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

킨들, 디지털 읽기, 카드 뉴스
무엇이 우리를 읽게 만들까?2015/06/25by 이노션 월드와이드

디지털 콘텐츠에서 중요한 건
플랫폼이 아니라 스토리텔링!

“(킨들은) 느긋하게 책장 넘기는 재미를 만끽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아마존
l “(킨들은) 느긋하게 책장 넘기는 재미를 만끽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아마존



1년 전 이맘때 킨들을 하나 구매했습니다. 구입하자마자 ‘킨들 마니아’가 됐죠. 아이패드 미니에 킨들 앱을 깔아서 읽을 때와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무게부터 가독성까지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전자책 리더기’ 킨들의 장점이 두드러졌습니다. 그 전에도 아마존에서 원서를 구입해서 읽을 일이 적지 않은 터라 구입 비용에서 배송 기간 절약까지 장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요.



“다양한 전자책 리더기가 등장하면서 종이책을 올드 미디어로 살짝 폄하하기도 합니다”
l “다양한 전자책 리더기가 등장하면서 종이책을 올드 미디어로 살짝 폄하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몇 달을 킨들에 푹 빠져 지냈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킨들 기기 값은 벌써 뽑았다”고 자랑하고 다니기도 했죠. 하지만 킨들과의 뜨거운 연애 기간이 끝나가면서 조금씩 불편한 점이 눈에 띄기 시작했습니다. 링크로 연결된 각주와 사전 및 메모 기능 등 편리한 점은 많았지만, 정작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망을 채울 길이 없었죠. 느긋하게 책장 넘기는 재미를 만끽하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킨들 사용 경험을 통해 디지털 시대의 읽기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갖게 됐는데요. 그러면서 우리가 디지털 읽기에 대해 쉽게 오해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쓰기/읽기와 관련해 우리가 빠지기 쉬운 오해 중 하나가 바로 ‘텍스트=선형성’ ‘하이퍼텍스트=비선형성’라는 이분법입니다.

“종이책이 선형적 독서라 느낀다면 그건 소설이나 에세이류처럼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들에 대한 기억 때문일 것입니다”
l “종이책이 선형적 독서라 느낀다면 그건 소설이나 에세이류처럼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들에 대한 기억 때문일 것입니다”

한번 따져보죠. 과연 우리는 종이책을 읽을 때 선형적으로 접근할까요? 무심코 “그렇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찬찬히 한번 생각해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죠. 멀리 갈 것도 없습니다. 학교 다닐 때 공부하던 기억을 한번 떠올려보면 됩니다.

여러분 중에 대학 교재를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다 읽은 사람이 있으신가요? 혹시 그런 경험이 있다면, 교수나 연구직에 종사하고 있을 가능성이 많다는 데 한 표 던집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종이책=선형적인 독서’라는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는 걸까요? 그건 대부분 소설이나 에세이류처럼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들에 대한 기억 때문일 것입니다.

해리 포터 시리즈 같은 소설이나 흥미진진한 무협지를 잡았다면 대부분 책장 뒤적이지 않고 끝까지 읽어 내려갈 것입니다. 반면 전공 서적이나 골치 아픈 사회과학 서적을 손에 잡게 되면 심심찮게 뒤로 뒤적이죠. 언제쯤 한 챕터가 끝날지 궁금하기도 하고, 또 ‘게으른 선비 책장만 넘긴다’는 속담처럼, 계속 읽는 것이 귀찮고 성가신 생각이 들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이퍼링크로 연결된 뉴미디어가 생각만큼 자유로운 인터페이스를 제공해준 건 아니라는 얘기죠”
l “하이퍼링크로 연결된 뉴미디어가 생각만큼 자유로운 인터페이스를 제공해준 건 아니라는 얘기죠”

이 대목에서 질문을 한번 던져볼 수 있습니다. 선형적 독서를 추동하는 것은 종이란 매체일까요? 아니면 그 안에 담긴 콘텐츠일까요? 종이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콘텐츠가 선형적인 독서를 이끄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킨들과 종이책을 모두 이용해본 경험에 따르면 오히려 킨들을 읽을 때 더 선형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종이책은 이리저리 뒤적이는 게 큰 부담이 없었지만, 킨들은 조금 부담스러웠다. 하이퍼링크로 연결된 뉴미디어라는 게 생각만큼 자유로운 인터페이스를 제공해준 건 아니라는 얘기죠.

