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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의 시대를 꿈꾼 고흐
태양 빛을 품다2015/04/14by 현대파워텍

태양의 빛깔을 사랑한 화가
노란 열정을 캔버스에 담다

밀짚모자를 쓴 자화상(Self-portrait with Straw hat) 1887-1888 ⓒ gogh
l 밀짚모자를 쓴 자화상(Self-portrait with Straw hat) 1887-1888 ⓒ gogh



지금이야 천재성을 인정받는 화가지만 살아생전 고흐는 인기가 없었습니다. 그는 자화상을 비롯하여 풍경화, 인물화, 정물화 등 주제며 유형도 다양한 그림을 수없이 그렸습니다. 그 많은 고흐의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하나였습니다. 바로 ‘노랑’. 실로 지나치리만치 노랑에 열광한 고흐의 37년 인생에 대해 재조명해봅니다.



빛, 색, 그리고 사랑을 찾아서

씨 뿌리는 사람(The Sower) 1888 ⓒ gogh
l 씨 뿌리는 사람(The Sower) 1888 ⓒ gogh

고흐는 1886년 숙부가 운영하는 화상의 점원으로 일하고 있는 남동생 테오를 따라 파리로 이주했습니다. 그러나 불과 1년 6개월 만인 1888년, 관계에 서툴러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던 그는 정신적, 육체적 쇠약에 시달리다 파리를 떠나 프랑스 남부의 아를(Arles)로 갔습니다. 강렬한 햇살, 청명한 하늘, 아담한 골목, 색색의 자연풍경으로 둘러싸여 있는 아를은 고흐를 매료시킬 소재들로 넘쳐났습니다. 색채에 의한 조형을 터득하여 〈노란 집〉, 〈해바라기〉 연작을 그린 곳도 바로 아를에서였습니다.

당시 프랑스 화단을 이끈 인상주의는 리얼리티를 살리기보다 임의로 색상을 활용해 대상을 강렬하게 표현하였는데, 고흐 역시 빛을 통해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을 묘사했습니다. 고흐의 작품에 노란색이 단골로 쓰이기 시작한 시기도 그때부터입니다. 고흐의 노란색에 대한 사랑은 이미 1887년 〈해바라기〉에서 강렬하게 드러났었지만 아를로 온 이후에 더 절정으로 치달았습니다. 그가 사는 월세 15프랑 집도 외부는 노랑, 내부는 흰색 대비로 칠해져 있어서 태양의 빛깔을 연상시켰습니다.

밤의 카페 테라스(Cafe Terrace At Night) 1888 ⓒ gogh
l 밤의 카페 테라스(Cafe Terrace At Night) 1888 ⓒ gogh

고흐는 묘사법도 무척이나 특이했습니다. 스스로 “나는 눈에 비친 것을 정확하게 그리고자 애쓰기보다는 다양한 색채를 마음대로 사용하여 ‘나’를 그릴 생각이다”라고 고백할 정도였죠. 그는 그중 특히 노란색에 열중했습니다. 때문에 고흐는 아를에 더없이 만족했습니다. “이곳의 빛깔은 정말이지 매우 아름답다. 초록이 먼지에 싸여 다갈색이 돼도 흉하지 않다. 그럴 때면 풍경은 오히려 모든 뉘앙스를 가진 황금빛 색조를 지닌다”고 표현할 정도로 말이죠.

고흐에게 있어서 노랑은 감동의 색이었습니다. 〈씨 뿌리는 사람〉은 밋밋한 색조의 노랑과 보라의 조합이었지만, 〈밤의 카페〉에선 빨강과 초록에 노랑까지 첨가됐습니다. 〈밤의 카페 테라스〉에서는 노랑, 주황, 파랑 삼색의 대조를 통하여 근사한 균형을 이뤄냈고 〈별이 빛나는 밤〉은 주황색에 연보라를 적절하게 배치하는 세심한 작업을 거쳐서 노랑을 더욱 빛나게 했습니다. “노란색, 연한 레몬색, 황금색이라고 밖엔 태양과 햇빛을 형용할 보다 나은 표현이 없구나” 이렇듯 노랑은 고흐가 열렬히 사랑한 색채였습니다.



