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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황제가 커피를 마신 그곳의 비밀
대한제국의 숨결이 느껴지는 덕수궁 정관헌2016/08/08by 현대자동차

한국식과 서양식 건축의 콜라보레이션
덕수궁 정관헌에서 마주한 역사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정관헌 테라스의 모습
l 정관헌은 화려하고 정교한 테라스 장식과 배흘림 양식 기둥이 조화를 이룬 건축물입니다



덕수궁 정관헌은 서양 건축 양식과 한국 전통 색채가 어우러져 섬세하면서도 화려한 건물입니다. 임금이 연회를 즐긴 장소이자 왕실 행사를 치르던 곳, 그리고 한때 태조, 고종, 순종의 영정과 어진(임금의 초상화)을 모셔두기도 했던 정관헌. 그곳에는 어떤 역사적 비밀이 숨어 있을까요?



조선에 양관을 지은 러시아 건축가

구러시아 공사관
l 구러시아 공사관을 지은 건축가 사바친은 대한제국 시기 궁궐 양관을 지은 인물입니다

러시아 건축가 아파나시 세레딘 사바친이 인천항에 내린 것은 1883년 9월이었습니다. 외국인의 왕래와 무역을 장려하고자 개방한 항구 주변의 개항장은 은자의 나라에 상륙하려는 외국인과 상선에서 짐을 하역하는 조선인으로 늘 아수라장이었습니다. 고작 스물세 살의 청년 사바친은 조선 궁궐 안에 서양식 건물을 짓는 임무로 조선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해관(세관) 관할 업무직 가운데 영조교사 자격으로 제물포에 정착했습니다. 영조교사는 토목건축과 관련한 업무를 수행하는 직책으로 이전까지 존재하지 않던 자리였습니다. 서양식 건축에 대한 정보도, 지식도 없던 조선에서 외국인 건축가가 궁궐을 짓는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습니다.

조선에 들어온 지 8년이 지난 1891년, 비로소 사바친에게 양관을 지으라는 어명이 내려왔습니다. 경복궁 건청궁 앞에 있던 관문각을 이층 양관으로 고쳐 짓는 일이었습니다. 순조롭지 않은 공사 과정으로 한국인 기술자들과 불화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인천, 부산, 목포, 마산지역 개항장을 비롯해 서울 곳곳에 서양식 건축물이 들어서고, 먹고 입는 모든 분야에 조선에 없던 것들이 물밀어 들어오는 시절이었으나 집을, 그것도 임금이 사는 궁궐 전각을 양관으로 고쳐 짓는 일은 결코 간단한 작업이 아니었습니다.



서양풍 건축의 각축장, 덕수궁

덕수궁
l 대한제국 시기 덕수궁은 대대적인 정비로 여러 양관이 지어졌습니다

1897년 대한제국이 선포된 후 국가체제는 서양식 관제를 공식적으로 사용했고, 궁궐 내 의식주는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대한제국의 정궁인 경운궁(현 덕수궁)도 대대적인 정비에 들어갔습니다. 러시아 출신 건축가 사바친의 활약이 시작되었죠. 1900년 전후로 6~7채의 양관을 한꺼번에 지었는데, 러시아 건축 특색과 중국 상하이 등 개항장 건축 형식을 담아 화려하게 장식한 건축물이 덕수궁 안에 자리 잡았습니다. 돈덕전, 환벽전 등 사바친이 세운 궁궐 양관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대부분 사라졌으며 중명전(수옥헌)과 정관헌, 두 채만 남았습니다.

사바친의 건물은 중세풍의 뾰족탑과 경사 지붕, 발코니가 있는 정교한 붉은 벽돌 건물이었습니다. 궁궐 양관 외에도 손탁호텔, 러시아공사관, 제물포구락부 등 사바친이 지은 건축물은 모두 서양식을 따랐으며 그 중 한국적 색채와 구조, 상징을 접목한 건축물은 오직 정관헌뿐입니다. 사라진 건축물이 지금까지 남아있었다면 덕수궁 풍경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입니다. 동편의 전통 전각들과 서편의 서양풍 건축물의 대범한 만남을 직접 목격하면서 영원한 제국을 꿈꾸던 시절을 회상할 수 있었겠지요.

정관헌 테라스 상부 장식
l 조선 왕실 문양인 자두꽃이 자수처럼 새겨진 테라스 상부 장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정관헌은 세 방면이 훤히 열린 누정(樓亭)과 같은 곳으로, 덕수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 가운데 하나입니다. 덕수궁의 북쪽 경사지에 자리 잡아 앞에 있는 함녕전과 보기 좋게 자란 후정의 소나무들을 내려다보는 맛이 쏠쏠합니다. 배흘림 양식의 기둥 열두 개는 자못 웅장하며 푸른색으로 칠한 테라스의 목재 기둥은 얇고 섬세한 한편, 화려하게 채색된 전통적 모티프가 눈에 띕니다.

‘낙양’이라 부르는 테라스의 상부 장식을 보면 코린트(Corinth) 양식의 목재기둥 위로 왕실문양인 자두꽃(옛 오얏꽃)이 새초롬하게 펼쳐지고, 그 위로 모란이 담긴 청자 화분과 상서로운 당초문이 자수를 놓은 것처럼 아름답습니다. 황금색으로 칠한 난간에는 소나무와 사슴이 있고 그 주변으로 박쥐가 놓였습니다. 왕실 번영을 기원하는 상서로운 상징물이 두드러지게 표현된 것 또한 정관헌의 특징입니다



비밀스러운 정관헌의 두 모습

관람객이 쉬어갈 수 있는 정관헌 테라스
l 정관헌에는 관람객이 쉬어갈 수 있도록 테이블이 마련돼 있습니다

정관헌은 고종이 외교관이나 접빈객을 맞았던 곳으로, 커피를 마시고 다과를 즐기던 장소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는 1920년대 이후 신문에 등장하는 기록이며 당대 사용법은 조금 달랐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은 정관헌에 대해 어진을 봉안하고 진찬례 같은 왕실 행사를 치르던 곳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종은 정관헌으로 화가를 불러 자신을 그리게 하기도 했습니다. 어진을 보관하거나 그리는 장소였다면 지금처럼 삼면이 트인 정자 형태는 적합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문화재청에서 발행한 <기록화보고서>에 1930년대 이전 촬영한 정관헌의 사진이 실려 있는데, 벽돌로 벽을 세우고 창문을 낸 완전한 건물 형태입니다. 덕수궁이 시민공원으로 개방될 때인 1938년 무렵 촬영한 사진에서는 지금처럼 배흘림기둥이 드러난 정자 형태의 건물입니다. 1900년 완공된 정관헌의 지난 116년간 역사를 보면, 사면이 막힌 완전한 건물로 존재하던 시절과 삼면이 열린 정자 형태로 존재하던 시절로 나뉩니다.

역사에는 기록되지 않은 것이 더욱 많죠. 과연 정관헌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요? 왕실 초상화로 가득한 엄정한 장소에서 화가와 독대하던 임금을 떠올려봅니다. 특별한 사람과 은밀하게 만날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지금 정관헌에는 관람객이 잠시 쉬어갈 수 있도록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고 때때로 커피를 마시며 명사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행사도 열립니다. 하지만 이 장소를 지나칠 때면 고종이 마시던 뜨겁고 검은 액체처럼 은밀한 이야기들이 흘러나오는 것만 같습니다.



글, 사진. 최예선(문화 칼럼니스트, <청춘남녀, 백 년 전 세상을 탐하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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