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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돌담길 옆 정동길에 자리잡은
120년 역사를 가진 이화학당 심슨기념관2016/10/05by 현대자동차

우리나라 최초 여학교, 이화학당
그 곳의 역사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심슨기념관
l 정동길에 위치한 심슨기념관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덕수궁 돌담길과 연결된 정동길은 오래된 벽돌 건물들이 모여 있어 고즈넉한 정취가 더욱 짙습니다. 좁은 가로수길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최초의 교회, 오래된 신문사, 대한제국 황실 도서관, 옛 러시아 공관을 만납니다. 그 중에는 최초의 여학교도 있습니다. 100년 전에도 존재했던 건물들로 이 길의 풍경이 선연합니다.



낡음의 아름다움

심슨기념관의 복도
l 멀리서 여학생이 걸어 올 것 같은 심슨기념관의 복도입니다

체코인 모험가인 엔리케 스탄코 브라즈는 1901년 5월 한 달간 서울에서 머물렀습니다. 중국과 시베리아, 일본을 거쳐 가는 여정이었습니다. 황제국을 선포한 지 4년을 맞은 대한제국의 수도는 한창 변모하고 있었습니다. 브라즈는 극동의 거리 곳곳에 카메라를 들이댔습니다. 도로를 정비하느라 파헤쳐진 길 너머로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모시는 환구단이 보이길래 찰칵. 촘촘하게 세워진 전신주 사이로 쓰개치마를 쓴 여성이 걸어가니 그것이 재미있어서 찰칵. 무엇이 그리도 신기해 보였을까요? 브라즈는 전신주를 설치하는 공사 현장에 구름 떼처럼 모여든 서울 양반들에게도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들 너머로는 아름다운 산자락이 겹겹이 펼쳐집니다.

아프리카에서 극동 아시아까지 진귀한 삶의 현장을 직접 누볐던 브라즈. 그는 서울의 5월이 너무도 아름다워 깊은 감명을 받았다는 글을 남겼습니다. 지천으로 핀 꽃과 나무들의 향기, 온화한 봄바람은 여행자의 두 다리에 날개를 달아주었습니다. 브라즈는 높은 양반가의 화려한 한옥 꾸밈새도 엿보고, 선교사들의 학교와 병원도 찾았습니다. 그는 한복 입고 댕기를 드리운 소녀들이 한옥에 모여 서책을 읽는 장면도 목격했습니다. 사진에는 얌전히 모여 앉은 소녀들의 진지한 태도와 그들을 바라보는 서양 여성들의 온화함까지도 표현되어 있습니다. 짙은색 드레스 차림의 여성 선교사들은 한옥에서 생활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였습니다.



봄꽃 날리던 날, 이화학당의 풍경

이화학당의 소녀들
l 100여 년 전, 이화학당 소녀들은 싱그러운 모습으로 심슨기념관을 누볐을 것입니다

브라즈의 사진은 이화학당의 초기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소녀들이야말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여성 교육을 받은 특별한 존재들이었습니다.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되자 소녀들에게는 불가능한 것이 없어졌습니다. 의사도, 작가도, 예술가도 될 수 있었습니다. 바다를 건너 유학을 가고, 새로운 세상과 만나 교류할 수 있었으며, 강단에 서게 되었습니다. 배움은 소녀들을 상상하게 했고, 시대는 그 상상을 이루게 했습니다. 대한제국 시기에 신식 교육을 위해 관립 기관을 다수 세우고 운영하기는 했지만, 여성 교육을 주체적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시초는 미국 감리교 여선교사인 스크랜턴 부인이 1886년에 문을 연 이화학당입니다. 스크랜턴 부인이 머물던 한옥에서 영어를 배워 황후의 통역사가 되겠다는 포부를 가진 한 명의 소녀가 입학하면서 여성교육이 시작되었습니다. 왕실에서 하사한 푸른 글자의 ‘梨花 學堂(이화 학당)’ 현판이 걸리자 학교의 위상도 높아졌습니다. 서양식 학교를 짓고 초등부(보통과)에서 대학부까지 교육 체계를 완성해가면서 여성 교육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화학당은 보구여관(保救女館)이라는 여성 전문 병원도 세웠습니다.