더 중요한 건 콘텐츠와 플랫폼의 상관 관계에 대한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다는 점. 이 대목에서 국내 주요 미디어들의 고민거리와 연결해볼 수 있습니다. 국내외 주요 미디어들의 공통된 고민 중 하나는 모바일 전략인데요. 모바일에 최적화된 콘텐츠가 무엇인지를 놓고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카드 뉴스는 그런 고민 끝에 나온 스토리텔링 방식 중 하나죠. 실제로 카드 뉴스는 페이스북 같은 SNS나 포털 등에서 제법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카드뉴스=모바일 전용 콘텐츠’라는 인식이 상당히 강하게 배어 있는 것이죠.

“카드 뉴스가 많은 사랑을 받는 건 모바일 전용 콘텐츠이기 때문은 아닙니다” ⓒSBS뉴스
l “카드 뉴스가 많은 사랑을 받는 건 모바일 전용 콘텐츠이기 때문은 아닙니다” ⓒSBS뉴스

여기서 이런 질문을 한번 던져봅니다. 카드 뉴스는 모바일 전용 콘텐츠일까요? 또 카드 뉴스가 인기를 끄는 것이 모바일에 최적화된 때문일까요? 이 질문에 대해선 흔쾌히 “예”라고 대답하진 못하겠습니다. 절반 정도만 공감하기 때문인데요. 카드 뉴스가 모바일 플랫폼과 잘 맞는 건 맞습니다. 특히 스마트폰 플랫폼에서 한 장 한 장 넘겨가면서 읽기엔 딱 적합하죠. 하지만 카드 뉴스가 많은 사랑을 받는 건 모바일 전용 콘텐츠이기 때문은 아닙니다.

뻔한 얘기지만, 카드 뉴스에 담긴 스토리가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카드 뉴스라고 해서 무조건 스마트폰을 비롯한 모바일 기기 이용자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의미죠. EBS에서 한때 인기 끈 <지식채널 e>도 따지고 보면 카드 뉴스입니다. 당시 <지식채널 e>를 열심히 본 것은 형식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재미있었기 때문에 일삼아 찾아서 봤죠. 그 때 처음 알았습니다. 동영상 대신 사진에 텍스트로 재미있는 설명을 붙여서 연속적으로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매력적인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형식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안에 담긴 내용이라는 사실을.

“플랫폼보다 더 중요한 건 스토리텔링입니다”
l “플랫폼보다 더 중요한 건 스토리텔링입니다”

다시 처음 얘기로 돌아가봅시다. 살짝 야하면서도 흥미진진한 추리 소설은 어떤 매체에 담아놔도 술술 잘 읽힙니다. 물론 플랫폼 특성을 완전히 무시할 순 없죠. 당연한 얘기지만 스마트폰 같은 작은 화면에선 지리한 긴 글을 읽는 건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리한 긴 글은, 설사 종이 매체에 담아놓더라도 잘 안 읽히죠. 따라서 선형적 독서와 비선형적 독서를 추동하는 가장 큰 요인은 ‘플랫폼’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콘텐츠’라는 결론을 자연스럽게 도출해낼 수 있습니다.

자, 이제 글을 맺습니다. 카드 뉴스가 유행하면서 너도나도 비슷한 형식을 쏟아내고 있는데요. 좋은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모바일 친화적인 콘텐츠로 권장할 만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형식만 따라 하는 카드 뉴스는 오히려 읽기만 더 힘듭니다. ‘카드’ 뉴스보다 더 중요한 건 카드 ‘뉴스’이기 때문입니다. 흔히 하는 얘기로 플랫폼보다 더 중요한 건 스토리텔링입니다.



글. 김익현 (기자, 지디넷코리아 미디어연구소장)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