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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드림의 비밀
미국대륙횡단 철도가 가져온 신세계2016/08/01by 현대로템

횡단철도의 등장으로 강대륙으로 성장 가도를 달리게 된
미국의 역사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기차가 지나가는 건널목
l 250년의 짧은 역사를 가진 미국은 어떻게 강대국이 되었을까요?



1776년 북아메리카에 새로운 나라가 탄생했습니다. 유럽에서 온 이주민들은 영국의 간섭에서 벗어나겠다고 총을 들었죠. 영국의 앙숙인 프랑스는 기꺼이 지원에 나섰습니다. 이주민들이 독립전쟁이라고 부른 대결을 끝내고 세운 나라는 바로 미국이었습니다.



동서횡단철도 청사진은 링컨에서부터

에이브러햄 링컨
l 미대륙횡단철도의 숨은 공신은 바로 미국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이었습니다

유럽은 물론 아시아와 남아메리카에서까지 많은 이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이민선을 탔습니다. 미국에 첫발을 내린 사람들은 보스턴과 뉴욕, 필라델피아와 워싱턴을 중심으로 한 동부지역으로 몰려들었습니다. 몰려올수록 이들의 개척지나 거주지는 확장됐고 서부에 황금이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사람들은 북아메리카 전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동부의 여기저기를 이어주는 철도를 본 사람들은 열차를 타고 서부로 가는 상상을 했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동서를 연결하는 철도를 구상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중에는 풋내기 변호사 시절부터 철도 관련 변호를 해온 정치인도 있었습니다. 그는 동서횡단철도가 신생국 아메리카를 대국으로 발돋움시키는 견인차가 될 것을 예상했습니다. 이 정치인이 16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로 지명된 에이브러햄 링컨이었습니다.

독립전쟁을 치르고 난 미국에는 새로운 갈등이 퍼지고 있었습니다. 산업적 이해관계가 다른 남과 북의 대립이었죠. 상공업을 주산업으로 하는 북부와 대농장 위주의 농업 생산이 중심인 남부는 작은 발화점만 있으면 폭발할 준비가 되어있었습니다. 그리고 링컨의 대통령 당선은 다이너마이트의 심지에 불을 붙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남부의 대농장들은 흑인 노예들의 노동력을 기반으로 유지됐고, 농장주들은 링컨의 노예해방 정책이 남부를 몰락시키려는 음모라고 간주했습니다. 1861년 4월 12일, 링컨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겠다며 연방을 탈퇴한 남부와 연방을 수호하자며 결집한 북부의 전쟁이 시작됐습니다.



미대륙횡단철도의 숨은 공신, 중국인 이주민

미대륙횡단철도 공사 모습
l 1860년대 센트럴 퍼시픽 철도와 유니언 퍼시픽 철도는 중국과 아일랜드 노동자 집단을 고용해 철로를 건설했습니다

그리고 1861년 6월 전쟁의 혼란 한 가운데에서 새로운 회사가 출범했습니다. 서부의 사업가 4명이 의기투합해 만든 회사의 이름은 ‘센트럴 퍼시픽 철도(Central pacific Railroad, 이하 CP)’였습니다. 서부에서 동부로 향하는 대륙횡단철도의 건설을 책임진 회사였습니다. CP 설립 당시 의회나 캘리포니아 주 당국, 호사가들은 CP의 계획을 허황된 망상이라며 비아냥거렸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캘리포니아 바로 앞에 구름을 뚫고 서 있는 시에라네바다 산맥을 넘어 동부로 향하는 철도를 놓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돈맛을 본 상인들이 투자자들을 현혹해 한탕 해먹으려는 속셈이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CP는 시에라네바다라는 거인의 몸속으로 두 갈래 철길을 놓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위험하고 힘든 철도 공사 현장에 그 누구도 발을 들여놓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하루 이틀 공사에 나갔다가 손을 든 노동자들이 허다했습니다.

이때 구원투수로 등장한 사람들은 캘리포니아에서 밑바닥 삶을 살았던 중국인 이주민들이었습니다. 노동 강도가 높기로 악명 높은 철도공사 현장에서 중국인 노동자들은 놀랄만한 인내력과 더 놀랄만한 저임금을 감수하고 시에라네바다 산맥에 개미떼처럼 매달렸습니다. 절벽을 깎아 선로를 놓아야 하는 난공사 앞에서 CP의 기술진들이 손을 놓고 있을 때 중국인 기술자 한 명이 찾아와 새로운 제안을 했습니다. 중국인 조상들이 양쯔강 요새를 만들 때 썼던 방법으로, 절벽 위쪽에서 갈대를 엮은 바구니를 내리면 그 안에 화약을 가진 중국인 노동자가 선로 부설 지점에 정으로 구멍을 뚫고 화약을 설치한 후 불을 붙였습니다. 바구니 안의 중국인 노동자는 절벽 위로 큰소리를 질러 줄을 당기게 했습니다. 사력을 다해 올려진 바구니 안에는 하얀 돌먼지를 뒤집어쓴 중국인 노동자의 검은 눈동자만 보였습니다. 여러 가지 원인으로 가끔씩 바구니에 연결된 끈만 끌어올려 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바구니 채 폭발로 날아간 노동자는 시에라네바다 산맥 골자기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동부에서 시작되는 철도를 담당한 회사는 ‘유니언 퍼시픽 레일로드(Union Pacific Railroad, 이하 UP)’였습니다. UP의 건설에 나선 노동자들은 대기근의 땅이었던 아일랜드에서 이민선을 탄 사람들이었습니다. 가난한 아일랜드 이주자들은 선택의 여지 없이 철도건설 현장을 찾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로비스트’의 기원이 된 철도회사들

