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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스포츠 만화의 역사와 계보 첫번째
60-70년대의 스포츠 만화2014/07/18by 현대자동차그룹

마음의 상처를 입은 주인공들,
상처 입은 독자를 위로하다

60년대 스포츠 만화의 대표작 <도전자>

| 60년대 스포츠 만화의 대표작 <도전자>



만화방이건, 일일공부의 귀퉁이건, 월간잡지의 부록이건 만화는 다양한 흥미로 독자들을 사로잡았습니다. 신비의 세계로 모험을 떠나기도 하고 불의한 악당들과 맞서 싸우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오랜 역사 속에서 빠지지 않는 건 스포츠였지요. 사각의 링, 녹색의 그라운드, 땀이 튀기는 코트까지 빠지지 않고 우리 옆에는 늘 스포츠 만화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스포츠 만화는 그 시대를 대변했지요. 시대를 보여주던 스포츠만화, 60년대 사각의 링에서 민족의 한을 풀어낸 훈이에서, 축구클럽과 서포터즈 이야기까지 함께 추억여행을 떠나볼까요?



60년대 스포츠 만화의 시작 

60년대에 접어들며 동네마다 만화방이 문을 열었습니다. 만화잡지(놀랍게도 만화잡지는 1950년대에도 있었습니다. 1956년도에 창간된 <만화세계>60년대 중반 만화잡지 붐을 만들어냈습니다)나 단행본을 사서 보지 못했던 어린이들도 만화방에 모여 만화를 빌려볼 수 있게 되었지요. 만화방이 동네마다 문을 열자 만화를 보급하는 출판사들이 등장했습니다. 60년대 3대 만화 출판사는 부엉이문고, 제일문고, 크로바문고(70-80년대 어문각의 클로버문고와 다릅니다)가 활발하게 작가들을 영입해 출간작을 늘려갔지요. 세 출판사 중 스포츠 만화로 인기를 끈 출판사는 크로바문고였는데요, 크로바문고는 60년대 이야기 만화의 스타 작가인 박기정(고교 시절 야구부 활동을 하고 만화인 야구단에서 투수를 맡기도 한)을 전속 작가로 두고 다양한 스포츠 만화를 출간했습니다.


박기정의 <도전자>와 투수 시절의 박기정
| 박기정의 <도전자>와 투수 시절의 박기정

60년대 스포츠만화의 대표작은 박기정의 <도전자>(1964)입니다. 관동 대지진에서 혼자 살아남은 백훈(어른들은 ‘훈이’로 기억합니다. 앞으로 훈이라고 표기하겠습니다)은 일본인 양어머니 밑에서 자랍니다. 하지만 훈이는 양어머니의 사랑도, 라이벌 시하메의 여동생 하나코의 사랑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가장 친한 친구인 오동추하고도 멀어진 훈이는 분노를 품고 링에 올라 시하메를 처참하게 두들기지요. 하지만 경기에서 이긴 뒤에도 훈이 마음의 분노는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가방 하나를 들고 체육관을 나선 훈이는 자신에게 묻습니다. “뭐가 문제지? 이렇게 우울해할 이유가 없는데.” 

훈이는 참사에서 혼자 살아남은, 그리고 일본 땅에서 혼자 살아가야 하는 상처 입은 외로운 도전자였습니다. 60년대의 독자들은 훈이와 같은 상처를 품고 살았지요. 당연히 훈이의 모습에서 자기 모습을 보았을 것입니다.



