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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그림을 치료합니다
미술품 보존복원전문가 김주삼2015/05/21by 현대자동차

사람은 아프면 병원에 가지만, 그림은 어디로 갈까요?
미술품을 고치는 명의 Art C&R 김주삼 소장을 소개합니다

국내 최고의 미술품 복원가 Art C&R 미술품 보존복원연구소 김주삼 소장
l 국내 최고의 미술품 복원가 Art C&R 미술품 보존복원연구소 김주삼 소장



박수근, 이중섭, 피카소, 마티스의 작품을 마음껏 들여다보고 만질 수 있는 특권. 국내 최고 미술품 복원가로 꼽히는 김주삼 (Art C&R 미술품 보존복원연구소 소장)이 사는 세상입니다. 예술가이기보다는 아프고 상처 입은 미술품을 치료하는 의사에 가까운 작업, 훼손된 그림의 아슬아슬한 생명이 그의 손끝에서 한 뼘 더 길게 이어집니다.



복원, 욕심 덧칠은 금물

김주삼의 작업실에는 국내외 내로라하는 미술품들이 복원을 위해 찾아옵니다
l 김주삼의 작업실에는 국내외 내로라하는 미술품들이 복원을 위해 찾아옵니다

환자가 수술대에 올라 있듯 김주삼 소장의 평창동 작업실에는 복원 중인 작품이 작업대 곳곳에 누워 있습니다. 물감이 떨어져 나가고, 곰팡이가 슬고, 캔버스 뒤에 덧댄 나무판으로 몸살을 앓는 그림까지 증상과 상태도 제각각.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천경자 등 내로라하는 국내 근현대 작가의 작품이 찾는 이곳은 작업실 안의 작품 가격만 100억 원을 넘나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김주삼 소장에게 얼마나 비싼 작품인지, 얼마나 유명한 작품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를 찾은 이상 그간의 찬사와 아우라는 잠시 내려놓아야 합니다.

“작품에 빠지거나 압도되면 오히려 실수할 수 있어요. 의사가 환자에 개인적인 감정을 갖지 않듯 작품의 상태가 어떤지, 어디가 얼마나 훼손됐는지에만 집중하지요. 가장 중요한 과정은 진단이에요. 눈으로만 파악할 수 없기에 현미경은 기본이고, 엑스레이와 자외선, 시료 분석 등을 거친 후에야 정확한 진단이 나오지요. 작은 티끌 하나가 작품 일부인지, 이물질인지까지 완벽하게 파악해야 합니다.”

〈복숭아〉 이인성作 복원 전과 후
l 〈복숭아〉 이인성作 복원 전과 후

복원 과정은 아슬아슬한 줄타기입니다. 한 끗 차이의 실수로 복원과 훼손을 넘나들기 때문이죠. 때로는 원작자의 작품을 고쳐달라는 요구가 들어오기도 하고, 복원을 넘어선 처리를 요구하는 의뢰인도 있습니다. 물론 김주삼 소장은 단호합니다. 그는 복원가이기 때문이죠.

“복원은 원작이 어느 정도 남아 있는 상태에서 훼손되고 유실된 부분을 채워가는 것을 말합니다. 복원가에게 최악은 복원을 못 하는 것이 아니라 괜한 욕심으로 원작을 망치는 것이죠. 사실 작업을 하다 보면 더 잘할 수 있겠다는 욕심이 생기는 순간이 있어요. 굉장히 위험한 유혹인데 적정한 선에서 멈출 줄 아는 게 복원가의 진짜 역량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복원가라도 원작의 상태에서 벗어나는 복원은 용납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김주삼 소장은 욕심을 제어하고 멈춰야 할 때를 아는 것을 복원가의 첫 번째 덕목으로 꼽습니다.