골든 스파이크를 박는 모습
l 유타 주에서 두 철도가 만나 미국 최초의 대륙횡단 철도를 이루었습니다

CP와 UP의 경영진들은 워싱턴 정가에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철도 건설 회사에 더 많은 보조금과 이권을 줄 수 있도록 의원들을 설득해야 했죠. 백악관에서 두 블록 떨어진 윌러드 호텔(Willard Hotel) 로비에는 철도회사에서 파견된 사람들이 신발이 닳도록 들락거렸습니다. 정치인들을 매수하기 위해서였는데, 이들을 호텔 로비에서 어슬렁거렸다는 의미로 로비스트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로비스트의 첫 기원은 철도 회사들이었습니다.

1865년 북부의 승리로 남북전쟁이 끝나자 대륙횡단철도 건설은 활기를 띠었습니다. 동쪽과 서쪽에서 쉴 새 없이 선로가 놓였죠. CP와 UP는 상대방 보다 더 많은 선로를 놓기 위해 사력을 다했습니다. 부설 선로 길이에 따른 정부보조금과 선로 주변을 연방정부로부터 불하받는 조건에서 더 많은 선로를 놓을수록 더 많은 땅을 차지하게 되었기 때문이었죠. 이 과정에서 또 다른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아메리카는 유럽인들이 규정한 것과 달리 신대륙이 아니었습니다. 인도와는 아무 상관 없이 인디언이라고 불린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철도가 부설됨에 따라 삶의 터전을 잃게 되었습니다. 남북전쟁의 영웅 셔먼 장군은 철도건설을 방해하는 원주민을 소탕하라는 북군 총사령관 그랜트 장군의 명령을 저돌적으로 수행하며 아메리카 원주민 살육 작전에 매진하였고 원주민들의 공동체는 철저하게 파괴되었습니다.

1869년 5월 10일 유타주 포트몬트리 언덕 위에서 동서 양쪽에서 전진해온 철길이 드디어 만나게 되었습니다. CP의 중국인 노동자들과 UP의 아일랜드 노동자들이 선로 연결지점을 둘러쌌습니다. 두 회사의 경영진들과 정치인들이 모였고 연결을 상징하는 의식인 골든 스파이크를 박는 마지막 퍼포먼스가 벌어졌습니다. 이때 CP와 UP의 경영진 사이에 서로 마지막 해머를 들겠다고 싸움이 붙어 1시간이 넘는 설전이 벌어졌습니다. 결국, CP의 사인방 중의 하나인 리랜드 스탠퍼드가 골든 스파이크를 박아 대륙횡단철도의 신기원을 열었습니다.



대륙횡단철도의 수혜자, 카네기와 모건

Morgan Stanley
l 미대륙횡단철도의 완공으로 강철왕 카네기와 은행가 모건이 큰 혜택을 얻었습니다

대륙횡단철도가 완공되자 이 노선과 연결되는 지선이 앞다투어 건설됐습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수개월을 걸려야 했던 길을 철마가 1주일이면 주파할 수 있게 되자 미국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신세계로 나아갔습니다. 철강 산업이 쑥쑥 커나갔고 주식회사의 인수 합병에 따라 금융기관도 성장했습니다. 강철왕 카네기와 은행가 모건은 그 수혜자였습니다. 철도망을 이용해 정유공장들이 수익을 올렸고 록펠러는 이것을 바탕으로 미국 석유 산업계의 막강한 지배자가 되었습니다. CP의 사장 스탠퍼드는 막대한 부를 챙겼지만 1884년 외아들을 장티푸스로 잃었습니다. 스탠퍼드는 아들을 추모하며 자신이 가진 부를 사회에 환원하겠다며 아들 이름을 따 리랜드 스탠퍼드 주니어 대학(Leland Stanford Junior University)을 세웠습니다. 오늘 날 스탠퍼드 대학으로 부르는 미 서부 최고의 명문대학은 대륙횡단철도가 낳은 것이었습니다.

한국인 최초로 미대륙횡단철도를 탄 사람은 유길준이었습니다. 1882년 조미통상수호조약 체결 후 미국의 방문 요청에 따라 사신단의 일원으로 캘리포니아에서 동부로 가는 열차를 탄 유길준은 자신이 쓴 서유견문에 대륙횡단열차에 대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기운을 잃은 왕조의 젊은 공무원은 눈앞에 펼쳐진 신세계를 보며 무력감과 도전의식의 양극단을 오갔을 것입니다.



글. 박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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