우울한 마음에 날린 스트레이트 

박기정 작가의 여러 스포츠 만화 중에서도 유독 권투를 다룬 <도전자>가 큰 인기를 끈 이유는 60년대 국민들의 마음에 시원하게 스트레이트를 날린 김기수 때문이었습니다. 1957년 아마추어 권투로 데뷔한 그는 1958년 도쿄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땄지요. 기세를 몰아 1960년 로마 올림픽에 나가지만 이탈리아의 복싱 영웅 니노 벤베누티를 준준결승에서 만나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이후 프로로 전향한 김기수 선수는 1962년 프로 데뷔전으로 한국웰터급 챔피언에 오른 뒤,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함께 운동하던 체육관 동료들이 그를 ‘조센징’이라고 놀려도, 그는 묵묵히 연습했습니다. 그 결과 어렵게 잡힌 첫 번째와 두 번째 경기에서 모두 일본 선수를 KO로 이겼지요. 1963년의 마지막 달인 12월 일본 선수들의 시합 기피로 오랜 기다림 끝에 동양 챔피언 전초전이 결정되었습니다. 일본챔피언 사이토를 맞은 김기수는 2회 만에 KO 승을 거두었습니다. 다음 순서는 동양챔피언이었는데요, 당시 동양챔피언이던 가이즈 후미오는 차일피일 경기를 미루다 1965년이 되어 겨우 성사되었습니다. 1965110, 김기수는 후미오에게 저돌적으로 달려들어, 6KO 승을 거두었지요. 재일교포들은 자기 일처럼 즐거워했습니다.


<도전자>의 주인공 훈이와 1965년 동양 챔피언전의 김기수 선수
| <도전자>의 주인공 훈이와 1965년 동양 챔피언전의 김기수 선수

일본 선수들을 경기마다 KO로 때려눕히는 김기수 선수는 재일 교포들뿐만 아니라 한국인 모두의 영웅이었습니다. 바로 이때 박기정의 <도전자>가 나왔지요. 독자들은 김기수와 훈이를 동일시했습니다. 현실의 김기수는 마지막 세계 챔피언 도전에 나섰는데요, 1960년 로마 올림픽 준준결승에서 김기수를 이겼던 벤베누티가 웰터급 챔피언이었습니다. 어렵게 시합이 성사되었지만 문제는 대전료였는데요, 55,000 달러의 대전료를 지불하기에 한국은 너무 가난했던 것이지요. 어렵게 주선한 시합이 물 건너갈 위기였습니다. 그때 청와대에서 전갈이 왔습니다. 김기수 선수는 청와대에 들어가 대통령을 만났고 개런티는 정부에서 지불되었지요. 1966625, 한국전쟁이 벌어진 지 16주년이 되던 해 저녁 9시 장충체육관에서 경기가 벌어졌습니다. 체육관은 박정희 대통령을 비롯한 관중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요, 국민들은 TV를 볼 수 있는 곳에 모두 모여 두근거리며 경기를 지켜보았습니다. 918, 1라운드를 시작하는 공이 울렸습니다. 경기는 15라운드까지 진행되었고, 혈투 끝에 김기수 선수가 판정으로 챔피언 벨트를 차지했습니다. 27, 카퍼레이드가 벌어졌습니다. 그렇게 60년대 권투는 거대한 국민적 한풀이의 장이었습니다.


▶ 1968 5 26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개최된 김기수와 산드로 마징기(Sandro Mazzinghi) 3차 방어전 동영상. 김기수는 이 경기에서 패배해 타이틀을 잃는다


일제강점기, 해방 후의 혼란, 한국전쟁의 참사, 그리고 4·19 혁명과 5·16 쿠데타까지. 60년대를 사는 모든 이들은 마음에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만 했습니다. 60년대 독자들은 일본에서 외롭게 살아남아 사랑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친구와도 멀어지는 훈이의 분노와 상처에서 자기의 상처를 마주했습니다. 이런 마음에 상처 입은 주인공은 80년대까지 계속 이어졌는데요, 70년대 <아홉개의 빨간모자>(이상무)에서 보여준 독고탁의 분노, 80년대 만화방 극화를 풍미한 이현세, 허영만 만화의 상처받은 주인공들의 모습은 그대로 <도전자>의 훈이에 닿아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내면에 난 큰 상처를 안고, 파멸로 달려갔지요. 그리고 현실에서 상처받은 독자들은 훈이의 상처와 마주하고 치유를 얻었습니다. 스포츠 만화의 선구자 박기정 작가는 <도전자>로 큰 인기를 얻고, 이후 1964년 여자 축구를 그린 <치마부대>와 야구만화 <황금의 팔>, 그리고 1967년 레슬링 만화 <레슬러>를 출간했습니다.