명암이 공존하는 유토피아 〈노란 집〉

노란 집(Yellow House) 1888 ⓒ gogh
l 노란 집(Yellow House) 1888 ⓒ gogh

아를에 도착한 고흐는 호텔과 식당을 겸하는 카페에 드나들며 하루 종일 그림의 주제를 찾았습니다. 마을의 외곽을 돌면서 날씨가 좋으면 이젤을 세우고 그림을 그리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해 5월, 고흐는 드디어 아를 라마르틴 2번가에 자리한 노랑 외벽의 집으로 이사했습니다. 그곳은 화실을 내고도 작품을 보관할 공간이 충분했습니다.

고흐는 “나는 오늘, 노란색 건물의 오른 채에 세를 들었다. 방이 네 개 있는데, 그중 두 개 방엔 캐비닛이 갖추어져 있다. 볕도 환히 드는 집의 밖은 금방 만든 버터 빛 노랑으로 칠을 했고 창틀은 진녹색이다. 건물은 광장을 향해 앉아 있는데 그곳엔 플라타너스, 아카시아 등 초목이 우거진 공원이 하나 있다. 집안은 흰색이며 바닥엔 붉은색 타일이 깔려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 위에는, 눈부시게 푸른 하늘이 존재한다. 이 집에서 난 진실로 살 수 있고 숨 쉬고 생각하고 그릴 수 있다!”라고 자신의 노란 집을 묘사했습니다.

붓꽃(Irises) 1890 ⓒ gogh
l 붓꽃(Irises) 1890 ⓒ goghh

고흐는 화가공동체를 설립하고자 했는데 그 꿈을 구체화한 곳이 또한, 노란 집이었습니다. 대인관계에는 서툰 그지만, 우정을 중요시한 고흐는 서로의 발전을 북돋고 경제적인 문제점도 해결하는 화가공동체 조직을 기획한 것이었죠. 파리에서 만난 고갱에게도 계획에 동참해달라 재촉했습니다. 고갱은 고흐의 지나친 집착엔 동의하지 않았지만 재정적 상태를 생각해 아를로 이사했습니다.

하지만 성향이 달랐던 고갱과 같이 살며 꿈이 고흐는 자신의 부서지는 것을 감지했습니다. 고갱과의 거듭된 불화로 인하여 한계를 느낀 그는 급기야 자신의 오른쪽 귓불을 면도칼로 잘라내고 맙니다. 결국 1889년 5월 생레미 생폴 정신병원으로 들어간 고흐는 노란 집에서 반년도 채 머물지 못했지만, 그곳은 고흐에게 있어서 단순한 작업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노란 집은 고흐에게 진정한 자유와 안정과 행복을 확고하게 만들어준 뮤즈였습니다.



격정을 대변한 영혼의 꽃 〈해바라기〉

1. 열두 송이 해바라기(Vase with Twelve Sunflowers) 1888 2. 열네 송이 해바라기 (Vase with Fourteen Sunflowers) 1888 ⓒ gogh
l 1. 열두 송이 해바라기(Vase with Twelve Sunflowers) 1888 2. 열네 송이 해바라기 (Vase with Fourteen Sunflowers) 1888 ⓒ gogh

고흐의 노란색이 극적으로 발화된 작품은 〈해바라기〉입니다. 그는 1888년 8월 28일,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더욱더 단순한 기법으로 해바라기 모습을 그리는 중”이라고 전했습니다. 해바라긴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고흐만의 강렬한 색조이며 영원히 식지 않는 태양이었습니다. 고흐는 태양의 빛깔을 찾으러 아를을 찾았고, 거기서 자신의 열정을 불태웠습니다. 고갱이 해바라기를 ‘반 고흐의 꽃’이라 부를 정도였죠.

실제로 고갱은 고흐의 정물화에 매료되어 아를에서 함께 작업했고, 1887년 고갱은 고흐가 그린 해바라기 작품 중 2점을 소장합니다. 노란 집과 해바라기들로 가득한 작업실 벽면은 고흐와 고갱의 예술이 추구하는 방향을 의미했습니다. 고갱은 이후, 해당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에 대하여 ‘반 고흐의 양식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완벽한 작품’이라 평가했습니다. 고흐만의 독특한 형태와 색깔의 결합을 여실히 보여 주는 〈해바라기〉. 해석이 어떻든, 해바라기라는 소재는 고흐의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행복이자, 예술적인 영감을 자극하는 희열이었음이 분명해 보입니다.



글. 이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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