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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스포츠가 패션을 바꾼 순간들2016/08/26by 이노션 월드와이드

192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스포츠와 패션의 변천사를 살펴봤습니다

나이키 로고가 박힌 옷을 입고 있는 모델의 모습
l 스포츠가 패션을 바꾼 순간들을 소개합니다



스포츠와 패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두 가지 모두 우리 몸에 관련된 것이니까요. 특히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스포츠는 패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 중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19세기에만 해도 스포츠와 패션은 거리가 멀었습니다. 으스러질 만큼 갈비뼈를 조이던 코르셋을 떠올려보면 알 수 있는데요. 1백 년의 시간을 지나 비로소 만난 스포츠와 패션의 관계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왜 시작되었을까요?



1920년대, 스포츠를 위해 코르셋을 벗어 던지다

테니스 선수 수잔 랭글런의 모습
l 1920년대에는 테니스 선수 수잔 랭글런과 장 파투, 가브리엘 샤넬이 패션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19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윔블던 대회에서 6차례 우승을 거머쥔 테니스 선수 수잔 랭글런은 뛰어난 실력만큼이나 파격적인 패션 감각으로 많은 이목을 끌었습니다. 1921년 경기장에 선 그녀는 감귤색 헤어밴드를 두르고,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흰색 실크 주름 원피스에 단추가 달린 민소매 스웨터를 걸치고, 매듭 무늬 스타킹을 신은 차림이었습니다. 테니스 코트를 이리저리 오가기에 불편하지 않을 만큼 편안하지만, 품위를 잃지 않은 세련된 옷차림이었죠.

이는 바로 장 파투가 디자인한 의상이었는데요. 테니스 웨어의 성공과 함께 장 파투는 이내 스포츠웨어를 다루는 부티크를 파리와 도빌에 개점해 테니스, 골프, 요트, 승마, 항공 의상을 선보였습니다. 장 파투는 자신의 부티크 ‘르 쿠앙 데 스포츠’에서 로고를 처음 의상에 도입하고 니트 소재의 비키니를 선보였죠.

이 시기에 ‘가브리엘 코코 샤넬’은 상류층이 즐겨 찾던 프랑스 북부의 휴양도시 도빌에서 영감을 받은 리조트 웨어를 선보입니다. 흰색과 감청색의 단순한 줄무늬 상의에 통이 넓은 바지를 매치한 ‘도빌 패션’ 그리고 ‘비아리츠 패션’인데요. 스포츠웨어와 여가생활을 향한 샤넬의 관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1924년의 발레 공연 〈푸른 기차〉에서 의상을 담당한 샤넬은 저지 소재 수영복, 그리고 대담한 프린트의 스웨터에 양말을 매치한 골프웨어 등을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1950년대, 신소재 발명으로 꽃 피운 스포츠웨어

윌리 보그너 스키웨어 화보
l 1930년대 이후, 윌리 보그너는 스키웨어를 론칭하며 인조섬유 시대를 선도했습니다

‘석탄, 물, 공기로 만든 기적 같은 신소재의 탄생. 거미줄보다 가늘지만 강철보다 강하고, 비단보다 우수하다.’ 1938년 10월, 나일론의 탄생을 알리기 위해 미국 학회사 듀폰이 신문에 낸 광고입니다. 실크처럼 부드럽지만 내구성이 뛰어난 나일론과 레이온은 신축성을 보완하는 라텍스와 라이크라 등과 함께 인조섬유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스키 선수 출신의 윌리 보그너는 새롭게 열린 인조섬유 시대를 선도했습니다. 1930년대 올림픽 스키 종목의 각종 메달을 휩쓸던 그는 1932년 스키웨어를 론칭, 울과 나일론을 혼방해 스트레치성이 우수한 스키 바지를 선보였습니다.

하지만 보그너의 의류 사업이 본격적으로 꽃을 피운 건 전쟁 후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50년대, 여가 생활로 스포츠를 즐기는 인구가 증가하면서 기능성이 뛰어난 스포츠웨어의 수요 또한 증가한 것입니다. 마릴린 먼로와 제인 맨스필드, 잉글리드 버그만 등 유명 여배우들이 앞다투어 보그너의 홍보대사로 나섰는데요. 당시 보그너는 1950년 뉴햄프셔에서 론칭한 헤드, 1952년 침낭과 방수 소재 점퍼를 선보인 몽클레르와 함께 신소재 발명으로 불붙은 스포츠웨어 열풍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1980년대, 일상에 들어온 스포츠웨어