박기정의 또 다른 작품 <레슬러>와 <황금의 팔>
| 박기정의 또 다른 작품 <레슬러> <황금의 팔>



70년대 마구와 근성의 주인공 

60년대가 만화방 만화의 전성기였다면, 70년대는 월간 아동잡지의 황금기였습니다. <어깨동무>, <새소년>, <소년중앙>, <소년세계>, <만화왕국> 같은 매체들이 치열하게 경쟁했는데, 이들 잡지는 모두 만화를 별책부록으로 제공했었지요. 70년대 별책부록 만화는 명랑만화이거나 아니면 일본만화를 한국작가가 새로 그린 번안만화였는데요,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반 일본의 최고 인기 만화는 스포츠 만화였습니다. 당시 일본 소년만화의 스타 스토리 작가였던 카지와라 잇키는 거인 구단에서 쫓겨난 아버지의 한을 품고 야구를 배워 거인 구단 선수가 되는 <거인의 별>(1966-1971), 고아원 출신 권투 선수 야부키 죠가 권투 선수가 되어 처절한 대결을 벌이는 <내일의 죠>(1968-1973), 일본의 최고 인기 스포츠였던 레슬링을 다룬 <타이거마스크>(1968-1971) 등을 발표해 큰 인기를 끌었고, 이 작품들은 모두 한국에 소개되었습니다.

카지와라 잇키의 만화보다 먼저 번안되어 70년대 소년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작품은 가이즈카 히로시의 <태양을 쳐라>(1968)를 번안한 김소중의 <태양을 쳐라>입니다. 197210월부터 <소년중앙>의 별책부록 만화로 출간된 이 작품은 ‘마구’를 야구의 주요 테마로 다루었는데요, 주인공 장웅은 강력한 회전으로 배트에 맞으면 내야 플라이로 아웃되는 마구를 던졌습니다. <태양을 쳐라>가 큰 인기를 끌고 라디오 드라마로도 제작, 방영되자 19746월부터 일본 야구만화의 빅히트작 <거인의 별>(카지와라 잇키, 카와사키 노보루)<태풍을 쳐라>라는 제목으로 (마치 후속편처럼) 소개합니다. 카지와라 잇키의 스포츠 만화는 흔히 ‘근성 스포츠 만화’라 불리는데, 예를 들어 야구라고 하면 자신의 몸을 파괴하는 금단의 기술인 ‘마구’를 익히고, 상대방은 그 마구를 이겨내는 이야기들을 주로 다룬 것이지요.

 가이즈카 히로시의 <태양을 쳐라>
| 가이즈카 히로시의 <태양을 쳐라>

야구만화의 인기는 고교야구의 인기와 정확히 겹쳐집니다. 70년대 최고 인기 스포츠는 야구, 그중에서도 고교야구였습니다. 흔히 4대 대회로 불리는 청룡기, 황금사자기, 대통령배, 봉황대기 대회는 서울운동장(동대문운동장으로 개명되었다가 철거됨)에서 열린 전국대회였는데요, 청룡기는 1946, 황금사자기는 1947년에 시작된 유서 깊은 대회였지만 최고의 전성기는 70년대였지요. 70년대 고교야구가 열리면 서울에 살던 지방민들은 야구장을 가득 메우며 열정적으로 응원을 펼쳤습니다. 가난한 고향을 떠나 서울로 서울로 모여들었던 그들에게 고교야구대회에서 만난 고향 팀은 그리운 고향 그 자체였던 것이지요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최고의 경기는 1972년 황금사자기 결승, 군산상고와 부산고의 경기였습니다. 1회전부터 역전승으로 돌풍을 일으키며 마침내 결승에 오른 무명의 군산상고. 그리고 전통의 야구 명문 부산고. 11이던 경기 스코어는 8회 부산고가 3점을 내며 41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9회 말 군산상고의 공격에 먼저 투아웃이 되었는데요, 모든 사람이 군산상고의 돌풍은 끝이 난다고 생각했던 시간에 대거 4점을 얻어내 역전우승에 성공합니다. 군산상고는 마지막 결승까지 역전승으로 승리를 거뒀고 야구단은 전주, 익산, 군산 등 전북의 주요 도시를 돌며 카퍼레이드를 했지요. 군산시의 환영식에서는 12만 명 정도의 군산시민 중 7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승리를 축하해 주었습니다. 이후 군산상고는 ‘역전의 명수’라는 별명을 얻으며 고교야구의 강호로 떠올랐는데요, 이 때가 공교롭게 <태양을 쳐라>가 나온 시기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고교야구에 환호했던 어린이들은 <태양을 쳐라>를 보며 익힌 마구를 흉내 냈지요

