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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도시를 위한 건물을 짓다
공항 건축의 대가 펜트레스2015/04/17by 현대제철

공항 건축의 교과서 펜트레스
그의 철학이 담긴 공항 이야기

커티스 펜드레스가 디자인한 덴버국제공항 전경 ⓒ City&County of Denver Department of Aviation
l 커티스 펜드레스가 디자인한 덴버국제공항 전경 ⓒ City&County of Denver Department of Aviation



“만약 화성인을 데리고 현대 문명을 관통하는 다양한 주제를 깔끔하게 포착한 단 한 장소에 데려가야 한다면, 가야 할 곳은 공항밖에 없을 것이다” 지적이고 섬세한 소설가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은 위와 같이 단언합니다. 공항은 자유로운 이동을 위한 도약대임은 물론, 문화와 삶을 함축해서 빚어놓은 또 하나의 온전한 세상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공항 건축의 교과서’라 불리는 커티스 펜트레스(Curtis Fentress)가 있습니다.



공항 건축의 일인자

로키산맥과 어우러지는 텐트구조로 설계된 덴버국제공항의 외관
l 로키산맥과 어우러지는 텐트구조로 설계된 덴버국제공항의 외관

1928년 런던 외곽에 세계 최초의 크로이던(Croydon)공항이 건설된 이래로 오늘날까지 전 세계에는 수많은 공항이 건립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공항을 설계한 수많은 건축가들 중 최고는 누구일까요? 질문에 대한 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다름 아닌 미국 건축가 커티스 펜트레스인데요. 덴버국제공항(1995년), 인천국제공항(2001), 시애틀 타코마국제공항(2005), 캘리포니아 산호세국제공항(2010), 로스앤젤레스국제공항(2013)에 이르기까지 공항 설계에 있어 그에게 필적할 만한 건축가는 없습니다.

로마 시대 건축가인 비트루비우스(Vitruvius)는 그의 저서 〈건축 10서 (The Ten Books of Architecture)〉에서 건축이 지녀야 하는 3대 원칙으로 ‘견고함, 편리함, 아름다움’을 제시했습니다. 건축 기술과 재료가 혁명적으로 발전한 오늘날까지 비트루비우스의 단순 명쾌한 논지는 변하지 않는 진리로 여겨집니다. 공항은 그가 말한 건축물의 견고함, 편리함, 아름다움의 조화가 가장 돋보이는 건축물 중 하나입니다.

덴버국제공항은 태양열을 이용해 저녁 동안 지붕의 조명을 밝힙니다
l 덴버국제공항은 태양열을 이용해 저녁 동안 지붕의 조명을 밝힙니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는 하루에도 수천만 명이 비행기를 통해 국가와 국가를 자유롭게 여행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통과하는 곳이 바로 공항이죠. 공항은 한 나라의 관문으로서 방문객이 제일 먼저 접하기 때문에 그 나라에 대한 첫인상을 결정짓는 상징적 공간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까닭에 공항은 단순히 비행기를 타고 내리는 터미널의 개념을 넘어 그 나라에 대한 이미지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것이 오늘날 공항이 호텔, 편의시설, 쇼핑 그리고 유흥시설 등과 결합해 마치 거대한 하나의 도시처럼 변모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펜트레스는 자신조차 기억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공공건물을 디자인했지만, 그 무엇보다 공항에 애착을 갖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습니다. 공항이야말로 변하지 않는 건축의 본질을 추구하면서 새로운 기술과 가치를 담아야 하는 건축의 총화이기 때문입니다.



도시가 원하는 건축

빛을 투과하는 덴버국제공항의 지붕은 밝고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해 이용객들의 긴장을 풀어줍니다
l 빛을 투과하는 덴버국제공항의 지붕은 밝고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해 이용객들의 긴장을 풀어줍니다

“건물은 건축가의 자서전이 아니다(A building is not the autobiography of an architect)” 펜트레스가 한 이 표현은 그의 건축이 추구하는 지향점을 대변합니다. 펜트레스가 건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건물을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그다음으로 한 도시를 상징하는 건축적, 공간적 매력을 지녀야 합니다. 이는 비트루비우스가 주장한 건축의 3대 원칙과 일맥상통합니다. 공항 건축의 대가로서 그의 명성을 드높인 덴버국제공항에는 펜트레스의 건축적 이념이 그대로 녹아들어 있습니다.

콜로라도주에 자리한 이 공항은 미국에서 가장 큰 공항으로, 멀리 로키산맥의 화려한 설경을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따라서 펜트레스는 로키산맥과 형태적으로 어우러지는 텐트구조로 공항의 전체적인 외관을 디자인했습니다. ‘장력막(Tensile Membrane)’이라 불리는 이 지붕은 좌우로 당기는 힘에 의해 형태를 유지하는 구조입니다. 이런 디자인은 고스란히 내부 공간의 특성으로 연결됩니다. 빛을 적절히 투과하는 지붕은 인공조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밝고 아늑한 공간을 연출해 낯선 곳에 대한 긴장감으로 자칫 경직될 수 있는 이용객들에게 편안함을 선사합니다.

로스앤젤레스 공항은 태평양 해변의 파도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졌습니다
l 로스앤젤레스 공항은 태평양 해변의 파도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졌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공항 전체에 태양열 집열판을 활용해 전력을 공급함으로써 대형 공항으로서는 높은 수준의 에너지 효율을 자랑하는 친환경 건물로도 명성이 높습니다. 비행기의 이착륙이 늘어나는 초저녁 무렵이 되면 덴버국제공항의 아름다움은 극대화됩니다. 그렇게 덴버국제공항은 등장과 동시에 덴버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로 단숨에 자리매김했습니다.

