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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을 보면
그 화가가 보인다2015/01/23by 현대파워텍

고흐와 렘브란트의 내면이 담겨있는
자화상 속 숨겨진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자화상 속에 숨겨진 화가의 내면을 들여다봅니다

l 자화상 속에 숨겨진 화가의 내면을 들여다봅니다



한 사람의 일생을 들여다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중 하나는 바로 앨범을 보는 것이죠. 태어난 지 백일을 거치고 돌을 지나 유치원에 들어갔을 때, 입학식, 졸업식, 소풍, 가족여행 등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우리는 사진으로 줄곧 남기기 때문입니다. 사진이 없던 시절의 사람들은 이를 초상화를 대신하기도 했는데, 첫 번째로 살펴볼 화가 렘브란트는 인생의 분기점마다 자화상을 그려 그 족적을 남긴 것으로 유명합니다.



렘브란트, 자화상은 희로애락을 싣고

1. 자화상, 1629년작 2. 지팡이를 든 자화상, 1658년작
l 1. 자화상, 1629년작 2. 지팡이를 든 자화상, 1658년작

렘브란트는 젊은 시절부터 초상화로 유명한 화가였으며, 초기에는 연습을 위해 자화상을 그렸다고 합니다. 거울을 통해 다양한 표정을 지어 보이기도 하고, 거지로 분장하기도 했던 그는 요청으로 그린 그림은 자신의 생각과 재능을 마음대로 발휘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내면의 세계를 그리는 열쇠로 자기 자신을 택한 것이죠. 일생 동안 총 100여 점이 넘는 자화상을 그렸으며, 빛의 화가라는 명성에 걸맞게 자화상에서도 명암 기법이 돋보입니다. 특히 1629년에 그린 23세 때의 자화상은 별다른 효과 없이 명암의 강약조절만으로 인물의 감정까지 묘사해낸 수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편, 28세 때의 자화상은 옷의 주름과 질감 묘사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30대가 되어 인생의 전성기에 도달했을 때는 귀족의 옷을 입은 자신의 모습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656년에 파산을 겪으면서 소위 '잘 나가던' 화가 렘브란트의 부유했던 생활은 종지부를 찍게 됩니다. 1658년의 자화상에서는 왕실의 복장을 입고 있지만 얼굴에 자리한 우울은 쉽게 가려지지 않습니다. 생을 마감하기까지 10여 년 동안 그는 자화상에 더욱 몰두했으며, 노년의 자기 모습을 담담하고 섬세하게 묘사하였습니다. 마지막 해였던 1669년에는 두 점의 자화상을 남겼는데, 두 점 모두 고독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으며 냉소적일 정도로 사실 그 자체를 담고 있습니다. 파산 후 찾아온 경제적 위기와 더불어 아내의 죽음까지 말이죠. 반면 말년의 고통스러운 황혼기를 날것 그대로 그려낸 1665년의 <웃는 자화상>은 그동안의 사실주의적이고 균형 잡힌 초상화들에 비하면 붓의 터치도 거칠고 색채마저 단조롭습니다. 그럼에도 흐린 눈으로 자조하듯, 짙게 묻어 나오는 웃음이 시선을 사로잡아 그의 초상화 중 가장 주목 받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반 고흐, '나'를 들여다보며 키우는 예술의 깊이

3. 고갱을 위한 자화상, 1888년작 4. 자화상, 1889년작
l 3. 고갱을 위한 자화상, 1888년작 4. 자화상, 1889년작

화가들은 자화상을 그릴 때 대부분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을 화폭에 담아 정체성을 드러냈습니다. 혹은 렘브란트처럼 화려한 의상으로 높은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생전 43여 점에 이르는 자화상을 남긴 빈센트 반 고흐는 어땠을까요? 고흐는 자화상에 자신의 독특한 심리상태를 반영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중 1888년 고갱과의 교류를 기대하며 그린 <고갱을 위한 자화상>은 흔히 볼 수 있는 고흐의 자화상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짧게 깎은 머리에 광대뼈가 튀어나온 야윈 얼굴은 옥색의 배경 덕에 더욱 튀어 보이는 느낌을 줍니다. 슬프거나 우울한 것과는 약간 거리가 먼 묘한 표정이 고갱을 기다리던 설레는 마음과, 그가 오지 않을까 불안해했던 심리가 뒤죽박죽 섞여 있음을 알게 해줍니다. 자화상으로 이미 고갱과의 행복하지만은 않은 동거를 암시했던 것일까요. 많은 이들이 알다시피 얼마 가지 않아 고흐가 스스로 귀를 자르고 정신병원에 입원하면서 고갱과의 관계는 파국을 맞게 됩니다.

1889년의 작품 <자화상>은 그가 끊임없는 망상과 발작에 시달렸던 때 그려졌습니다. 정신병원에서 자화상이 6점이나 탄생했는데, 그중 가장 격렬한 감정을 표현한 이 그림에서 고흐는 평소 옷차림이 아니 단정한 양복을 입고 있습니다. 작품에 주로 쓰인 색채는 옅은 청록색으로 고흐의 머리와 수염에 쓰진 주황색과 보색대비 같은 효과를 줍니다. 이로 인해 주황색 머리카락은 더욱 강조되었습니다. 반 고흐 특유의 소용돌이무늬는 정신병원에 입원한 시기부터 주로 나타나며, 이는 그가 당시 겪고 있었던 고통과 불안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갈색이 주를 이루는 초기의 사실주의적 자화상에서부터 인상주의적 색채와 기법을 거쳐 자기만의 개성이 돋보이는 후기작에 이르기까지 많은 변화의 과정을 거쳐 자화상을 완성했습니다. 또한, 단순히 렘브란트 등 과거의 화가들로부터 받은 영향에만 그치지 않고, 예술을 향한 강한 욕망의 발현이나 기대, 우울 등 심리적인 요소를 그대로 자화상에 담고자 했습니다. 그는 자신조차 모르고 있던 자신의 모습, 모든 다양한 자아를 샅샅이 그려내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白戰不殆)'의 상태로 예술의 초극에 오르기 위해 수많은 자화상을 그렸습니다.

사물과 타인을 완벽히 이해하고 이를 자신만의 예술적 기준으로 담아내기 위해서는 먼저 화가 자신에 대한 성찰과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화가들에게 자화상이란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의 답인 동시에 자신을 표현하는 가장 첨예한 형태의 예술이었습니다.




 

글. 사진 백영주 (갤러리 ‘봄’ 관장)




▶ 현대파워텍 사보 파워텍사람들 2014년 9월+10월호에서 원문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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