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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김태훈
마음으로 찍는 사진 이야기2015/05/27by 현대자동차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사진에 담아내는
사진작가 김태훈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김태훈은 눈으로 보는 대신, 마음으로 느낀 감정을 사진으로 표현합니다
l 김태훈은 눈으로 보는 대신, 마음으로 느낀 감정을 사진으로 표현합니다



김태훈은 세상을 조금 다르게 봅니다. 의지와 다르게 초점이 흐릿하고 울렁거리기도 하며 간혹 눈을 떠도 캄캄합니다. 그럼에도 그는 사진을 찍습니다. 마음의 눈을 의지한 채 카메라를 듭니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세상을 읽고 찍어냈기에 그의 사진에는 눈만으로 가늠하기 힘든 갖가지 감정까지 묻어 있습니다.



사진으로 세상을 바라보다

“카메라는 제 눈이고 사진은 제 속을 내보이는 창구예요”
l “카메라는 제 눈이고 사진은 제 속을 내보이는 창구예요”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하죠. 눈으로 그 사람의 내면을 볼 수 있다는 뜻입니다. 눈만으로 사람을 다 알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많은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선하고 맑은 눈망울은 순수함을, 또렷한 눈동자는 명민함을 드러내 보입니다. 하지만 사진작가 김태훈의 ‘창’은 상처가 많아 그의 진면목을 다 보여주지 못합니다. 한쪽 눈은 맑지만, 한쪽 눈은 불투명한 흰 유리구슬 같습니다. 1997년 불의의 사고를 당한 그는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합니다. 눈이 지나치게 예민해져 자외선이 강한 낮에는 통증을 느끼고, 체력이 떨어지면 굳게 닫혀 암흑을 마주해야 합니다. 이런 눈을 대신하기 위해 김태훈은 카메라를 들었습니다.

“카메라는 제 눈이고 사진은 제 속을 내보이는 창구예요. 카메라를 들면 세상과 연결되는 느낌이 들고, 사진을 보면 찍을 당시의 제 마음이 읽히죠. 길을 걷다 울림이 있는 풍경을 향해 셔터를 누르거나, 은밀하게 감춰둔 감정을 주제로 이야기를 짜 사진에 담고 있습니다.” 어떤 생각에 빠져 있었는지, 어떤 느낌을 받고 있었는지 그의 사진에는 고스란히 나타나 있습니다. 그렇기에 퍼즐 맞추듯 사진을 모아 보면 자신 그 자체라고 김태훈은 덧붙입니다. 그에게 사진과 삶은 이음동의어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진으로 비추는 삶

“먼지가 쌓인 사진기를 보며 꼭 제 모습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l “먼지가 쌓인 사진기를 보며 꼭 제 모습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가 카메라를 곁에 둔 지 2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첫 카메라는 열네 살 때 아버지의 장롱에서 발견한 골동품 카메라. 호기심 왕성한 소년은 사진관에서 작동법을 배웠고, 이성의 관심을 끌기 위해 카메라를 목에 건 뒤 어깨를 당당히 펴고 동네를 누볐습니다. 사춘기의 열병이 식고, 성인이 될 때까지도 참으로 열심히 사진을 찍었습니다. 수녀님과 함께 장수사진 촬영 봉사를 하러 다니기도 하고, 자신만의 이야기로 필름을 채우기도 했습니다. 이후 프로그래밍을 업으로 삼으면서 사진에 점차 소홀해졌는데, 사고를 당한 뒤 곁에 남은 건 결국 카메라였습니다.

“사고 후 생활을 송두리째 잃어버렸다고 생각했어요. 암울한 생각도 많이 했죠. 그런데 어느 날 잊고 지냈던 카메라가 시선에 잡히더라고요. 사진을 한창 찍고 전시할 때 한 일본인 관람객에게 선물 받은 카메라였죠. 관심이 멀어진 사이 먼지가 뽀얗게 앉고 곰팡이가 피어 있었어요. 그 모습을 보며 꼭 제 모습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먼지를 털어내고 닦은 다음 필름을 끼워 넣고, 예전처럼 셔터를 눌렀어요. 그렇게 사진을 남기는 동안 부정적이었던 생각의 늪에서 천천히 빠져나올 수 있었죠.”



“제 사진을 통해 누군가에게 위로를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전시를 열었어요”
l “제 사진을 통해 누군가에게 위로를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전시를 열었어요”

건강을 되찾으리라는 보장도 없이 “그저 살아만 있었던” 그를 카메라가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 후 김태훈은 생계수단이자 마음에 바르는 약으로 카메라를 늘 곁에 두었습니다. 온전하지 못한 시력으로 사진을 찍는 게 물론 쉽지는 않았죠. 원하는 부분에 초점이 맞았는지 제대로 보기 어려운 게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피사체를 정한 뒤 오토포커스로 100여 장의 사진을 촬영하고, 컨디션이 좋을 때 한두 장을 골랐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찍고 고른 사진이 여러 장 모이면 전시를 열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살아간다는 걸 보여주는 동시에 제 사진을 통해 누군가에게 위로를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전시를 열었어요. 사진을 보고 눈물을 보였던 관객, 문득 가족이 생각난다며 연락을 끊고 지냈던 부모에게 전화를 건 관객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진을 찍으며 사진의 치유 효과를 활용한 활동도 주도해나갔습니다. 자신처럼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에게 사진을 통해 안정을 주는 ‘포토 케어’를 진행했고, 혜광학교 아이들에게 사진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사진으로 공감대를 형성하며 어두운 일상에 불을 켜고 지금껏 걸어올 수 있었습니다.



내일을 위한 희망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간 동안 더 많은 사람과 만나, 더 행복한 경험을 하고 싶어요”
l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간 동안 더 많은 사람과 만나, 더 행복한 경험을 하고 싶어요”

어제를 생각하며 미소 짓던 그가 문득 내일을 똑바로 보기 두렵다고 어렵사리 운을 뗍니다. 저시력 장애는 점점 나빠지기만 할 뿐이라서, 시력이 좋아질 거라는 가망이 없기 때문이죠. 10년 정도 지나면 아예 앞을 보지 못할 가능성이 커 마음이 조급합니다. 이 때문에 조금이라도 볼 수 있는 지금, 세상 구석구석을 눈에 담고 좀 더 많은 사람과 만나고, 좀 더 행복한 경험을 하고 싶다고 그는 말합니다.

“구상한 게 많아요. 오지를 다니면서 장수사진 촬영 봉사도 계속하고 싶고, ‘길’과 ‘영웅’을 주제로 한 개인 작업도 하고 싶습니다. 자외선에 노출되면 안 되기에 자동차가 있어야만 이동이 가능한데, 지금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자동차가 없어 작업을 진행하지 못하는 상태예요. 그렇다고 사진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여유가 생기면 당장 자동차부터 구하고 카메라를 다시 들 겁니다.”

남들이 평범하게 누리는 것도 힘껏 욕심내야만 가질 수 있는 삶을, 김태훈은 담담하고 의연하게 말합니다. 과거에 그러했듯, 그는 카메라를 쥐고 막막한 현실을 걸어나가는 중입니다. 마이너스 시력의 눈 대신 크게 뜬 ‘마음의 눈’으로 현재를 너머 미래까지 선명하게 보고 있습니다.



글. 장새론여름
사진. 박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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