펜트레스의 작품 중 가장 최근에 완공된 로스앤젤레스국제공항 역시 덴버국제공항과 유사한 방식으로 접근했습니다. 공항의 주형태를 이루는 우아한 지붕선에서는 연속되는 리듬이 느껴지는데, 태평양 해변의 물결치는 파도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또한 산타모니카산 방향으로 디자인한 거대한 커튼월은 자연을 한껏 내부로 받아들이는 역할을 합니다. 자연을 최대한 활용하고, 주변 환경과의 조화를 우선시하는 펜트레스의 철학이 그대로 읽혀지는 또 하나의 걸작입니다.



공항으로 표현하는 도시의 정체성

인천국제공항의 외관은 한국 전통 기와집의 우아한 처마 선을 접목했습니다 ⓒ KOREAN AIR
l 인천국제공항의 외관은 한국 전통 기와집의 우아한 처마 선을 접목했습니다 ⓒ KOREAN AIR

21세기가 시작된 후 우리나라의 새로운 관문으로 등장한 인천국제공항. 건립 이후 인천국제공항은 디자인에서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의 권위 있는 상을 휩쓸 정도로 명성을 떨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지어진 건물이 전 세계적으로 칭송받은 경우는 드물기에 매우 뜻깊은 건축물이기도 합니다. 영종도에 자리한 인천국제공항은 주변에 특별한 테마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펜트레스는 우리나라 전통 기와집의 우아한 처마 선을 공항의 외부 형태에 접목했습니다.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루어진 인천국제공항의 외관은 이용자들에게 편안함을 줍니다 ⓒ KOREAN AIR
l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루어진 인천국제공항의 외관은 이용자들에게 편안함을 줍니다 ⓒ KOREAN AIR

겉에서 보기에 직선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 부드러운 곡선감은 거대한 형태가 주는 육중함을 누그러뜨립니다. 우리나라 전통 건축의 해석과 도입은 내부공간에서도 시도되었습니다. 공항 내부에 몇 개 층을 수직으로 가로지르는 소나무를 심어 전통 정원을 디자인했습니다. 소나무 정원은 공항 내부에 사용된 철재가 전하는 차가운 느낌을 줄어들게 합니다. 또한 자연 채광을 최대한 이용하도록 설계해 어떤 공항과도 비교할 수 없이 밝고 활기찬 분위기를 연출했습니다.

시애틀 타코마국제공항의 디자인은 실내정원에 들어온 듯 편안한 느낌을 줍니다 ⓒ Port of Seattle
l 시애틀 타코마국제공항의 디자인은 실내정원에 들어온 듯 편안한 느낌을 줍니다 ⓒ Port of Seattle

2005년에 확장 공사를 마치고 완공된 시애틀 타코마국제공항 역시 대형 아트리움을 설치해 마치 실내정원에 들어온 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펜트레스는 시애틀의 상징인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Pike Place Market)에서 디자인 모티브를 가져왔습니다. 레스토랑, 카페, 각종 편의시설의 배치와 이를 위한 동선, 이용객을 위한 의자의 배치는 공항이라기보다 편안한 도시의 공공공간을 연상시킵니다. 여기에 더해 거대한 창을 통해 1949년에 건립된 기존 공항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과거와의 조화를 모색했습니다.



공항 건축의 끊임없는 진화

산호세국제공항은 미디어아트 박물관을 연상시킵니다 ⓒ City of San Jose Department of Aviation
l 산호세국제공항은 미디어아트 박물관을 연상시킵니다 ⓒ City of San Jose Department of Aviation

2010년에 완공된 캘리포니아 산호세국제공항은 실리콘밸리로 유명한 캘리포니아의 최첨단 기술을 담았습니다. 펜트레스의 공항 디자인은 기본적으로 하이테크 이미지를 연출하기로 유명하지만, 실리콘밸리에 있는 산호세국제공항은 그중에서도 더욱 파격적인 형태와 공간감이 돋보입니다. 정교한 프로그램으로 작동하는 ‘디지털 아트’가 설치된 공항 내부는 마치 거대한 미디어아트 박물관을 연상시킵니다.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디지털 아트를 즐기는 것은 산호세 국제공항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죠.

펜트레스가 설계한 공항들은 먼 길을 떠나는 여행자들에게 편안함을 선물합니다 ⓒ Port of Seattle
l 펜트레스가 설계한 공항들은 먼 길을 떠나는 여행자들에게 편안함을 선물합니다 ⓒ Port of Seattle

지난 2010년에 펜트레스는 미국건축가협회(AIA)로부터 공공 건축 부문 최고의 영예라 할 수 있는 토머스 제퍼슨상(Thomas Jefferson Award)을 수상했습니다. 앞서 설명한 펜트레스가 디자인한 공항은 모두 다른 형태와 공간적 특성을 지닙니다. 펜트레스는 공항을 디자인하면서 해당 도시와 주변의 맥락에서 영감을 얻고자 치열하게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평범하거나 일상적이지 않은 공간이지만 펜트레스는 공항 디자인에 풍요로운 이야기를 담습니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이용객들은 펜트레스의 공항에서 안전함, 편안함 그리고 아름다움을 한껏 음미하며 여행의 한 조각을 만듭니다.



글, 사진. 김정후 (도시사회학 박사, 영국 런던대UC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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