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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아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2015/02/02by 현대케피코

현대미술의 아이콘이자
팝아트의 대명사 앤디 워홀을 소개합니다

앤디 워홀은 자신의 예술을 ‘세상의 거울’이라 불렀습니다
l 앤디 워홀은 자신의 예술을 ‘세상의 거울’이라 불렀습니다



앤디 워홀은 현대미술의 아이콘입니다. 그는 살아있는 동안 전설로 불렸으며, 동시대 문화와 사회를 꿰뚫어보는 날카로운 통찰력과 이를 시각화 해내는 직관을 가지고 있었죠. 워홀은 자신의 예술을 ‘세상의 거울’이라고 말하며 스스로 기계이기를 원했고, 기계와 같은 미술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는 시각적으로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쉬운 주제를 택하면서도, 시대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은 놓치지 않았지요.



팝아트의 대명사 앤디 워홀

앤디 워홀의 <엘비스 1와 2>, 1964, 각각 208cm x 208cm.
l 앤디 워홀의 <엘비스 1와 2>, 1964, 각각 208cm x 208cm.

앤디 워홀(1928-1987)은 상업 미술에 회화적 요소를 가미해 경제적 성공을 거두었지만, 순수 미술에서도 성공하고 싶어 했죠. 이름이 알려지며 자신의 작업실에 미술계 사람들이 자주 찾아오자, 그들이 올 때마다 상업 미술품들을 숨겨 자신은 순수 미술에 전념하는 사람처럼 위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예술을 위한 예술’보다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자 했죠. 누군가 자신과 비슷한 그림을 그리면 더는 같은 그림을 그리지 않고 아주 새로운 그림을 시도했습니다. 이는 자신의 미학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닌 디자인과 같은 ‘시각적 감각’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늘 미술계에서 자신의 입지를 구축하고, 충격을 주는 작품을 만들고자 작품의 주제를 선정하는 데 열정적이었던 워홀은 매일매일 새로운 사건, 충격적 사실을 보도하는 신문기사에 눈을 돌렸고 새로운 작품들을 만들어냈습니다.



죽음을 다룬 미술가

앤디 워홀의 <불타는 푸른 자동차. 아홉 번>, 1963, 203cm x 229cm.
l 앤디 워홀의 <불타는 푸른 자동차. 아홉 번>, 1963, 203cm x 229cm.

워홀은 1962년 6월부터 비극적인 사건들을 주제로 삼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보았던 타블로이드지 제1면 머리기사는 ‘비행기사고로 129명 사망’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워홀은 죽음에 관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죠. 자동차사고, 재난, 사형을 집행하기 위한 전기의자 등. <비행기 사고로 129명 사망>(1962)는 파리 근처에서 프랑스의 보잉 707기가 추락한 사건을 그린 작품입니다. 비행기 추락은 드물게 일어나고 그렇게 죽는 사람의 수가 자동차사고 희생자에 비하면 매우 적은 편이지만 사람들에게 끔찍한 사고로 각인됩니다. 워홀은 신문을 읽다 자동차사고로 죽는 사람의 수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공휴일에는 더 많은 사람이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참혹한 장면을 그리기 위해 신문과 잡지를 뒤적이던 워홀은 “지독한 장면들을 보고 또 보다 보니 아무 느낌도 생기지 않더라”라고 친구에게 말했죠. 워홀이 실크스크린에 제작한 자동차사고 현장은 그의 가장 과격하고 힘 있는 주제였습니다. 실크스크린 작업은 기술을 요하는데, 워홀은 기교를 부릴 정도로 숙달해 있었으며, 일부러 얼룩을 남겨 정교하게 재현하지 않았지요. 그렇게 함으로써 관람자로 하여금 현장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만들었습니다.