이때의 여학교는 재미난 풍경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큰소리로 읊는 서당 풍경이 익숙한 소녀들은 책을 읽을 때도 묵독이 아니라 큰소리로 낭독했고, 남자 교사가 들어오면 뒤돌아 앉거나 멀찍이 앉았습니다. 1899년에는 외출이 자유롭지 않던 관습을 깨고 함께 꽃놀이를 나갔습니다. 다시 10년이 더 흐르자 운동회를 개최하여 여학생들이 서로 경주를 펼치고 경쟁하는 모습이 공개되었습니다. 강산이 두 번 바뀔 시간이 흐른 뒤에야 여학생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고 그들도 사회 변화를 이끄는 자리에 서게 됩니다.



꽃잎처럼 붉은 마음을 담은 건물

심슨기념관 내 옛날식 교실
l 심슨기념관 내 옛날식 교실은 여학생들이 공부했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이화학당이 있던 정동 32번지는 호젓한 정동길에서 새문안로로 향해 가다 보면 등장합니다. 이화학당의 유서를 지금은 이화여고가 이어받았습니다. 학교에 이르면 담 너머로 붉은 벽돌 건물이 먼저 반깁니다. 학교 박물관으로 사용되는 심슨기념관으로 1915년에 세워진 건물입니다. 스크랜턴 부인의 한옥 사택에서 시작된 이화학당은 곧이어 학생과 교사를 수용할 한옥을 여러 채 지었습니다. 그러나 학생 수가 늘어 그마저도 부족해지자 한옥을 허물고 붉은 벽돌로 서양식 학교를 지었습니다. 1897년 본관(메인 홀)이 세워졌고, 1900년에는 선교사의 숙소가, 1915년에는 심슨기념관이 세워져 보통과를 위한 교사(校舍)가 되었습니다. 학교의 규모는 계속 커졌습니다. 1917년에 는 심슨기념관 맞은편의 손탁호텔을 매입해 대학 교사로 사용했다가 허물고 1923년에 프라이홀을 세웠습니다.

건물은 서양식 벽돌 건축이었고, 새로운 건축은 새로운 기운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다만 메인 홀은 한국전쟁 중, 프라이홀은 1975년 화재로 사라져 심슨기념관은 이화학당의상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학교의 역사를 증언하는 이 마지막 건물은 등록문화재 제3호로 보호받고 있습니다. 건물은 미국 감리교 여선교부 산하 콜럼비아 리버 지부의 미스 홀브룩의 기부금으로 지어졌습니다. 홀브룩의 여동생 사라 심슨(Sarah J. Simpson)을 기리고자 한 기부자의 의도에 따라 건물은 ‘심슨기념관(Simpson Memorial Hall)’으로 명명되었습니다.

단정한 학교의 모양새를 한 이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4층의 건물로 아치 모양 창문과 화강석 키스톤이 붉은 벽돌에 꽃잎을 뿌린 것처럼 장식적입니다. 입구에 들어서면 복도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교실이 구성된 형태입니다. 이화학당 당시 여학교의 역사를 보여주는 사진 자료와 옛 교실처럼 재현한 전시실이 있습니다. 야무진 표정으로 카메라를 향해 찍은 100년 전 여학생들의 사진은 묘한 감동을 줍니다. 옛 건물의 정취에 빠질 찰나, 가장 위층 특별활동실에서 여고생들이 오가는 게 보입니다. 가벼운 발걸음과 잔잔한 웃음. 120년이라는 역사의 무게감이 여학생의 풋풋함과 설렘으로 꽃잎처럼 가벼워졌습니다.



글. 최예선(문화 칼럼니스트, 〈청춘남녀, 백 년 전 세상을 탐하다〉 저자
사진. 안현지
일러스트. 한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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