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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시의 과학
건축부터 생존까지2015/05/26by 현대자동차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게 모두 진짜일까요?
우리 일상에 숨어있는 착시의 비밀을 알려드립니다

우리 눈은 2차원을 보면서도 3차원으로 받아들입니다
l 우리 눈은 2차원을 보면서도 3차원으로 받아들입니다



우리의 눈을 한번 생각해보세요. 눈으로 정보가 들어오고, 망막에 상이 맺힙니다. 그 이미지를 뇌가 분석해 보고 있는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망막이 2차원의 벽이라는 점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눈으로 보는 것을 3차원으로 받아들입니다. 그 과정에서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나죠. 대부분은 성공적으로 재구성하지만, 실수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착시입니다.



경험을 통해 판단하는 뇌

실제 수직선 길이는 같지만 화살표의 방향 때문에 한쪽이 더 길어 보이는 뮐러-라이어 착시
l 실제 수직선 길이는 같지만 화살표의 방향 때문에 한쪽이 더 길어 보이는 뮐러-라이어 착시

아주 유명한 착시 사례 중 하나가 뮐러-라이어 착시(위 이미지)입니다. 두 개의 선이 나란히 놓여 있고, 각 선의 끝에는 방향이 서로 다른 화살표가 그려져 있습니다. 두 수직선은 분명히 같은 길이인데, 상당히 다르게 보입니다. 뇌가 해석 과정에서 잘못된 단서를 사용하기 때문인데요. 뇌는 공간에서 멀리 있는 것과 가까운 것을 인식하기 위해 종종 화살표 모양의 모서리를 이용합니다. 아래 이미지와 같은 공간을 바라본다고 가정했을 때, 오른쪽의 수직 모서리는 왼쪽의 것보다 더 멀리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뇌는 같은 길이의 선이라도 화살표 끝이 위를 향해 벌어져 있으면 더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라고 순간적으로 가정하고, 실제 길이가 더 길 것이 라 착각합니다. 이처럼 지금껏 살면서 쌓아온 다양한 경험이나 가정을 뇌가 잘못 사용한 결과가 착시인 것이죠. 따라서 착시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현상입니다.



착시의 문화적 차이

착시는 국적, 문화, 나이처럼 각자가 살아온 환경과 경험에 따라 다르게 나타납니다
l 착시는 국적, 문화, 나이처럼 각자가 살아온 환경과 경험에 따라 다르게 나타납니다

흥미롭게도 착시는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납니다. 뭘러-라이어 착시에서 두 선분의 길이가 다르다고 느끼는 정도가 국적과 문화, 나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죠. 착시의 차이에 관한 연구는 1960년대부터 이루어졌습니다. 대표적으로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한 국가 간 비교 연구에 따르면 같은 아프리카에서도 착시의 정도가 국가별로 천차만별이고, 심지어 성인과 아동 간의 차이가 극명하게 갈리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차이는 개인주의와 집단주의를 비교하는 연구들을 통해 추론할 수 있습니다.

초점을 맞추는 곳에 따라 상자가 나와 보이기도 하고 들어가 보이기도 합니다
l 초점을 맞추는 곳에 따라 상자가 나와 보이기도 하고 들어가 보이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집단주의 성향이 강한 사람이 더 많은 착시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나는데요. 이를 위해서는 PSE(Point of Subjective Equality : 주관적 동등점)를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관적 동등점이란 두 대상을 동일하게 지각하는 지점을 의미합니다. 이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전체를 고려하려는 집단주의 성향의 사람에게서는 상대적 비교에 의한 착시가 강하게 일어나고, 개인주의 성향의 사람은 중심 선분의 길이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착시가 상대적으로 덜 일어나는 것이죠. 부산대학교 심리학과 이동훈 교수는 이러한 차이를 한국인과 미국인 사이에서, 그리고 한국인 내 집단주의와 개인주의 성향의 차이를 가진 사람들을 대상으로 관찰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착시가 만들어낸 한국의 건축

경복궁의 근정전의 바닥과 앞마당에도 착시의 비밀이 숨어있습니다
l 경복궁의 근정전의 바닥과 앞마당에도 착시의 비밀이 숨어있습니다

집단주의 성향이 강한 한국인은 예부터 착시를 강하게 느끼는 편이었을 겁니다. 이에 따라 착시를 능숙하게 활용할 줄도 알았습니다. 인간이 순간적으로 계산해내는 정보를 잘 조작하면 색다른 미적 경험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았고, 이를 긍정적으로 발전시킨 것이죠. 이러한 점은 건축에서 잘 찾아볼 수 있는데, 경복궁 근정전이 좋은 예입니다. 근정전 바닥과 앞마당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1m가량 기울어져 있습니다. 이는 비가 많이 올 경우 물이 잘 빠지게 하기 위해서인데요. 1m 정도 차이가 나는 경사각은 육안으로 충분히 확인이 가능할 텐데도 우리는 전혀 느낄 수 없습니다. 당시 기술자들이 절묘한 한 수를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곡선으로 보이지만, 자를 대고 확인해보면 사실 직선입니다
l 곡선으로 보이지만, 자를 대고 확인해보면 사실 직선입니다

우선 회랑의 북쪽보다 남쪽의 지붕을 더 낮추어 바닥의 기울기와 평행을 이루게 했습니다. 그리고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기단을 삼단, 이단, 일단으로 만들어 북쪽 기둥은 짧게, 남쪽 기둥은 길게 건축했습니다. 이렇게 실제로는 더 낮은 남쪽 기둥을 더 길어 보이게 만들어 바닥의 기울기를 느끼지 못하게 한 것이죠. 전통 건축술 중 ‘귀솟음 기법’ 또한 착시를 활용한 것입니다. 아울러 기둥의 각도 역시 정확히 수직으로 하지 않고 안쪽으로 쏠리게 해 시각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기법을 사용했는데 이를 ‘안쏠림 기법’이라고 합니다. 이 또한 착시의 과정과 원인을 잘 알고 건축에 응용한 우리 조상의 지혜를 느낄 수 있는 대목입니다.



생존 본능이 만들어내는 착시

착시는 생존을 위한 진화 과정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l 착시는 생존을 위한 진화 과정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착시에는 생존 혹은 적응과 같은 진화적 원리도 개입합니다. 일반적으로 같은 길이라도 수평선보다 수직선이 약간 더 길게 느껴지는데요. 많은 진화심리학자는 “인간이 살아가는 자연환경에서는 수평적인 것(쓰러져 있는 통나무)보다 수직적인 상황(낭떠러지)이 확률적으로 더 위험한 것이고, 따라서 위험 가능성이 높을수록 그것을 원래보다 더 과장되게 지각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또한 이는 적응적으로는 “나쁠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수만 년 진화의 역사가 인간의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에도 뚜렷하게 반영됐다는 것이 다양한 진화심리학 연구를 통해 밝혀진 바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무언가를 본다는 것에 관여하는 요인이 무수히 많다는 사실이지요. 인간이 객관적인 대상의 본질만 지각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것이 점점 명확해지고 있습니다. 착시는 인간에 대해 재미있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더없이 좋은 출발점입니다.



글. 김경일(인지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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