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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으로 이야기하는
두 사람의 작업실2015/05/18by 현대제철

작은 무늬 속에 우주를 담고, 그릇에 삶을 담습니다
금속으로 자신의 세계를 만드는 두 예술가를 소개합니다

차가운 금속으로 따뜻하게 인간을 품는 ‘입사장 최교준’과 ‘금속조각가 김현성’을 소개합니다
l 차가운 금속으로 따뜻하게 인간을 품는 ‘입사장 최교준’과 ‘금속조각가 김현성’을 소개합니다



한숨 자고 일어났는데 훌쩍 지난 한 생이라는 말. 최교준 입사장이 보낸 한결같은 지난 40여 년이 그렇습니다. 그런가 하면, 머릿속 상(像)을 온갖 금속으로 구현하는 김현성 금속조각가는 세월도 견줄 수 없는 열정의 밀도를 지녔습니다. 작고 섬세함 무늬로 거대한 우주를 이야기하고, 죽음과 삶을 한자리에 놓고 관계를 풀어냅니다.



금속에 우주를 세기다

서울 무형문화재 제 36호 최교준 입사장
l 서울 무형문화재 제 36호 최교준 입사장

1967년 전통 금속공예에 입문해, 1984년부터 10년 동안 한국 전승공예대전에서 특별상 두 번과 국무총리상을 수상. 2006년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36호 입사장으로 지정돼 현재까지 48년 동안 금속공예품을 만들어왔습니다. 탁자 위에 올려놓을 수 있는 작은 화로, 필통, 담배함 등 생활공예는 물론 한국 고대 금속공예품을 재현했다. 대표작으로는 ‘철제은입사 수복문 화로’, ‘철제은동입사 십장생문 화로’, ‘호등94년작’이 있습니다.



수억 번의 두드림, 운명을 쪼고 끼우다

9만 번의 망치질로 만들어내는 금속 안의 우주가 그를 사로잡았습니다
l 9만 번의 망치질로 만들어내는 금속 안의 우주가 그를 사로잡았습니다

첫 이미지가 문신처럼 깊이 새겨져 뚜렷하게 기억되는 건 특별한 인연일 때 가능합니다. 최교준 입사장(入絲匠)이 처음 입사(入絲)를 경험한 건 우연이었습니다. “열일곱에 동네에서 옛 물건을 수리하던 윤희복 선생 밑에서 일하기 시작했어요. 그분이 고미술품 관련 일도 하셨거든요. 손재주는 나쁘지 않았어요. 홍은동 우리 동네에선 그래도 알아줬죠. 썰매를 만든다거나 이런 것들을 잘했어요. 그렇게 윤 선생에게 3~4년 배우다 군대를 다녀왔고 제대해서 금속공예 관련 직장에 터를 잡았어요. 평생 업이라고 생각한 건 아닌데 지금까지네요.”

1967년에 돈 없고 배우지 못한 소년이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습니다. ‘그것뿐’이라서 시작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니 운명이었습니다. 각인이라 불릴 만한 첫 만남 이후 입사에 빠져들었으니까요. 군대에서 지낸 3년을 제외하면 40여 년 동안 작업에 몰입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기술을 습득하는 과정이 아니었습니다. 최교준 입사장은 9만 번의 망치질로 만들어내는 자기만의 우주에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고 합니다.

입사에 매달린 지 40여 년, 그는 마침내 무형문화재 입사장 기능보유자가 되었습니다
l 입사에 매달린 지 40여 년, 그는 마침내 무형문화재 입사장 기능보유자가 되었습니다

입사란 금속기물이나 장신구의 표면을 날카로운 작은 정으로 쪼아 가느다란 실처럼 뽑아낸 금사(金絲)나 은사(銀絲), 혹은 동사(銅絲)를 다양한 문양으로 입히는 작업입니다. 금속의 표면에 미리 무늬를 그리고 정을 이용해 파낸 뒤 파인 홈에 금실, 은실이나 얇은 판을 끼워 넣는 방식을 ‘끼움입사’라 부르고, 금속 표면에 쪼음정으로 가로, 세로, 빗금 방향으로 서로 엇갈리게 촘촘히 쪼음질한 후 그 위에 금실과 은실이나 얇은 판을 두드려 박아 넣는 방식은 ‘쪼음입사’라고 합니다.

차분하고 꼼꼼해야 완성할 수 있는 입사에 매달린 수십 년. 그의 부드러운 두드림은 마침내 그를 무형문화재 입사장 기능보유자로 만들었습니다. “2006년에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36호로 지정됐어요. 40년 가까운 세월의 값이었나 봐요. 그때의 감회를 이루 말할 순 없지만, 사실 1984년에 제9회 전승공예전에서 국무총리상을 받았을 때가 제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습니다. 담배함을 비롯한 생활용품으로 입사가 인정받으니 뭐라 말할 수 없을 만큼 기뻤어요.”

