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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와 비극의 현실 속에서
행복을 꿈꾸던 반전 있는 사상가 니체2014/12/17by 현대자동차그룹

현실에서의 생을 긍정하며 행복을 찾아 행하던 실존주의자 프리드리히 니체
그의 열정적인 삶을 소개 합니다

프리드리히 니체 Friedrich Wilhelm Nietzsche
| 프리드리히 니체 Friedrich Wilhelm Nietzsche



우리는 지금까지 니체를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는 ‘신은 죽었다’와 같은 충격적인 발언으로 기존의 가치를 가차 없이 부숴버리는 염세주의 철학자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 그는 인간 내부의 힘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현실에서의 생을 긍정하며 삶 속에서 행복을 찾는 실존주의자였습니다. “지금 인생을 다시 한 번 완전히 똑같이 살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라”고 말했던 니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지루함을 느끼기엔 삶은 너무나 짧다. -프리드리히 니체

출생~사망: 1844년 10월 15일 ~ 1900년 08월 25일
국적: 독일
활동분야: 시, 철학
출생지: 독일 레켄
주요 저서: <비극의 탄생>, <반시대적 고찰>,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망치를 든 철학자

펼쳐진 성경책
| 신을 부정했던 니체는 아이러니하게도 목사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전통적인 목사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성서를 줄줄 꿰며 ‘꼬마 목사’로 불렸던 니체가 신을 부정한 것은 운명의 장난과도 같은 이야기입니다. 신학 공부를 이어가던 그는 성서에서 주입하는 죄의식이 인간을 억압하는 병든 관념이라고 생각하고 공부를 그만두었습니다.

그 후 곧바로 고전문헌학으로 전공을 바꾸고, 막강한 신의 존재를 믿고 있던 당시 사람들에 맞서 신을 부정하며 오랜 시간 이어오던 관념을 허물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작품 <우상의 황혼>의 부제가 ‘망치로 철학하기’인 것은 그의 사상을 가장 잘 나타내줍니다. 니체는 기존의 가치를 뒤엎고 새로운 행복을 찾아 나선 것입니다.



빠심(?)의 역사

쇼펜하우어의 부조가 새겨진 동전
| 니체에게 큰 영향을 준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

누군가를 열렬하게 좋아하는 마음이라는 뜻의 시쳇말인 ‘빠심’은 옛날에도 존재했습니다. 그는 헌책방에서 우연히 발견한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읽고 새로운 세계에 눈뜬 후,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를 스승으로 모시고 그의 철학을 흡수하기 시작했습니다.

젊은 니체에게 또 다른 영향을 끼친 인물은 작곡가 바그너(Richard Wagner)로, 두 사람은 음악과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교감했고 여기서 얻은 영감으로 니체는 그의 첫 번째 작품 <비극의 탄생>을 집필했습니다.



니체의 산책로

니체의 산책로
| 산등성이로 올라가는 비탈길이 ‘니체의 산책로’입니다

프랑스 니스의 동쪽 절벽에 위치한 에즈(Eze)는 산악마을입니다. 독수리가 둥지를 튼 것 같은 모양이라 ‘독수리 둥지’라고도 불리는 이 아담한 마을에는 ‘니체의 산책로’라 불리는 길이 있습니다.

마을 입구부터 기차 간이역까지 이어지는 비탈길을 걸으며 영감을 얻은 니체는 이곳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일부를 집필했습니다. 건강이 좋지 않아 프랑스 남부와 이탈리아 북부 등 따뜻한 곳을 여행하며 요양하던 니체에게 조용하고 아담한 에즈는 집필 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던 것이지요.

지중해를 끼고 절벽을 따라 조성된 ‘니체의 산책로’는 아직까지 니체의 예술적 영감을 느끼고 싶어 하는 관광객들로 북적입니다.



음악가 니체

만년필과 악보
| 다재다능했던 니체는 음악적 재능까지 풍부했습니다

만약 당신이 철학가, 작가로서의 니체만을 알고 있다면 그에 대해 절반만 알고 있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문학적 · 음악적 재능이 풍부했던 니체는 직접 작곡을 한 음악가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바그너의 <크리스탄과 이졸데>를 관람한 후 영감을 받아 작곡한 ‘만프레드 명상곡’을 비롯해 다양한 피아노곡과 가곡 등을 남겼습니다.

비록 니체는 지휘자 한스 본 로(Hans von Bulow)에게 혹평을 들은 후 작곡의 꿈을 접었지만, 다른 음악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불어넣었습니다. 니체의 사상에 감화를 받은 말러(Gustav Mahler)는 그의 교향곡 3번 4악장에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가져온 가사를 인용했으며, 말러의 벗이기도 한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는 동명의 교향시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영원한 뮤즈, 루 살로메

차가운 대리석 위의 꽃다발
| 비극적인 사랑이 끝난 후 니체는 평생 독신으로 살아갑니다

염세적이고 직설적인 화법으로 거침없어 보이는 니체에게도 섬광같이 반짝이던 가슴 아픈 사랑이 있었습니다. 당대 모든 지성인들의 로망이자, 우리에겐 릴케의 연인으로 유명한 루살로메(Lou Andreas-Salome)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대학 동료였던 철학자 파울 레(Paul Ree)와 니체는 살로메의 요청에 따라 플라토닉한 삼각관계를 유지하며 동거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기묘한 동거는 니체가 살로메에게 청혼을 하며 3주만에 깨지고 맙니다. 그 후 낙담한 니체는 여러 저서를 집필하면서 사랑에 대한 상처와 충격을 극복하려 했지만, 결국 세간의 무관심과 건강 악화 등 계속되는 삶의 비극으로 회복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습니다.



글. 안채린




▶현대자동차그룹 사보 모터스라인 2014년 12월호에서 원문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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