새로운 현대 정물화의 시작

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 캔>, 1962, 51cm x 41cm
l 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 캔>, 1962, 51cm x 41cm

워홀은 1960년대부터 잉크, 템페라, 크레용, 유화물감을 혼용하여 새로운 현대 정물화를 그리기 시작합니다. 바로 캠벨수프 통조림을 그리는 것이었는데요. 당시 수프 통조림 시장점유율이 약 80%에 달한 캠벨사를 선택한 것은 캠벨 수프가 가장 대중적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캠벨 토마토수프를 그리기 시작하면서 어렸을 적 그것을 수없이 먹었다고 말하기도 했지요. 워홀은 1962년 7월에 로스앤젤레스에서 수프 통조림 회화로 전시회를 엽니다. 이 시기에 팝아트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고, 언론은 관심을 가지고 팝아트 예술가들을 주시했습니다. 그러다 워홀은 잡지 <타임>의 주목을 받게 되었지요. 1962년 5월 11일자 <타임>에 워홀이 크게 소개된 것입니다. 통조림따개로 캠밸수프 통조림을 막 따려는 그림 앞에서 워홀이 한 손에는 통조림, 다른 손에는 숟가락을 들고 먹으려는 시늉을 한 사진이 실렸습니다. 뉴욕에서는 아직 워홀의 작품을 소개하겠다는 화랑이 없을 때 <타임>에 소개된 것은 워홀에게 큰 행운이었죠. 이후 워홀의 이름이 알려지자 워홀의 작업실을 찾는 방문객들이 대거 늘어났습니다.

워홀은 캠벨 수프 통조림을 소재로 해서 캔버스에 통조림 하나가 가득 차게 그리기도 하고 상표가 떨어져나간 통조림을 그리기도 했으며, 50개, 100개, 심지어 200개의 통조림을 한 캔버스에 가득 차게 그리기도 했습니다. 수프 통조림을 본 사람들은 워홀에게 왜 슈퍼마켓에 진열되어 있는 상품을 그리느냐고 물었지요. 대량생산이나 소비주의와 광고에 반발이라도 하는 것이냐고 묻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정물화로 바라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워홀은 캠벨 수프 깡통 그림으로 상품화에 대한 무관심을 표현했습니다.



식품이냐 미술품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앤디 워홀의 <브릴로, 델몬트, 하인즈>, 1964
l 앤디 워홀의 <브릴로, 델몬트, 하인즈>, 1964

호기심과 경쟁심이 많은 워홀은 클래스 올덴버그가 음식을 커다랗게 조형물로 제작하여 인기를 얻자 곧바로 새로운 작업에 도전했습니다. 그는 조수에게 길 건너 슈퍼마켓에 가서 빈 상자들을 구해오라고 주문합니다. 조수는 브릴로 비누, 캠벨 토마토주스, 하인즈 케첩, 켈로그 콘플레이크, 델몬트 복숭아 통조림 등 유명상표 상자들을 가지고 왔죠. 워홀은 그것들을 목수에게 보내 같은 크기로 수백 개 만들도록 주문했습니다.

상자가 만들어지자 실크스크린으로 상표를 제작하여 겉면에 부착했습니다. 완성하고 보니 상자들은 조수가 가져온 유명상표 상자들처럼 보였지요. 뉴욕에 있는 일레노 와드의 화랑 스테이블에서 400개의 상자가 전시되었을 때 관람자들은 마치 식품창고 속을 걸어 다니는 느낌이었습니다. 상자를 전시한 미학은 ‘마르셀 뒤샹’이 ‘기성품(ready made)’을 미술작품이라고 주장한 것과 같았습니다. 뒤샹은 기성품을 선택해 전시한 것에 비해 워홀은 기성품을 대량생산하는 방식을 택했지요. 이는 과연 팝아트다운 행위였습니다. 워홀의 작품은 미술의 전통적인 개념과 일상생활을 통합하는 팝 아트의 전제를 입증합니다. 팝 아트는 상업주의와 소비주의에 깊이 물든 사회에 관해 진술하고 있는 것이죠



글. 김광우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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