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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 선라이즈, 선셋, 미드나잇
영화로 보는 남녀의 소통방식2015/03/19by 현대다이모스

20대부터 40대까지, 변화하는 남녀
대화에서 관계의 해답을 찾아봅니다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 ‘비포 미드나잇’은 20년간 이어지는 두 남녀의 대화를 담은 영화입니다
l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 ‘비포 미드나잇’은 20년간 이어지는 두 남녀의 대화를 담은 영화입니다



세 편의 시리즈 영화 ‘Before Sunrise(1995)’, ‘Before Sunset(2004)’, ‘Before Midnight(2013)’을 통해 20년간의 대화를 이어가는 두 남녀. ‘사람과 사람의 대화 없이는 생활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소설가 카뮈의 말처럼, 영화 속 그들은 20대, 30대, 40대 남녀의 대화와 소통방식을 현실적으로 보여줍니다.



BEFORE SUNRISE (1995), “20대의 용기, 설렘이 가득한 남녀의 만남”

비엔나 버스 안에서 대화를 나누는 제시와 셀린느
l 비엔나 버스 안에서 대화를 나누는 제시와 셀린느

“저 부부, 왜 싸우는지 알아요?” 기차 안 소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제시(에단 호크)가 건너편의 셀린느(줄리 델피)에게 말을 건넵니다. “나이가 들수록 남자는 고음을 듣는 능력이, 여자는 저음을 듣는 능력이 떨어진대요” 셀린느의 대답에 제시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서로가 죽이지 말고 함께 늙어가라는 자연의 이치네요” 이렇게 시작된 그들의 대화는 단편적인 정보에서부터 사랑, 결혼, 직업 등 현재 관심사까지 다양하게 이어지죠.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남녀의 ‘차이’를 메우는 방식은 결국 지속적인 대화입니다. 눈빛, 몸짓, 표정, 목소리를 포함한 모든 소통은 결국 대화를 통해 이루어지며, 이 과정에서 그들은 공감대를 구축하고 사랑에 빠지거나 우정을 쌓게 됩니다.

제시와 셀린느는 레코드 가게에서 음악을 함께 들으며 삶에 대한 생각을 공유합니다
l 제시와 셀린느는 레코드 가게에서 음악을 함께 들으며 삶에 대한 생각을 공유합니다

이윽고 비엔나에 도착한 제시는 셀린느에게 함께 내리자는 제안을 합니다. “10년, 20년이 지났다고 생각해 봐” “넌 결혼을 했고. 그런데 그 결혼 생활이 예전만큼 재미있지는 않은 거지. 그래서 옛날에 만난 모든 남자들을 떠올리는 거야. 그때 그 남자를 선택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 남자들 중 하나가 바로 나야” 그렇게 그들은 어릴 적 기억, 가족, 사랑, 죽음, 가치관에 대해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비엔나 곳곳을 걸으며 연극인과 시인, 점쟁이와 같은 다양한 사람들과 마주치며 추억을 쌓습니다. 그리고 제시는 이날의 경험을 토대로 훗날 ‘디스 타임(This Time)’이라는 소설을 쓰게 됩니다. 이 소설은 9년 후, 그들이 다시 파리에서 만나는 고리가 됩니다.



BEFORE SUNSET (2004), “30대의 불안정함, 그럼에도 열려있는 가능성”

9년 전, 다시 나타나지 않은 셀린느와 그녀를 기다렸던 제시는 그때를 회상하며 추억 속으로 빠져듭니다
l 9년 전, 다시 나타나지 않은 셀린느와 그녀를 기다렸던 제시는 그때를 회상하며 추억 속으로 빠져듭니다

