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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보면 이야기가 들린다!
명화 속에 숨겨진 이야기2017/01/19by 현대모비스

알고 보면 더 멋진 명화 감상,
그림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캔버스에 그려진 추상화
l 그림에는 많은 의미와 상징이 담겨있습니다



그림은 보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여인들이나 멋진 풍경을 보노라면 눈이 호사롭고, 맛있는 음식을 그린 그림들은 즐거운 상상을 불러일으키며, 이해하기 어려운 추상화는 생각거리를 줍니다. 한편 역사가 담긴 그림들도 있습니다. 중요한 사건을 그림으로 남긴 기록화가 대표적인데요, 그런 그림들을 보면 그림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나 당대의 시대적 배경 등을 헤아리게 됩니다. 여기서 소개할 명화는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담은 작품들입니다. 과연 어떤 사건이 담겨 있는지, 그림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 봅시다.



동방을 제패한 알렉산더 대왕의 이수스 전투

폼페이 유적의 이수스 전투도
l 폼페이 유적의 이수스 전투도입니다

이 그림은 모자이크 벽화로, 여기저기 칠이 벗겨진 만큼 상당히 오래된 것으로 보입니다. 무려 기원전 4세기 로마 시대에 그려진 벽화죠. 그나마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마의 도시 폼페이)로 오랜 세월 땅속에 묻혀 19세기에 발굴될 때까지 공기의 접촉이 없어 제법 원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처음 그려졌을 당시에는 매우 화려했을 것입니다.

이 명화는 기원전 333년 벌어진 이수스 전투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수스 전투는 아시아 대륙 서쪽 끝에 있던 이수스에서 알렉산더 대왕과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3세 간에 벌어진 전투입니다. 알렉산더는 전투에서 이겼고, 페르시아를 마침내 정복할 수 있었습니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는 서른이 채 안 된 나이에 세계의 절반을 차지한 ‘대왕’이었습니다. 몽골제국의 칭기즈 칸이 나타나기 전까지 알렉산더 제국만큼 넓은 영토를 다스린 왕국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 세계를 평정한 알렉산더가 다음으로 넘어야 할 산은 페르시아였습니다. 동방을 제패하고 있던 페르시아를 점령하면 서방에 이어 동방까지, 세계를 정복하게 되는 셈이었죠.

하지만 대제국 페르시아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군사력도 막강해서 10만 대군이나 거느리고 있었고, 다리우스 3세는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50대의 노장이었습니다. 그런데 불과 스물셋의 알렉산더가 맞선 것이죠. 승패는 뻔했지만 예상을 뒤엎고 알렉산더가 승리를 거머쥐었습니다. 그는 용맹하기도 했지만 전략을 매우 잘 구사했습니다. 페르시아를 점령한 알렉산더는 항상 꿈꿔오던 동서양의 융합을 추진했습니다. 스스로 페르시아 공주와 결혼하는 한편, 군사들에게도 페르시아 여인과의 결혼을 장려하였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33세에 죽고 말았고 그 뒤 알렉산더 제국은 그의 신하들에 의해 3등분 되었습니다.



신대륙에 첫발을 내디딘 콜럼버스의 대발견

신대륙에 상륙한 콜롬버스를 그린 명화
l 콜럼버스는 오랜 항해 끝에 신대륙에 상륙했습니다

그림 속 한 남자가 무릎을 꿇고 앉아 감격에 겨워하고 있습니다. 이 남자는 대체 누굴까요? 바로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입니다. 그는 1492년 10월 12일, 세 척의 배를 이끌고 오늘날 미국의 플로리다 주 남쪽 해안가의 바하마 제도에 도착했습니다.

