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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으로 덮인 문화와 삶의 공간
무한 상상이 현실이 되다2015/03/13by 현대제철

오래된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은
유럽의 금속건축물을 소개합니다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Jean Nouvel)이 디자인한 스위스의 ‘루체른 문화컨벤션센터’
l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Jean Nouvel)이 디자인한 스위스의 ‘루체른 문화컨벤션센터’



하나의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현실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실천력과 더불어 재료 또한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건축에서 창조적인 발상과 실천력을 겸비한 이가 건축가라면,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건축 자재입니다. 돌, 나무, 흙과 달리 금속은 그 특유의 성질로 인해 창조의 가능성이 무한합니다. 여기 금속 재료로 인해 아주 색다른 조형미와 기능성을 갖게 된 건축물들을 소개합니다.



도시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유럽의 건축물들

독특한 형태와 소재의 문화컨벤션센터는 루체른시의 정체성을 담아낸 건축물입니다
l 독특한 형태와 소재의 문화컨벤션센터는 루체른시의 정체성을 담아낸 건축물입니다

유럽이 매력적인 이유는 숨 막힐 정도로 웅장한 고전 건축물이 도시 곳곳에 즐비하기 때문이죠. 그뿐만 아니라, 시기마다 끊임없이 시대를 대표하는 현대 건축물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유럽의 많은 도시들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거대한 역사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현대 건축물은 독특한 형태나 재료뿐만 아니라, 도시 발전을 위한 건강한 담론까지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습니다.

1998년 스위스 루체른에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Jean Nouvel)이 디자인한 ‘루체른 문화컨벤션센터(Kultur und Kongresszentrum Luzern)’와 최근 로테르담에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설계사무소인 엠브이알디브이(MVRDV)가 디자인한 ‘로테르담 마켓홀(Markthal Rotterdam)’은 현대 건축물을 통해 끊임없이 진화하면서 풍요로운 도시환경을 창조하는 유럽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좋은 사례입니다. 두 건축물은 전혀 다른 조건과 특성을 지녔지만, 단순히 새로움만을 추구하지 않고 기존 도시가 지닌 역사적 맥락과 장점을 극대화하면서 도시의 정체성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습니다. 또한 철을 창의적이고 혁신적으로 활용해 새로운 공간과 이미지를 창출한다는 방법적인 측면에서도 유사합니다.



루체른 호수를 은은하게 밝히는 음악의 전당

1,840석 규모를 자랑하는 루체른 문화컨벤션센터의 콘서트홀
l 1,840석 규모를 자랑하는 루체른 문화컨벤션센터의 콘서트홀

‘루체른’은 ‘베른’과 ‘취리히’의 명성에 가려져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사실 오래전부터 스위스 최대의 관광도시로 손꼽혀왔습니다. 8세기, 대성당과 수도원이 건립되면서부터 아름다운 대자연과 어우러진 전통 마을이 조성되어온 만큼, 루체른은 유럽의 어떤 도시보다 수려한 경관을 자랑합니다. 도시에 최근 획기적인 변화가 생겼는데요. 바로 문화컨벤션센터가 완공된 것이죠. 전체 인구가 6만여 명인 작은 도시인 루체른은 무려 1,600억 원을 투자해 문화컨벤션센터를 건립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발상이 가능했을까요?

우선 루체른 시민들의 음악에 대한 강한 자존심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1866년 낭만파를 대표하는 독일의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가 루체른에 정착한 이후, 유럽을 대표하는 많은 음악인이 이곳을 찾아 연주회를 개최했습니다. 특히 1938년 바그너가 살던 집에서 열린 갈라 콘서트에서 비롯된 ‘루체른 페스티벌’은 이탈리아의 명지휘자인 아르투로 토스카니니(Arturo Toscanini)가 첫 주자로 그 이름을 높인 이래 발전을 거듭하며 세계적인 음악가들이 모이는 행사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런 까닭에 21세기를 앞두고 새로운 도약을 모색하던 루체른 시는 세계를 놀라게 할 만한 문화컨벤션센터를 건립하기로 계획했고, 시민들은 그 성공을 확신했습니다.

6층의 철골구조로 건립된 루체른 문화컨벤션센터 내부
l 6층의 철골구조로 건립된 루체른 문화컨벤션센터 내부

장 누벨이 디자인한 건축물은 루체른 호수와 맞닿은 아름다운 부지에 자리 잡고 있는데 파격적인 규모와 형태를 지니고 있습니다. 철골로 건립된 6층 건물은 콘서트홀, 컨벤션센터, 오디토리엄, 그리고 박물관이라는 각기 다른 성격의 공간을 하나의 거대하지만 날렵한 철제 지붕이 덮고 있습니다. 무려 가로 110미터, 세로 103미터의 크기로, 지붕 아래쪽은 알루미늄판으로 처리되어 있습니다. 철골 빔이 골조로 사용되고, 날개 쪽 45미터가 캔틸레버(Cantilever, 한쪽 끝이 고정되고 다른 끝은 받쳐지지 않은 상태로 되어 있는 보)로 처리되어 지상으로부터 23미터 높이의 공간이 기둥 없이 탄생한 것이죠. 이 공간은 마치 루체른 호수를 조망하기 위해 설치된 거대한 텐트 같습니다.