1974년도에 나온 <태풍을 쳐라>의 주인공은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훈련을 이겨낸 강속구 투수였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1975년 가을, 전국대회 4강 이상의 팀이 초청되어 벌인 전국우수고교초청대회에서 금테안경을 쓴 경남고 2학년 최동원은 강호 경북고와 선린상고를 상대로 무려 연속 17이닝 노히트노런의 대기록을 세웁니다. 마치 만화에서 바로 나온듯한 그의 투구 폼과 실력은 대번에 야구팬들을 사로잡았지요. 이듬해 1976년 청룡기 결승에서 최동원이 이끄는 경남고와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가 맞붙었는데요, 그 경기에서 최동원은 탈삼진 20개를 기록하는 역시 만화 같은 기록을 세웠습니다.

태양과 태풍(다시 말하지만 두 만화는 우리나라 만화가 아닙니다), 그리고 현실에서 고교야구의 폭발적 인기는 70년대 야구 만화 붐을 끌어냈습니다. 70년대 야구만화의 대표작가는 이우정과 이상무인데요, 그 중 가장 많이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작품은 <소년중앙> 1976년 5월호부터 별책부록으로 연재되기 시작한 이상무의 <우정의 마운드>입니다. 독고 탁, 봉구, 준 그리고 숙은 고아원의 단짝 친구인데, 네 친구 중 준이는 입양을 가서 옥기호가 됩니다. 세월이 흘러 고등학생이 된 탁과 봉구, 준(옥기호)은 모두 고교 야구 선수로 활동하는데. 탁월한 야구 센스를 지닌 독고탁이지만, 부잣집 아들이 된 친구 준에게만큼은 묘한 열등감을 가지지요. 타석에 선 준에게 빈볼을 던져 다치게 한 독고탁은 그라운드를 떠나 탄광으로 갑니다. 하지만 이걸로 끝나면 근성의 야구만화가 아니지요. 독고탁은 탄광에서 조력자 박씨 아저씨를 만나 다시 마운드에 서게 됩니다. 

이상무의 <우정의 마운드>
| 이상무의 <우정의 마운드>

60년대 <도전자>의 복서 훈이처럼, 70년대 <우정의 마운드>의 투수 독고탁도 마음의 상처를 안고 있는 주인공입니다. 60년대의 훈이의 상처는 일본이었고, 70년대 독고탁의 상처는 가난이었는데 두 작품 모두 결국에는 상처를 극복합니다. 앞서 소개한 일본의 근성 스포츠만화는 상처를 극복하기보다는 완전히 망가지고 끝이 납니다. <내일의 죠>는 마지막 챔피언전에 모든 걸 다 쏟아낸 뒤 패배하고, <거인의 별>은 마구를 익히다 어깨가 망가져 은퇴하지요. <타이거마스크>는 챔피언전 경기를 앞두고 교통사고로 사망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스포츠 만화는 깊은 상처를 안은 주인공들이 상처를 극복하는 것으로 끝맺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70년대에 접어들며 독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희망이었기 때문이지요.