9년 후, 제시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셀린느는 환경운동가로 활동합니다. 제시는 출판 홍보 여행 중, 파리의 한 서점에서 셀린느를 다시 만납니다. 그리고 미국으로 떠나는 비행시간을 앞두고, 셀린느와 길을 걸으며 대화를 시작합니다. 9년 전 제시에겐 삶에 대한 냉소주의가, 셀린느에겐 낙관주의와 감성적 사색이 있었지만, 이제 제시에겐 안정적 삶이, 셀린느에겐 현실 감각이 자리 잡아 버렸습니다. 셀린느는 더 이상 제시의 유령 이야기, 손금 보기 같은 미신, 로맨스의 환상을 믿지 않습니다. 그녀의 꿈과는 달랐던 현실을 깨닫게 된 것이죠. 사실 제시의 상황도 그다지 좋은 건 아닙니다. 겉으로는 안정된 가정을 지닌 성공한 작가처럼 보이지만, 그의 삶에선 어느새 열정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파리의 유람선에서 지난 세월을 아쉬워하는 제시와 셀린느
l 파리의 유람선에서 지난 세월을 아쉬워하는 제시와 셀린느

‘Before Sunset’은 청춘을 지나 서서히 중년으로 진입하는 연령대에 겪는 정서를 오롯이 담고 있습니다. 장소와 시간이 변했고, 그들에게 쌓인 시간과 오해는 처음 만났을 때의 어색함과는 다른 종류의 소통을 가로막는 벽입니다.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셀린느는 흐느끼며 웁니다. “네가 나의 모든 것을 다 가져가 버린 것 같아” 그리고 제시는 미소를 지으며 셀린느를 다독입니다. 9년 전 그토록 반짝거렸던 청춘이 30대가 되어 만났을 때의 씁쓸함. 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화를 놓지 않았고, 30대가 된 그들의 소통은 좀 더 복합적이고 은유적이며 현실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BEFORE MIDNIGHT (2013), “40대의 현실, 익숙함과 이를 극복하는 지혜”

어느새 중년의 부부가 된 그들, 대화는 사라지고 오해는 깊어갑니다
l 어느새 중년의 부부가 된 그들, 대화는 사라지고 오해는 깊어갑니다

다시 9년 후. 익숙한 부부가 된 제시와 셀린느. 그들은 이제 조금은 여유로워진 중년처럼 보입니다. 제시는 작가로서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섰고, 셀린느는 꽤 괜찮은 직장에서 제안을 받은 상태죠. 그들은 여느 부부처럼 좀 더 일상적이고 사소한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곤 사소한 문제로 다투게 됩니다. “이렇게 함께 걸으며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는 말에서 느낄 수 있듯이, 그들은 어느덧 깊은 대화가 없는 부부가 되었습니다. 언뜻 18년 전 기차 안의 소란을 일으키던 중년 부부가 그들과 겹쳐 보이는 것은 우연일까요. 둘은 각자의 입장에서 서로를 오해하고, 말꼬리를 잡고, 쌓였던 감정의 앙금을 드러냅니다.

두 사람은 대화로 벽을 허물고 그렇게 다시 함께합니다
l 두 사람은 대화로 벽을 허물고 그렇게 다시 함께합니다

서로가 노력하고 대화하지 않아도 문제없이 유지되는 관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소통의 벽을 부수기 위한 용기는 매 순간 필요합니다.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남녀일수록 이 노력은 더더욱 빛이 나죠. 삶의 명확함을 추구하는 젊은 날의 생각들을 담은 ‘Before Sunrise’에서 시작해, 인생의 위기에서 재회해 새로운 인연을 맺는 ‘Before Sunset’, 서로의 가치를 되새기는 중년의 ‘Before Midnight’까지. 그들의 대화는 흥미롭고 애잔하며 무언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결국 ‘Before 3부작’은 삶과 죽음, 그리고 그사이의 시간과 차이를 메울 수 있는 소통을 대화로 보여줍니다.

결국 소통의 해답은 그들의 대화 속에 있었습니다. 제시는 화를 삭이며 바닷가 테이블에 홀로 앉아있는 셀린느에게 웃으며 말을 건넵니다. “잊었나 본데, 기차에서 만나 달달한 사랑을 나눈 남정네가 바로 나라고” 그들의 영화는 그렇게 끝납니다. 다음은 우리가 대화할 차례입니다.



글. 김우현
사진. Naver 영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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