쿨렐레를 이용한 다양한 편곡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일상이 의미없이 흘러간다고 느껴지는 이들에게 ‘천체사진’을 추천합니다.



▶ 현대자동차그룹 사보 모터스라인 2014 8월호에서 원문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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