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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와 인생의 미학에 대하여
권터 그라스2014/07/01by 현대자동차그룹

권터그라스가 쓴 것은 시였지만, 그 안에는 축구와 인생을 관통하는 법칙이,
그리고 그의 인생과 소설가로서의 삶, 그 모든 게 녹아있는 시대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있습니다.

독설가의 비판정신, 붓을 든 작가, 주홍글씨, 축구광
| 소설가이자 시인, 미술가 그리고 축구광이었던 귄터 그라스



‘공은 둥글다’는 귄터 그라스가 2006 독일 월드컵 때 쓴 축시의 제목이자 첫 문장입니다. 귄터 그라스는 2002 한일 월드컵 때도 축시를 써 개막식에서 낭송했는데요. 간결하고 함축적인 시는 관중들의 큰 환호를 받았습니다. 그가 쓴 것은 시였지만, 그 안에는 축구와 인생을 관통하는 법칙이, 그리고 그의 인생과 소설가로서의 삶, 그 모든 게 녹아있는 시대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있습니다.



독설가의 비판정신

귄터 그라스는 독일의 작가로 시집, 희곡, 소설 등 다방면의 작품을 써왔습니다. 직설적으로 시대를 비판하고 풍자해 온 그는 1959 년 발간된 <양철북>으로 199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지요. <양철북>의 주인공 오스카는 세 살 때 스스로 추락해 성장을 거부하고, 양철북을 두드리며 어른들의 세계에 저항합니다. 그라스는 ‘저항’과 ‘다른 시각’이라는 말로 오스카를 설명하는데, “나도 어렸을 때부터 오스카처럼 타인과는 다른 관점에서 세상을 관찰하고 비판하며 행동했다”고 말합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상처에 의해 성장이 멈춰버린 독일 시민들의 내면 세계를 그리며 ‘독일 문단의 양심’이라고 불려왔지요. 이스라엘 정부를 비판해 입국 금지 처분까지 받은 독설가이기도 한 그라스는 현 시대의 빈약한 비판 정신을 지적합니다. “현대사회는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정보를 갖고 있다. 비판할 기회도 그만큼 많아졌다. 그런데도 현대사회는 비판할 것을 제대로 비판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붓을 든 작가

그라스는 스스로를 ‘신중한 성격의 미술가이며 자수성가한 작가’라고 평합니다. 그는 광산에서 일하며 석공 기술을 배웠고, 1948년부터 4년간 뒤셀도르프(Dusseldorf) 미술대학에서 조각과 그래픽 아트를 공부했습니다. 공부가 끝난 뒤엔 암시장 거래, 묘비 제작, 재즈 드러머 등으로 활동하며 가난한 삶을 살았지요. 평생 목탄과 펜, 수채 용구를 놓지 않은 그는 드로잉과 함께 조각과 판화를 해 왔는데, 그리기와 글쓰기는 그의 삶을 유지해 온 두 개의 커다란 선이었습니다. 그려진 그림은 글로 쓰여졌고, 글에서 생산된 은유는 다시 그리기로 이어지며 두 영역은 끊임없이 교차했습니다. 그의 미술 작품은 대상에 대한 집착과 구체적인 비유로 압축됩니다.



주홍글씨

그라스는 회고록 <양파껍질을 벗기며>에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친위대에 복무한 사실을 털어놓으며 논란을 빚었습니다. 그는 그 동안 그저 “독일군에 복무했었다”라고만 말해오다 78살에 이르러서야 이 사실을 밝혔는데요, 문제는 귄터 그라스가 전후에 “나치 전력자는 고백해야 한다”고 촉구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정작 자신은 친위대 복무 전력에 대해 침묵했다는 사실에 독일 안팎이 뜨거워졌지요. 그런 사실이 진작 공개됐더라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지 못했을 것은 물론, 지금이라도 노벨 문학상을 자진 반납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그는 자신의 고백이 매우 늦은 것을 알고, 평생 자신을 괴롭힌 주홍글씨였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난을 역으로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나는 당시 그곳이 어떤 단체인지 몰랐고, 먹고 살기 위해 입대 했던 것뿐이다. 힘들고 무서운 시대였다. 요즘 사회에서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이 그 시절을 알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나를 평할 수 있는가”라고 말했습니다.



축구광

귄터 그라스는 국제적으로 유명한 축구 광팬입니다. 그는 2002 한일 월드컵 개막식에선 우리나라에 초청돼 축시를 낭송했고, 자국에서 열린 2006 독일 월드컵 땐 직접 축시를 썼습니다. 그 두 편의 시는 축구의 미학과 함께 귄터 그라스의 생애를 압축하고 있습니다.

밤의 경기장

천천히 축구공이 하늘로 떠올랐다.

그때 사람들은 꽉 찬 관중석을 보았다.

고독하게 시인은 골대 앞에 서 있었고,

심판은 호각을 불었다.

오프사이드.

-2002 한·일 월드컵 개막식에서의 낭송


공은 둥글다

공은 둥글다.

나의 공은 찌그러져 있다.

어렸을 때부터

누르고 또 눌렀지만

공은 한쪽으로만

둥그래지려고 한다.

- 2006 독일 월드컵에서의 축시



'한 쪽으로만 찌그러지는 공은 어쩌면 그라스의 마음을 무겁게 누르는 비밀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삶의 어떤 어려움이든 그의 작품 안에 녹아 들어 작품 세계를 풍부하게 해 준 것만 틀림없는 일이겠지요. 그런 점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모터스라인 2014 6월호에서 원문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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