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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도쿄, 뉴욕 골목의 비밀
골목이 문화를 말하다2015/07/30by 이노션 월드와이드

여행을 계획 중이신가요? 광장이 아닌 골목을 들러보는 게 어떨까요?
그곳이 바로 문화의 발상지이니까요

세기의 뮤지션 비틀즈도 시작은 골목에서였습니다
l 세기의 뮤지션 비틀즈도 시작은 골목에서였습니다



파리 에펠탑과 샹젤리제 대로, 뉴욕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과 5번가의 명품 거리, 도쿄 시부야 109 빌딩과 오다이바 쇼핑몰까지, 그 도시의 이름을 들을 때 많은 사람이 떠올리는 곳들이죠. 그런데 어떤 이들은 전혀 다른 곳들을 기억합니다. 파리 복개통로의 만화 서점, 뉴욕 윌리엄스버그의 구제 옷 가게, 도쿄 나카메구로 천변의 카우북스 서점. 이런 곳들을 기억하는 이들은 거대한 광장, 빌딩, 대로에 가려져 있는 작은 골목의 매력에 빠졌던 거죠.



골목의 문화, 광장으로 나오다

애비로드 횡단보도를 건너는 비틀즈의 모습입니다 ⓒlain MacMillan
l 애비로드 횡단보도를 건너는 비틀즈의 모습입니다 ⓒlain MacMillan

영국 리버풀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다 보면 한적한 주택가를 지나게 됩니다. 운이 좋다면 페니 레인(Penny Lane)이라는 표지판을 발견할 수 있죠. 1950년대 후반, 이곳엔 기타를 둘러멘 십대 소년들이 모여들곤 했습니다. 하나는 폴, 다른 하나는 존. 둘은 ‘페니 레인’이라는 노래로 그 골목길을 기억합니다. ‘자신이 머리를 깎아준 사람들의 사진을 자랑하는 이발사’라든지 ‘비가 와도 비옷을 입지 않는 이상한 은행원’이라든지. 소년들은 근처 교회당에서 처음 만나 밴드를 만들었고, 함께 버스를 타고 리버풀 시내에 있는 캐번 클럽에서 공연했죠. 그들은 몇 년 뒤 밴드의 이름을 비틀즈(Beatles)라고 짓게 됩니다. 비틀즈가 런던의 애비로드 횡단보도에서 그 유명한 앨범 사진을 찍기 전에 페니 레인과 캐번 클럽이 있었습니다. 그저 무대에 올라 연주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고맙기 그지없던 골목 시절이었죠. 롤링 스톤즈, 핑크 플로이드, 너바나 등 전설적인 록 밴드들 모두 마찬가지였습니다. 골목의 클럽이 그들을 맞아주지 않았다면, 수만 명 앞에서 펼쳐지는 절정의 연주는 존재할 수 없었죠.



영화에도 골목은 있다

<저수지의 개들>의 영화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입니다
l <저수지의 개들>의 영화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입니다

영화는 좀 다르죠. 기본적으로 큰 예산이 들어가는 문화상품입니다. 그럼에도 영화에 골목이 없는 것은 아니죠. 이소룡의 <용쟁호투>와 실베스터 스탤론의 <록키>는 영화사에 빛나는 흥행작이자 대중문화의 아이콘입니다. 그런데 처음 영화가 제작될 때는 투자자들의 관심 밖이었고, 100만 달러가 될까 말까 하는 저예산으로 만들어졌죠. 대신 주연 배우들은 기획과 각본부터 참여해 영화를 자신의 분신처럼 만들어냈고, 그 결과 수억 달러의 수익과 세계적인 스타라는 명예를 얻게 되었습니다.

<천국보다 낯선> 영화 감독 짐 자무시입니다
l <천국보다 낯선> 영화 감독 짐 자무시입니다

1985년 배우 로버트 레드포드가 주축이 되어 만든 ‘선댄스 영화제’는 이런 골목길의 작은 영화, 저예산과 독립영화를 위한 잔치입니다.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실력을 갖춘 여러 감독이 이 영화제를 통해 자신의 솜씨를 선보일 기회를 얻었죠. <파리, 텍사스>의 빔 벤더스, <저수지의 개들>의 쿠엔틴 타란티노, <천국보다 낯선>의 짐 자무시가 대표적인 주인공들입니다. 최근의 화제작인 <위플래쉬>는 골목의 영화가 광장으로 진출하는 과정을 잘 보여줍니다. 처음 다미엔 차젤레 감독이 이 영화의 각본을 들고 돌아다녔을 때는 너무 극단적인 소재였기에 투자를 받기가 어려웠다고 하죠. 그래서 그는 2013년 선댄스에 세 가지 신을 담은 단편 버전을 먼저 선보이고 심사위원상을 받았습니다. 이후 다시 투자를 받아 장편 영화를 만들었고, 이듬해 선댄스에서 심사위원 대상과 관객상을 받아냈죠.



문화, 경계를 넘나들다

강제 골목 탈출에 성공한 싸이가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습니다
l 강제 골목 탈출에 성공한 싸이가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습니다

가수 싸이가 ?강남스타일’의 인기를 통해 세계적인 스타가 된 현상을 두고 우스개로 ‘강제 해외진출’이라고 말합니다. 어쩌면 그는 강제 골목 탈출을 이룬 것일지도 모르죠. 그가 한국 시장에서는 메이저에 속하는 가수임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유튜브에서 그를 처음 본 외국인들에게는 괴상한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통통한 아시아인 가수일 뿐이죠. 골목길에서 만난 신기한 녀석이 갑자기 그 도시의 가장 높은 빌딩의 정상에 오르게 된 것입니다. 거기에는 마이너한 취향에 대한 대중들의 높아진 관심이 중요하게 작용했습니다. 유튜브나 SNS와 같은 새로운 유통 경로는 골목 귀퉁이의 문화가 순식간에 메이저의 왕좌에 오르는 일을 가능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골목의 문화가 상대적으로 침체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중에서 극소수가 갑자기 초대형 콘텐츠가 될 가능성도 생겨나고 있죠. 그만큼 골목과 광장 문화의 역관계가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골목과 광장의 적대적 공생관계

골목과 광장은 상호 수혈의 운명을 갖고 있습니다
l 골목과 광장은 상호 수혈의 운명을 갖고 있습니다

문화의 골목은 천재의 골방과도 다르고, 메이저 기획사가 주도하는 오디션과도 다릅니다. 그 중간의 어디쯤에 있죠. 또한 문화의 골목은 한적한 시골길이 아닙니다. 도심의 어딘가, 광장에 내리쬐는 햇살을 살짝 벗어난 어느 곳에 있습니다. 골목의 예술가는 항상 대로를 지나치며 거기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있죠. 그래서 그들과 다른 무엇을 열렬히 추구하지만, 또 그 영향을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광장을 지배하는 메이저들은 또한 수시로 골목길에 들어서 새로운 무언가를 찾기 위해 애씁니다. 골목과 광장의 바로 이 적대적 공생관계, 서로의 피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상호 수혈의 운명이 우리의 문화를 만들고 있는 것이죠.



글. 이명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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