매끈한 알루미늄판은 날씨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루체른 호수와 도시의 경관을 아름답게 투영합니다. 엄청난 규모임에도 불구하고 지붕은 극도로 단순하고 날렵한 형태로 주변을 압도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룹니다. 밤이 되면 그 진가가 한껏 드러납니다. 조명을 받은 알루미늄판이 은은하고 따뜻한 빛을 호수로 발산하기 때문이죠. 거대한 은빛 지붕으로 덮인 문화컨벤션센터와 은은한 물빛을 머금은 루체른 호수, 그리고 멀리 보이는 알프스가 어우러져 그 자체로 아름다운 한 폭의 풍경화가 완성됩니다.



주거 공간과 재래시장의 현대적 재해석

네덜란드 로테르담 재래시장을 새롭게 재조명한 엠브이알디브이(MVRDV)의 ‘로테르담 마켓홀’
l 네덜란드 로테르담 재래시장을 새롭게 재조명한 엠브이알디브이(MVRDV)의 ‘로테르담 마켓홀’

유럽에서 건축적으로 가장 실험적인 도시를 하나 꼽는다면 아마도 로테르담이 아닐까요. 유럽 최대의 무역항인 로테르담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폭격으로 거의 폐허가 된 상태에서 치열한 재건 작업을 통해 현대 도시로 거듭났습니다. 네덜란드 건축가협회를 포함해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로테르담에서 활동 중이고, 그에 걸맞게 시대를 선도하는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건축물이 도시에 가득합니다. 이런 로테르담에 지난 수십 년 동안 건립된 수많은 현대 건축의 대작들을 넘어서는 파격적인 건축물이 최근 완공되었는데요. 엠브이알디브이가 설계한 마켓홀이 그 주인공입니다. 로테르담 시내 중심부의 블라크 광장에 들어선 마켓홀은 높이 40미터, 길이 165미터의 거대한 터널 안에 재래시장을 조성하는 전무후무한 프로젝트였습니다.

거대한 말발굽처럼 생긴 아치형의 건물에는 288채의 아파트가 들어서 있고, 그 안쪽에는 재래시장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주거 공간과 재래시장을 합쳐 유례없는 주상복합공간을 조성한 것입니다. 안쪽에 자리한 아파트에서는 창을 통해 재래시장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고, 반대로 바깥쪽 아파트에서는 도시를 조망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한, 저층부에는 상가와 식당을 포함한 각종 편의 시설을 들임으로써 재래시장과 현대식 백화점의 장점을 모두 살려놓았습니다. 그야말로 현대판 재래시장과 마을을 탄생시킨 것입니다.

화가 아르노 코에넨과 이리스 로스캄이 함께 그린 로테르담 마켓홀 벽화 ‘코르누코피아’
l 화가 아르노 코에넨과 이리스 로스캄이 함께 그린 로테르담 마켓홀 벽화 ‘코르누코피아’

그 중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우아한 곡선으로 이루어진 내벽입니다. 특수 코팅 처리된 4,000개의 알루미늄 패널로 마감한 내벽은 그 자체로 거대한 캔버스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화가 아르노 코에넨(Arno Coenen)과 이리스 로스캄(Iris Roskam)의 공동 작품인 ‘코르누코피아(Cornucopia)’, 즉 ‘풍요의 뿔’이 마치 완성된 퍼즐처럼 그려져 있습니다. 알루미늄 패널에 고온으로 프린팅해 그림을 입히는 혁신적인 공법으로 완성된 이 벽화는 17세기 네덜란드의 정물화를 참조한 것이라고 합니다. 밝고 경쾌한 그림으로 뒤덮인 내벽은 재래시장에서 판매하는 고기, 생선, 야채를 더욱 신선하게 보이게 합니다. 로테르담 마켓홀은 세계 최대 규모인 이 벽화로 인해 벌써 ‘로테르담의 시스티나 성당(Sistine Chapel of Rotterdam)’이라는 영광스러운 별명을 얻었는데요. 벽화가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만큼이나 근사하기 때문이죠.



무한한 창조의 가능성을 품은 금속

거대한 말발굽을 연상시키는 아치형의 건축물은 로테르담의 랜드마크가 되었습니다
l 거대한 말발굽을 연상시키는 아치형의 건축물은 로테르담의 랜드마크가 되었습니다

루체른 문화컨벤션센터에서는 비엔나 필하모니, 베를린 필하모니, 뉴욕 필하모니, 시카고 심포니 등 세계 최정상 오케스트라의 연주회가 일 년 내내 개최됩니다. 이로써 루체른은 명실공히 유럽을 넘어 세계적인 음악 도시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로테르담 마켓홀은 이미 완공 전부터 많은 관심과 기대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유럽에서도 점차 사라져 가는 재래시장을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통해 현대적으로 되살린 것은 단순한 건축적 성공을 넘어 사회, 문화적 성공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루체른 문화컨벤션센터와 로테르담 마켓홀은 지붕과 내벽을 마감한 알루미늄이 먼저 눈에 들어오지만, 이를 가능케 만든 것은 한계를 넘어선 철골구조의 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철이 창조적 건축의 중심에 있음을 다시 한 번 입증하는 셈이죠. 창조적인 건축 자재로서 철의 진화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글,사진. 김정후 도시사회학 박사 (런던대학UCL)
참고자료. www.kkl-luzern.ch, www.markthalrotterdam.n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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