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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과 광장으로
도시와 사람을 읽다2015/07/27by 이노션 월드와이드

광화문 광장과 시청 앞 광장 자주 가시나요?
당신이 모르는 광장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도시에는 그 안의 사람들의 삶이 반영됩니다
l 도시에는 그 안의 사람들의 삶이 반영됩니다



도시는 단순히 공간이나 건축물을 모아놓은 곳이 아닙니다. 도시는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반영되기 때문에 그들이 추구하는 욕망이 곳곳에 드러나기 마련이죠. 그럼 지금부터 어느 건축가의 인문적 시선을 따라 도시 공간의 속내를 읽어볼까요?



우리는 왜 골목길을 찾는가

골목이 친근한 이유는 왜일까요?
l 골목이 친근한 이유는 왜일까요?

바야흐로 골목길의 시대입니다. 홍대 앞이나 신사동 가로수길, 서촌, 성수동은 사람들로 넘쳐나죠. 연인과 데이트할 때 테헤란로를 걷기보다는 명동이나 홍대 앞 골목을 걷는 게 일반적이죠. 사람들은 왜 골목에 갈까요? 그 이유는 골목을 걸을 때 우리 자신이 권력을 가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다른 말로 풀면 나에게 선택권이 있다는 의미죠. 테헤란로 같은 대로는 20미터를 걸어야 입구가 하나 나옵니다. 그것도 우리와 상관없는 빌딩의 입구인 경우가 대부분이죠. 하지만 명동의 골목길은 5미터마다 하나씩 가게 입구가 나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가게를 들어갈 수도 있고 그냥 지나칠 수도 있고요. 걷는 사람에게 선택권이 주어진다는 것은 마치 여러 개의 채널이 있는 리모컨을 받는 것과 같습니다.

같은 속도로 걷는 사람이 많아서 골목은 더욱 편안하죠
l 같은 속도로 걷는 사람이 많아서 골목은 더욱 편안하죠

골목길이 더 푸근한 느낌을 주는 데는 공간의 속도도 한몫 합니다. 우리가 있는 공간은 비어 있는 공간입니다. 하지만 그 공간 속에 움직이는 물체의 운동에너지는 공간의 성격을 규정하죠. 같은 체적의 공간에 천천히 걷는 사람이 있는 경우와 빠르게 움직이는 자동차가 있는 경우는 공간이 주는 에너지가 다릅니다. 그래서 빠른 속도의 자동차가 대부분인 테헤란로보다는 우리와 비슷한 속도로 걷는 사람이 많은 거리를 선호하는 거죠. 거리에 사람이 앉아서 여유롭게 차를 마시는 데크가 있다면 공간의 속도는 더욱 떨어집니다. 골목길은 이렇게 인간에게 맞는 속도와 선택권을 줍니다.

골목은 우리의 삶을 담아내는 공간입니다
l 골목은 우리의 삶을 담아내는 공간입니다

골목은 과거 우리의 삶을 담아내는 기능을 하기도 합니다. ‘오너드라이브’ 시대가 오기 전에 골목길은 아이들의 놀이터, 혹은 골목에 사는 사람들이 담소를 나누는 장소였죠. 우리는 과거에는 골목길을 거실처럼 사용했습니다. 얼마 전 올림픽을 치른 중국은 북경의 골목길까지 잠옷을 입고 걸어 다니는 사람들로 걱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현상은 골목길이 그만큼 공동체의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아름다운 반증이기도 하죠. 우리도 과거에는 그랬으나 지금은 자동차 주차장으로 모두 내주고 말았습니다. 그러고는 자동차를 세우기 쉬운 아파트단지로 이사했죠. 자동차에 질린 우리는 다시 골목길을 찾습니다. 마치 고향을 다시 찾아가는 연어와 같이.



광화문 광장은 길일까, 광장일까

세종대왕님 이순신 장군님이 함께 사는 광화문은 서울의 대표 랜드마크입니다
l 세종대왕님 이순신 장군님이 함께 사는 광화문은 서울의 대표 랜드마크입니다

골목의 목적이 이동이라면 광장의 목적은 만남입니다. 똑같이 비어 있는 공간이지만 골목과 광장은 가로세로 비례가 다르죠. 골목길의 주요 목적은 이동에 있기 때문에 한쪽 방향으로 긴 모양입니다. 하지만 광장에서는 가로세로가 어느 정도 크기가 되어야 사람들이 서로 마주 보고 여러 방향성과 다양한 행위를 담아낼 수 있죠. 그래서 광장은 정방형의 모습이 많습니다. 광장은 공간의 모양 자체가 ‘운동방향의 다양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골목길에서는 사람이 계속 이동을 한다면 광장에서는 모여서 행동을 하기도 하죠 그래서 광장은 원래 가로세로가 비슷한 비례를 가지는 것이 보편적입니다.