지도 제작자로 명성을 날리던 콜럼버스는 항상 옆구리에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을 끼고 다녔습니다. 그는 동방견문록을 읽으며 마르코 폴로처럼 중국의 황제를 만나는 자신을 꿈꿨습니다. 당시 유럽 사람들이 가장 멀다고 여긴 나라는 중국과 일본이었습니다. 유럽 사람들 생각에 이곳은 비단과 향료, 황금이 넘쳐나는 나라였습니다. 콜럼버스는 일본으로 가서 막대한 황금을 거머쥐겠다는 꿈에 부풀었고, 거기에 한 가지 더, 부르는 게 값이었던 향신료에 대한 유혹도 컸습니다. 향신료는 인도와 동남아시아 나라들에서 나는데 유럽은 그 나라들과 직접 교역을 할 수 없었습니다. 중간에 아랍 제국이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유럽 나라들은 직접 동방의 나라와 교역할 ‘길’을 찾으려 혈안이 돼 있었고, 그것이 유럽이 새로운 바닷길 탐험에 나서게 된 중대한 계기였습니다.

부와 명예를 얻고 싶었던 콜럼버스는 대서양을 가로질러 가면 지구의 반대편인 ‘황금의 나라’ 일본과 ‘향신료의 나라’ 인도에 도달할 거로 생각했습니다. 지도를 제작하면서 바닷길에 대한 지식이 풍부했으므로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에스파냐의 이사벨 여왕의 후원을 받아 항해를 나서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가 도착한 곳은 일본도 아니고 인도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사람들에게는 처음으로 알려진 신대륙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많은 탐험가가 신대륙으로 건너갔고 식민지로 삼으면서, 유럽 제국주의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한류의 원조, 조선통신사

일본으로 가는 조선통신사 행렬도
l 일본으로 가는 조선통신사 행렬도입니다

이 그림은 조선 시대 일본으로 파견된 조선통신사 행렬도입니다. 의자에 앉은 화려한 옷차림의 사람은 조선의 관리이고, 수많은 일본 사람이 수행원으로 따르고 있습니다. 그를 제법 격식 있게 모신 것으로 보아 일본에서 조선통신사를 귀히 여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통신사는 조선 시대에 일본으로 정기적으로 파견한 외교사절입니다. 1428년 처음 방문한 이래 임진왜란으로 국교가 단절되기 전 200여 년 동안 12회 정도 파견되었습니다. 당시 조선의 문화가 일본보다 우위에 있었기 때문에 일본 사람들은 그들로부터 선진 문물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환대할 수밖에 없었죠. 통신사들은 상당한 양의 선진 문물을 가지고 왔습니다. 행렬도의 다른 부분에 보면, 통신사가 가져온 수많은 짐을 짊어진 일본 사람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통신사는 문물뿐 아니라 의원, 화가, 인쇄공, 악공, 미술, 의술, 예능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도 데려갔는데 이들이 조선의 수준 높은 문화를 일본에 전했습니다.

한양에서 출발한 통신사 일행은 부산까지 가서 배를 타고 대마도에 갔습니다. 그러면 대마도주를 비롯한 일본의 관료들이 성대하게 맞이했고, 거기서부터 다시 호위를 받으며 에도 성으로 들어갔습니다. 에도 성에서 막부의 고관들과 각 지방의 성주가 참석한 자리에서 국서를 전달하고 막부가 베푼 연회에 참석했습니다. 이때 에도 성까지의 통신사 행렬은 그야말로 장관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통신사가 머문 숙소에는 수행원들로부터 글과 글씨를 받기 위해 몰려든 군중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그들이 남긴 서화, 시문, 글씨 등은 병풍이나 판화로 만들어져 널리 유행되었습니다. 이처럼 통신사들이 오가면 일본에 조선 붐이 일었고, 일본의 문화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즉 통신사는 문화 전파사였던 셈이죠.

위의 세 명화에서 살펴보듯이 그림은 단순한 감상을 넘어 역사적 지식을 전달해줍니다. 시대적인 분위기와 함께 사건을 유추해볼 수 있는 단서를 주며 내가 알고 있던 지식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줍니다. 이것이 바로 그림의 또 다른 매력입니다.



글. 이여신 『그림으로 들어간 사람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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