정직한 노동과 예술의 몰아 상태에서 나온 그의 작품. 철제은동입사 십장생문 화로
l 정직한 노동과 예술의 몰아 상태에서 나온 그의 작품. 철제은동입사 십장생문 화로

그의 일은 순수창작보다는 역사 속의 작품을 재현하는 작업에 가깝습니다. 수개월 동안 통일신라시대의 입사를 재현하는 데 몰입하며 시공의 경계를 허물기도 했는데요. 정직한 노동과 예술의 접점으로 몰아(沒我)를 경험하다보면 공예품이 완성됐습니다. 고서와 유물을 본떴으나 절대 모사품일 수 없는 게 최교준 입사장의 작품입니다. 특히 그는 아침부터 밤까지 흐트러짐 없이 앉아서 꼬박 6개월에 걸쳐 완성한 철제금은입사 호등을 아낍니다.

풍족하지 않은 수입은 피하지 못할 장인의 숙명일까요. 최교준 입사장 역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이후엔 예전보다 나아졌다지만 넉넉한 형편은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 크게 변한 것이 있습니다. 예전엔 입사가 뭔지도 몰라 국어사전을 만드는 사람조차 자신을 찾아와 취재할 만큼 관심 밖의 분야였습니다. 한데 지금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사람들이 꽤 됩니다. 그것 하나만으로 그는 자신이 걸어온 이 길이 헛되지 않았구나 생각합니다.

최교준 입사장의 작품은 세밀한 무늬 속에 하나의 세계를 담고 있습니다
l 최교준 입사장의 작품은 세밀한 무늬 속에 하나의 세계를 담고 있습니다

“직경 77.5센티미터의 청동제은입사 대야를 작업한 적이 있어요. 1년여 동안 용 두 마리를 안쪽에 새긴 후 사포질을 하는데 그때 물이 흔들리며 용이 살아 움직였어요. 그 희열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지…. 입사를 시작한 건 다 그런 순간을 위한 건지도 모릅니다.”

말투는 수더분해도 날카로운 눈썰미를 가진 최교준 입사장의 작품은 고요하지만 역동적입니다. 작고 세밀하지만 가만 들여다보는 순간 거대한 세계와 만나게 됩니다. 두드리고 두드려서 구축한 그의 시공은 그래서 아름답습니다. 슬쩍 보면 별 볼 일 없겠지만 오래 곰곰이 관찰하면 그 아름다움과 만날 수 있습니다. 궁금하다면 부드럽고 규칙적인 정 소리에 귀를 내고 그의 반복된 손짓에 집중해 보는 건 어떨까요.



삶에 녹아든 금속 작품

금속을 이용한 테이블웨어를 만드는 금속조각가 김현성
l 금속을 이용한 테이블웨어를 만드는 금속조각가 김현성

세공하는 아버지를 따라 초등학교 때부터 금속을 다루기 시작해 금속조각가로 거듭난 그는 ‘2013 공예트렌드페어’에서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했습니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 ‘공예트렌드페어’, ‘온더테이블’ 등 단체전을 가졌고 2014년 봄에는 첫 개인전 ‘다섯 개의 상’을 갤러리아원에서 열었습니다. 현재 구리 드리퍼, 커트러리, 차 인퓨저 등 다양한 식도구를 금속으로 개발 중입니다. 천편일률적이지 않고 기능에 충실하면서도 미학을 지닌 식도구로 세상과 속 깊게 소통하기를 꿈꿉니다.



차가운 금속이 껴안은 삶의 온기

“공예라는 게 쓰여야 재미가 있잖아요. 동떨어진 게 아닌 일상에서 쓰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죠”
l “공예라는 게 쓰여야 재미가 있잖아요. 동떨어진 게 아닌 일상에서 쓰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죠”

나무식탁 위에 광이 나는 스테인리스스틸 접시와 빵이 놓여 있습니다. 그 옆으로 잘 빠진 은 커트러리가 보입니다. 군침 도는 냄새를 따라 시선을 옮기면 커피를 가득 품은 구리 드리퍼와 싱그러운 야채, 잘 익힌 고기가 담긴 주석과 니켈 그릇이 있습니다. 식탁 위의 하이라이트는 놋쇠와 강철, 스테인리스스틸로 만든 촛대. 이 번쩍이는 만찬의 호스트는 금속조각가 김현성입니다.