그래도 우리는 울지 않았다

70년대 고교야구의 열기만큼 뜨거웠던 스포츠는 국가대표 축구 경기였습니다. 지금이야 국가대표가 척척 월드컵에도 출전했지만, 70년대 국가대표의 국가대항전을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는 박대통령컵 축구대회였습니다. 1971년부터 1975년까지는 아시아, 1976년부터 1978년까지는 국제축구대회로 개최되었지요. 70년대의 대표적인 축구만화는 19738월호부터 <새소년>에 연재된 이원복의 <불타는 그라운드>입니다. <불타는 그라운드>는 고교축구만화인데, 제일고와 청운고 축구부를 지도하는 최정문과 민영태의 지략대결을 다룬 만화입니다. 60-70년대의 스포츠 만화는 대개 상처받은 주인공들의 악바리 같은 경기력을 보여주었는데, <불타는 그라운드>는 요즘 만화처럼 전술대결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사제지간이었던 두 감독 최정문과 민영태의 갈등의 중심에는 역사의 아픔이 있습니다.

이원복의 <불타는 그라운드>
| 이원복의 <불타는 그라운드>

일제 강점기 소작인의 아들이던 최정문에게 주인집 아들 민영태가 다가와 축구를 가르쳐줍니다. 지주계급에 대한 분노가 가득 차 있던 최정문은 인간적인 민영태를 만나 그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따르지요. 최정문은 민영태의 지도로 국가대표가 됩니다. 그런데 한국전쟁이 벌어지고 최정문과 민영태 모두 피난을 가지 못합니다. 최정문은 인민군의 사탕발림에 속아 민영태가 숨은 곳을 안내하고, 민영태의 체포를 막으려던 아내와 딸이 인민군의 총탄에 희생되고 맙니다. 이후 국가대표로 승승장구하던 최정문은 민영태를 공산당에 밀고한 사실이 폭로되면서 국가대표를 떠나고 일용직 건설노동자로 전락하게 되지요. 시간이 지나 민영태와 최정문은 각각 제일고와 청운고 축구부 감독으로 새로운 야망을 불태웁니다.

1976년 야구만화 <우정의 마운드>로 큰 인기를 얻은 이상무는 1979<어깨동무> 9월호부터 축구만화 <울지 않는 소년>을 연재합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한국 축구는 서독 대표와의 경기에서 40으로 지고 마는데요, 축구협회는 10년 전 한국 축구의 혁신을 주장하다 사라진 독고룡을 신임 감독으로 초빙하려고 합니다. 축협의 김 이사는 산으로 들어가 그를 만나지만, 독고룡은 무기를 만들었다는 유언을 남기고 죽고 맙니다. 김 이사는 독고룡의 아들 독고탁과 함께 산에서 내려오는데, 알고 보니 독고탁이 독고룡이 남긴 새로운 무기이지요. 장난꾸러기 천방지축 독고탁의 괴물 같은 축구 실력을 보여주는 한편, 오래 전에 헤어진 엄마와 역시 축구를 하는 형과 관계를 회복하는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이상무의 <비둘기 합창>과 <울지 않는 소년>
| 이상무의 <비둘기 합창> <울지 않는 소년>



60년대 나라를 잃은 슬픔을 사각의 링 위에서 달래주었던 박기정의 <도전자>. 70년대 고교야구 시대에 골목마다 마구 열풍을 몰고 온 <태양을 쳐라>와 <태풍을 쳐라>. 마음의 상처를 안은 주인공들의 성장과 극복을 다룬 <우정의 마운드>와 <울지 않는 소년>까지. 60-70년대의 스포츠 만화에서는 모두 ‘상처 입은 주인공’들이 등장했습니다. 비록 시대에 따라 스포츠도 달라지고, 상처를 극복하는 방식도 달라지지만, 약 20여 년의 시간 동안 역사적 슬픔과 가난, 때론 가족의 부재를 딛고 만화 주인공들은 링 위에 올랐고, 운동장에 섰습니다. 그리고 모든 주인공은 각자의 방식으로 독자들에게 짜릿한 승부의 쾌감과 마음을 울리는 감동을 전해 주었지요. 우리는 그들이 있어, ‘울지 않는 소년’이 될 수 있었습니다.



by 박인하

만화평론가 / 청강문화산업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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