손상이 클수록 가슴이 뛴다

〈의자에 앉은 성모〉 (라파엘로 작품 복사본) 작가 미상 복원 전과 후
l 〈의자에 앉은 성모〉 (라파엘로 작품 복사본) 작가 미상 복원 전과 후

세계적인 거장들의 작품을 가까이 보고 만지는 희열도 좋지만 진짜 보람은 거의 죽어가는 작품을 기적적으로 살렸을 때 옵니다. “대구의 한 수녀님이 그림을 가져오셨는데 손상이 심해서 거의 쏟아지기 직전이었어요. 복원 비용을 듣고는 그냥 가겠다고 하시는 걸 최소한의 재료비만 받겠다 하고 복원을 시작했지요. 복원한 그림을 보고 놀라던 수녀님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몇 해 전에는 고 이응노 화백이 옥중에서 만든 조각품이 들어왔습니다. 감옥에서 겨우 구했을 밥풀과 나무 조각을 이용해 만든 조각품은 벌레와 곰팡이로 바삭해질 만큼 상당 부분 썩어 있었습니다. 원형을 살리는 동시에 생명력을 오래 이어갈 수 있도록 새로운 소재를 더해야 했지요. 고심 끝에 천연수지로 재질을 강화해 원형을 되살렸습니다. 옥고를 치르며 어렵사리 만들었을 작품, 그 의미가 특별한 만큼 의뢰했던 미망인은 거듭 고마움을 전해왔습니다. “복원가는 표면의 상처뿐 아니라 내재적 위험성까지 찾아내고 이를 막는 처리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찢기고 구겨진 그림을 복원하는 것보다 겉으로는 멀쩡한데 재료 자체가 약해 손상의 우려가 있는 그림을 처리하는 게 더 힘들죠.”

〈부부상〉 이쾌대作 복원 전과 후
l 〈부부상〉 이쾌대作 복원 전과 후

현대미술의 경우 작가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도 관건. 가령 조각가이자 설치미술가인 루이스 부르주아의 청동작품에 입힌 하얀색 칠이 변색됐을 때. 다시 칠하면 간단하게 끝날까요? 김주삼 소장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루이스 부르주아는 작품의 변화 과정까지 수용해온 작가 중 하나입니다. 변색 역시 작가의 의도이기 때문에 덧칠을 하는 것은 복원이 아닌 훼손이 될 수 있습니다. 작가의 의도가 다양하게 확장되는 현대미술의 복원이 까다로운 이유입니다.

그는 복원뿐 아니라 경매에 나온 작품이나 전시회로 우리나라를 찾은 작품의 상태를 체크하는 역할도 합니다. 해외 미술관은 우리나라에 작품을 보낼 때 일차적인 상태조사를 하고 수송하는데, 우리나라에 도착 후 이 컨디션 리포트를 보고 이송 중 문제가 없었는지 다시금 확인하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전시를 마친 후 떠나보낼 때도 컨디션 리포트를 작성합니다. 이는 해외 거장의 작품을 다양하게 만날 수 있는 기회이자 미술품 관리에 대해 한 수 배울 기회이기도 합니다.



매일 새로운 예술과 과학의 접목

김주삼은 자신의 뒤를 이을 후학들을 위하는 마음으로 미술품 복원 작업을 계속합니다
l 김주삼은 자신의 뒤를 이을 후학들을 위하는 마음으로 미술품 복원 작업을 계속합니다

1987년 프랑스 유학을 택한 김주삼 소장은 파리1대학 문화재보존학과 대학원 과정 최초의 한국인이었습니다. 학과 공부보다는 그림 그리는 게 더 좋았던 그는 대학 시절 우연히 미술품 복원에 대한 기사를 접했고, 단숨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그림을 좋아하는 데다 화학을 전공해 알량한 과학 지식까지 있었으니 미술품 복원이야말로 자신이 할 일이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다고 합니다. “정보가 거의 없는 상태로 떠난 유학이었는데 걱정이 안 되더라고요. 어차피 처음 가는 길이고 가진 게 워낙 없으니까 오히려 대담하게 즐겼던 것 같아요. ”

어쩌면 사명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는 자신의 복원 작업은 클라이언트가 아니라 후학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언젠가 후배들이 자신이 복원한 작품과 마주했을 때 ‘역시 김주삼의 복원은 다르다’는 소리를 듣는 게 그의 바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경험을 차곡차곡 정리한 가이드북을 만들고자 합니다. 미술품 복원가로 방향을 튼 지 30여 년, 그 많은 시간 동안 그는 똑같은 상태의 작품을 만나본 적이 없습니다. 안주할 틈 없이 좋아하는 그림을 보고 만지며 생명을 부여하는 복원가. 그는 오늘도 환자를 대하는 신중함으로 상처투성이 그림 앞에 섭니다.



글 강현숙
사진 한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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