“공예라는 게 쓰여야 재미가 있잖아요. 순수미술이 아니니까. 전시장 작품에 붙은 ‘만지지 마세요’, ‘사진 찍지 마세요’ 이런 경고문이 굉장히 불만스러웠어요. 그래서 대중과 더 가까워지려고 노력해요. 마음대로 만지고 느끼고. 동떨어진 게 아닌 일상에서 쓰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죠.”

금속공예를 전공하던 그는 사람들의 일상에 쉽게 다가가는 테이블웨어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l 금속공예를 전공하던 그는 사람들의 일상에 쉽게 다가가는 테이블웨어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전시회 타이틀 ‘다섯 개의 상’이 말해주듯 그에게 상은 밥상(床)이거나 이미지(像)입니다. 전자나 후자 모두 소통하는 장(場)입니다. 일상에 가까운 구체적 공간이라면 밥상일 테고 관념적 공간이라면 이미지일 테지요. 이러거나 저러거나 김현성은 그 공간에 차갑기 그지없는 그릇을 늘어놓습니다. 강철과 주석, 은과 놋쇠 그리고 구리로 만든 각종 테이블웨어(식탁용 식기류)는 그가 골몰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하필 왜 금속일까요? 처음엔 30년 귀금속 세공을 하신 아버지 영향이었고, 이후엔 금속이란 재료가 지닌 모순 때문이었다고 그는 말합니다.

“처음 은으로 된 브로치를 만들었는데 실제로 판매될 만큼 반응이 좋았어요, 그리되면 계속 브로치를 작업하기 마련인데 대학원에 들어가서 테이블웨어에 집중하게 됐죠. 외관상 고급스럽고 열전도율이 높아 요리에 최적인 금속 그릇이 흥미로워진 거예요. 어떤 금속이냐에 따라, 어떤 음식이 담기느냐에 따라 다른 이야기가 되지만 사실은 용도를 생각하지 않고 형태를 만들고 싶어요.”

자신의 욕망과 대중의 욕망에서 중심을 잡는 것이 어렵지만 그는 대중과 소통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l 자신의 욕망과 대중의 욕망에서 중심을 잡는 것이 어렵지만 그는 대중과 소통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머릿속에 있는 그림을 그대로 표현해내고 싶은 욕망. 그래서 타협해야 하는 순간은 늘 괴롭습니다. 본격적으로 작업한 지 5년여.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자기 고유의 작업에 온전히 몰입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요. 테이블웨어 특성상 대중을 이끌거나 대중이 원하는 패턴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가 가장 큰 문제. 낙서 같은 스케치를 현실화시킬 때 기능과 가능성을 이유로 스스로 양보하고 포기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이럴 바에야 순수예술로 활동을 옮기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대중 가까이에서 작품이 쓰이길 바라는 다른 욕망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이 난공불락의 상황에서 힘이 되는 것은 소통과 교감의 기운이었습니다. 자신이 의도한 형태를 누군가가 알아차려 줄 때, 이를테면 커다란 볼을 만들면서 과일이 담긴 상을 그렸는데 누군가 ‘여기 과일 담겼으면 정말 좋겠다’라고 이야기할 때처럼. 이처럼 자신의 머릿속에 있던 상이 누군가의 상과 만날 수 있다는 기쁨이 작업의 동력입니다.

‘완벽함’은 다른 상상력을 가질 수 없기에 그는 우리 삶과 닮은 ‘불완전’한 형태를 선호합니다
l ‘완벽함’은 다른 상상력을 가질 수 없기에 그는 우리 삶과 닮은 ‘불완전’한 형태를 선호합니다

“회색의 타원형이 제 심볼인데 둘 다 좋아하는 색과 형태예요. 다른 색을 다 받쳐주는 회색이나 불완전한 형태의 타원. 자신이 강해서 주위와 어우러지지 못하거나 다른 상상력은 가질 수 없는 완벽한 이미지의 반대에 있죠.” 에둘러가든 뛰어가든 닿는 곳은 ‘관계’입니다. 그래서 김현성의 작품은 식탁과 음식과 함께일지도 모릅니다. 먹을 것을 나누는 건 삶을 나누겠다는 의미이므로 차가운 금속 그릇에 마음 푸근해지는 따뜻함을 담는 건 보여주고픈 관계를 증폭시키죠.

금속 재료의 모순과 맞물리는 접점에선 죽음과 삶이 교차하기도 합니다. 대척점이 아니라 연속성으로 함께합니다. 살기 위해 먹는 음식이 이미 죽은 것이듯, 죽음이 삶을 응원하는 관계. 김현성의 작업을 보며 죽음 속에 삶이 있고 삶 속에 죽음이 있더라는 은유 같은 진리를 느낍니다. 그리고 그것은 으슬으슬한 생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꼭 한 번 경험하고픈 작품입니다.



글. 우승연
사진. 안홍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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