나이키 신발
l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스포츠는 일상 속으로 깊게 파고들었습니다

1980년대에는 세계적으로 스포츠 관람은 물론, 직접 참여하는 스포츠도 득세했죠. 우리나라도 상황은 비슷했습니다. 1982년 출범한 프로야구를 시작으로 축구, 씨름, 배구, 농구 등 프로리그가 등장했고, 1986년 열린 서울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열린 서울 올림픽이 스포츠 열기를 가속화했습니다. 스포츠와 건강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스포츠웨어로 이어졌습니다. 트레이닝복은 교복 자율화 아래 일상복이 되었고, 이와 함께 스포츠 브랜드의 인기가 하늘을 찔렀습니다.

1981년 한국에 론칭한 나이키는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적 스포츠 열기의 핵심에 있었는데, 여기엔 조던 시리즈의 성공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1985년, 마이클 조던은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에 자신의 이름을 딴 농구화를 만들자고 제안했습니다. 이를 수락한 나이키는 기존 모델인 ‘덩크’와 비슷한 형태로 ‘에어 조던 1’을 만들었습니다. 공중에 뛰어올라 덩크 슛을 날리는 마이클 조던의 모습을 형상화한 ‘점프맨’과 함께 에어 조던 시리즈는 큰 인기를 끌었고, 2007년까지 22종의 모델을 선보였습니다. 120년 농구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선수로 평가받는 마이클 조던은 조던 시리즈의 성공과 함께 스포츠 마케팅 분야도 개척했습니다.



2010년대, 기능과 실용의 스포츠웨어를 등에 업은 패션

나이키 로고가 박힌 옷을 입고 있는 모델의 모습
l 2010년대에는 애슬레저(Athleisure) 트렌드가 자리잡았습니다

애초에 패션과 스포츠는 양립할 수 없는 관계에 있었습니다. 19세기엔 패션을 위해 건강을 희생해야 했고, 20세기엔 스포츠를 하려면 패셔너블함은 어느 정도 포기해야 했죠. 이런 양상은 21세기에 접어들어 변화를 맞았습니다. 물과 기름처럼 보이던 패션과 스포츠가 진정한 공생 관계를 맺게 된 것입니다.

‘애슬레저(Athleisure)’ 트렌드는 그 현상을 엿볼 수 있는 키워드입니다. 애슬레틱(Athletic: 운동 경기)과 레저(Leisure: 여가)를 합성한 단어 ‘애슬레저’는 스포츠의 일상화를 상징하는 단어로, 스포츠웨어 특유의 기능성을 일상에 입는 캐주얼웨어에 적용한 것이 특징입니다. 나이키나 아디다스 같은 스포츠 브랜드들이 지금 가장 잘나가는 패션 디자이너들과 매 시즌 선보이는 컬래버레이션 라인이 그 예입니다.

두 사람이 나이키 신발을 신고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
l 나이키는 ‘나이키 랩’이라는 이름 아래 적극적으로 애슬레저 트렌드를 이끌고 있습니다

나이키는 사카이의 치토세 아베, 발맹의 올리비에 루스테잉, 지방시의 리카르도 티시, 언더커버의 준 타카하시, 루이 비통의 킴 존스와의 컬래버레이션을 선보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샤넬, 에르메스, 디올 같은 하이패션 브랜드의 패션쇼에서 스니커즈를 매칭한 차림을 찾아보는 것 또한 예삿일이 되었죠. 스포츠웨어와의 크로스오버 현상은 캐주얼웨어의 범주를 넘어 포멀웨어에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수트는 스니커즈에 매치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폭이 좁고 짧아졌으며, 스니커즈는 모노톤의 수트에 어울려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단순하고 점잖아졌죠. 사무실 내에서 타이를 착용하지 않아도 되면서 티셔츠 또는 반바지로 완성한 수트 차림까지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움직임은 스포츠웨어 특유의 기능성을 일상의 의상에 접목해 보다 편안한 착용감을 선사하기 위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시대의 흐름과 함께 변화한 패션 속에서 스포츠의 흔적을 파헤쳐보고, 스포츠를 향한 인식이 어떻게 변했는지 알아봤습니다. 시대가 변할 때마다 아름다움과 가치의 기준은 달라졌는데요. 그 변화상을 관찰하기에 패션만큼 적합한 것도 없을 것입니다. 칼 라거펠트는 ‘패션은 단지 옷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모든 종류의 변화에 관한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앞으로 스포츠와 패션은 어떤 관계를 유지하며 변화하게 될까요?



글. 이선영 (패션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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