광화문 광장은 원래 거리였습니다
l 광화문 광장은 원래 거리였습니다

하지만 현재 서울의 광화문 광장은 세로로 긴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흔히 유럽에서 보는 광장과는 거리가 멉니다. 광화문 광장은 사실 조선시대 때 만들어진 ‘육조거리’입니다. 태생적으로 광장이 아니고 거리였던 거죠. 그러던 것이 현대에 와서 자동차 도로를 크게 내었고, 이후에 광장으로 만들기 위해 차선을 줄이고 넓힌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도 역시 좌우의 큰 차선으로 막힌, 세로로 긴 빈 공간이죠. 그래서 지금의 세로로 긴 비례로는 제대로 광장의 기능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유럽에 광장이 발달한 이유

왜 우리나라에는 유럽과 같은 광장이 없을까요?
l 왜 우리나라에는 유럽과 같은 광장이 없을까요?

광장은 기본적으로 도시에 존재합니다. 시골에 있는 빈 공간을 광장이라 부르지는 않죠. 도시의 발생이 유럽에 비해 늦은 우리나라에 오래된 광장이 부족한 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유럽은 왜 광장이 발달했을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건축공사장의 측면에서 그 이유를 찾아보겠습니다.

유럽은 광장 문화가 많이 발달했습니다
l 유럽은 광장 문화가 많이 발달했습니다

유럽의 도시는 대부분 대형 성당이 있고, 그 앞에 광장이 있습니다. 로마에 가면 성베드로 성당 앞에 큰 광장이 있고, 밀라노에 가도 밀라노 대성당 앞에 광장이 있죠. 계획보다는 자연발생적으로 도시가 형성되던 시절의 모습을 우리는 이렇게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성당 같이 돌로 만든 대형 건축물을 짓기 위해 채석장에서 떼어온 돌을 다듬고 부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을 겁니다. 자연스럽게 건축물 앞에 그런 작업장이 들어섰을 테고요. 그리고 거기서 일하는 인부들을 위해 각종 숙소와 음식점이 그 주변으로 들어섰을 것입니다. 공사가 다 완공되면 작업장은 비워지고 그 주변으로 집과 음식점은 그대로 남아 있게 되죠. 그래서 지금도 유럽의 광장은 주변에 카페와 음식점, 집이 빼곡히 들어선 형태를 띠고 있는 겁니다.



사람이 중심이 되는 도시

우리나라도 이런 광장 하나쯤 있으면 좋겠죠?
l 우리나라도 이런 광장 하나쯤 있으면 좋겠죠?

우리나라에서 가장 활발하게 사용되는 광장은 서울시청 앞 광장일 겁니다. 하지만 조금 아쉬움이 있어요. 유럽의 광장은 크고 작은 것들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로마에는 성 베드로 성당 앞의 큰 광장부터 마을 곳곳에 분수가 들어가 있는 작은 광장까지 다양하죠. 한 시대를 이끈 도시들은 자신들만의 독특한 발명을 했는데, 로마의 경우에는 시골의 풍부한 물을 애퀴덕트를 이용해서 로마 시내로 공급하고 모든 사람이 분수에서 물을 풍족하게 쓸 수 있게 해준 것입니다. 이것이 세계최초의 상수도 시스템이죠. 그래서 분수가 있는 동네 광장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서 다양한 일상을 담아냅니다다. 이런 광장은 일종의 우물가라고 봐야 하죠. 로마의 나보나 광장은 과거 경기장으로 사용되던 공간이라서 세로로 길지만 베르니니가 디자인한 유명한 분수들이 들어서면서 시민의 삶을 담아내는 세계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 됐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광장을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l 우리나라에서도 광장을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시청 앞 광장은 시민의 일상을 담아내기보다는 축구경기 단체관람, 스케이트장, 시위 현장으로 주로 사용됩니다. 광장이 일상의 공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 사는 곳과 격리되어서 정치적인 중심지에만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면 우리 일상의 주거공간에는 광장이 많아요. 바로 학교 운동장이죠. 하늘에서 바라보면 마블링이 잘된 꽃등심처럼 학교 운동장은 도시 속에 잘 박혀 있습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하교 후 빈 학교 운동장을 우리는 잘 이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도시설계를 다시 할 수 있다면 우리는 학교 운동장 주변으로 건전한 상업공간을 배치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주변의 문방구, 서점, 카페, 식당에 있는 사람들이 안전한 학교로 만들 거예요. 그리고 밤이 되면 빈 운동장은 아름다운 공동체를 위한 공간이 될 테죠. 상상해보세요. 낮에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뛰노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도시를. 아름답지 않은가요?



글. 유현준 (홍익대 건축대학 교수,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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